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닝커피와 함께 '짧고 굵은 수다 떨기'가 좋다. 오래 같이 살아서인지 짧은 시간에도 깊은 대화로 들어가서 잠시 머물다 바로 털고 일어나는 일이 가능해졌다. 남편이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전보다 자유로워진 덕인지도 모른다. 채윤이 시험기간이라 덩달아 피폐해져 있는 내게 오늘 아침의 짧은 수다는 오랜만에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나가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다 보니 그가 또 한 방울의 'goodness'를 떨어뜨리고 갔구나 싶다.


#2

어제 구역장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남편이 했다는 얘기다. 주제가 '용서'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타인을 향한 '용서'인데 많은 크리스쳔들이 심지어 목사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제가요. 절대 용서 안 할 겁니다.'라고 거침없이 고백한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인가?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인가? 어느 노인분이 옆에 있는 목사님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 남편이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 용서를 안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본인이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를 말씀하시는 거로구나.' 결국, 그 힘든 마음을 알아달라는 뜻이라며. 그 말에 나도 맞장구 치며 공감을 했다.


#3

연애, 결혼 강의를 가서 마지막 부분에 이 질문을 꼭 던진다. '사람이 변하냐, 안 변하나?' 대부분 변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지겹게 안 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게도 지긋지긋하게 변하지 않는 존재가 달라지는 것은 '사랑받을 때'이다. 그것도 가장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났을 때 사랑받아 본 사람은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100% 리얼, 나의 경험으로 입증된 고백이다. 신혼 초 어느 날, 잘 숨기고 있던 내 내면의 지저분한 것들이 발가벗겨진 것처럼 드러나서 공황상태가 된 순간이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모든 것을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어이없고 화가 나서  물었다. '왜 한 번도 지적하지 않았냐?' 그랬더니 남편이 '당신의 약점은 당신이 가장 잘 알잖아.'란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에 예수님도 만나고 하나님도 만나고 회심도 다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부터 비로소 견고한 자기 방어의 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4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그 이면의 '욕구'를 봐줄 줄 아는 남편의 눈이 선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실은 그 눈으로 나를 바라봐 준 덕에 내가 이만큼 사람이 된 것이다. 고백컨대, 자잘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감정에 관한 한 나는 남편을 하등동물 취급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결혼 14년 동안 '내가 하는 말과 토로하는 아픔에 일일이 맞장구 쳐주고 공감해달라'는 한결같은 요구로 그를 볶아댔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공감'은 됐고, 내 안에 있는 '선한 것을 발견해주는 눈'이 내게 정말 필요한 사랑이었다. 키가 20cm 이상 차이가 나니 늘 올려다봐야 하는 그이다. 결혼 14주년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떠올려보는 그 사람은 아이 같은 내게 참으로 큰 사람, 어른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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