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앞두고 응급실을 경유하여 입원했던 남편이 퇴원했다. 퇴원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을 차에 남겨 두고 부랴부랴 장을 봤다. 집에 오자마자 죽, 밥, 나물 한 가지를 하는데 진땀이 나면서 주저앉을 듯 힘이 없더니만 바로 침대행이 되었다. 지난주에 응급실에서 함께 밤샘하면서 이미 감기도 오고 몸도 안 좋았었다. 오직 보호자 정신으로 버텼으나 퇴원과 함께 다리 힘이 풀리며 와르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겨우 일어나 나보다 더한 환자의 끼니를 챙기고 나서는 침대로 가 끙끙 앓는 시간을 보냈다. 엄마 아빠 함께 거실에 누워 콜록콜록 골골 하니(남편은 거의 한 달 가까이 감기 중) 식탁에 앉았던 채윤이가 현승에게 말했다. '이러다 우리 고아가 되는 건 아니겠지?' 둘이 알아서 설거지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버리고, 청소기도 돌리고 짐을 나누려 하는 흉내라도 내니 기특하고 고맙다.


아픈 건 그저 나 혼자 앓으면 되는데, 어제 목요일엔 강의 약속이 있었었다. 몸 상태로 보면 운전하고 강의 장소인 평택까지 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두어 시간 서서 강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끙끙 앓으면서도 머리 한 편에서는 강의 준비가 돌아가고, '나 죽겠으니 강의 같이 가자' 운전 부탁할 친구까지 섭외했다. 평소 같았으면 열 너덧 권의 책을 쌓아 놓고 강의안을 새로 만들고 손 보고 했을 텐지만. 열에 들떠 누워 맥락도 닿지 않는 계획을 세워보다 하루 전날 잠시 약 기운을 빌어 일어나 앉아 짧은 시간 정리를 했다. 다행히 혼자 운전하고 갈 힘 정도는 생겼고 일찍 집에서 나와 강변북로를 달린다. 아침 해가 떠오르며 찬란한 햇빛이 들이닥치는데 지금 내 몸과 마음과 상황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라 '뜬금없는 찬란함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한 피아노로 친 찬송가가 듣고 싶어 신상우의 곡들을 검색하여 연주에 걸어 놓았다. 과장 없는 심플한 피아노 연주가 이어지다 역시 뜬금없이 노래하는 목소리가 끼어든다. '창조의 생기'라는 곡. (제목도 참 얼척 없군! 이 상황에 말이지)


눈물 골짜기를 지나 메마른 땅에 거하여도 주가 나를 창조의 생기로 일으키시네


내가 조금만 착한 모드였어도 은혜가 됐을 텐데. 아니 실은 '메마른 땅'에서 살짝 콧등이 시큰했으나 무시했다. 그리고 내달려 IVF 수련회 장소로 갔다. '여성의 성'이라는 주제 강의이다. 요청받은 제목은 그러했지만 내 강의안에는 '여성의 성과 영성'이란 제목이 달려 있다. 힘을 뺀, 아니 힘을 넣을 수 없는 강의였다. 차마 취소할 수는 없으니 쓰러지지만 말자.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잘할래야 잘할 수도 없어.) 강의 하다 보면 촉이라는 게 온다. 뭔가 오가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 오가는 느낌이 내 안의 무엇을 자꾸 건드린다. 여성, 사랑, 여성의 사랑과 성. 오래 공부하고 생각했던 주제이다. 특히 올해,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도록 나를 붙들어 매는 만남들이 있었다. 그냥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사는 것에도 지옥'이라는 말이 붙는데. 기독청년으로 사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든 일인가. 기독청년의 성생활이란. 하물며 기독청년이며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가. 저쪽의 혐오와 비난을 안고 자기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강의 전에 불렀던 찬양이 뜨겁게 마음으로 다가왔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을 마치고 다시 한번 부르자고 했다. 가사 한 부분을 바꿔서 부르자고. '여자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반복하여 부르면서 어떤 힘이 여자인 우리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인 우리가 마음의 손을 잡아 서로 일으키는 생기, 같은 것일까? 적잖이 은혜가 되었고, 아픈 내 몸까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강의 좋았단 인사가 인사치레가 아님을 안다. 강의 중에 주고받은 눈빛이 이미 말했던 바. 

이렇게 메마른 몸과 영혼임에도 학생들에게 나눠줄 위로와 생기, 생명의 기운, 창조의 생기가 솟아날 수 있는 거구나.


내가 강의 다녀온 사이 남편은 입원했던 병원에 갔다 왔다. 죽돌이에서 해방되어 '일반식' 허가를 받았다면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신보다 내가 더 좋다! 내가 해방이다!) 강의도 마치고 죽돌이 해방도 되고. 몸은 쇠약하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진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택뱁니다~' 주문한 일 없는 택배가 하나 왔다. 잘못 왔나 했더니 남편이 '어, 헌혈....' 하면서 아는 집사님이라 한다. 100주년에 있을 때 80이 넘은 집사님께서 무릎 수술하시는 중에 수혈 문제로 위급한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병원 측 실수로 충분한 혈액을 구비하지 않고 수술을 시작했고, 혈액을 구하는 빠른 방법이 같은 혈액형의 헌혈자를 찾는 것이었다. 구역 권찰님이 급한 대로 교회로 연락하였는데 마침 남편이 같은 혈액형이어서 바로 헌혈하러 달려갔다고 한다. 사실 이 일은 그렇게 지나간 일이었다. 심지어 나는 남편이 헌혈을 했다는 사실조차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바로 그 수혈받은 집사님께서 택배로 멸치와 김을 보내오신 것이다. 각각의 상자를 하나 하나 포장지로 포장하여 큰 택배 상자에 다시 담으신 정성. 기대에 차서 포장지를 벗겼는데 상자에 가득 멸치떼를 확인하고 실망한 현승. ㅎㅎㅎㅎ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남편이 일어나 상황 설명을 한다. '아, 그때! 전화가 그렇게 왔길래, 제가 O형인데요. 제가 가서 헌혈하겠습니다, 하고 갔는데.... 어르신께는 의미가 크셨나 봐. 아무에게나 피를 주는 게 아닌데, 하시면서 그러시더라고. 어이쿠, 참. 우리가 이사했으면 어쩌실려고....' 남편 목소리와 얼굴에 발그레 생기가 돈다. '멸치가 참 좋다. 멸치 필요했는데' 하며 살짝 오버 하면 반겼더니 더욱 의기양양해져 테일한 설명이 길어진다. (순진한 사람 ㅋㅋ) 많은 양의 멸치를 보자 멸치볶음을 몹시도 애정하는 모 군이 떠올라 바로 덜어 지퍼백에 담았다. 밑반찬은 해는대로 동이 나는, 돼지 세 마리 키우는 동생네 몫도 챙겨 담았다. 넉넉하게 담으며 마음이 풍성해진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에 사인을 할 때 '보잘것없어 거룩하고 가난하여 부요한 우리의 일상'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러나 굳이 거룩하기 위해 늘 보잘 것 없거나 항상 가난할 필요가 있겠는가. 넉넉하게 나눌 것이 있는 풍성한 일상의 위안이 이러한데! 무력한 목회자이지만 급하게 나줘 줄 피가 있었고, 그로 인해 이웃과 넉넉히 나눌 멸치 떼가 들이닥치니 이래저래 생기, 생명의 기운이다.


차 안에 들이닥친 찬란한 햇빛과 어쩌다 울려 퍼진 노래는 뜬금 없는 것이 아니었다.

생기, 생명의 기운, 창조의 생기는 이미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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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일 년이라면,

어떨까? 과연.......

하며 시작하고 벌써 그 일 년이 지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26일에 꽃다운 친구들은 '라스트 콘서트'와 함께 '안녕식'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연극, 밴드, 짧은 토크쇼를 준비했고

부모들도 합창 한 곡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남편과 함께 그렇게 애정했던 곡,

황병구 님 작사 작곡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를 불렀습니다.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작은 시작은 그 소리조차 없구나

소리 없는 삶을 몰라하는 이들 

그들도 삶의 시작은 작구나


지금도 우리 시작은 작구나

작은 외침을 듣는 이들도 적구나

적은 무리 됨을 기뻐하는 이들 

그들과 우리 시작은 작구나


높이 떴을 때 더욱 작아지는 해처럼

깊이 잠길 때 더욱 소리 없는 바다처럼

작은 친구야 소리 없는 벗들아

높게 살자 깊게 사랑하자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채윤이가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 홈스쿨링 하는 거냐? (아닙니다)

꽃친이 대안학교냐? (아닙니다)

1년 내내 수도 없이 설명해야 했습니다.

꽃다운 친구들이 무엇인지, 왜 1년을 쉬는지, 어쩌다 이걸 하게 됐는지....를요.

'대단하시네요. 깨인 학부모네요' 같은 반응이 흔하게 되돌아오곤 합니다. 

저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고, 대단한 결단을 한 것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고.......

여러 말을 삼키게 되곤 하지요.


1년 쉰다고 아이의 인생이 대단히 뒤쳐지지 않을 걸 알았고,

마찬가지로 1년 쉰다고 아이의 인생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1년을 함께 한 엄마 아빠들과 저 노래를 부르다 보니 가사가 어쩌면 우리의 1년입니다.

이렇게 휙 지나가 버리고 만 1년. 

1년의 끝, 새로운 시작 앞에서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운 아이들(과 부모들).

우리의 시작과 끝은 이렇게 작고 미미합니다.


안녕식은 아이들이 준비한 시상식으로 끝이 났습니다.

한 명씩 나가서 상장을 받고 꽃친 샘들과 허깅합니다.

나란히 서서 아이들 한 명 한 명 끌어안는 황병구&이수진 대표님 부부를 오래 바라봅니다.

에잇, 바보 같은 사람들. 뭐가 부족해서, 무슨 콩고물이 떨어진다고!

이 철부지 망나니들을 떠맡아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자처한 거야.

이 두 사람의 삶이 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작은 친구야, 소리 없는 벗들아, 높게 살자, 깊게 사랑하자

아, 이제는 그만 작고 싶은데...... 뿌리칠 수 없는 선동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꽃친은 끝났지만 '방학이 일 년이라서'는 계속 됩니다.

아직 못 다한 얘기가 많지요.

실은 시작해 놓고 마무리 하지 못한 '방학이 일 년이라서'가 줄을 서 있거든요.

안녕식도 따로 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안녕식 '라스트 콘서트'의 '꽃힌 밴드' 공연 중 래퍼 채윤이 부분 맛보기로 보여 드리죠.

엄마 아빠들의 노래에 의미 장단을 맞추는 것 같은 가사입니다.


너무 어두워 길이 보이지 않아

내게 있는 건 성냥 하나와 촛불 하나

이 작은 촛불 하나 가지고 무얼하나

촛불 하나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나

저 멀리 보이는 화려한 불빛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는 나의 이 몸짓

불빛을 향해서 저 빛을 향해서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나의 날개짓


하지만 그렇지 않아 작은 촛불 하나

켜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 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가고






성탄절 전전야, 23일 밤 금요기도회를 인도하고 집으로 오던 남편은 결국 집으로 오지 못했습니다. 세브란스 응급실로 가서 여러 검사로 밤을 지새고 성탄 전날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은 금식하며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아직 병원에 있습니다. 금요일 내내 복통이 있었는데 하루 일정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걸음을 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졌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가톨릭 신자인 지인께서는 '(성탄절에) 성모 님과 비슷한 고통으 겪으셨다니 내면으로 주님의 탄생같은 큰 축복을 출산하시기 바랍니다' 하셨습니다. 여하튼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복통을 끌어 안고 이 검사 저 검사 받으며 응급실 의자에서 지샌 밤, 잊지 못할 성탄 전전야가 될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제가 당사자는 아닙니다. 복통이나 복통 끌어 안고 검사받은 당사자는 아니지만 고통이 두려워 지켜보는 것조차 고통인 저로서는 잊지 못한 성탄절이지요. 엄살이라곤 없는 사람이 하루 종일 얼마나 참았나 싶어 마음이 짠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성탄절을 앞둔 목사에게 이것이 무슨 일이랍니까. 24일에는 미리 설교 준비 다 해놓고 가족이 함께 올프랜즈센터(이우교회가 섬기는 베트남 캄보디아 다문화 가족센터)에 함께 가기로 했었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올프에 가서 찬양을 하는데 현승이가 함께 할 것이고, 채윤이는 반주를 한다니 의미 있는 성탄전야가 될 거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계획은 이렇게 쉽게 틀어지고 말지요. 24일, 남편을 입원 시키고 잠시 집에 왔다 아이들과 함게 다시 나갑니다. 함께 지하철 타고 가다 저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신촌역에 내리고, 두 녀석은 교회로 갑니다. 아빠 상황이 저러니 아무 말 못하고 나란히 지하철 안에 섰는 걸 보며 손을 흔드는데 마음이 저릿하네요. 부끄러움 대마왕, 주목받는 것이 싫어서 달리기 1등 하다 결승점에서 속도를 줄이는 아이, 잘해서 칭찬받고 주목받느니 차라리 잘하고 싶지 않은 현승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탄전야 올프렌즈 공연과 새벽송, 일박 캠프 등의 프로그램에 압도된 현승이는 아빠의 복통 이상의 고통 속을 헤매는 느낍입니다. 성탄예배 중에 초등학생 동생들과 나란히 서서 노래하고 율동하는데 아주 그냥 표정이 응급실 갈 표정이더군요. 그러나 아빠가 복통을 이긴 것처럼 현승이도 성탄절 미션 잘 완수했습니다. '엄마, 나 그냥 집에 가서 자면 안 돼? 나 너무 뻘쭘하고 힘들어. 집에 가서 잘게. 제발.....' 하는데 '안돼' 단호박으로 잘라버렸습니다. 성탄절 아침에 교회 가서 만났는데 '엄마, 형들하고 많이 친해졌어. 빨리 이사 가고 싶어. 여름에 춘천까지 자전거 여행도 간대' 합니다. (휴우~ 캄사합니다. 하난님!)





한편, 현승이 아빠는 복통보다 더 어려운 마음. 부임한지 한 달이 안 되어, 그것도 성탄절에 강단을 비워야 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목회자 되고 아파서 주일을 비워본 적이 없는데.....' 라고 했지만 그 쩜쩜쩜에 생략된 많은 말들이 느껴집니다. '하필 지금, 왜 지금 이런 일이......' 이런 말들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성탄 설교를 준비했다고 하는데. 오래 기다린 교우들을 한 달도 안 되어 또 기다리게 하는 목사라니. 좌불안석이지요. 항생제를 밥 삼아 금식 치료 받고 있는 남편을 두고 아이들과 성탄 예배에 갔습니다. 1,2부 예배가 통합되고 주일학교 친구들까지 있어 더욱 꽉 찬 예배당입니다. 예배 후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1년에 딱 한 번 성탄절에는 이렇게 풍성하게 차린다고 하십니다. (사실 보통 주일 점심도 맛있기가 장난 없음입니다) 성탄절, 이 풍성한 기쁨과 음식에 함께 하지 못하고 병원 신세라니. 원치 않는 금식에 매인 목사라니.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퍼즐입니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심방을 다녀도 시원치 않을 때에 병원 침대에 누워 교우들의 심방을 받고 있는 처지라니요. 하나님, 제 남편에게 너무 하시는 거 아닌가요?


메시지 성경읽기를 <욥기>로 시작하는 날입니다. 남편 머리감기러 병원에 가기 전에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욥기> 서문을 읽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했다. 그의 이름은 고난과 동의어로 쓰인다. 그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째서 접니까?" 그 질문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다. 그의 질문은 끈질기고 열정적이며 호소력 있었다. 그는 침묵을 답변으로 여기지 않았고, 상투적인 말들을 답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순순히 놓아 드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고난을 묵묵히 감내하거나 경건하게 감수하지 않았다. 다른 의견을 구하러 의사나 철학자를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하나님 앞에 버티고 서서 자신의 고난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또 항의했다' 남편의 처지가 욥과 같은 레벨이어서가 아니라 고난을 대하는 욥의 태도에 공명하여 마음을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모든 일에는 그분의 눈길과 손길이 담긴다고 믿습니다.(그리하여 '일상愛 천상에'이고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인 것입니다) 하물며 평생 몇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응급실 행에 그분의 뜻이 담기지 않을까요. (그것도 성탄절에, 그것도 목사가, 그것도 새로 부임한 목사가) 그렇다고 상투적이고 경건한 답을 서둘러 찾아 훈훈하고 은혜로운 교훈을 얻을 일은 아닙니다. 다만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버티고 서서 답을 들을 때까지 묻고 기다리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새로 부임하여 스트레스가 많았나보다'는 걱정을 많이 듣는데 남편이 말했습니다. '내가 스트레스 받는 건 집 밖에 없는데' 내놓은지 몇 달이 된 집이 나가질 않아 교회 근처로 이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전학 가기 싫어하는 중딩 현승이가 은밀한 기도를 바치고 있나 싶고요. 중2가 무서워 북한이 남침을 못한다는데 하나님도 까칠한 중딩 기도가 신경이 많이 쓰이시나, 심증이 가는데 그건 아니겠네요. 그분의 창의력에 관한 한 제 심증, 제 슬픈 예감에 들어 맞는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그분의 생각이 제 생각보다 높으신 것(사55:9)은 정말 정말 인정이니까요. 여하튼 '질풍' 김현승 선생께서도 마음의 준비가 되신 듯 하니 이제는 정말 웬만하면 집이 좀 나가게 하시면 좋겠습니다.(하난님!)


이렇게 잊지 못할 병원 크리스마스를 보냈고요. 맨 위 병원 화보같은 사진은 채윤이 촬영, 엄마 편집입니다. 또 이우교회 성탄절 점심식사의 감동 메뉴 사진입니다. 병원에서 외롭게 금식 투혼의 성탄절을 보내는 남편에게 실시간으로 쏴주고자 찍은 사진들입니다. 악마의 촬영이라고나 할까요. 흐흐흐. 제가 이렇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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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 한 노래 있어1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어느덧 주말이 가고 월요일과 맞닿은 주일 밤, 공기가 다르고 마음의 기압 또한 다르다. TV ‘개그 콘서트의 엔딩 음악이 주말의 끝을 알린다. 주일 예배와 에프터까지 마치고 탄 지하철 안은 한산하여 더욱 무거운 공기로 가득. ‘내일은 월요일. 출근! 출근! 알지?’ 일요일이 가고, 월요일이 다가오는 소리의 압박이다. 월요일이 싫은 건지, 주일의 교회 하루가 아깝도록 행복한 건지는 알 수 없다. 주일의 위안이라 해두자. 교회생활이라고 마음의 부대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에 비하면 천국 아닌가. 오직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일이 산적한 곳, 일의 결과만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직장 말이다. 게다가 교회 사람, 회사 사람이 주는 안도감의 차이란! ‘월요병이란 것이 주말의 여유와 일하는 보통날 사이 분열을 앓는 것이라면 신자들에겐 더 치명적이다. 늦잠이나 드라마 정주행보다는 주님과 함께한 시간이 더 의미 있다 느끼는 우리니까.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442)

 

어릴 적부터 교회 죽순이로 살아온 나로서는 주일 하루, 또는 교회와 관련된 만남은 주님의 동산에 안기는 느낌이다. 아침이슬이 채 마르기 전, 아무도 없는 새벽의 정원에서 내 사랑하는 주님과 데이트. 얼마나 치유적이고 황홀한 시간인가. 성과를 내거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일일이 보고서 작성할 필요가 없는 곳, 까다로운 고객들과 신경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귀에 들리는 소리라곤 오직 그분의 사랑의 음성, 영원과 잇대어진 듯한 사랑의 순간. 우리 모두 이런 동산이 필요하다. 주일 밤에 밀려드는 공허감은 비밀의 화원에서 맛본 천상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회사가 교회 청년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부서가 청년부 소그룹 같다면, 팀장의 성숙함이 조장 언니와 같다면..... 꿈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괜찮다. 월화수목금 시간은 가고, 다시 불금이 오고, 그리고 다시 동산의 시간이 올 테니까. 월화수목금이여, 빨리 가라.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찬양의 3절이 나의 등을 떠민다. 세상이란 괴로운 곳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시 돌아갈 이유가 된다는 듯. 그렇다. 이 땅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산다는 것은 괴로움을 짊어지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기본설정이다. 그러니 괴로움 없는 곳을 헤맬 것이 아니라 괴론 세상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가야 한다. 동산에서 주님과 보낸 시간이 빛을 발해야 하는 곳은 동산 밖, 연약한 내 영혼이 언제라도 상처입기 딱 좋은 곳, 괴론 세상이다. 주일 예배에서, 수련회의 뜨거운 기도에서 은총을 누렸다면 그 은총을 살아 내야할 시간은 월화수목금토일이다. 일단 괴로운 세상을 괴로운 세상으로 명명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시작이다. 온전히 받아들일 때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월요일을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그 청아한 주의 음성이 꼭 필요한 곳은 동산이 아닌 세상임을 알게 된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동행, 늘 내 편이 되어 함께 해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굶주린 하이에나의 눈이 번뜩이는 가운데 토끼 한 마리 같은 심정, 밑 빠진 독에 끝없이 물을 길어 붓는 식으로 일하는 콩쥐의 심정, 끙끙거리며 커다란 바위를 굴려 겨우 산 정상에 세우자마자 바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시지프스 왕의 심정일 때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떠올릴 수 있겠는가. 후렴 가사의 동행은 막막한 월요일 출근길을 한 발 내디딜 힘을 준다. 개그 콘서트의 엔딩 음악이 괴론 세상으로의 복귀를 알릴 때 그 청아한 주의 음성또한 이미 내 안에 울리고 있음을 기억하자. 불안과 두려움으로 울어대는 월요병 새소리를 잠잠케 하실 음성을 살려내고 함께 노래하자.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주말, 갈 테면 가라! 월요일 올 테면 오라!






꿍꿍이


대학 친구들 모임이 8차 촛불집회가 있는 토요일이었다.

사는 곳이 제각각이라 만남의 장소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서울역 근처 좋은데'하는 한 친구의 말을 내가 덥석 물었다.

빛의 속도로 서울스퀘어 맛집 검색하여 후보 식당을 단톡에 올리고 장소를 확정했다.

친구들 모임에서 내가 그나마 빠릿해서 주로 하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모임 마치고 '마실 삼아 광화문 가볼래?' 해볼까 싶은 사심도 있었던 것.


내 친구들


엄마, 어디 가?

응, 친구들 모임.

그런데 왜 그렇게 나가? 좀 예쁘게 하고, 있어 보이게 하고 나가.

털 조끼 입으면 부자 싸몬님 같아 보여.

괜찮아. 엄마 친구들은 다 엄마보다 부잔데 티 내는 사람 없어. 

엄마가 제일 많이 꾸미는 편이야.

아닌 게 아니라 50 바라보는 여자 다섯이 모이는데 얼굴에 주사바늘 하나가 없다.

이런 친구들.




소심


촛불 안 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모임이 있다. 

지난 주 광화문에서 들은 노래, 어느 초딩의 자유발언 같은 것들이 자연스런 대화 주제가 된다.

이 친구들 모임에서 촛불시위는 머나먼 얘기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잠시라도 광화문에 가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준비가 됐든 아니든 '더 큰 나, 더 큰 우리'를 만날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직장, 육아, 아이들의 입시와 입대..... 주어진 삶의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며 사는 친구들이다.

한 발 물러서서, 또는 한 발을 디밀어서 일상을 달리 보는 눈을 가질 수 있거나,

적어도 다른 공기에서 숨을 쉬어보는 신선함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싶어서이다.

농담처럼 몇 번 권유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난 그런 데 무서워. 우리 남편이 근처에 있지 말고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해.'

그래, 안녕! 넌 버스? 넌 지하철? 난 광화문 쪽으로 걸어가려고.


나이 값


친구들과 헤어져 터덜터덜 걷다 박사모 행진대와 마주쳤다.

합리적이지 않기로 굳게 마음 먹은 듯한 굵은 주름의 얼굴들.

억장 무너지는 손피켓과 구호를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정신 차려보면 멍하니 서서 차도로 걷는 그들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탄핵무효! 탄핵무효! 인원에 비해 힘은 한참 딸리는 소리이다.

그때 인도 쪽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 값! 나이 값!

차도의 행진대열과 비슷한 연배의 남성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 되어 외치며 지나갔다.

차도 쪽 구호 사이사이 기가 막힌 박자로 장단을 맞춘다.

탄핵무효! 나이 값! 탄핵무효! 나이 값! 탄핵무효! 나이 값! ㅋㅋㅋㅋㅋ

'나이 값'을 외치는 젊은 할아버지의 등 뒤에 양손으로 엄지 척을 올려드렸다.

엄치 척과 동시에 내 기분도 업! 되어 힘을 내서 걸었다.


전도


광화문 바로 앞까지 걸어 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역시나 한 사람, 한 사람, 한 우주, 한 우주가 몰려든 광장.

일행 없이 입 꾹 다물고 있다 구호 외치는 타임에 크게 소리 지르면 내 소리에 내가 놀라게 되지만.

혼자여도 좋은 곳이 촛불광장이다.

자유발언이 지루해질 즈음 휴대폰을 꺼내 들었는데, 마침 전화가 온다.

아까 헤어진 친구 중 하나.

여보세요, 하는데 수화기 넘어 쩌렁쩌렁 울리는 마이크 소리가 이중창이다.

'신실아, 나도 여기 있어. 하하하하하'

2차로 다른 약속이 있다던 친구, 그런 데(촛불집회)는 무섭다고 했던 친구이다.

바로 카톡으로 인증샷도 주고 받았다. 이런 느낌들 아실랑가?

'야, 교회 가자. 이번 주일 총동원 주일인데 재밌는 것도 많이 하고 선물도 줘'

어설프게 전도했는데 친구는 말한다. '우리 집은 불교야'

아, 불교.... 그럼..... 헤헤. 지킬 건 지켜줘야지. 깔끔하게 접었는네

주일 아침에 제 발로 교회에 찾아와 나를 찾는단다.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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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임에서 특급 요리사님께서 만들어오신 어향육사라는 요리이다.

맛있게 먹고 레시피까지 얻어서 만들어 보았다.

그날 감동하며 먹었던 맛이 아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살짝 삐꾸.

그래서 '어향육사' 아닌 '어???향육사'임.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는 토요일이었는데 모임 나가기 전에 부랴부랴 만들었다.

이제 매주일 설교를 하게 된 남편 님을 위해서이다. 

토요일 하루는 셀프 감금 상태로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진짬뽕도 있고, 신라면도 있고, 집 옆 국수집도 있고.

평소 같으면 '점심 알아서들 해결해' 맘 편이 나갔을 터인데.

설교 준비하는 분에게 그런 걸 먹이면 벌 받을 것 같아서 말이다.

기도 시간에 눈 뜬 애들하고 같은 열차 타고 지옥 가는 것 아닐까 두려워 정성스레 밥을 했다.

게다가 남편이 지난 주 설교에서

'저는 주부가 정성스레 밥을 짓고 따뜻한 국 한 그릇 끓이는 심정으로 설교를 준비하겠습니다' 했는데.

그 말이 왜 자꾸 생각이 나는지.

점심으로 라면을 먹게 하면 설교에서 MSG가 검출될까 싶어서.


기분 좋은 부녀가 식탁 앞에서 기타와 우크렐레로 에헤라디야~ 풍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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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기독교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나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책 관련 프로그램에 저자와의 만남 같은 것이었습니다. 9월 즈음에 약속이 되었고 지난 화요일이었죠. 전날에도 담당 작가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라디오인데다 방송 시간도 짧으니 방송 전에 입을 맞추려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쪽으로 섭외가 된 것이라 진즉에 받은 공문도 있어서 당일 방송국으로 갔습니다. 주차를 하고 공문에 있는 전화로 연락을 했으나 딱히 방송국 담당자가 아닌 것 같고. 바보 같은 표정으로 헤매다 지나가는 분께 물어서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프로그램은 프리랜서 아나운서 분이 작가 겸 모든 것을 도맡아 하는 방식이었는데 통화를 해보니 지금 부산에 계시다고! 녹음 시간이 확정될 때까지 출판사 본부장님과 충분히 의견을 주고받았고, 일시가 명시된 공문을 받았으니 확실하다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담당 아나운서가 제 번호를 잘못 입력할 탓에 통화를 시도 했으나 안 되었다고 하고요. 친절한 직원 한 분(제 가방에 달린 노란리본으로 바로 공감대 형성이 되었습니다)이 아나운서께 전화 연락도 해주고, 배웅도 나오면서 '다시 연락되어 꼭 나오시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실은 제가 마음이 상해서 다시 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하고 나왔습니다.


출판사 본부장님께 상황을 알리고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청취자 증정용으로 보낸 책(나의 성소 싱크대 앞) 몇 권을 꼭 회수해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어버버버 하면서 방송국 입구를 헤매던 나처럼 갈 곳 잃은 내 책들이 방송국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까, 그것이 싫어서요.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간 연결자인 출판협회 사무국장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방송국 담당자인 줄 알고 내가 전화했던 분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사과하시고 담당 아나운서 분도 무척 미안해 한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상황 알겠지만 다시 방송에 나가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마음 푸시고 다시 시간 잡으시라고, 그렇지 않으면 담당 아나운서가 계속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로 확고해졌습니다. 단지 삐져서 안 나가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길게 설명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제게 말했습니다. "단지 그 사람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서 너를 함부로 사용하지 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순서에 역행하는 거야" 


실은 방송국에서 나와 주차장까지 걸으며, 운전하고 나오면서 화가 난다기 보다는 슬펐습니다. 슬픔을 가장한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존중받지 못한 사람은 있는데 존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나운서는 일처리에 실수했을 지언정 나라는 존재를 함부로 대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어중간하게 알려진 작가로서 괜한 피해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고, 다 밝히기 어렵지만 더 고질적인 쓴뿌리도 있습니다. 물론 맡은 일을 꼼꼼히,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은 이미 이웃에 대한 존중인 것도 사실입니다. 사랑해, 고마워 백 마디 말보다 약속을 지켜 일을 챙기는 동료가 진짜 배려심의 사람일 수 있고요. 가족적인 분위기로 기분 내키는대로 비싼 밥 사주는 사장보다  합리적인 월급을 제때 챙겨주는 사장이 직원의 자존감에 더 기여할 거구요. 저도 남부럽지 않은 헐랭이로서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반성하곤 합니다. 내 작은 실수가 누군가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생각이 여기 미치면 더욱 슬퍼집니다. 실수를 실수로 받지 못하는 우리들의 상처난 마음. 아니, 제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가사처럼요.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딪히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든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운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그러게요. 그저 늘 부는 바람이 지나갔을 뿐인데, 그 바람에 내 마음의 가시들이 흔들려 서로 찌르고 울어댑니다. '나를 해하려 하는 거야,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나를 싫어하는 거야'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이 집에 와 채윤이에게 터져버렸습니다. 농담 한 마디 던졌을 뿐인데 분노 폭발하는 엄마에 당황한 채윤이. 채윤이를 희생양 삼아 감정의 에너지가 한 김 빠져나갔습니다. 조금 평상심을 찾고는 희생양 채윤이에게 사과하고,  희생양을 신부님 삼아 고해성사 했습니다. '엄마가 다시 나가지 않겠다고 한 거 잘한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허허 하고 이해하는 척 할 수도 있었거든. 그러면 좋은 사람 같아 보이잖아. 처음엔 좋은 사람, 나이스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했던 것 같아. 그래도 작가라 불리며 조금은 알려진 사람인데.... 그렇게 마음이 복잡했었던 거야.' 채윤이도 '착한 애 코스프레'에 지쳐서 요즘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얘길 했습니다. 모녀 함께 훈훈, 지질한 결론을 냅니다. '어쩌겠어. 착하지 않은데..... 그래도 착하지 않은 나를 내가 편들어 줘야지.' 저녁에 아나운서 분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시고 다음에 꼭 다시 나오시면 좋겠다, 했습니다.  방송에 나가진 않겠지만 마음이 안 풀린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어디서 만나든 좋은 마음으로 볼 수 있다고요.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농담으로 '갑질 했네'라고 했지만 진심 갑질은 아니었습니다. 실은 다시 출연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마음이 편해졌지만 지질한 나의 곁을 내가 끝까지 지키줘야지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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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기가 막히다. 그렇다. 인생, 다가오는 것들을 맞으며 걷는 길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 주먹 흔들며 외치는 아자아자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자기계발서의 선동에 오히려 덤덤해지는 이유. 생의 굵직한 행불행은 다가오는 것들이 끌고 나온다. 바라지도, 택하지도 않은 것이 예상 밖의 시점에 치고 들어와 나를 행복 또는 불행으로 던져 넣는다. 체감하기로는 내가 다가서서 이룬 것보다 내게 다가온 것들의 힘이 늘 더 세다. 나를 세차게 흔들어 다른 자리에 서게 한 결정적 변화는 '다가오는 것들'이었다. 한 남자가 다가와 남편이 되었고, 영혼의 친구가 되었고, 몇 년에 한 번 씩 생의 분기점으로 나를 끌고 간다. 내가 낳았지만 어설피 그려보았던 그 아이들이 아닌 아주 생소한 두 우주가 다가와 내 일상의 감정을 쥐락펴락한다. 사춘기 한참 민감한 시기에 아버지의 죽음이 다가와 삶에 대한 내 태도를 바꿔 놓았다. 온 국민 보는 앞에서 가라앉은 세월호가 다가와 엄마 아빠들의 삶을 길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다가와 길바닥에 뿌린 세월호 엄마 아빠의 눈물이 헛되지 않았다 하며, 상상도 해보지 못한 200만 촛불이 다가왔다. 좋다/나쁘다, 하나의 이름을 붙일 수 없지만 흔히 '불행'이라 불리는 것들이야말로 다.가.오.는. 것들이다.


함께 철학교사를 하며 보기 좋은 가정을 일궈가던 멀쩡한 남편이 '딴 여자가 생겼어. 그 여자랑 살고 싶어' 이런다면. 젖은 신문지처럼 찰싹 달라붙어 집착하던 나이든 엄마, 더는 돌볼 수 없어서 요양병원에 보낸 엄마가 갑작스레 죽는다면. '그래도 난 지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고 있잖아' 자위하고 있는 터에 출판된 책의 재계약이 취소되며 학문적 자존심 뭉개지는 일이 속속 일어난다면. 그 와중에 아끼는 제자와의 교감이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아니라 관객인 내게) 젊은 한때의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제자의 고뇌에 찬 열정이 갈수록 거리감으로 다가온다. (관객인 내가 아니라 그녀에게) 이 모든 다가오는 '상실'들을 나탈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장면 장면을 종종걸음으로(주로 높은 굽의 웨지힐을 신고)  느리지 않게 오간다. 강의실로, 엄마 집으로, 요양병원으로, 출판사로. 또 끙끙 여러 개의 짐보따리를 끌고 기차로, 버스로, 택시로 남편의 별장이나 제자의 전원공동체를 오간다. 가끔 침대에 누워 혼자 울지만 감정의 동요가 요란하지는 않(게 보인다)다. 다가오는 것들을 대하는 나탈리의 태도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그녀의 생김새 같고, 옷차림 같다.


남편과 함께 씨네큐브에서 보고 집에 와 바로 거금 4000 원을 투자하여 구매하였다. 아주 조금 쓸쓸하고 많이 의연한, 그렇다고 그리 멋지지도 않은 나탈리를 연구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나도 좀 그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나탈리가 읽은 <팡세>와 영화 마지막의 행복론 강의를 음미하고 싶은 마음, 영화 구석구석 숨겨진 철학 찾기 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에게는 깊이가 다른 영화일 듯. 일천한 나는 루소, 레비나스, 부버에 순간 귀가 번쩍 뜨였을 뿐. 남편은 프랑크푸르트학파니 뭐니 하는데 내가 아는 건 그게 먹는 건 아니라는 정도. 여하튼 어머니 장례식에서 들고 나가 읽은 팡세는 영화 속 나탈리를 나탈리이게 하는 힘의 이론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보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온통 암흑뿐이다.

자연은 내게 회의와 불안의 씨만 제공한다.
신을 나타내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부정으로 마음을 정할 것이다.
도처에 창조주의 표적을 볼 수 있다면
나는 믿음 속에서 안식할 것이다.
허나 부정하긴 너무 많이, 확신하긴 너무 적다 보니
나는 개탄할 상황에 있다.
만약 신이 있어 자연을 뒷받침 하고 있다면
자연이 신을 명확히 드러내 주거나

자연이 보여주는 표적이 거짓이라면
그것들을 깨끗이 지워버리기를
어느 편을 택할지 알 수 있도록
자연이 모든 걸 말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내가 놓여있는 상태에서
내가 뭔지, 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나의 신분도 의무도 모른다.
내 마음은 진정한 선을
그것을 따르기를 온전히 바란다.

원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비싸지 않다.


철학교사 나탈리는 이렇듯 '철학 함'으로 다가오는 상실을 맞서고 있다. 차라리 얼마나 정직한 믿음이며 희망인가. 장례식 설교에서 신부가 말한다. "나탈리, 당신이 어머니께 표현한 최선의 감사는 철학교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의혹과 질문은 신앙과 굳게 엮여있음을요. 당신의 삶은 그리 이루어졌습니다" 버스 창 밖을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파스칼의 저 글을 되뇌는 나탈리. 그렇게 철학함으로 자기를 위로하고 있는 나탈리의 눈에 들어온 창 밖의 장면. 애인과 함께 꿀 떨어지는 웃음을 웃으며 걷는 남편 하인츠. 엉엉 울던 울음이 헛헛헛헛 웃음으로 바뀐다. 어떤 현학적인 말을 가져다 자기연민을 포장해도 현실은 이것. 평생 나를 사랑할 줄 알았던 남편의 배신이다. 이것이 현실. 아무렇지 않게 종종거리며 스크린을 오가는 그녀였지만 관객들 모르게 이불 뒤집어 쓰고 울어야 할 울음이 많이 남아있음이다.


영화 보고 나서 남편이 "그 집 거실 부럽지? 자그맣고, 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신실이 그런 거실에 있으며 좋겠다" 아닌 게 아니라 참으로 마음에 드는 거실 겸 서재이다. 천국 가기 전에 '하나안~님! 황금집 필요 없구요. 나탈리 집 아시죠? 그런 집, 그런 거실, 그런 서재로 할게요' 미리 주문을 넣어둬야 할까보다. 영화 좋았다며 늘 그렇듯 별 말 없던 남편이 거실에 대한 얘길 하나 더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래 오래 그 거실을 보여주잖아. 일상, 그 여자의 철학 함은 일상이야." 그렇다. 모든 다가오는 것들은 일상의 기쁨과 슬픔으로 녹아든다. 어설픈 리뷰에 담고 싶은 주제가 한 둘이 아니다. 이혼한 여선생님과 젊은 제자는 연인이 될 수 없는가? 이런 얘기는 흥미진진. 엄마의 딸이며 딸의 엄마, 딸이 낳은 아이의 할머니가 되어 가는 여자 이야기도 몇 바닥 쓸 수 있을 것 같고. 그러나 <나의 성소 싱크대 앞> 저자답게 '기승전-일상'으로 끝맺도록 하겠다.


포스터에 나란히 선 제자 파비앙이 영화 초반부에 말했다. "고3때 선생님의 수업과 책이 저를 붙들어줬어요. 철학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영화 중 상실의 정점은 머리가 큰 제자 파비앙의 비판이다. "생각과 행동의 일치는 중요해요. 선생님 교육엔 없던 거죠" (아, 현기증) "왜 그런 말을 해? 나는 생각과 행동을 완벽하게 조화시키고자 했어"라는 선생님의 반격에 "그건 맞아요. 사적 영역에 한해서요. 평소에는 원칙을 지키 테지만 삶의 근간을 흔들지 모르는 사상은 외면하시잖아요. 시위나 서명 정도로 스스로를 참여 지식인으로 여기죠. 떳떳한 양심과 변함없는 생활....." 제자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왠지 진 느낌의 선생님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말한다. "난 혁명을 바라지 않아. 훨씬 수수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것. 최소한 네게 그것을 전달했다고 믿었다." 내게 가장 아프게 다가온 장면이다. 파비앙 친구들의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냔 말에 "급진성에 대해 말하기엔 난 늙어서요. 예전에 다 해봤거든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젊을 때 나탈리는 공산주의의 급진적 사상에 빠져 러시아까지 다녀왔다.) 주인공의 표정이 가장 쓸쓸해 보인 장면들이다. 한때 급진적이었으나 어느 새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중년의 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적인 영역을 살아내기에 급급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개인적 행복에 만족하며 살았을지 모르겠다. 파비앙과의 설전에서 밀려난 느낌으로 홀로 낭떠러지 느낌의 언덕에 선 나탈리의 뒷모습이 사진 한 장처럼 마음에 남는다. 그 곁에 나를 세우고 싶은 마음. 그래도 그녀가 잘 살아왔다는 걸 그녀의 거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거실은 말하자면 일상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어디 입이 떨어지겠는가. 차라리 <팡세>를 다시 읽어주리라.














질풍 김현승 선생께서 몸과 마음의 폭풍 성장 중 시 여섯 편을 한 자리에서 써내셨다.

'이건 예전에 썼던 시와 다르다.

전에 쓴 시들이 초딩의 시로서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칭찬받으려는 마음으로 썼다면

이 시들은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쓴 것이다. 절대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쓴 것이다'

라는 취지의 말씀을(하셨다.)하시고 나서는 엄마 앞에 시 노트를 놓았다 들었다 하셨다. 

(읽으라는 건지, 읽지 말라는 건지....)가 아니고 제발 읽으라는 것이다. 

읽되 시인의 심정에 120% 공감할 자세를 가지고 읽으란 얘기다.

아닌 게 아니라  어설픈 질문 한두 개 던졌다가 5초 만에 노트를 빼앗기고 말았다.  

"미, 미안해. 아, 시는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느끼는 거지. 그냥 조용히 읽을게"

라고 말했다가 노트를 다시 압수당함.

"질문이 왜 싫겠어? 시에 대해 물어봐주는 것이 좋지. 그리고 시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도 좋고.

뭔가 말해달라고 보여주는 거잖아. 대신 우와, 잘 썼다. 정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이런 말 말고!

정말 시에 대해서 읽고 느낀 거나 궁금한 걸 진정성을 가지고 말하라고"

(아오, 진짜 시인들의 까칠함이란!)

정말 조심스럽게 시에 대해 여쭈어 짧은 인터뷰를 해보았다. 



<혼자 걷는 길>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

그것은 확실함이다.

다르다는 것은 변화에 희망


- 작가 님, 일천한 저로서는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오히려 불확실함이라고 느끼는데요. 확실함이라 하셨네요.

- 예, 다른 길은 확실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 예를 들어, 안식년을 가지는 누나의 경우 꽃친 선택할 때 어려웠던 건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 아니었나요?

- 아, '다른 길'에 대한 생각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이미 가던 길을 틀린 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요. 모든 길을 다 맞는 길입니다. 어떤 길이 맞고 틀리다가 아니라 한 번도 안 가 본 길은 다른 길입니다.

- 네...... 네. 그렇군요. 그건 이미 변화 그 자체이고. 희..... 희망이겠네요. 좋은 시 감사합니다.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라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책임은 약속보다 무거운 것

하지만 책임은 결국 무너진다


- 아, 작가님. 공감이 팍 됩니다. 그렇죠. 책임보다 무거운 것이 있을까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책임이 결국 무너진다니, 이건 너무 허무주의 아닌가요.

- 누구도 완벽하게 책임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 네?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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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은 아버지 추도식입니다. 1981년 12월 16일에 돌아가셨으니 35주기 추도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들과 사위가 함께 시간 내어 만날 수 있는 날이 추도식 날이 되고, 추도예배 시간이 됩니다. 주일 저녁, 다시 돌아온 아버지의 추도식입니다. 두 집 아이들이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무슨 추도예배가 이렇게 재밌어?! 예배도, 예배 후에 맛있는 것 먹고 노는 시간도 즐겁기만 합니다. 어느 핸가 추도예배 마치고 들뜬 아이들 분위기에 부응하여 동생 입에서 툭 나온 말이 '얘들아, 오늘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기쁜날이야!'해서 정말 대놓고 기쁜 날이 되었습니다. 35년 전 이즈음, 슬픔보단 두려움에 휩싸였던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 남매는 어디 가고요?


저 유명한 책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 나우웬 신부님은 이 시대를 진단하는 키워드로 '아버지 상실 세대'를 말합니다. 더 큰 인격과 능력을 믿지 않는 시대, 아버지 대신 또래가 기준이 되는 시대, 그리하여 결국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소망을 잃은 시대이지요. 오랜 내적여정, 영적인 방황 끝에 결국 저는 아버지를 잃은 그 사건 자체는 물론, 아버지 상실의 두려움과 공허감을 만났습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으로 시작한 어린 시절 작업은 결국 <탕자의 귀향>처럼 '아버지 집'으로 가는 이정표 앞에 서게 했습니다. 지난한 시간이었습니다. 12월이 되면 유난하게 공허하고 유난히 슬픈 나머지 피정을 떠났었습니다. 채윤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해의 12월이 가장 혹독했습니다. 그리고 떠난 기도피정에서 긴 여정의 작은 마침표 하나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얻은 치유의 힘으로 다음 해 여름 코스타에서 간증이라는 이름의 자기 고백도 할 수 있었습니다.


딸로서 아버지를 잃는 것과 아들이 경험하는 아버지의 부재는 전혀 다른 고통이더군요. 남동생과의 친밀함이 유난한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와 힘을 합쳐 동생을 키운 느낌입니다. 아버지를 닮아 힘이 넘치던 동생은 중고들 시절 풀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힘을 과시하며 살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비행청소년이었단 말씀. 늦게 만나서 기적처럼 딸을 얻었으면 만족할 것이지, 아들 하나 더 주시면 주의 종으로 바치겠다 서원했답니다. 우리 엄마가요. 그래서 생긴 동생이니, 어릴 적부터 꿈을 담보 잡힌 동생이 가엾어 보였습니다. 나를 바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싶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엄마의 기도와 달리 동생은 바쳐진 아들답지 않게, 그런 동생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스스로 제물 되어 오직 교회의 딸로만 자랐습니다. 동생의 비행 스토리를 곁에서 지켜보며 대리만족이 컸던 것 같기도 하고요. 동생 역시 제 멋대로의 삶을 살고자 발버둥 쳤지만 신학교에 잡혀 들어가고 목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엄마와 함께 동생을 키웠지만 어느 때부턴지 강해진 동생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동생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며 함께 성장해갑니다. 같은 아버지를 잃은 동질감, 그러나 다르게 경험되는 아버지 부재는 내 문제를 보는 또 다른 눈을 열어줍니다. 세 아들을 키우면서 '부성'의 결핍이 어떤 두려움과 방어로 드러나는지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그 문제에 맞닥뜨리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참다운 힘을 얻어가는 것이 대견하고요. 이렇듯 나우웬 신부님의 진단과 처방처럼 '아버지 상실'의 어두운 기억을 통과하여 아버지 품에 대한 그리움을 회복하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재즈처럼 하나님은>을 쓴 도널드 밀러 역시 아버지의 부재라는 화두를 붙들고 정직한 자기 이야기를 풀어간 작가이지요. 이 글의 제목 <아버지의 빈자리>는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아이처럼 천진해진 엄마와 다섯 아이와 함께 깔깔 웃으며 추도식을 보내고 와 생각합니다. '왜, 왜, 이렇게 아버지를 데려가셨나요. 하나님. 왜, 왜, 왜, 왜.....' 어릴 적 일기장 한 바닥을 '왜'로 채운 적이 있었지요. '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일이 내 인생의 방향을 어디로 향하게 했는지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두고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렇게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 자신입니까, 부모입니까?' 묻는 제자들에게 '저 사람의 죄도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저 사람에게서 드러내려고 그리된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답변처럼요. 원인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묻는, 질문의 전환이라 할까요. 35년 걸렸습니다.





아버지 장례식 앨범이 한 권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관에 가야했던 시절. 일상을 찍은 스냅사진 같은 것은 상상할 수 없었지요. 헌데 교회 집사님 중에 사진사 한 분이 계셨습니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 기념사진 찍는 일을 주로 하셨던 것 같아요. 그 집사님께서 장례식의 과정을 내내 카메라에 담으셨고 한 권의 앨범으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오랜만에 들춰보았습니다. 여러 번 봤던 이미지라 덤덤할 뿐이었는데 나란히 앉은 동생, 잘 생겼는데 사진에서는 뭉개져 있습니다. 낯선 느낌의 눈물이 흐릅니다. 울고 있는 저 아이들이 자기만 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되고, 입에 올리기도 두려웠던 '죽음, 아버지의 죽음'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복기해야 했던 추도식은 또 얼마나 무겁고 막막했는지요. 최근 몇 년 아버지 추도식 때마다 단체사진을 찍곤 하는데 사진에 담긴 마음이 새털처럼 가볍습니다. 할머니 몰아주기! 할머니 얼굴 제일 예쁘게 나오도록 모두 온 힘 다해 얼굴을 망가뜨립니다. (점잖으신 김 서방까지. 점잖아도 시키는 건 다 해요!ㅋㅋ​) 아이들이 웃다가 쓰러져 뒹굽니다. 35년 된 아버지의 빈자리가 식구들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집니다. 울음이 변하여 웃음이 되었고, 두려움이 변하여 어른으로 서는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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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첫째 주일로 남편은 이우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우리는 이우교회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첫 만남, 첫 예배를 함께 드렸습니다. 네 식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떨림과 긴장의 시간을 보냈을 터. 2부 예배에 인사를 드리자 커다란 케잌이 등장했습니다. '기쁜 날 좋은 날 우리에게 목사님을 보내주신 날' 환영의 노래 소리로 긴장이 확 풀리고 말았습니다. 직접 만드신 케잌의 하늘 색 톤이 마음을 밝혀줍니다. 맨 위에 우뚝 선 이우교회, 김종필 목사님 환영합니다, 무엇보다 안경 낀 김종필 목사님 쿠기! 옮겨오는 과정에서 살짝 망가졌는데 손과 머리에 크림 묻은 종필 쿠키를 보니 <토이 스토리>가 떠오릅니다. 상자에 넣어 집으로 옮겨 오는 동안 신나게 눈싸움 한 모양이지요.


뉴스에서 스쳐 지나 듯 본 기사의 어느 교회 이야기. 이우교회의 첫 시작이었답니다. '이우'는 '이삭의 우물'입니다. 우물을 파고 빼앗기고, 우물을 파고 내어주었던 바로 그 이삭의 우물입니다. 이우교회의 이야기는 기나긴, 아픈 한국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이우교회를 알게 된 이후에도 한 식구가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다렸고, 기다려주셨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도 이우 교우님들에게도 다시 한 번의 모험과 도전이겠지요.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은 내려놓습니다. 긴장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오늘의 시간을 투명하게 살아내야 하겠지요. 남편의 섬김이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눈싸움 하는 어린 아이처럼 가볍고 투명하게 말입니다. ​​




환영의 시간에 찍은 사진을 보다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어?...... 아! 5년 전 한영 TNT 공동체를 떠나오던 날입니다. 제 의상이 같군요. 아이들 키는 물론이거니와 귀엽게 하품하던 현승이의 시크한 오늘의 표정(실은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에 어쩔 줄 몰라 다. 당황하신 고갱님 심정입니다)이 세월을 말해줍니다. 채윤이는 위아래 사진에서 다 웃고 있지만 네 사람 중 가장 변화무쌍한 5년을 보냈습니다. 사진을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니 지난 5년을 지우고 TNT로부터 이우 공동체로 바로 날아온 느낌입니다. 그 전 주에 사임 인사를 하고 한 주 지나서 부임 인사하는 느낌. 100주년교회에서의 5년을 잃어버린 5년이라 해야 할까요, 꿈 속 같은 5년이라 해야 할까요.




TNT 떠나오던 날이 기억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건 아주 복잡한 수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그날 제어할 수 없는 눈물로 흘러나오고야 말았지요. 3년 동안 그야말로 함께 울고 웃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떠나오던 날 하루 종일 흘린 눈물은 3년 눈물의 종합판. 열정을 쏟으며 뜨거운 공동체를 체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남편의 마음에는 목회에 대한 회의감의 쌓여갔습니다. 결국 사역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목회 자체를 그만두는 선택을 했습니다. 사랑하니까 떠나는 거야, 식의 말이 안 되는 말을 TNTer들에게 남겨야 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다른 문이 열리고 바로 양화진 언덕에 전임 목사로 정박하게 됩니다. 어느 집이나 그렇지만 특히 목회자 남편의 진로는 가족의 진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양화진에서의 5년, 제게는 치명적인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상식적인 교회, 목회자에 대한 상식적인 처우에 자꾸 감동하는 나 자신이 유치하고 우습다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명해지는 또 다른 목마름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타 교회 수련회 강의에 가서 한 식구 같은 분위기를 보면 부러워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대형교회 스크린 예배 속에서 존재를 숨기고 사는 것이 목회자 아내로서 나쁘지 않은 경험이지만 어릴 적부터 경험했고 꿈꿨던 교회는 결국 살을 부대끼는 공동체였으니까요. 정말이지 인간은 얼마나 간사한가요. 사람으로 상처받아 물러나 앉아 홀로 되지만 다시 사람이 그리운 것은 관계로 부름받은 인간의 딜레머입니다. 그분 계획표 속에 있던 치유의 시간이 끝나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인가, 매주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 옆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고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자꾸 묻게 되지요. 이것은 교회인가. 남편을 향한 그분의 시간표 역시 어떤 마침표를 향해갔을 것입니다. 올 여름 교구 수련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비로소 '함께 살을 부대끼는 목양, 목회'의 맛을 보던 순간. 저 역시 그 수련회에 참석하여 함께하는 기쁨을 조금 느껴보았습니다. 그때는 이미 이우교회 부임이 결정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 이우교회 첫 예배에 100주년 7교구 가족분들이 함께해주셨습니다. 남편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저는 자주 뵙지도 못한 분들이었지만 따뜻한 격려과 힘이 되었습니다. 아, 우리가 마침내 주님 나라에 들어가는 날 TNT 친구들, 7교구 교우들, 이름도 모르는 수천 명의 100주년 교우들과 진정한 한 가족으로 살 것입니다. 그날에는.





목회 자체에 대해서 늘 회의하는 목회자가 목회자들로 인해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남편과 이우교회 교우들입니다. 그만큼 함께 마음을 같이 하는(호모 쑤마돈!) 공동체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는 뜻일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첫 출근하던 날 점심 때 찾아오신 한 연세 드신 집사님의 기도문입니다. 첫만남에 함께 기도하기 위해 써오신 것이라고 합니다. (설교에서 인용하는 것을 허락하셨기에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제 마음 속에서 일렁이던 근심과 두려움이 이 기도문으로 잠재워졌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오늘 이곳에 선 남편의 소명을 일깨우시는 주님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오늘 지금은 장에 가신 엄마를, 혼자서 집을 지키며 기다리던 아이에게 그 엄마가 돌아온 시간입니다"

남편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균형잡힌 말씀의 젖을 내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건강하고 따뜻한 가정을 일궈가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좋은 엄마 되기를 기도합니다. 엄마에게 실망하고 엄마에게 상처받아 많은 눈물 흘리신 분들께 사랑의 엄마 되기를 기도합니다. 엄마의 아내로서 그렇게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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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어떤가 하며 다 된 빨래를 들고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햇살이 따사롭고 겨울 찬바람도 없습니다.

겨울이라지만 빨래 말리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가을의 끝자락에 시작한 토요일 촛불집회가 어느새 6주가 되었습니다.

10월, 11월, 12월. 날씨가 점점 추워질 텐데 저 거짓투성이 권력은 언제나 국민의 뜻에 굴복하려나.

저 어둠은 언제나 빛 앞에서 제 본색을 드러내고 쫓겨나려나.

토요일마다 날씨 걱정을 했습니다.

차디찬 아스팔트에 자리 깔고 앉은 사람들의 건강이 걱정이고,

날씨 탓에 촛불 수가 줄어들면 저 어둠과의 팽팽한 격전에서 한 발 밀릴까 걱정이고.


비가 온다 안 온다 하던 지난 토요일에 걱정이 제일 컸는데

다행히 비는 살짝 오다 말았고, 저녁에 나갔더니 아스팔트는 젖었지만, 깔개 깔고 앉을 만 했습니다.

누가 그럽디다. '하나님이 날씨로 도우셔'

'오늘도 날씨로 도우시네요. 감사합니다. 주님' 했습니다.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마음 가득 햇살 머금고 옥상에서 내려왔습니다.

설교준비로 골방에 들어간 남편에게 커피 한 잔 내려주고 제 자리에 앉습니다.

문득 나의 주님께 편지 한 장 올리고 싶습니다.


주님, 오늘 이 맑고 따사로운 날씨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이었어요.

빨리 널고 내려와야지, 하면서 외투도 걸치지 않고 올라갔거든요. 추울 각오를 하고요.

당신은 늘 그렇게 예상을 빗나가는 방식으로 감동을 주시죠.

다시 한번 오늘 날씨 감사 드려요.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겠습니다.

그렇다고 부담 갖지는 마세요. 주님.

신경 쓰실 날씨가 한두 군데가 아니실 텐데 다음 어느 토요일 날씨가 궂고 춥다하여 당신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게요.

실은 전에 많이 의심하고 분노하고 실망한 적이 많았지요. 죄송해요. 늘 버릇 없이 기도해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고통이 여전한 것을 바라보며, 악이 승승장구를 바라보며 견딜 수 없었어요.

도대체 하나님, 도대체 하나님 왜요? 뭐 하고 계세요? 어디 계세요? 몸부림했어요.


몇 주 광장에 나가서 생각하곤 해요. 이 많은 사람이 어디서 이렇게들 몰려들었을까?

문득 작년 어느 뜨거운 날 경복궁 근처에서 세월호 피케팅 했던 날이 생각났어요.

버스 안의 몇몇 할머니들이 경멸에 찬 눈으로 손가락질했지요.

그 눈빛과 손가락질이 내가 아니라 세월호 엄마 아빠들에게 향한다고 생각할 때 견딜 수 없었어요.

점점 한산해지는 광화문, 나조차도 잊어가는 세월호. 저들의 노골적이고 조직적인 은폐와 무시.

그럴수록 외롭게 피눈물 흘릴 세월호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아, 당신이 이 눈물을 보셨군요. 이 피맺힌 한을 보시고 정유라의 이대 입시로 시작하여

한 대의 태블릿피시가 세상 앞에 드러났습니다.

그것도 울음 삼키며 끝까지 세월호 보도를 포기하지 않았던 손석희 사장 앞에요.

젊을 때 고통의 극한마다 떠올리던 찬양이 맴돌았어요.


물가로 나오너라 내게 오라 너의 목마른 것 내가 채우리라

어둠에 헤맬 때 흘리던 네 눈물 그 눈물 위하여 내가 죽었노라


주님, 이제 저는 힘없는 이들의 눈물이 적신 땅에 당신의 손길이 머문다는 것을 가슴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어제 낮에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기나긴 통화를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눈물이 전화기를 타고 제 귓불로 흘러드는 것 같았습니다. 

밤에는 오랜만에 공동체와 함께 하는 뜨거운 기도를 드렸어요.

그곳에도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아니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제 이미 눈물로 가득찬 제 마음을 보셨지요?

당신 긍휼의 마음이 상실한 이들의 눈물에 얼마나 취약하신지 알아요. 이젠 정말 알아요.

우리에게 향하신 당신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신데, 그 크기가 인간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라 하셨으니까요.

가끔 당신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아도 많이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흐리고 비 오는 추운 날이 오더라도 말이에요.

주님, 부디 제 마음에서 눈물 마르는 일 없도록 도와주세요.

언젠가 좋은 나라에서 당신을 뵙는 날, 이 눈물 모두 닦아주시겠지요.

햇볕에 바짝 마른 수건처럼 보송보송한 영혼으로 당신과 더불어 호흡하는 날이 있겠지요.


오늘도 광장에, 우리와 함께하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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