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년차, <복음과 상황>에 'JP&SS의 사랑과 책'이란 꼭지로 남편과 함께 신혼일기 비슷한 것을 연재했다.책 얘기 반, 투닥거림 반 주거니 받거니 썼다. 몇 년 후에 단행본으로 묶어서 출간한 것이 [와우결혼: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이다. 연재를 계기로 여기저기 강의에 초청 받게 되었다. 처음엔 연재한 글처럼 남편과 함께 다니곤 했는데, 워낙 마이크 잡는 것을 싫어하고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서서히 뒤로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하여 나는 본업 음악치료를 거의 접고 강의하고 글 쓰는 일로 살고 있다.


6주 강의로 교회 젊은 커플들과 함께 남편과 함께 결혼 세미나를 진행한다. 가끔 여러 회기의 연애 강의에 비싸게 구는 남편을 구슬러 같이 하기도 했지만 둘이 함께 이끄는 세미나는 처음이다. JP&SS의 결혼 세미나 론칭이다. 책 제목이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인 것은 가끔 행복하고 자주 갈등하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를 보라는 뜻이었다. 연애와 결혼에 관한 한, 신뢰하는 선배 부부와의 관계에서 배우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한다. 또래 커플들과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도 스스로를 비춰보고 객관화 하는 좋은 거울이 된다. SNS에 올리기만 좋은, 잘 포장된 부부가 아니라 함께 하는 일상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끌어 안는 관계가 관건이다. 딱 이런 생각을 담은 세미나로 계획하고 있다.


강의는 최소화 하고, 각 커플의 사는 얘기를 더 많이 나누려 한다. 오늘 첫모임 시작하며 '우리 커플 어떻게 만나고, 프러포즈 했는지' 나누는데 빵빵 터지는 즐거움이었다. 첫 만남과 고백의 기억을 꺼내보는 것은 오늘의 사랑을 지속시키는데 유익하다. 처음 이 사람에게 빠져들었던 그 매력을 확인해보는 것도 마찬가지. 결혼 19년 차가 되었는데도 다른 커플의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게 재미있다. 제 방에서 참석한 부부의 아가를 봐주던 열아홉 딸이 '사이사이 듣는데 처음 만난 얘기들 너무 재밌어. 나도 계속 듣고 싶다' 했다.


커플이든 개인이든 포장지 조금 벗겨내고 가슴을 열고 만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참으로 흥미로운 존재, 가르침을 주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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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는 시를 쓴다.

시를 쓰니 시인이겠지만 시만 쓰는 것은 아니니 시인인 것만은 아니다.

패터슨 씨는 패터슨 시를 운행하는 버스 운전기사이다.

패터슨 씨는 월화수목금, 아침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난다.

포즈는 조금씩 다르지만 자그마한 아내를 품은 채로 아침을 맞는다.

잠든 아내에게 사랑스런 입맞춤을 하고,

아내의 단잠이 깰세라 각 잡아 개켜진 옷을 살짝 들고 침실을 나온다.

우유에 만 씨리얼을 덜렁 앞에 놓고 우그적우그적 씹으며 식탁에 놓이 상냥갑을 관찰한다.

도시락 통을 들고 출근을 하고, 

버스 운행이 시작되기 전, 운전석에 앉아 아침의 영감을 바탕으로 시를 쓴다.

시인 패터슨을 버스 드라이버의 운전석으로 불러내는 것은 동료의 노크이다.

그리고 아침 인사.

안녕, 어때? 어, 사실은 별로야. 

염려와 짜증을 일발장전 하여 살짝 건드려도 다다다다 불평 투하이다.

동료의 염려와 짜증을 뒤로 하고 버스는 출발한다.

코너를 돌고, 작은 폭포 옆을 달리는 패터슨 시의 버스는 뭔가 몽롱하다. 


패터슨 씨의 일상은 라임이 딱딱 맞는다.

아주 작은 변주가 있고, 아침 점심 저녁 일상의 흐름은 월화수목금 운율이 잘 맞는다.

시의 운율은 잘 모르겠다.


시를 위한 시인가, 사랑을 위한 시인가.

시인들을 보면서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내게 사랑이란 로맨스가 아니다. 

일상이다. 일상의 사람, 가장 빈번하게 얼굴을 마주하고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사람,

에 대한 마음이다.


패터슨의 시는 식탁에 놓인 성냥갑으로 시작하여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패터슨은 정말 아내를 사랑하는 것 같다.

뭔가 철없어 보이는, 아슬아슬한 아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지지한다.

물론 시가 끝나지는 않는다.

다만 시를 적은 비밀노트가 갈기갈기 찢기는 것으로 일단의 시가 끝나게 된다.

아내가 아들처럼 키우는 개에 의해서 패터슨의 비밀노트는 찢어발겨지고 만다. 상실감.

주말에 일어난 일이다.

그 주말은 어떤 주말인가 하면, 패터슨 시의 진가를 알아주는 아내가 복사본을 만들겠다던 주말이다.

혼자 보지 말고, 복사본을 만들어 남기자! 알리자! 이번 주말이다!

아내의 설득에 내키지 않는 오케이를 했던 바로 그 주말이다.


일상과 예술 사이의 성찰 또는 헛갈리을 위해 감독이 놓은 여러 개의 덫에 걸려 들었다.

주말에 열리는 마켓에서 머핀을 팔아 대박 내겠다는 철부지 아내의 바램은 실패가 될 줄 알았다.

패터슨의 시는 주말을 기점으로 어떤 전기를 맞이할 줄 알았다.

시는 잃고, 머핀은 대박이 난다.

어쩌면 패터슨에게 시는 잃어도 좋은 것이다. 

다만 관객에겐 조금 불편한, 손해 보는 듯한 패터슨의 월화수목금 사랑과 일상이 잘 흘러가고 있으니

그게 어디냐.

뜬금없이 나타난 일본 사람이 주고 간 새 노트에 시는 다시 씌여질 것이다.


패터슨을 닮은 한 남자를 알고 있다.

시를 쓰던 남자였다. 

이제는 시를 쓰지 못한다.

시 대신 말을 빚어 공기 중에 흩어 놓는 것이 그의 일이 되었다.

주말 밤 거실 바닥에 찢겨 흩어진 패터슨의 비밀노트가 차라리 명예로우리.


패터슨의 시가 사라져도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아무렇지 않은 일상은 아름다운 영화가 되듯

패터슨 닮은 남자의 떠벌이지 않는 사랑 역시 마지막까지 남을 아름다움이다.


그 남자의 비밀노트, 어렵게 고르는 말의 명예를 지켜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없지만.

글과 말이 사라져도 고이 남겨지고 지속되는 일상이 있으니........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14

 


말보다 표정과 눈동자가 더 크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수심 가득한 눈동자에 펴지지 않는 표정이 이미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아냐, 별일 없어, 잘 지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히려 별일 없다는 말이 더 큰 어려움 속에 있다는 뜻일 터이다. 답도 없는 내 얘기 해봐야 상대에게 걱정만 끼칠 뿐이거나, 온전히 이해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별일 아니다, 별일 아니다. 괜히 나 혼자 힘들어 하는 것이다자기최면의 말일지도.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죄짐을 풀었네

 

우리 어머니의 찬송이기도 하다. 엄마가 낮고 작은 소리를 읊조리듯 저 찬송을 부르고 있다면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딴 근심이 무지 많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져야할 때 기도하듯 노래하셨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는 눈으로 전하는 메시지와 말이 다른 경우와 같다. 내 마음에도 이 찬송이 크게 울릴 때가 있다. 삶의 무게에 무릎이 꺾이며 휘청거리는 순간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미소 짓고 괜찮아요, 잘 지내요, 견딜 만 해요하고 돌아서서 눈물지으며 부르는 노래이다.

 

단 한 사람, 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 한 사람만 있다면 결국 삶을 등지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고들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마주 앉아 실은 조금 힘들어라고 말하는 순간 대개 근심의 보따리가 봉인해제 된다. 풀어 놓다보면 조금 힘든 게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이 찬송이 그러하다. 딴 근심 없다며 시작한 찬송의 나머지 가사들은 오히려 딴 근심들의 나열이다. 흥얼흥얼 따라 불러 그 짐 보따리에서 풀려 나온 것들은 우리 모두의 핵심적 고통이다.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한숨(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늦어지는 결혼, 쉽게 찾아지지 않는 진로로 오지 않은 내일은 희망보다 두려움이다. 누구를 사랑한다 해도 나 같은 사람 누가 좋아해주겠나싶어 스스로 거절당해버리고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끼리는 좋은 관계로 잘 지내는 것 같아 스스로 외톨이 됨이다. 이 모든 압박과 두려움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생각하니 나오는 것은 한숨 뿐. 친구들은 흔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내게는 도달하지 못할 삶이다. 그 이유가 단지 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더욱 작아지고 누추해질 뿐이다. 돈이 있다면 이 불안과 가족의 불화까지도 싹 해결될 것 같다. 돈만 많이 준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들기도 한다. 두려움과 한숨과 궁핍함을 담아 꽁꽁 싸맨 우리의 짐보따리여.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찬송을 입에 붙이고 사시던 우리 어머니는 기도응답 체험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산 증인이다. 소중한 재봉틀을 도둑맞았는데 기도로 찾았다든가, 오직 기도로 분열되어 무너져가는 교회가 봉합되었다든가, 남편을 일찍 여의고 맨주먹으로 아이들을 키웠지만 훌륭하게 잘 키워냈다는 식의 이야기가 끝도 없다. 그렇게 따지면 딴 근심 없다며 슬쩍 꺼낸 얘기는 알고 보면 여러 근심 얘기이고, 결국의 근심은 기도제목이 되었고 그 기도제목은 모두 응답되었다는 그 흔한 은혜의 깔때기이다.

 

과연 그 내용이 팩트일까 아닐까를 가지고 괜한 트집을 잡아 엄마에게 싸움을 걸어본 적도 있다. 하나님께 마음이 삐뚤어지면 괜히 엄마의 찬송을 신파조라 홀대하며 귀를 막기도 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 찬송보다 기도의 본질을 더 잘 담을 수 있을까 싶다. 표정에, 눈빛에 가득한 근심을 알아봐주는 이에게 속 시원히 털어 놓고 싶은 마음의 고통. 그것을 쏟아놓는 장소와 대상이 십자가 그늘 밑이 되는 것이다. 산 같이 버티고 있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믿쓉니다, 포인트쌓는 것만이 기도가 아닐 것이다. 두려움과 가난함, 무기력의 한숨. 보따리 안에 꾸겨 넣은 것들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진실한 기도의 시작이다. 진솔한 고백을 어떻게 시작하지, 무슨 말로 시작하지 하다 적당히 예의를 차리며 에둘러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주님, 제가 당신 안에 있는데 뭐 딴 근심이 있겠습니까그 말 너머에 담긴 두려움과 무수한 딴 근심을 이미 보아주시는 분이 금방 나를 무장해제 시키실 것이다. “실은 두렵고 한숨만 나는 저의 궁핍함이 부끄럽고 화가 나요.” 그러면 그분과의 진짜 만남이 시작되고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간증이 하나둘 쌓여갈 것이다. 내 어머니의 믿기지 않는 기도의 여정처럼.

 

 




부산에 강의가 있어서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일타쌍피의 효율을 좋아하는데다, 늘 재미와 신나는 걸 꿈꾸는 닝겐으로서 여러 가지를 엮었다. 일단 홀로여행을 꿈꾸는 채윤이를 여행에 끼웠다. 혼자 여행 가고 싶다는데 미성년자 딸을 혼자 보낼 수는 없는 터에 이거다! 오가는 기차만 같이 타고 나머시 시간을 혼자 보내도록 했다. 덕분에 나도 저녁에 강의를 마치고 강사 숙소에서 혼자 하룻밤 보내고 부산 하루 여행을 즐겼다. 해운대로 내려간 망원동 우리 맘을 만나기로 했다. 광안리 어느 카페에서 만나기로 해서 일찍 가 앉았는데 수 년 전 가족여행이 떠올랐다.


2011년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해였다. 여러 일을 겪고, 무엇보다 6월에 아버님을 천국에 보내드리고 중대결심을 했다. 늘 막내 아들 먹고 살 걱정을 하시던 아버님 편히 보내 드렸으니 할 수 있었던 결정이었다. 늦은 여름 휴가를 부산으로 갔다. 그해 1월 아버님의 마지막 여행이 부산었고, 숙소가 광안리였다. 그 여행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저 할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으로, 할아버지가 묵으셨던 그 숙소에서 일박하고 싶어서 그리 결정한 것이다. 


2018년 1월 17일. 혼자 광안리 카페에 앉아 있자니 격세지감이 밀려오던 차. 카톡에 사진이 하나 들어왔다. 혼자 국제시장 근처에 있던 채윤이의 점심 메뉴가 띡 올라왔는데 '돼지국밥'이다. 2011년 그냥 어렸던 채윤이가 혼자 돼지국밥 먹는 청년이 다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현승이도 1월 한 달 집을 떠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네 식구가 각자 다른 공간에 흩어져 밤을 보낸 것이 처음이다. 블로그의 옛날 글을 들췄다. 아, 열심히 써댄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7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이 흘러가고 있다.



부모, 폭탄선언을 하다_2011년 휴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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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에 이우교회에서 사경회가 있습니다.

강사는 고신대원의 박영돈 교수님이십니다.

남편이 존경하는 은사님이시고요.

그야말로 따뜻한 통찰, 예리한 공감으로 저술, 설교, 페북 글이 모든 인기 최고이지요.

어제 남편이 박영돈 교수님 뵙고 왔는데

밤늦게 이런저런 신대원 시절 얘길 하다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었고요.

분당 근처에 계신 박영돈 교수님 팬들께서는 오셔서 들으셔도 좋겠습니다.

 

13일 토요일 오후 7시 / 14일 주일 오전 11시 / 오후 1시30분


[박영돈 교수님, 과 남편, 과 나]

결혼하고 7년 째 되는 해에 남편은 신대원에 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던 꿈이라지만 ‘내적 소명’은 확실하나 그것으로만 선택할 일이 아니었기에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보려던 차, 사랑하는 사람이 목사의 아내 되기 원치 않으니 이 또한 좋은 싸인이라 여겨 결혼을 위해 장신대 도서관에서 입시 준비하던 책 싸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결혼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대학원도 하나 하고 7년의 시간을 보냈다. 숨소리만 들어도 그의 행복과 불행을 알아차리게 된 즈음,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를 신대원 기숙사로 떠나 보냈다. 대신 그가 당연하게 그렸던 광나루역의 장신대원(장로교신학대학원)이 아니라 천안의 고신(고려신학대학원)이었다. 나의 바람이었다. 당시 함께 다니던 교회가 고신교단이었고 나는 단지 남편의 진로 변경으로 인한 변화의 폭이 작기를 바랬다. 신학적 폭이야 남편의 연륜으로 충분히 품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무슨 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성 안수’ 문제를 놓고 남편은 그야말로 1:17로 싸우는 막다른 골목에 선 적이 있다. 여성 안수 불가를 주장하던 분들이 당시 싸이 클럽에서 쓴 표현들을 나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여성 목사를 꿈도 꿔본 적이 없지만 그때 본 글들로 인한 상처는 쉬 아물것 같지 않다. 나이도 많고 웬만큼 인격도 되던 남편은 동기들의 신뢰도 얻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만큼은 외톨이가 되었다. 형 그럴 거면 장신대로 가시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날에는 내가 나를 얼마나 미워 했는지 모른다. 늦게 신대원 가는 것이 무슨 대역죄처럼 내 말을 넙죽 수용해준 남편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외롭고 슬픈 남편의 표정을 보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감정에 빠지지 않고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다. 어떤 경우에도 사모의 역할을 강요하진 않겠으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내게 있단 걸 미안해 했고 두 아이의 아빠로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가족을 두고 온 신대원에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안할수록, 슬플수록, 외로울수록 공부에 매달렸다. 그 시절 남편을 붙든 영적인 스승님이 박영돈 교수님이시다. 강의는 물론 그분의 삶과 일상의 고뇌를 통한 가르침이 그 보수적이고 경직된 신대원 생활에서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박 교수님의 연구조교를 하면서 교수님의 책 출간을 돕기 위해 혼자 이리저리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 모른다. 교수님의 첫 책 <성령충만 실패한 자들을 위한 은혜>에는 남편의 남모르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나 역시 남편으로 인해, 또는 그저 한 독자이며 페북 팔로우어로서 박 교수님을 존경한다. (존경하다 실망한 지도자들로 인한 상처로 다시는 유명하신 분께 쓰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박영돈 교수님은 여전히 존경한다. 그분의 책이나 페북 글이 아니라 아주 작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알기에 그렇다.) 이번 주말에 박영돈 교수님께서 우리 교회 사경회 강사로 오신다. 이런 기나긴 이야기를 떠올릴 때 감회가 남다르다. 교수님은 잘 모르실 것이다. 늦게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흔들리고 고독한 제자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신지, 그 목회자의 아내에게 얼마나 감사한 존재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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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뭔지 한 번 맞혀봐, 라고 질풍노도 시인이 쓰고 던져 줍니다.

여러분도 한 번 맞혀 보세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나약하고 졸렬하다. 먼 옛날부터 그랬다. 사람은 나약하기에 '이것'에 의존하려고 했고, 사람은 졸렬하고 간사하기에 '이것'이용해 또 다른 사람을 속이고 그 사람까지 간사하게 물들게 했다. '이것'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많은 사람이 '이것'에 의존하면 할수록 '이것'의 힘은 커져만 가고 대단해졌다. 인간은 '이것'으로 인해 삶의 안식을 얻고 죽음의 공포를 줄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수두룩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이것'이 있어서 존재할 수 있었다. 이것과 아무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단지 이것을 죽음 그 너머에 있는 아무도 모를 공포감을 줄이기 위해 '이것'을 안식처로 쓴다. 단지 사는 동안 조금 더 그들 자신이 편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에 너무 의존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거나 '이것'을 이용해서 수많은 죄를 짓는다. 나 역시 '이것'과 피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이 정말 의심스럽고 '이것'으로 인해서 너무나 많은 의문이 생긴다.​


정답은..........





















10개 정도의 정답 댓글이 달리면 공개하려 했으나, 

그러다 정답을 알리고 싶어 제가 혼자 날뛸 것 같아 지금 바로 알려드립니다.

'이것' '신'이라는군요.

쟤 목사의 아들입니다.

목사의 아들이라서 더 회의적일 수도 있겠군요.

목사인 아빠가 '아들이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에 가깝다'고 진단하지만 큰 걱정은 안 하는군요.

저도 큰 걱정은 안 하지만 작은 걱정은 합니다.

신에 대해 의심하고 의문을 품는 아들 때문이 아니라, 

혹여 신의 가면을 쓰고 나를 정당화 하며, 신을 등에 업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거나,

나약한 나를 지키는 '힘'의 하나로 신을 이용하는 졸렬한 사람이 바로 시인의 엄마일까 싶어서요.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를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송구영신 예배 설교 중에 인용된 시이다. '이삭의 우물'이란 교회 이름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는 대목이었다. 여러 번 파고 빼앗긴 이삭의 우물 중 하나의 이름이 '르호봇'이다. '숨 쉴 공간'으로 교회라고 한다. 비록 빼앗김의 상처로 시작된 교회이지만 빼앗긴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의 지경을 넓혀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는 것이다. 목자의 옷을 입은 종교인에게 상처 받은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시대, 앞선 경험자로 서서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고 한다. 


헨리 나우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상처 입은 치유자. 상처 받은 사람은 흔히 가시옷을 입은 사람으로 비유된다. 다시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 지레 자기방어의 옷을 입는다. 십자가를 통과한 고통은 더는 가시가 될 수 없다. 치유의 인자가 된다. 예수님처럼, 헨리 나우웬처럼.


<영적 발돋움>에서 헨리 나우웬은 관계 안에서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적대감에서 환대'로의 변화라고 했다. 나를 만족시키고,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존재로 타자를 바라볼 때는 적대감과 냉대이다. 영적으로 깨어난 자의 관계는 '환대'이다. 의심과 적대감에서 '환대'로 극단적 입장 전환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게 온 단 한 사람이 실로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라는 것.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보이는 것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려는 것이 '환대'라고 시인의 입을 빌어 설교가 말했다.


2017년 마지막 날에는 [커피&메시지]라는 이름으로 메시지 성경 읽기를 함께 했던 청년들이 집에 왔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내 앞에 온 것이다. 2017년은 어마어마한 인생을 끌고 새롭게 내 앞에 선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상징 아닌 실제 한 사람이 2017년 마지막 주일에 자기의 인생을 끌고 내게 왔다. 내 글을 읽고, 내 영상을 보고 내 교회를 찾아왔다. 나를 찾아 나의 공간으로 왔다. 그냥 나를 믿어줌으로, 찾아왔다. 이것에 내게는 더 없는 위로이며 환대였다. 그리고 그와 마주하여 그가 끌고온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토닥토닥 하는 것이 동시에 나를 토닥이는 것이 된다.


헨리 나우웬을 읽으면서 늘 언감생심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또는 적대감 대신 환대하는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다만, 지향할 곳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내가 될 수 있다 생각하진 않는다. 가만 두면 나는 나의 빼앗긴 것에 몰두하여 자기연민의 속옷을 입고 가시 겉옷을 입은 채로 일상을 서성거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은 안다.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헤아리는 것, 그것이 환대라면 환대는 '생각'만으로 되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그와 얼굴을 맞대야 비로소 마음을 더듬을 눈을 얻게 된다. 커피 한 잔, 떡볶이 한 그릇이라도 놓고 마주 앉아 얼굴과 얼굴을 맞대야 한다. 


나는 빼앗긴 것이 많아서 모두 되찾기가지 수없는 날 눈물로 기도 해야겠지만

나는 가진 어둠이 많아서 모두 버리기까지 수없는 아쉬움 내 마음 아프겠지만


하덕규의 <푸른 애벌레의 꿈>의 가사 일부이다. 환대 받고자 함이 아니라 환대 하고자 하고, 누군가에게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 마음 먹고 보니 나의 처지는 저러하다. 빼앗긴 것에의 서러움, 이미 가진 어둠이 그득하다. 그럼에도 사랑과 생명의 숨은 이미 내게 부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 아쉬움과 어둠이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지금 여기서 가능함을 알고 있다. 한 사람, 어마어마한 것을 끌고 온 사람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을 헤아리려는 경외심으로 가다듬는 한 나는 자유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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