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에서의 마지막 아침, 그러니까 이사하던 날 아침에도 여전한 햇살 거실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인데 서운할 정도로 여전한, 무심한 아침이었다. 맑은 날 아침마다 책꽂이 중간까지 다가와 어떤 책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던 아침햇살이다. 그걸 마주할 때마다 찰크닥찰크닥 사진을 찍었고, 그렇게 시작한 하루가 많다. 스포트라이트가 순식간에 옆 책으로 옮겨지거나 모양이 바뀌기 때문에 서둘러 찍워둬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저자들 위에 얹힌 그림자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은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시간이다. 아침에 잠깐, 그리고 해질녘 한 순간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영성수련의 시간이다. 이 집을 향한 애정이 폭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삿짐을 먼저 보내고 레슨 갔던 채윤이를 태우고 새로운 곳 분당으로 향했다. 점심으로 어디서 무얼 먹을까? 여기서 먹을까, 가서 먹을까. 이런 의논을 하던 중이었다. '엄마, 나 밥이 안 먹혀. 어제부터 이상해. 놀이기구 탈 때 온몸의 장기가 다 붕 떠있는 느낌, 그런 느낌이야.' 이사 전날에 채윤이는 혼자서 강에 나갔다 왔다. 그 마음 나도 안다. 며칠 전 나도 절두산 성지와 마포 한강변을 찾아 작별인사를 하고 왔었다. '장기가 붕 뜬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단다. '그건 슬픔이야' 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우리 모두 조금씩 슬프단 얘길 했다. '그래도 엄마, 5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은 일을 겪었어. 예중 입시 준비부터 예중 3년, 예고 입시, 그리고 꽃친. 어제는 일기를 썼어. 쓰면서 정리해보니 이사올 때와 이사 갈 때가 너무 다르다는 얘기로 끝나는 거야.' 그래, 채윤이의 동인리버빌 5년은 도전과 모험의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장하다, 우리 채윤이.


밥맛을 먼저 잃은 아이는 현승이다. 겨울방학 내내 봄방학 얘길 자주 했었다. 겨울방학 개학하던 날, 아침에 빵 한 조각을 먹었고 학교에 급식도 없었는데 저녁까지 뭘 먹질 않았다. 배가 고팠을텐데 저녁조차도 무성의하게 먹는다. 하루 이틀 후에 고백을 해왔다. '엄마, 입맛이 떨어진 이유를 알았어. 이제 며칠 있으면 봄방학인데. 봄방학 하는 날이 친구들과 마지막이야. 벌써부터 친구들이 인사를 해. 가서 잘 지내, 이렇게 말을 하니까 밥을 잘 못 먹겠어. 입맛이 없어져.' 눈 뜨면 연락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자곤 하는 옆동에 사는 베프와는 만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일부러 그러는구나 싶어서 현승이 없는 자리에서 세 식구가 모여 대신 슬퍼하기도 했다. 아이들 어렸을 적에 읽었던 슬픈 그림책 <안녕 또 만나> 같다고.


벌써 몇 달 전, 분당행이 결정되고 현승이에게 알리던 날, 영화 한 편을 찍었었다. 차안에서 얘기했는데 바로 통곡을 했다. '한 번도 전학하지 않는 친구가 태반인데 나는 왜 자꾸 이래야 하느냐.' 생떼로 시작해서 넋두리를 하더니 시를 읊는다. '내가 이 골목에 서 있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엄마는 몰라. 이 골목에 서 있지 않은 나를 상상할 수 없어' 그리고 몇 달 동안 간간이 통곡하고 간간이 생떼 쓰며 시를 읊었다. '친구들과 놀면, 행복한 그 순간이 이미 그리움이야' 사춘기 문학 소년의 감성 터지는 원망과 불평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몇 달을 지냈다. 이사가 지연되고 지연되면서 주일만 가는 새로운 동네 새 교회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사 가고 싶다'란 말이 나왔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말도 안 되게 이사 진행이 안 되어 마음을 졸이다 아빠는 병까지 얻어 앓아 눕기까지! '이사 가고 싶다'는 말이 현승이 입에서 튀어 나온 것만으로 졸였던 마음, 바닥에 눌러 붙은 근심의 찌꺼기 따위 오케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5년 전 명일동에서 이사 와서 앓았던 이별 증후군은 치명적이었다. 이사 한 달 후에 쓴, 초딩 3학년이던 현승 님의 시는 언제 떠올려도 쓸쓸하다.



이사

 

                                        김현승


이사한 곳을 지나가면 뭔가 마음에 걸린다

마치 무엇을 두고 온 것 같다

수영장에 수영복을 두고 오 듯

학교에 공책을 두고 오 듯

이사한 곳에 마음을 두고 왔다


현승인 늘 이별을 두려워한다. 변하지 않는 관계가 세상에 있는지 자꾸 묻는다. 분당 이사를 받아들이고 난 후에도 '엄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 친구는 아무리 좋아도 또 헤어지게 돼. 그렇게 생각하니까 김포 수우세(외가의 사촌동생 셋, 수현 우현 세현)이 참 좋아. 외갓집은 우리가 이사를 해도 다시 만날 수 있잖아. 그리고 언제 가더라도 그대로일 것 같아. 수우세 셋이 놀았다 싸웠다 하고, 삼촌한테 혼나고. 외할머니가 현성아, 그러면서 돈을 주시고..... 김포가 참 좋아. 엄마, 나 오늘 혼자 버스 타고 가서 김포에 가서 잘게.' 현승이의 슬픈 시같은 말들을 그저 듣는다.


남편의 마음은...... 심심상인이다. 말이 필요 없다. 목회자와 가장의 정체성, 둘 사이에 끼어 있는 그의 번뇌는...... 나의 것이기도 하다.  '이번에 이사 가면 <당신을 기다리는 것들> 같은 거실, 소파, 책상 만들어 줄게. 정신실 작가 글쓰는 자리 꼭 만들어 줄게' 이 말만 반복한다. 심심상인이다.


이삿짐이 다 나가고 텅 빈 집에 홀로 남았다. 청소를 좀 더 하고 나올 요량이었다. 먼지를 털고 바닥을 닦으며 고마웠던 집에 안녕을 고했다. 이 집에 와서 첫 책이 나왔고, 줄줄이 다섯 권의 책이 따라 나왔으며 '작가'라는 호칭이 민망하지 않아졌다. 떠나고만 싶었던 한국교회에 대해 절대 절망의 소망을 희미하게 품게 된 시간이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웠고 평안했다. 집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도 아닌데 그냥 집에 고마웠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툭툭 털고 나오려는데..... 이삿짐 센터에서 놓치고 간 것이 있다. 주방 벽에 붙어 있던 'Present is Present'이다. 5년 세월 동안 얻은 소중한 만남이 어느 날 들고 온 문구이다. 한참 들여다 보았다. 이 집에서 주시는 그분의 마지막 메시지 같다. 늘, 언제나 '현재'가 가장 좋은 선물이다. 지나간 날은 지나간 선물이다. 오늘이 최고의 선물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종이를 떼내었다. 5년의 선물이 지나갔고, 오늘이라는, 다시 새로운 선물이 왔다. 두려움 없이, 기대감으로 발을 떼도 된다고 하는 것 같다. 이제 맞이하는 오늘이 선물이고, 선물은 늘 '오늘'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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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고 한다. 삶의 희망을 다 잃고 극단적인 선택 앞에 서있는 사람에게 말이다. 진심어린 경청은 말하는 이를 절망에서 일으키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어차피 답은 없지만 이렇게 털어놓으니 그나마 살 것 같다.’ 언젠가 속으로 이랬던 적이 있는 것 같고.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런대? 어쩔 수 없는 것 아는데 속상하다고. 그러니까 그냥 좀 들어달라고.” 열폭했던 기억도 있다. 좋은 벗이란, 좋은 선생님이란, 좋은 상담자란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에겐 잘 들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소위 걸어 다니는 고민상담소라 불리는, 상담의 은사가 있다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사함을 너 받으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내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 친구는 누구인가. 부끄럼 없이 나를 다 드러낼 수 있고, 어떤 경우에도 나를 판단하지 않을 것 같은 친구를 그대는 가졌는가. 그런 친구 한 분을 소개하며 만남을 주선하는 찬송이다. 기도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이 찬송에서 기도는 진실한 친구와 의 만남이다. 모든 것을 쏟아놓아도 좋을 진실한 친구, 예수님 말이다. ‘~어룩 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만유의 주,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시는하나님. 주일 대예배 장로님의 대표기도 속 하나님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저 높은 곳에 멀리 계신 하나님, 어쩐지 내겐 어려운 하나님. 내 지질한 얘기는 다 넣어두고 오타 하나 없이 정리된 보고서 들고 찾아뵈어야할 것 같은 하나님이 아니라 친구로 오신 하나님, 예수님이신 하나님 말이다.

 

청년 시절 교회에서 24시간 릴레이 기도회를 한 적이 있다. 중대 사안을 놓고 온 교인이 함께 기도하자는 취지였다. 퇴근 후, 내 담당 시간이 되어 교회 기도실 마룻바닥에 가 앉았다. 릴레이에서 내가 달릴 분량이 한 시간. 준비된 공식 요구사항(기도제목)을 다 읊었는데 시간이 몇 분 지나지 않았다. 개인적인 현안과 기타 등등의 기도를 해봐도 남은 시간이 길다. 앞뒤, 옆으로 슬슬 몸을 흔들며 기도 리듬은 타고 있지만 마음은 천지사방을 헤매는 분심에 오락가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삐그덕 기도실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삐걱삐걱 천천히 마룻바닥을 걷는 소리. 풀썩 방석이 놓이는 소리가 난다. 그 위로 퍽 하고 짐짝 하나가 패대기쳐지는 둔중한 소리와 느낌이 내 자리까지 전달되어 온다. 그리고 바로 한숨 가득한 한 마디 주님, 너무 힘들어요.’ 그 한 마디의 무게로 기도실 마룻바닥이 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청년부 후배였다. ‘주님, 너무 힘들어요이 한 마디에 그의 하루, 그의 고민, 마음의 짐이 멀뚱거리던 내게까지 온몸으로 전달되었으니. 주님의 마음은 저 한 마디에 얼마나 무너지셨을까.

 

작심하고 앉은 기도의 자리에서 냉랭한 기운 떨쳐버릴 수 없을 때, 그럴듯한 말로 또박또박 기도할 수 있지만 가슴은 도통 뜨거워지지 않을 때 떠올린다. 기도실 마룻바닥에 쿵하고 떨어지던 그 수고롭던 몸과 영혼의 무게감을. 기도의 자리에서 그분을 마주하는 것은 이렇듯 잔뜩 지고 있던 짐을 일단 내려놓는 일. 그리고는 짐 보따리 안에서 좋은 것, 고운 것 먼저 꺼내 보이며 이미지 관리할 것이 아니라 자루 째로 쏟아놓으라 한다.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감사와 함께 근심 걱정을, 기쁨과 함께 슬픔을, 사랑과 순종의 열매와 함께 단 한 사람 용서할 수 없어 메말라 갈라진 마음을 쏟아 놓으라고 말이다. 기실 정말 좋은 친구 앞에서는 그리 하지 않는가.

 

주 예수를 친구로 삼아 늘 네 곁에 모시어라.

그 영원한 생명샘물에 네 마른 목 축이어라

 

주님, 너무 힘들어요. 당신께 실망했어요. 내 기도 듣고 계신 것 맞아요? 당신이 안 계신 것만 같아요.’ 정직하게 풀어놓고 꺼내놓아 텅 빈 마음의 방은 예수님 외에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다. 공감의 여왕을 친구로 뒀다 해도 사람 친구가 주는 위로는 금세 다시 목마를 물이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가진 유일한 친구가 예수님임을 깨달을 때 기도는 다른 차원이 될 것이다. 이 좋은 만남으로 어느 새 사라진 슬픔은 이웃의 슬픔에 가닿을 것이다. 가만히 내 기도 들어주시는 예수님처럼 이웃의 아픔을 영혼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생길지 모르겠다. 이 찬송의 시작과 끝이 다르다. 기도의 공간으로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대신 그분이 주시는 쉽고 가벼운 멍에, 사랑의 짐을 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결국이 아니겠는가.

 

주 예수의 은혜를 입어 네 슬픔이 없어지리

네 이웃을 늘 사랑하여 너 받은 것 거저 주라

너 주님과 사귀어 살면 새 생명이 넘치리라

주 예수를 찾는 이 앞에 참 밝은 빛 비추어라

 




서른이 되어도 시집을 못 가고 있는 딸 걱정에 밤잠을 설치시는 우리 엄마에게 ''은 괜한 미움의 대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라는 시집은 안 가고 나날이 책꽂이의 책만 늘려가고 있었다. 딸보다는 책을 구박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셨는지 시집 못 가는 이유를 책에다 덮어씌우신다. '여자가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해지면 못 쓴다' 하시며.... 하긴 나도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박사과정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놈의 혼수에 수백 권의 책을 동반할 여자 좋아할 남자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있겠나? 무엇보다 함께 책을 읽으며 삶을 나눌 동등한 상대로 여자를 대할 그런 남자를 만날 수나 있는 걸까?"


남편과 함께 쓴 책 <와우결혼> 중 일부이다. 저런 염려를 했었지만 다행히 나보다 책 중독 증상이 더 심한 남자를 만나서 '서재 결혼 시키기'에 성공했다. <서재 결혼 시키기>라는 제목의 책이 실제로 있다. 책이 인연이 되어 만나고 같은 책을 읽다 헤어지고 다시 만난 커플답게, 우리집의 트레이드마크는 책으로 둘러싸인 거실이다. 결혼 당시보다 책꽂이는 두 배가 되었지만 어느새 포화상태가 되었다. '이제 정말 책값 줄이자. 책 사지 말고 있는 책 다시 보고, 안 읽은 책 다 읽도록 하자' 다짐하고 결심하기를 반복. 잘 지켜지질 않는다. 눈치 보기 싫어서 아예 알라딘 계정을 따로 만들었는데 주문 넣을 때마다 몰래 죄짓는 느낌이다. 남편도 사정은 마찬가지. '당신 그 책 나온 거 알아? 그 책은 읽어봐야지/애들도 같이 읽어봐야 할 책이 있어/마가복음 성경공부 준비해야 하니까 꼭 필요해서 산 거야' 묻지 않은 설명이 길어지면 이미 몇 권을 지르고 난 후이다.  자신을 포기 서로를 포기. 아무튼 서재를 결혼 시키고 가꾸어 왔다.


요 며칠 책꽂이가 한 칸씩 비어간다. 남편이 출근 때마다 한 보따리씩 싸 들고 나가기 때문이다. 혼자 사용하는 사무실이 생겼으니 최대한 가지고 나가겠다는 선언을 했다. 서재 독립선언이다. 결혼 18년 되는 서재는 딴 살림을 차리게 된다. 자연스럽고도 기분 좋은 헤어짐이다. 헐렁해진 책꽂이에는 작은 소품이나 액자 같은 것을 둘 수도 있을 것이다. 이사할 집의 거실 구조와 이전의 집들과 전혀 달라서 모처럼 함께 창의력 발동 중인데 '마주 보는 책꽂이 거실'을 탈피하여 어떤 모양새가 될지 기대 반, 염려 반이다. 아무튼 이 변화가 여러 모로 시의적절하다.  


이우교회 청년들과 함께 한 연애 세미나 마쳤다. 마지막 강의는 남편과 함께했는데 오랜만의 더블 강의이다. 애써 맞춰보지 않았고, 강의 구조도 느슨했다. 디스전과 은근 띄워주기를 오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부부가 함께 우리의 결혼을 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의 유익이 있다. 한 발 물러서서 우리의 결혼을 바라보고, 낯선 눈으로 서로를 관찰하게 되는 경험이다. 강의 때마다 하는 말인데도 나란히 서서 듣다 보면 새롭게 들리는 것들도 있다. 남편이 20대 때 전도서를 읽으며 얻은 통찰이라고 했던 얘기가 오늘 처음 듣는 얘기처럼 맑게 들렸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 9:9).

 

온통 부정문으로 가득 찬 전도서에서 유일한 긍정적 권면이 저 말씀이었다 한다. 해 아래 모든 일이 헛되고 허망하니 오직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라! 그래, 삶의 모든 것은 실패해도 행복한 가정, 아내와 즐겁게 사는 것만은 꼭 이뤄야겠구나. 결심했다고. 실제로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 원칙을 지키려 애썼다. 당연히 포기해야 할 것이 많았고, 그런 선택에 대해 세상이 지지를 보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리석거나 유별나다는 식의 눈길을 받아왔다. 그러나 오늘 문득 돌이켜보니 잘한 일인 것 같다. 요즘 결혼 강의할 때마다 강조하는 바가 있는데 '결혼은 행복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문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 그러하다. 사랑은 대상을 위해서 내 마음자리를 넓히는 일이다. 사랑을 위한 성장을 지향하면 사랑의 신비가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하고자 하지만 사랑의 성장에 관심이 없다면 거기서 행복은 영영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가 된다.


이번 이사는 장롱 침대를 새로 바꾸는 엄청난 일도 있다. 신혼 가구로 들였던 장롱이 더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가구를 고르며 생각해보니 이제 들이면 또 20년을 써야 한다. 20년 후면 70이다. 둘이 이생에서 함께 쓰는 마지막 장롱과 침대가 될 것이다. 아마도. 아, 이렇게 우리는 결혼생활 전반을 끝내고 후반으로 가는 것이다. 이 시점에 한 가족이 된 이우 청년들과 결혼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돌아본 시간이 더욱 의미 있구나!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는 오늘 나눈 강의 내용을 힘을 다해 살아온 결혼 초반부이다. 이제 남은 날동안 하나됨의 신비로 얻은 유익을 흘려보내는 삶으로 살아야지 싶다. 서재만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 더욱 자기 자신이 되어 홀로도 의연하게 잘 사는 삶으로. 유약한 의존이 아니라 나란히 제 발로 걷는 동반으로. 어른 부부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새로운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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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좋아하지만 맛집을 찾아 줄을 서는 열정은 없고, 뭘 맛있게 먹더라도 또 먹고 싶어 애써 찾아가거나 하지 않는다. 벌써 일주일 전에 먹었던 것들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입맛을 쩍쩍 다시게 되니 내게는 드문 경험이다. 지난 주에 광주로 1박 2일의 에니어그램 강의를 다녀왔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수련회 풍경, 청년부 수련회에 식사팀 권사님들이 함께 하신 것이다. 기대 이상의 맛, 기대 이상의 정성에 더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1박 2일의 먹강(먹으러 강의 간 것)이었다.  첫 식사, 첫술을 뜨고 바로 무릎을 꿇었다. 끼니 때마다 기본 일식 오찬, 내지는 육찬. 가짓수의 많음보다 감동은 반찬의 다양함이요, 그보다 더한 감동은 모든 반찬이 다 맛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풍성한 밥상인데, 식사 중에 탱탱한 생굴에 갖은 양념으로 만든 초고추장까지 곁들여 내오신다. 강사 특별대접. 옆에 앉은 청년들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보셨는지, 권사님께서 "내일 아침 메뉴여. 내일 다 줄 건디 강사님 먼저 드리는 거여." 하신다. (그 굴은 다음 날 아침 굴 떡국으로 변신. 세상에나, 수련회 아침 식사가 반찬 다섯 가지에 굴 떡국이라니!) 마지막 식사에는 "이따 저녁 반찬인디 못 드시고 가싱께" 하시며 피꼬막 한 접시가 추가. (키보드 두드리며 침 고인긴 처음이다)


권사님들께 일부러 찾아가 배꼽 인사를 여러 번 드렸다. "강사 인생 십몇 년 만의 최고의 식사였습니다." 두 번째 식사시간이던가, 식사팀 대장 권사님 옆에 앉게 되었다. 역시나 '권사님, 정말 맛있습니다. 맛있습니다'를 연발했더니 특유의 사투리로 '내 반찬이 맛있는 줄 아시면 강사님 입맛이 보통 수준이 아닌디'하신다. 그리고 짧은 간증을 하셨다.


"내가 중등부 교사를 한 지 30년이 되얐어요. 어떻게 처음 교회에서 밥을 하게 되었냐면. 지금이야 안 그렇지만 그때는 수련회 강사 전도사님, 목사님들에게 강사비가 없었어요. 여름에 땀 흘려 가며 고생하시는데 너무나도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내가 밥을 해야겄다, 식비를 남겨서 강사비를 드려야겄다 했어요. 사 먹는 밥 대신에 직접 장을 봐서 했는디, 좋은 재료 싸게 사서 맛있게 먹고도 돈이 남은 겨. 그렇게 강사비를 드리고, 교회에 뭔일 있으면 또 장 봐서 밥하고......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 30년이 된 거여. 나는 음식하는 게 즐겁고, 잘하는디 아무나 다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 한때 내가 은혜받아서 마음이 뜨거울 때는 집안 살림, 밥하는 거, 이런 거는 다 하찮은 줄 알었어. 그저 교회마~안, 열심히 댕기고 이러는 게 잘하는 것인 줄 알었더니. 나중에 믿음이 조금 자라고 봉게, 그게 아니더라고. 내가 솜씨가 있고 음식하는 거 좋아하는디 그거 열심히 혀서 먹이는 것이 중요하더라고."


<나의 성소 싱크대 앞>에 수백 페이지 주절거린 일상영성을 3분 토크로 요약해주시는 것 아닌가. 음식만 맛있던 것은 아니다. 청년부 목사님의 극진한 환대, 강의에 집중하는 청년들 태도의 배려와 어우러져 더욱 잊지 못할 1박 2일이었다. 청년부, 특히 대학부나 어린 청년부에서 오는 에니어그램 강의요청은 거절하곤 했었다. MBTI로도 충분하다 설득하여 주제를 바꾸기도 했었고. 헌데 이번엔 어쩐지 거절하질 못했다. 할 수 없지, 어려워해도 할 수 없다. 하며 갔는데 예상 밖이었다. 게다가 광주였고, 게다가 수련회 장소는 무등산 자락이었다. 광주, 내 마음 속 광주 말이다.


같은 주제로 여러 곳에 강의 다니면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이는 것들로 큰 배움을 얻게 된다. 이방인으로 공동체 체험하기. 맞이하는 교회들이야 늘 하던 방식이겠지만 내게는 새로움이니 말이다. 맞으시는 무심코, 평소대로 손님을 맞는 태도를 경험하는 나로서는 '비교체험 극과 극' 수준일 때도 있다. 때로 내가 이러려고 강의하러 이 먼 곳까지 왔나, 자괴감으로 하며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는가 그 정반대의 날도 있다. 낯선 자의 눈으로 바라보기, 체험하기의 유익은 얼마나 큰지! 아무튼 이 예기치 않았던 광주 먹강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강사랍시고 특별대접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권의식으로 못된 태도와 마음의 습관이 들까 경계하고 경계한다. 그러나 진심 어린 환대란 누구라도 특별하게 대하는 것 아닌가. 창의적인 배려로 드러나는 환대로서의 특별대우는 강사도, 직장 마치고 파트타음 참석자로 수련회장에 들어온 청년이라도, 누구라도 춤추게 하는 일이다. 추가로 나온 생굴 한 접시의 특별대우는 따뜻한 환대로 다가왔다. 


마음이 추운 날이 오래 간다. 자꾸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움츠리고, 껴입고 그럭저럭 잘 지내다 한 번씩 한기에 휘말릴 때가 있다. 봄의 훈풍은 언제쯤 불어오려나. 1박 2일 광주 일정 마치고 올라와서는 바로 다른 일정이 있었다. 밤까지 대중교통으로 다녀야 해서 여러 겹 옷으로 무장하고 내려갔다. 광주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겹쳐 입은 카디건이 거추장스럽고 무거웠다. 예상치 못한 따뜻한 날이었다. 일기예보를 빗나가는 따뜻한 날이 언제 불쑥 끼어들지 모르는 일이다. 무등산의 아침을 맞으며 후루룩후루룩 먹었던 굴떡국. 아직 마음에 남은 떡국 국물의 온기를 꺼내보며 하늘의 메시지 하나를 읽어낸다. 


봄이 오고 있다.

아직 겨울이라도 어느 날 훅 들어오는 따뜻한 날도 있을 테다.

오늘 추위 걱정은 오늘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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