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느릿느릿 하루 스케쥴 짜는 중 띵똥띵똥 전화가 왔다. 

갑자기 생긴 점심 약속으로, 일사천리 스케쥴이 정해졌다.

정겨운 식사와 커피타임까지 마치고 자동차 바퀴 굴러가는대로 드라이브를 한다.

중미산, 채윤이 가졌을 때 휴양림 놀러갔다 야호 대신, "푸으르으마아!!!" 고래고래 외쳤던 곳.

양수리, 문 닫기 직전 클라라 커피에 들러 커피를 샀다.





퇴촌을 거쳐 광주로 돌아 집으로 가자, 가자, 가자 하다 습지 공원을 하나 만나 들어갔다.

우연히 찾아들어간 공원에서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만나고 찰칵찰칵 사진도 많이 찍었다.

생태습지 걷자니 매일 걷는 율동공원이 인위적이라고 느껴진다.

지는 해와 푸른 숲, 새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종합선물인데!!!!





그가 배경이 되고 내가 찍는 셀카에서도 그는 나를 봐야 한다. 나만 봐야 한다.

여보, 이거 좀 한 번 읽어봐바. 여보, 이거 같이 하자.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는 나만 받기. 




그가 찍는 셀카에서 나는 길가의 꽃과 나무처럼 있으면 된다.

자기를 보라 하지도, 자신에게 맞추라 하지도 않는다.

금계국 한 송이에 내려앉은 열일하는 벌과 노는 것으로,

내 하고픈 일을 하고 나 자신이 되는 것으로 족하다 하니. 그의 인생 배경되는 것, 쉽고 가볍지 아니한가.




점심에 만난 선배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솔직히 보수적이야. 나는 연상연하 커플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남자가 나이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너희 커플을 유일하게 괜찮아. 내가 봤을 때 너희는 괜찮아.

사실 너희 결혼할 때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 딱 하나 나이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런데 지켜보니까 너희는 괜찮아.

내가 보수적인 사람이라 생각이 바뀐 건 아냐.

우리 딸들 연하를 데려온다면 반대는 할 수 없지만 환영은 안 해. 그래도 너희 커플 만큼은 괜찮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자꾸 들으면 괜찮다는 바로 그것도 괜찮아지고

존재까지 괜찮아지는 느낌이 든다. 

천상병 시인의 산문집 제목처럼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괜찮다는 말의 치유성은 지금으로 족하다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지금과 다른 어떤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압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충분하고, 당신으로 충분하다는.




이십 여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이 몽글몽글,

아팠던 과거를 떠올리며 목에 핏대가 섰다가,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 싶어 뭉클하다.





여보, 내가 시 하나 읽어줄게.

싫어.

나도 싫어. 읽어줄 거야.

석양 옆에 끼고 돌아오는 길에 읽었다.




못 들어선 길은 없다_ 박노해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 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 속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캄캄한 어둠만큼 밝아오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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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색이 분명해,

이런 말을 가만히 보면 '자아'와 '색'을 잇는 보편적인 상징이 있다.

어떤 색이 됐든 제 색을 가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여기에도 끼고 저기에도 속하며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회색분자'라 한다.

때로 철저하게 회색분자가 되어야 하지만, (의식적으로 선택하여 되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좋은 사람 이미지 심어주기 위해 여기에도 맞추고 저기에도 흥흥 하는 회색 옷은 좀 아닌 것 같다.


사춘기의 옷은 검정이다.

다섯 살 때쯤 채윤이와 "채윤아, 핑크 말고 얼마나 예쁜 색이 많은 줄 알아?"하며 싸웠던 적이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만 고집하여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그랬던 아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만 고집하는 시절이 왔으니 사춘기였다.

그 또한 미칠 지경이었으나 마음을 다잡아 먹은 탓인지 핑크만큼 열이 받진 않았다.


현승이 역시 암흑의 사춘기에 진입했다.

대부분 옷이 흰색 면티를 바탕으로 한 검정 또는 회색 같은 것들.

두 번째 암흑기를 접한 엄마는 놀랍지도 않고, 열받지도 않고, 자포자기와 무기력으로 응대.

나긋나긋한 감성으로 엄마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워주던 녀석이라

가끔 오는 쎄~한 상실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럭저럭 흑암의 기운을 잘 버텨내고 있다.


벌써 중 3이고, 졸업 앨범 사진을 찍는단다.

변변한 옷이 없어서 채윤이까지 대동하고 옷을 사러 갔다.

여기서나 하는 말이지만, 옷 하나 모자 하나 사는데도 아주 그냥 지랄맞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암튼, 엄마 감각보단 누나 감각이 나을 듯하여 채윤이까지 데리고 가서 산 옷이

민트색 후드티이다.

엄마도 누나도 아닌, 제가 딱 고른 것이다.


집에 와선 너무 튀면 어쩌지, 그냥 검정을 살 걸 그랬지,

하더니 사진 잘 찍고 왔다.  친구들이 예쁘다 했다며.

"엄마, 그런데 사춘기에는 왜 그리 복잡한 거야? 나는 내향형인데 사람들이 나를 특별하게 봐줬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나를 주목하면 싫고. 튀고 싶지는 않지만 또 뭔가 멋지고 싶고...... 왜 이리 복잡하지?"

(얌마, 사춘기 아니라도 다 그래. 인간이 원래 복잡해!)


색깔 있는 옷을 입는다는 것은 분명 변화인데, 사춘기 복잡한 다크 포스로부터 빠져 나오고 있단 뜻인가?

아이에서 성인으로 가는 통과의례를 끝내고 조금 차분하게 자기 색을 찾아가겠지.

토요일, 혼자 등산을 하고 집에 가는 길 장을 봤는데 집에 다 와 힘이 빠졌다.

집에 있는 현승에게 전화 하여 '진짜 진짜 미안한데........'하며 초저자세로 굽신굽신.

나와서 짐을 좀 들어달라 했더니 투덜투덜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어째 짐 들어주는 폼새가 좀 나긋나긋해진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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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 한 노래 있어 18

 



기도제목이란 이름으로 일상의 아픔을 나누는 일이 흔하다. 직장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 해도 안 해도 어려운 연애, 어려운 처지의 친구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지, 하다못해 계속 실패하는 다이어트 얘기까지. 누군가 내밀한 어려움을 내놓았을 때 하지 말아야할 것이 충고, 조언, 평가이다. 소그룹 모임에서 내 얘기 꺼냈다 다시는 여기서 나누나봐라!’ 결심한 적이 있다. 여러 번 있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그러려니 해, 친구를 돕다 네가 우울해지면 그건 돕는 게 아니야, 경계를 지켜야지, 하나님이 다 좋은 사람 예비하셨을 거야, 일단 살을 빼, 저녁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마. 이래라 저래라, 일해라 절해라......” 교회만큼 사랑과 배려라는 이름으로 간섭과 판단이 흔한 곳도 드물 것이다. 답을 몰라서 힘든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연애나 친밀한 관계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갈등이다. 여친(또는 남친)이 침을 튀기며 쏟아놓은 말끝에 그러면 처음부터 하기 싫다고 말을 했어야지. 뒤에 와서 이러지 말고 처음부터 거절해야 하는 거야.” “, 내가 앞에서 딱 거절할 수 있으면 뒤에 와서 이러겠니?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그저 공감해달라고!”

 

우리는 그저 받아들여지고 싶다. 어떤 말과 행동에도 판단 받지 않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 관계적 존재인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바이다. 그런 안전한 곳이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한가 말이다. 문제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심리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하는 말은 어설픈 충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안타까워서 그래. 이런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려는 거야.” 단지 도우려는 뜻, 사랑의 발로라는 것이다. “너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딱 이런 마음을 주시더라.” 사랑의 발로에다 기도의 권위까지 더해진 충고와 조언은 가히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정작 입장이 바뀌어 자기가 나눈 고통에 충고 어택이 들어오면 어떨까? ‘내가 몰라서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우면 기도제목으로 내놓겠어? 제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안다고 함부로 이래라 저래야야. 차라리 입을 다물자.’ 결국 이해받지 못했다는 느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저 받아들여지고 싶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어렵게 꺼내놓은 기도제목에 그저 손잡아 주고 조용히 같이 기도해주면 안 돼?’ 그저 들어주고, 생색내지 않고 기도해주는 사람 찾기 어렵다. 충고와 판단이 난무하는 위험한 인간관계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다. 찬송 214장의 1절이다. 참된 도움이신 예수님께 간다. 내 모습 이대로 다 받아주실 것 같은 예수님께...... 라 하기엔 어쩐지 자신이 없다. 생각해보니 예수님도 뭐라 하실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이기적이고 쎈 면도 있고 신앙도 예전보다 못하다. 꼭 직장상사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예수님 믿는 내가 더 큰 마음으로 이해하고 사랑했어야 하는데 좁은 내 마음이 문제인 것 같다. 안 되겠네, 내 모습 이대로 예수님께 가져가면 안 되겠다. 일단 주일성수를 다시 확실하게 회복하고, 부장을 사랑하는 마음 장착한 후에, 술 담배 끊고 예수님께 가야겠다. 아직은 일러, 아직은 아니다. 내 모습 이대로 예수님께 가져가지 않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 말이 다 맞다. 스트레스 받는 것도 내 성격 탓이고, 친구를 도우려면 끝까지 도와야 하는데 힘들다고 그만 내려놓으려는 건 내 이기심이지. 여기서 몇 킬로는 더 빼야 소개팅도 나가고 연애도 할 수 있지, 늘 다이어트 실패하면서 연애는 무슨! 이런 나를 누가 좋아하겠어.

 

실은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는 못하는 것은 소그룹 멤버도, 친구도, 예수님도 아닌 나 자신이다. 사람들의 충고와 비판이 내 안에 크게 울리는 것은 마주쳐야 소리 나는 손뼉과도 같다. 내 마음 안에 항시 대기 중인 자기비판의 손바닥이여. 스스로를 때리는 비난의 손바닥이 밖에서 들어온 충고의 손바닥과 만나 짝! 하고 큰 소리를 낸다. 사랑의 주님께 이미 받아들여졌다고 선언된 내가 여전히 거절감의 늪을 헤매는 이유이다.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렸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아주소서

 

죄로 만신창이 되어 돌아오는 탕자가 이 찬송을 부른다면 어떨까. 제가 아버지라도 자기 같은 인간 받아주지 않을 것이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굶어죽지 않고 사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전히 받아들여진 탕자는 깨달았을 것이다. 받아들여짐의 기준은 아버지께 있구나! 내 모습 이대로 받아들여지기 원하는 우리에게도 탕자 체험이 필요하다. 언젠가 형편이 나아지면 아버지께 가겠노라, 가 아니다. 바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라도 돌아가기만 하면 받아주시는 분께 가야겠다고 벌떡 일어날 일이다. 그럴 때 나 스스로 괜찮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며, 나 먼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눈을 얻게 될 것이다. 문제는 돌아섬이었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



'미친년' 꿈을 꾸었다. 꿈일기를 '미친년의 신발'이라 제목을 붙였다. 무슨 꿈일까? 숙고하던 중에 '글쓰기 자조모임'을 준비하며 읽은 책에서 에서 본 '미친년 글쓰기'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416일 주간 주일 설교 내용도 함께 떠올랐다. 거라사 광인을 치유하며 2천 마리 돼지떼를 몰살시킨 불가해한 이야기이다. 자주 읽어도 뜻은 모르겠었던 본문이 선명하게이해되었다. 잔혹한 제국주의의 군화발에 희생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해다 제국주의에 기생해서 부를 늘려간 사람들에 의해 거부당하신 예수님 이야기이다. 마을 공동체적 치유와 회복사건이며, 동시에 불행하고 암울한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선언한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이기에 스페인의 게르니카, 제주의 4.3, 0416 세월호와 맞닿는 이야기이다. 원통함과 억울함 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광인을 위한 이야기이다.

 

어렵사리 허락 받아 설교 원고 전문을 나눈다.

 

 

'거라사 광인' (5:1-15) _ 2015415일 이우교회 주일 설교

 

1937, 파블로 피카소는 <게르니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습니다.(스크린으로 게르니카를 띄움) 이 그림은 1937426, 나치 독일의 공군 콘돌 군단이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 공격한 사건의 참상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게르니카 주민들은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독일이 지지하는 프랑코 군에 반대했고, 나치는 보복 폭격을 가했습니다. 그 결과 마을의 70%가 초토화되었고, 주민 1,600여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건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스페인 태생의 화가 피카소는 이 비보를 듣고 한 달 반 만에 그림을 완성합니다. 게르니카의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림을 보면 전쟁의 참상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배경과 결과를 자료를 통해 본 후 그림을 보면 <게르니카>가 얼마나 끔찍한 사건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5장은 어떤 면에서 게르니카와 비슷합니다. 언 듯 보면 조금 기괴한 사건처럼 읽히지만, 그 배경을 알고 보면 이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참상을 담은 이야기인지 알게 됩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귀신 들린 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고쳐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았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일까요? 그렇게만 읽고 넘어가기에는 의문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으신 이야기가 여럿 등장합니다. 그런데 유독 이 이야기에서만 예수님께서 이름을 묻습니다. 그리고 귀신은 자신의 이름이 군대라고 말합니다. 이름을 묻는 것도 특이하고, 귀신의 이름이 군대라는 것도 심상치 않습니다. 혹시 이 사람은 전직 군인이었을까요?

또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이 군대 귀신은 예수님께 청을 한 후 무려 2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곧장 갈릴리 바다로 돌격하여 수장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원래 돼는 떼를 지어 사는 동물이 아니데, 어떻게 2천 마리를 사육했을까요? , 그리고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 취급을 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이야기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우리가 다 착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우리는 돼지 주인의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안타깝습니다. 돼지 치는 자들이 마을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예수님에게 그곳을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왠지 우리는 그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저간의 사정은 모른 체 하시는 것일까요? 스스로에게 좀 불리한 이야기를 왜 기록해 두셨을까요?

이 이야기에 관한 질문은 잠시 두고, 또 다른 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대인 출신 역사가 요세푸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유대전쟁사>라는 역사책을 남겼습니다. 그의 책에는 오늘의 본문을 해석하는 데에 도움을 줄 기록 하나가 남겨 있습니다. 이 책은 예수님 사후 약 36년이 지난 AD. 66년부터 있었던 로마와 유대인 간의 전쟁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대의 모든 도시가 파괴됩니다. 이 책에서 여러 유대 전쟁에 관한 일화 중, ‘거라사 지방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로마 장군) 베스파시안은 기병대와 많은 보병과 함께 루키우스 안니우스를 거라사 지방에 보냈다. 안니우스는 마을을 공습한 후에 미처 피하지 못한 천여 명의 청년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가족들을 포로로 잡고 또한 군사들로 하여금 재물을 약탈케 했다. 마침내 그는 주거지를 불사르고 주변 마을로 행군해 나갔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도망갔지만, 노약자들은 비명에 갔으며 모든 것이 불길에 휩싸여 사라졌다. 이렇게 전쟁은 산과 들로 퍼져나갔다.

현대 사회 뿐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도 전쟁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라사는 전쟁의 참극을 경험한 지역이었습니다. 로마 군사들은 칼과 창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집을 불태웠으며 사람들을 노예로 끌고 갔습니다. 바로 그 거라사는 그때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수차례 로마 군사들에 의해, 또 다른 군병들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힌 비극의 지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갈릴리 북쪽에 위치한 시리아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의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엊그제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는 시리아를 폭격했고, 그 이전 시리아에서는 IS세력과 정부군 간에, 여타 수많은 세력들 간에, 죽고 죽이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아무 죄 없는 민간인들이, 여인과 노인과 아이들이 지금도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북부 시리아에는 1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제국 제10군단입니다. 하나의 군단은 6천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은 종종 남쪽 갈릴리아 거라사 지역으로 군사를 보내 원주민들을 위협하고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로마 제10군단이 가지고 다니는 군단기에는 10군단을 상징하는 동물이 그려져 있었으니, 그 동물이 바로 돼지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다시 보십시오.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예수님께서 그 귀신에게 이름을 묻자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말 군대로 번역된 헬라어는 레기온’(Legion,λεγεών)입니다. 레기온은 바로 로마 군단을 지칭하는 군사용어입니다. 당시 거라사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 로마제국의 군사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지역 정치인이나 세관, 또는 창녀나 로마를 숭상하며 재산을 지킨 지역 토호세력들이었을 것입니다. 보통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로마군사는 적이었습니다. 아니 그들에게 있어서 로마는 인간의 탈을 쓴 사탄이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자신들의 자유를 빼앗고, 자신들의 삶의 향유권을 짓밟고, 자신들의 영혼을 노예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군대즉 레기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불쌍한 귀신 들린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로마 군인에 의해 가족을 빼앗긴 사람입니다. 재산을 빼앗겼고, 고향을 빼앗겼고, 친구와 추억과 삶의 모든 것, 심지어 영혼까지 빼앗긴 사람 아니었을까요? 그는 어쩌면 로마 군인에 의해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남자가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차라리 제정신을 잃고 온 동네방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이 사는 길이었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자기가 죽었어야 했는데 하면서 돌로 제 몸을 치지 않고서는 잠 못 들지 않았을까요? 무덤에 묻힌 가족들 옆을 배회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일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를 키우는 사람들은 또한 누구겠습니까? 그들은 필경 돼지를 키워 얻은 소득으로 로마 군단의 군수물자를 조공하면서 재산을 불린 사람들 아닐까요? 혹시 로마에 반역하는 사람들을 색출하면서 삶을 부지한 사람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군대 귀신이 이천이나 되는 돼지 떼로 들어가 갈릴리 바다로 돌격하여 수장당하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단지 한 이방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준 개인적 사건일 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적 치유와 회복사건이며, 동시에 불행하고 암울한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선언한 정치적인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겠습니까? 사람을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고, 인간적 삶을 말살하는 제국은 필경 예수님께서 선포하고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와 맞설 수 없음을 선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로마에 편들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내쫓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지난 43일은 일명 <제주 4.3사건>70주기였습니다. <제주 4.3사건>은 사회주의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미군정과 당시 이승만정권이 벌인 제주도민에 대한 만행이었습니다. 1948, 당시 제주도 도민이 30만 명이었는데, 좌익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명목으로 경찰과 군대가 동원되어 무려 3 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노인, 여성, 어린이들조차 무차별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는 6.25 전쟁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이고,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자,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66개월 간 진행된 이 토벌 작전 중에 육체적 고통을 당한 자,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자,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으로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가진 자,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자살한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제주도민들은 이 사건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제주 4.3 사건이 본격적인 학살 사건으로 번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 오라리방화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오라리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고은 시인이 썼습니다.

제주도 토벌대원 셋이 한동안 심심했다

담배꽁초를 던졌다

침 뱉었다

오라리 마을

잡힌 노인 임차순 옹을 불러냈다 영감 나와

손자 임경표를 불러냈다 너 나와

할아버지 따귀 갈겨봐

손자는 불응했다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경표야 날 때려라 어서 때려라

손자가 할아버지 따귀를 때렸다

세게 때려 이새끼야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세게 때렸다

영감 손자 때려봐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때렸다

영감이 주먹질 발길질을 당했다

이놈의 빨갱이 노인아

쎄게 쳐

세게 쳤다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와 손자

울면서

서로 따귀를 쳤다

빨갱이 할아버지가

빨갱이 손자를 치고

빨갱이 손자가

빨갱이 할아버지를 쳤다

이게 바로 빨갱이의 놀이다 봐라

그 뒤 총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임차순과

손자 임경표

더 이상

서로 따귀를 때릴 수 없었다.

총소리 뒤

제주도 가마귀들 어디로 갔는지 통 모르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제주 4.3사건>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제주 도민 3만 명이 죽을 때 기독교인이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영락교회 청년들 일부가 가입한 서북청년회는 제주도로 건너와 좌익은 사탄의 세력이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을 끌어다가 발로 밟아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불 질러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항복한 제주도민들과 사회주의자를 변별하는 일에 제주도 목사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사람들 죽어가는 일에 기독교인들이 참여했고, 그 결과 제주도에는 전국 다른 지역에 비해 기독교인 수가 현저히 적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잔혹한 제국주의의 군화발에 희생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제국주의에 기생해서 부를 늘려간 사람들에 의해 거부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가 예수의 편에 서지 않고 제국의 편에 선 것이 과연 옳은 일이겠습니까?

비단 <제주 4.3 사건>뿐이겠습니까? 지금도 불의하고 부당한 권력 구조 하에서, 불공평한 사회 질서 하에서 억울하게 몸을 빼앗기고, 가족을 빼앗기고, 자유를 빼앗기고, 영혼을 빼앗긴 채, 억울하고 원통해서 돌을 들어 제 몸을 치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역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보금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영세민들이 있습니다. 군사시설 때문에 정신적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조조정 때문에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동료와 가족들이 자살하고 엄청난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는 해직 가족들이 있습니다. 내일은 416일입니다. 아직도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불분명하고, 왜 구조를 한 명도 못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세월호 304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그간 여러 사람들에 의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며 삶을 부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바다 건너 또 다른 거라사인의 지역으로 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시려고 합니다. 누가, 그들의 영혼을 옭죄고 있는 쇠고랑을 풀어줄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폭압의 기억을 씻어줘야 합니까? 누가, 가난하고 버려진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에 의해 신천지 취급당하고, 교회를 선동하는 사람 취급당하고, 그래서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여러모로 돌보아야 할 시기에 책임을 다 하지 못하여, 황금 같은 시기에 정신적으로 소모된 아픈 경험을 가진 우리 이삭의우물공동체가 이 일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애지중지 키우는 돼지 몇 마리 잃을까 두려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쫓아내는 거라사인이 되어선 안 될 일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우리 시간을 내어 동참하십시다. 때론 물질로 동참하고, 마음으로 응원하십시다. 이 시대의 아픔을 가진 이들 곁에 서주어, 주님의 거라사 사역에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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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사는 게 따분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할까요?


<사랑의 기술>과 <소유냐 존재냐>의 에릭 프롬, 그의 미발간 원고를 묶은 책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입니다.

무기력을 되풀이하는 삶에 대한 진단은 명확합니다. 진짜 삶, 진짜 자기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생각도 느낌도 감정도 심지어 의지조차도 '남이 바라는 나'에 맞춰져 '진짜 나'로 살지 못합니다.


뉴스 하나에 기뻐하고 분노하는 것조차도 가장 적절하고, 인기 있는 감정을 선택하려는 나 자신을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진짜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브레넌 매닝 생각도 나는군요. 거짓자아를 인식하고 진짜 자기로 사는 사람에겐 영혼의 근본 에너지인 열정이 깨어난다지요. 그것은 절정의 황홀감(뽕 맞은 것처럼)이나 도취된 감정이나 마냥 낙관적인 인생관이 아닙니다. 진짜 자기로,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자기로 살아가려는 불굴의 의지랍니다. 그리고 그 의지는 ‘기꺼이 영향 입을 줄 아는 심장’이기도 합니다. 강인한 의지이며 동시에 말랑한 심장이라니!


다시 에릭 프롬의 말입니다. “태어날 준비는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다.” 라고 했고요. 이 용기와 더불어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기 위한 능력으로 ‘감탄할 수 있는 능력’을 꼽습니다. 역시나 혼자일 수 있는 용기와 감탄할 준비가 된 말랑한 마음. 내적 여정으로 이루고자 하는 덕이란 이것 말고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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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수 없었고,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일들이 나를 새로운 자리로 데려가곤 한다.


음악치료사라는 직함, 호칭 또는 정체성이 점점 흐려지고

작가와 강사의 옷이 평상복 같아지는 나날이다.


쓰고 읽은 것들이 자꾸 내가 새옷을 입히는 것이다.

글쓰기 자조모임을 이끌게 되었다.


이 쓰기 모임을 설명하는 언어로 '피해자(보다 생존자)', '치유(보다 성장)'를 쓰기가 불편하다.

아닌 게 아니라 첫모임에서 한 분이 말했다. 그 말은 불편하다고.


대상화 되기를 불편해 하는 감각을 가졌다는 것은 더는 그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수도 있다.

'자조모임'이 딱이지 싶다.


건강(health), 치유(Healing)라는 말의 어원이 ‘hal, hale’이라고 한다. 

이것은 whole, 즉 전체성과 온전함의 뜻한다.


치유는 비정상을 정상 만들거나, 아픈 사람 낫게 한다는 뜻보다는

온전성의 회복이라 이해하는 것이 좋다.


칼 융이나 카레 호나이는 자기 치유, 즉 온전성을 향한 의지와 힘이

모든 인간 안에 있다고 한다.


돌아보면 읽고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나다움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기울어진 사유의 틀과 신앙을 가지고 불편한 일상에서 균형을 찾고자함이었다.


커리큘럼을 짜기 위해 참고할 책을 한 권씩 빼서 노트북 옆에 쌓다보니 끝이 없다.

마치 '치유하는 글쓰기'를 위해서 읽고 써 온 인생이라는 듯.


자기치유, 또는 가장 나다운 나를 꽃피우기 위한 읽기 쓰기의 50평생이니,

글쓰기 자조모임을 이끄는 일은 또 하나의 필연인가.


새로운 만남, 새로운 일로 긴장과 설렘의 봄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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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인연이 있다.

명동성당을 언저리를 맴돌다  만난 성당 언니들이 있고,

성당 언니들을 가르치는 불자(佛子)이신 선생님도 계시다.

가장 소중한 것을 배우는 여정에 만난 분들이다.


신심 깊은 성당 언니가 암은 문턱에 섰다 깨달은 간증이 뜨거웠다.

지적인 욕구가 높은 이 언니는 개신교의 은퇴한 철학교수의 가르침에 빠져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 깊은 철학적 성찰, 그리고 명상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했다.

명상의 유익에 대해 또 열변을 토하셨다.


어, 그런데 명상이라고 하셨나?

내가 아는 어떤 가톨릭 신자보다 믿음이 뜨거운 분이고,

마음공부와 영성에 관해 모르는 것, 안 해본 것이 없는 분이다.

선생님, 명상이라고 하셨어요? 향심기도가 아니구요? 라고 했더니.

향심기도 열심히 했는데 모르던 것을 명상으로 배우니 알겠더란다.


담을 넘어 가 배우는 기쁨과 두려움, 신선함과 막막함을 안다.

평생 들어 귀에 딱지 앉은 얘기를 새로운 언어로 들을 때 무릎 치며 알아듣고

귀에 딱지로 남은 평생 배움의 진가를 그제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신비롭다.


80, 60대 선생님(이라 쓰고 언니라 읽는다)들 사이에서 막내 역할을 맡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밥 생각 없으시지만 막내 배고프다니 헤어지던 발걸음 돌려 저녁 먹어(라고 쓰고 '멕여'라고 읽음)주심,

야야, 나는 이해가 안된다, 는 아주 일상적인 말로 내 종교가 가진 편협함을 가차없이 찔러주심.

재능과 꿈 덮어두지 말라고 사업계획 짜주며 먹고 살 걱정까지 해주심.

담을 넘어 만난 분들과의 수다가 사랑 노래가 되어 가슴에 남았다. 


불금의 명동에서 연가를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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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과 자장면


동생네 휴가, [동생네 엄마 어린이집]이 불가피한 휴원이다. 자동으로 [누나네 엄마 어린이집] 잠시 문을 연다. 아기가 된 엄마가 집에 오셨다. 공교롭게도 우리 집 네 식구 모두 돌아가며 1박2일, 2박3일 집을 비우게 되었다. 따라서 엄마의 삼시세끼를 돌아가며 챙기게 되었다. 계속 드시던 반찬도 물릴 무렵 채윤이가 당번이 되었다. 밖에서 일을 보다 통화로 근무 지시를 한다. "잡채 드셔도 되고, 죽을 사다 드려도 되고, 사실 요즘 할머니 치킨이랑 자장면도 드셔. 여쭤봐, 뭐 드실지." "엄마, 할머니가 자장면 좋다고 하셨어." 라며 엄마가 자장면을 드셨다. 일 마치고 돌아오니 현관 앞에 깨끗하게 비운 자장면 그릇이 나와 있다. 엄마는 평생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는데, 이제 자장면을 드신다. 평생 나물 좋다고 하셨는데 공들여 삶아 무친 드룹나물에 입도 안 대신다. 어머니는 자장면과 치킨과 스파게티가 좋다고 하신다.


꽃게찜과 간장게장


한때 엄마는 내가 만든 꽃게찜에 꽂혔었다. 정확히 엄마 몸이 무너져서 병원 신세를 져야하는 시점부터 꽃게찜을 수시로 해다 날랐다. 엄마 인생에 꽃게찜이 등장한 것은 내가 결혼하고도 한참 후였다. 엄마 생신, 아버지 추도식의 특별 메뉴로 꽃게찜을 했었는데 당시 엄마는 그리 잘 드시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엄마가 나랑 같이 음식 준비를 분담 할 수 있었다. 손님 치를 용도의 요리였지 엄마는 꾳게찜이 싫다고 하셨다. 당신 손으로 더 이상 요리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요리는 커녕 스스로 밥도 차리기 어려워졌을 때 엄마는 꽃게찜이 좋다고 하셨다. "엄마, 뭐 드시고 싶어?" 하면 조금 미안해 하면서 꽃게찜을 주문하셨다. 비싼 꽃게, 그리고 만드느라 고생하는 딸 걱정은 갈수록 줄었다. 미안함보다 욕구가 먼저인 듯 대놓고 "나는 꽃게찜 해올 줄 알었댕 빈손이네."라고도 하셨다. 꽃게찜 지나가고 다음 메뉴는 간장게장. 지난 몇 년 내 손을 거쳐 엄마 뱃속으로 들어간 게가 몇 마리더냐!


김치국물과 잡채와 사골국물


요즘 엄마는 잡채에 꽂혀 있다. 엄마가 오신 다음 날 엄청난 양의 잡채를 했다. 큰 지퍼백에 한 가득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동생네 엄마 어린이집]으로 돌아가실 때 챙겨 보낼 요량으로. 명절이며 잔치가 있을 때마다 엄마가 메인 메뉴에 손대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엄마 반찬은 늘 깍뚜기 국물, 시어빠진 김치를 넣고 끓인 동태찌개 같은 것들이었다. 엄마는 모든 메인 요리가 싫다고 하셨다. 그랬던 엄마는 이제 김치도 물김치도 드시지 않는다.  잡채를 드신다. 소고기나 조금 드셨고 평생 돼지고기 닭고기 입에 대지 않으셨는데 세상에 치킨을 드신다. 청소년 시절 동생과 내가 후라이드 치킨을 좋아해 일인일닭 할 때도 엄마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냄새도 싫어했다. 요즘 밥은 꼭 사골국물에 말아 드신다. 그리고 떡갈비를 찾으신다. 아, 채식주의자 엄마가 육식주의자 되는 과정 지켜보기!  


자기애적 욕구 총량의 법칙


채식주의자 엄마가 육식주의자 되는 것, 이해할 수 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오직 자녀교육에 몰빵했던 엄마는 우리가 잘 먹는 모든 것을 싫어했다. 먹고 싶은데 애써 참은 것이 아니라 진정 싫어했다. 욕구가 엄마의 고상한 뜻에 복종하여 있어도 없는 듯 찌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일말의 미안함도 없이 간장게장, 잡채, 사골국물, 청포도를 주문하는 엄마가 낯설고 싫기도 하지만 좋기도 하다. 뒤늦게 발현되는 자기애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청각, 시각 등 엄마의 모든 감각이 하루가 다르게 둔화되고 있다. 이번엔 대화를 하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알아들으시는 정도였다. 입에 달고 사셨던 '고맙다, 복 받어라' 대신에 '내가 시(세) 살 먹은 애여'를 백 번 말씀하신다. 더욱 의존적인 삶, 무력감의 표현이다. 시 살 먹은 애기 엄마의 자기애적 욕구가 마지막까지 지금 정도의 유순함으로 표출되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해도 어쩔 수 없지만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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