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7


사라 
  모님. 이거….

모님
 
  오, 안개꽃 진짜 예쁘다. 고마워. 그런데 사라 미모에 가려 안개꽃이 죽는데….

사라 
  에이~ 모님….

모님
 
  사라가 커피 안 마시던가? 허브티 줄까? 모카 마타리라고 좋은 커피가 있긴 한데.

사라 
  커피 괜찮아요. 연하게 주시면 돼요. 마타리라는 이름이 왠지 끌리네요.

모님
 
  커피의 귀부인이라고 불린단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이기도 하고. 고흐가 좋아하는 커피였대.

사라 
  고흐요? 아… 고흐. 저 지금은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싶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그림 공부하면서 고흐 그림 좋아했었어요.

모님
 
  그래? 오늘의 커피 제대로 선택했네. 커피에서 느껴지는 고상함이 사라에게서 느껴지는 느낌하고 비슷하단 생각을 했거든. 고매하신 사라 양. 호호호.

사라 
  모니~임. 놀리지 마세요.

모님
 
  아니 지난번에 칠규가 그렇게 부르기에. 호호. 자 커피 마시자. 이렇게 안개꽃만 모아서 꽃다발을 만든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잔잔한 느낌이 전혀 새롭다.

사라 
  이해인 수녀님의 <안개꽃>이라는 시가 있어요. 그 시에 '장미나 카네이션을 조용히 받쳐주는 별무더기'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언젠가 한 번쯤 안개꽃만 한 다발 사봐야겠다 싶었거든요.

모님
 
  4유형의 자아이미지가 나는 특별하다, 독창적이다 이거지. 뭔가 나는 남과 다르다, 군계일학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생각해?

사라 
  (뜸들이다가) 음…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모님
 
  암요. 다 특별하죠? 큭큭큭. 웃어서 미안. 어쩌면 그렇게 너다운 답이냐.

사라 
  …….

모님
 
  4유형들은 뭐랄까 비밀처럼 슬픔을 간직한 인상이지. 언제든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눈, 말소리도 구슬프다고 해야 하나? 때론 이런 인상이 지나쳐서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기도 해.

사라 
  모든 4유형이 다 그런 표정일까요?

모님
 
  아, 물론 이런 표정을 짓는다고 다 4유형이란 것은 아니야. 대체로 이런 비슷한 인상이라는 거지. 표현이나 생각이 색다르기 때문에 뭔가 개성적이고 독창적이고 예외적으로 느껴져.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에 민감해서 대체로 독특한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딱 사라가 그러네.

사라 
  네… 네? 뭐가 딱이에요?

모님
 
  예술적인 재능 말이야. 물론 이것도 모든 예술가들이 4번이라는 게 아니라 4유형들은 남다른 심미안이 있다는 얘기야. 자연에 대한 친화력도 커서 풀이나 동물들이 말을 걸어온다며?^^

사라 
  아, 저번에 육미가 독립해서 이사했잖아요. 그때 제가 화분을 사갔는데 육미가 물을 얼마 만에 줘야 하냐는 거예요. 제가 '쟤네들이 다 알아서 목마르다고 해.' 그랬더니 애들이 다 쓰러지더라고요. 이런 건가요?

모님
 
  호호호. 그래. 또 정서적인 강도가 높은 사람들이지. 특히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을 발견하는 눈이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자신들이 소외감을 많이 느껴봤다는 뜻 아닐까?

사라 
  네에….

모님
 
  이런 4유형들이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 특별함이야. 나는 남과 달라야 한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다르다는 것 때문에 이해 받지 못 한다는 소외감에 시달리는 거야.

사라 
  뭔가… 그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제 안에 항상 공존하죠.

모님
 
  옷을 사러 갔는데 '이거 요즘 유행하는 옷이에요.' 하면 살 맘이 생기니?

사라 
  아니요. 오히려 '하나밖에 없는 옷이에요.' 하면 끌려요. (소리 없이 웃으며)

모님
 
  특별함에 집착하기 때문에 때론 너무 튀거나 비정상적으로 비치기도 하고 심지어 위험하고 강렬한 모험에 뛰어들기도 하지.

사라 
  모험이라… 모험이 제게 어울리는 말일까요?

모님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또는 이루어질 수 없어 보이는 상대만 골라서 연애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비극적 낭만주의에 빠져드는 것…. 이런 것 말이야.

사라 
  아….

모님
 
  강렬하고 극단적인 정서생활을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가슴형의 에너지를 안으로 쓰는 4유형은 온통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지. 그래서 타인에게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보이고 감정기복이 심하게 느껴져. 4유형의 감정기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으로 많이 힘들어 한다는 거 알고 있니?

사라 
  누가 누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제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까요?

모님
 
  4유형들이 대체로 그러더라. '니 맘을 알겠다'고 하면 '니가 내 속을 어떻게 알겠느냐'며 뒤집어지고, '그래 모르겠다' 하면 자기 맘 몰라준다고 더 상처 받고 말이야. 깊이 이해 받고 싶으면서 동시에 거부되는 자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거지.

사라 
  그래서 제가 늘 슬프다고 느끼는 걸까요?

모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슬프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지도 않지.

사라 
  아…. 맞아요. 딱 그런 느낌이에요.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하세요?

모님
 
  보통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에 가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해. 넌 어떤 것 같니? 경치가 정말 아름다운 곳에 갔다, 어떤 생각이 들어?

사라 
  음…. 저는 작년 겨울에 설악산에서 설경을 마주했어요. 그때 숨이 멎도록 너무 아름다워서 이런 곳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아름다움의 최상급은 왠지 그렇게 통할 것만 같….

모님
 
  죽음을 상상하지 않는 4유형이 없다고 해. 죽음도 늙어서 죽는 것처럼 비참한 것이 없고 사랑의 절정의 순간에 죽어야 하지. 흰 백합꽃에 둘러싸이는 건 기본 옵션? 호호호.

사라 
  이런…. 아, 모니~임.

모님
 
  완전 공감? 큭큭큭. 자, 특별함에 집착하는 4유형은 모든 평범한 것을 회피해. '혹시 내가 평범한 것 아냐?'를 두려워한다는 거지. 그러다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것, 정상적인 것까지 회피하게 된다고 해.

사라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대체로 친구들이 하는 대화에 끼기가 힘들어요. 그네들이 흔히 하는 얘기들이… 뭐랄까… 제게는 무의미하게 다가온다고나 할까요? 그냥 제가 섬 같은 느낌이에요.

모님
 
  한마디로 천박하다고 느껴지는 거 아니고?

사라 
  그… 글쎄요. 암튼 남들과 같아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똑같은 교복, 유니폼…. 이런 거 입어야 하는 거 정말 좀 그래요.

모님
 
  아하하… 그거 생각나? 너 지난번에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목에 스카프 두르고 있었던 거. 뭐라도 해서 어떻게든 다르고 싶었던 건가?

사라 
  그런가요? 후후후.

모님
 
  근원적인 죄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질투 또는 선망이 4유형의 근원적인 죄야. 모든 것을 비교하고 질투한다고 하지. 선망하지 않는 대상이 없고. 누가 나보다 더 멋있고 품위가 있는지, 더 안목이 있는지, 더 천재적인지….

사라 
  더 사랑받는지, 더 건강한 정신을 가졌는지, 더 정상적인지… 요?

모님
 
  그렇지! 남들과 달라야 하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질투의 눈길을 보내는?

사라 
  아, 현실의 사랑이나 행복이 매혹적이면서도 혐오스러운 혼란스러움, 이런 거군요.

모님
 
  이런 표현을 확실히 잘 알아듣는구나. 소유하게 되면 싫증을 느끼고, 멀어지면 그리워하는 것을 반복한다지. 그래서 연애도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사라 
  어머….

모님
 
  이렇듯 특별함과 평범함 사이의 딜레마 속에서 4유형이 쓰는 방어기제는 인위적인 승화야. 느낌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상징, 의식, 멋 부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거지.

사라 
  인위적이라는 말씀이 뭔지….

모님
 
  예를 들면, 로맨틱한 음악, 붉은 장미 한 송이, 물에 띄운 양초와 와인이 있는 테이블… 이런 설정과 분위기로 상징적 표현을 한다는 거야. '사랑해'라고 말로 해도 마음을 알아줄까 말까인데 말이다.

사라 
  '사랑해' 한마디로요?

모님
 
  너무 간단하니? 그 엄청난 감정을 '사랑해' 한마디로 딱 자른다니…. 후훗. 어쩌면 특별하고 특별한 나를 유형 하나에 집어넣어 설명하는 것도 어불성설같이 느껴지진 않아?

사라 
  어, 빙고요! 지금 내내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고, 속할 수도 없는 것 같다고요. 복잡하고 설명이 안되는 게 인간 아닌가요?

모님
 
  예, 많은 4유형들이 모여 앉아 '우린 서로 다르다'며 그렇게 말씀들 하시더구먼요.^^ 사라야, 그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덩어리는 '너'가 아니야. 감정과 너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눈이 있으면 좋겠구나.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는 들풀 하나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이 사라를 바라보고 계셔.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사람들에게 오해나 상처를 받았다며 붙드는 소외감, 슬픔의 늪 같은 것들이 사라에겐 '치장'일지도 몰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지금 여기, 우리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그분의 눈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일진대, 또한 가장 성스러운 지점 아니겠니?

사라 
  장미도 카네이션도… 심지어 그것들을 조용히 받쳐주는 안개꽃도 아닌 들풀 한 포기를요? 음…. (끄덕끄덕) 들풀 하나도 그분이 가꿔주시죠. 하찮은 들풀이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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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사회적, 교회적, 국가적 모든 삶에서 회의 그 자체였던 시절이 있었다. 신비? 신비는 커녕 그저 정상범위 안에서 삶이 돌아가기만해도 좋겠다는 싶었었다.
몇 년 전 5월 회의가 극에 달하던 어느 시점에서 일주일 정도 밥도 못 먹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헨리나우웬의 <영성수업>-직접 쓴 책은 아니다- 을 읽다가 '커다란 의문, 근본적인 의문, 보편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이 영성지도를 구하는 것'이라는 저 구절을 읽었다. '의문을 품으라'라는 한 문장으로 마음에 새기면서 거의 끊었던 곡기를 다시 찾게 되었었다. '그래. 회의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용기있게 의문을 품자. 그 분이 의문을 풀어주실 때까지 어설픈 믿음의 시늉으로 섣부른 타협하지 말자' 이 정도의 통찰로 몸과 영혼에서 탄수화물을 다시 받아들이며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때 기꺼이 정직하게 품은 의문들이 하나 씩 둘 씩 내 인생의 신비로 바뀌어가는 것은 아닐까?




 #1의 신비

지난 한 주는 신비의 일주일이었고, 신비의 주제는 '기록'이었다. 주 중엔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를 하였다. 그리고 그 매체에 기고를 하기로 되었다. 인터뷰 요청은 블로그를 통해서 이뤄졌고, 만남 자체도 이 블로그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때문에 블로그와 관련하여 일상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뷰하시는 기자께서 짧은 시간에 많은 글들을 읽고 오셨고, 편하게 나눈 이야기들이 내겐 삶을 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날을 꿈꾸게 한 고무적인 만남이었다. 그저 쓰고 싶어서, 10여 년 개인 블로그에 꾸준히 써 온 글들이 1500 개가 넘는다. 곧 출간될 책, 기고글이 인연이 되어 시작된 이런 저런 강의 역시 이 곳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퍼질러 앉아 주절거린 글 때문이다.


#2의 신비

작년에 인연을 맺은 죠이서지부 리더훈련에서 에니어그램 강의를 하게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리더훈련이 좀 더 실질적인 열매를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간사님 중 한 분이 찾아왔다. 이런 저런 의논 끝에 텀을 두고 서너 번의 강의를 하되 그 기간동안 '(의식성찰)일기쓰기' 숙제를 주기로 했다. 말하자면 한 세 달 동안 개인적으로 일기형식의 글을 쓰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라이프스토리 한 편을 써서 나누는 것을 강의와 병행하겠노라 했다. 사실 에니어그램 강의를 통해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안내하고 싶은 건 '정직한 일기쓰기 훈련'이었다. 마음으로만 갖고 있던 걸 어떨결에 시도하게 되었고 지난 주 금요일 첫강의를 하였다. 결국 10여년 인터넷 글쓰기, 30년 일기쓰기를 통해서 나의 외면과 내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의 신비

남편이 오래 꺾었던 붓을 다시 집어 들었다.(이 식상한 표현!ㅋㅋㅋ) 어떤 이유에서인지 묵상도 글쓰기도 안된다며 오래 힘들어하던 남편이 조금씩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새단장하는 등 그답지 않은 적극성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내게 기쁨이 되었다. 
아무 때나 여러 방향으로 에너지가 팍팍 분출되는 나와는 달리 충분히, 아주 충분히 고인 것들만 길어올리는 남편의 기록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삶을 기록하는 것은 삶을 관조한다는 것이고,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은 나 밖으로 나갈 힘이 생겼다는 것이니 이 어찌 기뻐할 일이 아니겠는가.


#4의 신비

대박은 그렇게 보내고 맞은 주일이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우리가'라는 주어 한 마디로 '기록'이라는 화두를 끌어내 설교를 들려주시는 것 아닌가. ( 이 설교는 내 말로 옮길 수가 없다) 설교를 들으면서 지난 일주일의 여정을 관통하는 신비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는 감히
고백한다. '내 아버지께서 기록하시니 나도 기록한다' 기록하되 타인을 향하여가 아니라 내 내면을 향하여, 기록하되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기록하되 내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욕구를 헤아리며, 기록하되 내가 불필요한 힘을 가하고 있는지를 헤아리며 정직하게!

보잘것 없는 내 일상의 아주 미미한 것들에 영원의 현미경을 갖다대는 일로서의 '기록'으로 일상에서 보물찾기를 하겠노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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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할머니의 며느리야?

아빠의 엄마한테 엄마는 며느리잖아.


그러면 엄마의 엄마한테 아빠는 뭐야?


아~ 사위! 사위가 그거구나.


그런데 '사위' 그러면 그냥 말이 사위 같은데....

'며느리' 그러면 뭐지.... 말이 좀.... 말이 다르게 느껴져.

며느리라는 말은 그냥 딱 '며.느.리.' 이런 말이 아니라 시종이나 하녀...느낌이 들어.


그냥 나도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드는거야.




장래 내게 며느리를 맞게 해 줄 아들아!
엄마는 나름대로 며느리 피해의식 많이 극복하고 건강하게 며느리 하고 있다는 생각인데....
혹시 니 눈엔 그렇지 않은게냐?
아니면 이 부조리한 가부장적 틈새에서 끼인 며느리들의 흐느낌을 특유의 민감한 감수성으로 느껴버린 것이냐!
하이튼 너도 모르게 느낀 그 느낌, 여사롭지가 않구나.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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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는 아이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꽂고 강으로 나갑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는 벌써 몇 회 짼데 아직 1장을 넘어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30여분 설교를 듣고, 나머지 시간은 이런 저럼 음악을 들으며 강변을 걷습니다.
환하던 주변이 조금씩 어스름해지면 가로등이며 성산대교의 불빛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달과 인공위성 하나.


태초에 '빛이 있으라. 궁창이 있으라' 하신 그 말씀으로 만들어졌을 저 달,
그 분이 자신의 형상을 본따서 흙으로 만든 그 사람들이 만든 높고 낮은 건물들과 빛들.
하늘에서 땅에서 참으로 조화롭게도 빛을 발합니다.


귀에 울리는 사도행전 속 이야기들과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은 내 마음에 하늘의 이야기와 일상의 이야기를 오묘하게 공존시킵니다. 하늘의 삶을 살고 싶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일상입니다. 정말 내가 진실로 신앙하고 있다면 그 신앙은 하늘이 아니라 일상에서 빛을 발할 것입니다.

갑자기 목사님의 설교가 뚝 끊어집니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립니다.
"엄마,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음식이 몸에 들어가서 있는 데가 어디야? 위지? 나는 위가 작은가봐. 응.... 맞아. 다 먹을 수 있는데 버섯을 못 먹겠어. 알았어. 그러면 최대한 먹어볼께. 엄마 어디쯤이야? 빨리 와"
집을 나서면 차려준 밥을 아직 먹지 못하고 버섯과 양파를 접시에 고스란히 남겨놓고 께작거리고 있을 현승이의 목소리입니다. 이것이 일상입니다. 조용한 묵상으로 침잠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아이들의 요구, 이런 것들이요.


참 일이 많은 한 주 입니다. 원고 마감이 있고, 늘 하던 강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하기로 한 첫 강의가 있고, 한참 쉬었던 수업도 있었고, 새로운 글쓰기 만남을 여는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시험이 있어서 나름대로 시험에 들어있고.... 큰 부담으로 눌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김치가 떨어져 오이소박이도 좀 담가야겠고 밑반찬으로 피클도 만들어야겠고 당장 아침에 먹을 국은 뭘 끓이지? 모든 걸 진짜 잘해내야겠다는 욕심이 올라올 때 더 불안해집니다.
이게 일상이고 일상은 영원에 닿아있습니다. '내 힘으로 다 잘해서 인정도 받고 이름도 날려야겠다' 하며 눈이 흐려지는 순간 일상의 빛 역시 흐려질 것 같습니다. 일상의 빛이 흐려지면 영원을 담은 일상이 뒤트리면 천상의 빛 또한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작은 성공에 마음 높아지지 않고 작은 실패도 마음을 내팽개치지 않는 오늘을 위해서 사랑이신 그 분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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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 나 계주 뽑힐 걸 그랬나봐" 오늘 아침 먹으면서 현승이가 그랬습니다. 어제 5월4일 있을 소체육대 연습을 하고나서 계주를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대충 들었던 며칠 전 반에서 계주선수 뽑는 달리기 얘기가 생각납니다.
조별로 1,2등을 뽑아서 그 아이들끼리 달리기를 했는데 하다보니 자신이 1등으로 달리더랍니다. '어, 이러다 내가 계주에 뽑히면 어떡하지? 한 번도 안 해봤던 건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속도를 줄여서 3등을 했고, 1,2등 두 친구가 계주 대표로 뽑혔답니다.
아이구야, 그 때 속도를 줄였다는 얘기가 그 얘기였구나. 대표로 뽑힐까봐! ㅠㅠ


2.
그 얘기를 들으면서 채윤이가 그랬습니다. "맞다. 김현승 일곱 살 때 운동회 때도 그랬잖아. 1등으로 달려가서 결승점 앞에서 그냥 서버렸잖아. 그래서 따른 애가 1등했어" 그런 일도 있었네요. 달리기를 처음 해봐서 규칙을 모르나보다 하고 지나갔었는데.... 그 때도 현승이가 눈 앞에 있는 1등을 피해버렸군요.


3.
토요일 수영교실에 겨우 적응을 했는데 5일제 수업이 되면서 그 반이 없어지고 새로운 반이 만들어졌어요. 갑자기 아이들이 엄청 많아지고, 처음 두어 주는 테스트해서 레인배정 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더군요. 학부모 대기실에서 현승일 지켜보면... 그저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나를 주목하지 않을까? 이게 관건인 아이 같아요. 숨고, 또 숨고.
현승이가 일곱 살 부터 꾸준히 수영을 해온데다 진짜 좋은 선생님 만난 덕에 평영과 배영은 자세며 모든 게 선수 수준이예요. 저학년 그룹이니까 3학년인 현승이가 거의 제일 잘한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매 번 맨 꼴지에 가서 서는 거예요. 아이구, 속 터져. 앞에 친구들이 자유형 팔꺾기도 안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가고 있으면 그저 거기 맞춰서 쉬었다 가고 쉬었다 가고...
그러기를 5주 정도 하고나서 수영선생님이 '어, 현승이 너 수영 잘하네' 하면서 맨 앞으로 보내주신거죠. 그래. 숨고 숨어도 결국에는 자기 자리 찾게 되기도 하지만.


4.
수영 5주를 지켜보는 동안 나대기 본능 충만한 엄마는 속이 부글부글 하기도 했지만 그저 지켜보았어요. 엄마한테 나대지 말라고 하는 것 만큼이나 현승이에게 나서라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일테니... 1등을 해서 주목을 받느니 그 1등을 포기하겠다는데요.
"엄마, 나 계주 뽑힐 걸 그랬나봐" 오늘 아침의 이 한 마디면 족하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자신으로서는 필연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에 대해서 반추해보고,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배운다면 그걸로 족한 겁니다. 현승이는 현승이고, 현승이는 채윤이가 아니니까요. 그저 그렇게 생긴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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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까이 낑낑거리며 끌고다니던 키보드의 건반 하나가 부러졌다.

남편이 대학원을 마치면서 파트타임으로 전환을 했고 그 사이 직장생활 2년, 신대원 3년, 강도사 3년의 시간을 파트타임 음악치료사, 유리드믹스 음악교사로 여기 저기 셀 수 없는 곳에서 일을했다. 저 키보드로 말하자면 8년 동안 말 그대로 밥줄이었다. 무게도 어찌나 무거운 지 일이 한참 많은 때는 바로 저 키보드 때문에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팠으니 딱 밥벌이의 무게이고, 삶의 고단한 무게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연스레 음악치료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시누이가 하는 어린이집 유리드믹스 수업 하나로 겨우 전공의 명목을 이어가고 있는데 키보드가 저 모양이다. 남편의 아이디어로 살짝 부러진 부분을 걸고 테잎으로 고정하니 그럭저럭 또 버티겠다.
거금 들여서 산 키보드가 무게만 나가는 구물이 되고, 그나마 건반마저 부러져 걸리적거리는 것처럼 음악치료 대학원 2기라는 전설적인 깃수를 자랑하는 내 몸도, 내 에너지도 나이를 따라 소진해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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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어느 교회 아기학교에 엄마와 함께하는 음악수업을 갔다 왔다. 오랜만의 일이라 적잖이 부담이 되었다. 어제 아침 묵상을 하면서 수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오래 잊었던 나만의 열정과 에너지가 쭉쭉 뻗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악기를 챙기고 노래 반주를 녹음하면서, 젊은 시절부터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나를 만난다. 그리고 오늘 수업? 물론 행복했다.


 

내가 눈을 떼지 못하고 너무 좋아서 미치는 것 중 하나가 아가들이다. 잘생기고 이뻐서 이쁘고, 못생겨서 이쁘고, 똑똑해서 이쁘고, 맹해서 이쁘고, 적극적이라 이쁘고, 소심해서 이쁘고, 착 앵겨서 이쁘고, 까칠하게 굴어서 이쁘고..... 그런 아기들이 내 노래에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내가 시키는 악기연주에 넋을 놓으며 그저 난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다. 아기들 앞에 기타 들고 서면 바로 저렇게 여자 짐캐리로 변신이다. 내 의식으로 통제되지 않는 다른 내가 되는 느낌이다. 음악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날 때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언제부턴가 알아들어지기 시작했다. 평생 내가 죽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거라는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 억울하고 안타깝기도 했었다. 밀려오는 감정들이 '상실감'이라 이름 붙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 말씀이 알아들어졌다. 나는 젊어서 얼마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아붓고 주목을 받으며 살았던가. 주도하고 통제하며 살았던가.

오래 되어 어쩔 수 없이 낡아진 키보드를 받아들인다. 노병 아직 죽지 않아 고운 목소리로 아이들의 귀를 잡아 끌 수 있다해도 실은 내 몸의 한계를 느낀다. 이제는 '내 팔을 벌려서 남이 내게 띠 띠우고 원치 하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에 기꺼이 나를 내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 말하자면, 그런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는 듯 보여도 궁극적으로 그 '남'을 움직이는 손은 그 분의 손이라는 것 말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만 행복이 있다고 믿었는데 진짜 행복이 '내가 원치 않는 곳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네 팔을 벌리리니...... 
다시 보니, '늙어서는'이구나. 그래 뭐...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늙음도 유익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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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목사를 그만두고 김포로 숨어들어 애들 글쓰기를 가르치는 덕분이다.
현승이를 장학생으로 받아주는 바람에 월요일 마다 친정에 가게 되어 울엄마 얼굴 일주일에 한 번 씩 꼬박 보게 되었다.


80이면 하나님이 데려가실 것이다. 아니다. 팔십 몇이다... 하시면서 그 나라 가시기만 고대 하시는 엄마. 지난 주 까지도 '삼일 금식기도를 혔다. 기도제목도 없이 기도를 혔어. 천국 갈 준비를 시키시나비다' 하셨다. 정말 그 나라를 고대하실까? 그러기도 하실 것이다.
한편, 천방지축 아들 놈 셋을 키우며 엄마를 봉양하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너무 짐이 된다 하시는 자괴감도 있으실 터이다. 천국을 그리며 기쁘다 하시지만, 막상 천국 갈 생각 하시면 이 손주 놈들 바라보며 눈물도 하염없이 흐르시는.....
부쩍 엄마가 눈물이 많아지셨다. 오늘은 가야할 시간보다 좀 늦었더니 저러구 나와서 기다리고 계신다. 엄마 모습에서 옛날 보았던 외할머니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그냥 마음이 찌릿하고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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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이 사진을 보고 '어, 똑같다. 당신 어머니하고 똑같이 생겼네. 어... 당신이 어머니 닮았다는 생각 안해봤는데... 똑같다' 한다. 그러고보니, 엄마랑 똑같다. 현관 앞 까지 나와서 날 기다리고 있는 엄마한테 가면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엄마랑 셀카를 찍었다. 셀카라는 걸 처음 보는 엄마가 화면을 가리키면서 '얼라, 내 머리가 하얀허네. 이 사람은 누구랴?'하면서 렌즈에 비춘 딸을 몰라봤다. 엄마 마음에 비친 딸은 더 이쁘고 더 어리고 그럴 터이다. 늙은 엄마의 또 하나의 첫사랑 수현이가 달려들어 메롱하면서 같이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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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새우를 그렇게 좋아하는 걸 모르고 살았다. 작년 이맘 때던가? 엄마를 모시고 빕스에 갔는데 혼자서 새우를 100마리는 드신 것 같다. 그 이후로 올케 선영이가 열심으로 새우 사다 삶아 드리고 했었다. 오늘 현승이 논술공부 하는 사이 장을 봐다가 새우찜을 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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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늦게 드셨다면서 시큰둥 하던 엄마가 조금 이른 저녁을 드시겠다고 식탁에 앉으셨다. 전 같으면 '힘든데 하지마라. 비싼 새우를 돈 없는데 왜 사냐?' 하실텐데 참 이쁘게도 엄마가 군소리 없이 받아 드신다. 꽃게찜 해드리리라 마음 먹고 마트에 가면서 '하나님, 물 좋고 튼실한 게를 좀 사게 해주세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는데... 볼품없는 냉동 게 뿐이었다. 실망하고 돌아서는데 새우가 눈에 띄어 두 팩을 사고, 생전 처음 감으로 만들어 본 새우찜에 엄마가 좋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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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우리 엄마. 손이 안 보여. 잠깐 돌아섰다 다시 보니 새우 대가리가 한 가득....ㅎㅎㅎㅎ
집에 오는데 주차장까지 굳이 따라 나오신다. 수현이 우현이 조카들이 따라나오면서 '할머니 왜 자꾸 나가요?' 하니까 '이... 이쁜 딸 가는 거 볼라구 그러지' 하시면서 현승이에게 '현승이 할머니하고 손 한 번 잡자' 하시더니 만원 짜리 한 장 손에 쥐어 주셨다. 왜 자꾸 현승이 올 때마다 돈을 주냐고 했더니 '내가 어렸을 적이 어느 오이(외)삼춘이 만날 때 매닥(다) 돈을 줬는디 그게 안 잊어져버려. 현승이도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신다.
엄마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요즘은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애써 것두 귓등으로 들었다.


천국이 아무리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우리 엄마를 기꺼이 그 곳에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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