새로운 사역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신선한 경험을 했습니다.
사역자를 뽑는 과정에 담임 목사님이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그렇고.

부부가 함께 가서 인터뷰를 하는 것도 그러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다섯 분 목사님이 던지는 질문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자소서와 이력서를 꼼꼼히 읽고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신선하고 놀랐던 건 저를 부르시는 호칭이었습니다.
'채윤이 어머님'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네? 저, 저요? 채윤이 어머님이요? 

또 '정선생님' 이라 부르며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목회자 청빙을 위한 인터뷰 석상인데

'사모님'이라는 손쉬운 호칭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잔잔한 충격이었습니다.

어릴 적에 '사모의 사자는 죽을 사자란다' 하던 엄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피하고만 싶었던 늦깎이 목회자 사모가 된 지 어언 6년.

'당신은 목회자 사모가 아니라 내 아내다.

목회자 사모로 살지 말고 내 아내로 살면서 남편이 나를 사랑하면 된다'

남편이 일관되게 말하지만 '사모'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사모님, 사모님' 하면서 불러주고 다가올 때면
'아, 호칭 자체가 문제가 아니구나. 사모님이란 말이 참 따스하구나'
싶기도 해서 호칭 자체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아, '사모님'보다는 '사모'라고 해봅시다.

'님' 떼고 '정신실 사모'라 하면 한결 느낌이 살아납니다.

한국교회 안의 독특하고도 비상식적인 메타포를 잘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불편한 지점도요.

같은 사모님들 끼리 '정신실사모' 이렇게 부르면 불편하고 의아했습니다.
부하직원은 '김부장님'이라고 부를 것을 상사는 '김부장'하고 부릅니다.

사모님의 '님'은 그때의 '님'과는 다른 '님'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차마 목사님 욕을 할 수는 없고(주의 종을 욕하다 벌 받을까봐)

목사님의 여자는 상대적으로 흠잡고 비난하기 딱 좋은 존재일 것 같아요.

그런 용도로 사모가 사용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근 20년을 교회에서 언니 동생으로 지내던 후배가 '정신실 사모' 하면서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보고 뒷목을 잡았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시점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먹은 밥이 몇 끼이고, 함께 한 수련회가 몇 번이고,

연애의 격랑에서 밤늦도록 통화하며 울고 웃었던 나날이 얼만데.

소개팅 후 배우자 확신을 위해서 나눈 얘기며 기도가 얼만데

그 모든 일상을 지우는 한 마디.

'정신실 사모'가 현기증 날 정도로 혐오스러웠습니다.

근 20여 년 교회 동생으로 종필아 종필아 했던 남편에겐 더 없이 깍듯해지고,

심지어 과하게 존중하는 태도였으니까요.

살아 있는 풍성한 관계를 지우는 호칭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이러나 저라나 한국교회 '사모님'이란 용어는

너무 많은 비상식적과 비합리적 기대와 뒤틀린 신앙의 편견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사모님'에서 '사'를 빼고 만든 이름 '모님'이란 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아그들이 '모님'이라는 보통/고유명사로 불러줄 때 크게 위로가 되었었지요.

새로 가는 교회에서는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아예 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얼룩진 호칭으로 괜한 굴레를 씌우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편이 한 사람의 신앙인이 아니라

오직 '목회자'의 정체성만으로 일상을 살아가려 한다면

얼른 목회의 자리를 빨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교회를 함께 망치는 일입ㄴ다.
저 역시 '사모'의 정체성 때문에 기도하고 사랑해야 한다면

'내가 가장 불쌍한 자로구나' 하면서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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