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한 달 현승이는 '유럽 인문학 여행'에 다녀왔습니다. 낯선 곳, 새로운 일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시작은 정말 우연. 페이스북에 청소년 인문학 여행 광고가 뜨기에 찬찬히 보니 좋아보였습니다. 그야말로 1도 기대하지 않고 옆에 있던 현승에게 보여주며"현승이도 이런 데 가면 좋겠다" 했더니"간다고 하면 보내줄 거야?" 의외의 대답! 일단 나꿔채서는 "보내줄게.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보내줄게. 지금 접수하면 할인도 해줘. 할까?" "어, 해!"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덜컥 결정할 수 있는 비용은 아니었지만 프로 낯가림러가 하겠다니 일단 기회를 잡았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중2가 되도록 사교육비 거의 들이지 않고 공짜로 키웠으니! 기꺼이 보내기로 남편과 마음을 맞췄습니다. 다녀와서 간단 소감을 남겼는데 본인 허락받아 블로그에 내놓습니다. 준비부터 다녀와서까지 엄마 아빠 속 뒤집어지고, 쓰리고 한 얘기가 여행기보다 열 배는 길겠으나 그건 꿀꺽 삼키기로 하고요.

 


처음에는 엄마의 권유였다. ‘아직 몇 달이나 남았고 지금 나는 행복하니까 뭐라는 심정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때도 불안함이 있었지만 유럽을 갈 거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그저 좋았다. 여행 가기 한 달 전부터 서서히 불안해졌다. 하지만 그때쯤 또 학교 시험이 끝나서 가든 말든 일단 놀자라는 생각으로 놀았다. 2주일 정도 남았을 때부터 하루하루 정말 후회하면서 지냈다. 특히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친구들이 방학 때 같이 놀 계획을 세우는 걸 들을 때는 더 후회가 심해졌다.

 

인천공항에서 우리 여행팀이 모였을 때 불안감이 짜증으로 바뀌고 엄마 아빠한테 짜증을 냈다. 근데 출국심사를 하고 비행기 타는 걸 기다릴 때는 공항 분위기가 주는 설렘이 더 커졌다. 정말 힘들게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도착하고 부산스러운 분위기 속에 숙소로 이동해 방배정을 받고 잠이 들었다. 여행의 시작은 이랬었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시작은 짜증과 후회만 가득했다


여행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딱 어느 시점 이후로 그저 그냥 친한 친구들과 형들, 누나들과 놀다 온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른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와' '보는 눈을 넓혀 와' 같은 이야기들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놀다가 온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저 노는 것 속에서 내 마음 속에 정말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여행 초반에 내가 정말 싫어하는 스타일의 몇몇 애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계속 연락을 할 정도로 친해졌다. 사람은 누군가를 내가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단점만 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 친구들은 내가 처음 봤을 때 너무 시끄럽고 말을 막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하는 행동들이 계속 눈에 밟히면서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군가 자기가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좋은 점 밖에 안 보인다. 정말 신기했다. 그 친구들과 친해지니까 깨네가 하는 말은 그저 웃기고 공감이 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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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권의 책을 함께 읽었고 이제 일곱 번째 책을 시작하는 작은 모임이 있다.

우연한 만남에 부드럽지만 강한 의지 한 스푼 넣어서 몇 사람을 모았다.

좀 웃기고 가끔 지나치게 진지한, 믿을만 한 언니가 설레발 하니 어어어, 하고 따라온 동생 몇이다.

함께 읽고 배우고, 나누고, 기도하고, 더불어 자라간다는 조금 막연한 목적으로 시작했다.

나이 먹어 뭔가를 같이 해보자는 뜻도 있었는데, 역시나 막연하고 모호했었지.

'영성모임'이라 불렀다.

그러나 꾸준히 만나고 꾸준히 읽었고, 이번에 끝낸 책은 무려 햇수로 3년을 끌었다.


그대가 따라가는 실이 있지

그 실은 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가지

그러나 실은 변화하지 않지

사람들은 그대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해하지

그내는 그 실에 관해 설명을 해야만 하지

그러나 다른 이들이 이해하기는 어렵지

그대가 그 실을 붙잡고 있는 한, 길을 잃을 수는 없지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지

그리고 그대는 고난을 겪으면서 늙어가지

무슨 짓을 해도 시간이 펼쳐지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

그대는 결코 그 실을 손에서 놓아버리지 않지


<세상의 이치> 윌리엄 스탠포드


<불멸의 다이아몬드> 마지막 챕터에 나오는 시인데 '그 실'은 '진짜 자기'(거짓자아 아닌)를 뜻한다고 하는데,

돌아보면 우리의 모임 또한 '그 실' 같았다.

변하는 일상을 속에서,

굳이 우리가 왜 모이지? 우리는 어떤 관게 무슨 모임이지?

설명하거나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어려운, 

고난 당하는 서로를 바라보고, 늙어가는 서로를 확인하면서 만났다.

끊어질 듯 말 듯, 가느다란 실 같으나 결코 놓지는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누군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같이 책을 읽자고 했다.

청년 시절, 결혼을 하고 싶은데 마음 같이 않았던 교회 친구들 모아 책을 읽자 했고.

남편과 사귀기자마자 함께 책을 읽었고,

결혼 후 신혼부부 모임을 만들어 주일마다 책나눔을 하고.

(아기들 기어다니고 똥기저귀 굴러다니는 신혼집 거실 돌아다니며 치열하게도 모였다.)

마음에 딱 맞는 한 커플과 넷이서 진하게 읽고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가정교회 선배 부부들을 졸라 부부 책모임을 하기도 하고,

아끼는 제자 한 둘을 붙들고 읽기 만남을 갖기도,

아이 키우며 돌아버릴 것 같은 처지의 동병상련 엄마들 모여 육아 책을 읽기도.

젊은 사모님들을 불러 모아 함께 한 시간도 있다.


[스승이신 예수가 우리를 부른 곳은 공동체이다!]

젋은 날 배운 이 한 문장에 꽂혀 공동체를 일구고 가꾸는 것에 조용히 목숨을 걸고 살아온 시간이다. 

남편과의 공동체가 모든 공동체의 질을 결정하는 바로미터였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 섬긴 가정교회와 청년 목자모임은 어떤 결정체였다.

매주 10인 분이 넘는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먹고, 밤늦도록 하하호호 엉엉엉엉 웃고 울었던.


이 모든 (책)모임이 각각 소중하고 고유의 의미를 지녔지만,

어쩌면 이 '영성모임'을 향한 머나먼 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지나온 작은 공동체 경험에 대한 보상 또는 배움의 열매로서의 만남일지 모른다.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관계에 지쳐 있는 내게 줄 것도 받을 것도 있는 만남이었달까. 

이 실낱처럼 이어온 모임은 나를 지탱하고, 나를 비춰보게 하는 안전한 공동체이다. 

그간 만들고 이끌어 왔던 어떤 책모임보다 덜 힘이 들었다.

아니 갈수록 힘 들이지 않고 모임을 유지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하자.


자발성과 정직성.

좋은 공동체가 가진 특징을 나는 이 두 가지로 정리하겠다.

이 두 원칙에만 부합하자는 마음으로 영성모임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아니 영성모임이 가르쳐준 것이 이 두 가지 원칙이다.

자발적이고 투명하기 위해서 두려움을 떨쳐내는 일 또한 영성모임을 통해 배운 것 같다.

여섯 권의 책을 함께 통과해왔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하다.

주먹 불끈 쥐고 지켜내고자 하지 않았지만 미미하게 이어지더니 쌓인 열매가 저러하다.


끊어지지 않고 여기 '영성모임'까지 이어온 그 실은

오래 전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책모임, 그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결코 그 실을 손에서 놓아버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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