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구름 뒤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가 있을 것 같아.
엄마 있잖아, 그게 있을 것 같다고 상상하면 없는데도 정말 있는 것 같은 느낌 알아?
구름만 있는데 구름 뒤에 진짜 라퓨타가 있을 것 같은 거.

(재량 휴업일이라 학교 휴업인 현승이와 한강에 나가 탱자탱자 놀다 왔다.)




남편과의 애정사에서 굵직굵직한 일은 모두 한강 변에서 일어났다.
15, 6 년 전 어느 날
천호대교와 광진교 사이 한강 변에서 두근두근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었다.
팔당대교 아래 한강변에서 데이트하며 '가난하게 사는 장래희망'을 나누고,
그가 지은 시와 노래를 읊으며 하염없이 앉아있기도 했었다.
둘 사이에 한강보다 더 큰 강이 흘러 도저히 건널 수 없다는 좌절에 헤어지기로 한 날도 11월 이른 추위가 들이닥친 한강 변이었다.
결혼 8주년 기념일이었나? 구리 한강변에서 감회를 나눴었다.
그리고 결혼 14주년인 오늘엔 생각지도 않은 성산대교 아래에서 아빠 미니미 현승이와 놀았다.




들꽃을 사랑하는 아빠의 아들답게,
현승이는 자연에 나가면 자연과 하나 되어 뒹굴고 논다.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자세가 경건하기 이를 데 없다.
 



한강의 오리 배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꼭 살아있는 오리들이 줄 지어 헤엄쳐 가는 느낌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승이가 또 한마디 거든다.
오리 배가 아니라 오리 같애.




한참을 네 잎 클로버 찾기, 개미 관찰하기,또 (엄마 눈엔) 의미 없이 땅 파기 등을 하며 놀았다.
그닥 재밌어 보이지도 않는데 같이 점심 먹자는 아빠의 제안도 거절했다.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벌레나 개미들이 먹을 수 있게 떡 조각 남은 걸 비닐만 버리고 나무 밑에 놓아두잖다.




건너편의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조금 이른 듯한 분수의 물줄기가 한산하고 햇살을 따사로운 한강 변에 여유로움을 더한다.
원고와 원고 사이, 모처럼 내 마음도 여유로운데다가 메이데이 덕에 일도 하루 쉰다.
결혼 14년,
아빠를 많이 닮았지만, 아빠보다 진화한 아들 현승이랑 하는 한강 데이트도 좋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저 녀석을 정말 나긋나긋한 남자 사람으로 잘 키워서 어느 예쁜 아가씨를 복되게 해야겠다.
좋구나! 5월의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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