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에 한 노래 있어 19

 


세상에 똑같이 생긴 얼굴이 없듯 사람마다 생각도 제각각이라는 것을 안다. 내 생각 있듯이 네 생각 또한 분명하고, 그 차이는 하나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의 신비라는 것도 안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내 주업이고, 고유한 자기다움 찾는 여정 안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더라. 머리로는 그렇게 다 아는데 차이는 늘 힘겹고 두렵더라. 내 생각과 다른 친구의 입장을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을 때가 있다. 그에 대해 논쟁을 하는데 거리가 좁혀지지 않을 때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마음 한 구석 휘~잉 찬바람이 일기도 한다. 셋이 친한데 나를 뺀 두 사람이 나만 모르는 것을 공유하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렇다. 숨기는 기술이 좋아서 당황한 마음 잘 들키진 않지만 역시나 휘~잉 마음을 쓸고 지나가는 찬바람 한 줄기는 어쩔 수 없다. 스치는 그 바람, 순간포착 하여 일시정지 버튼 누르고 확대해 들여다보면 이렇다.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관계가 끊어지고 외톨이가 될까 지레 겁먹음이다. 어렸을 적 왕따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관계 지향적 성향 때문일 수도 있겠다.

 

세상 친구들 나를 버려도 예수 늘 함께 동행함으로

주의 은혜가 충만하리니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이러하기에 찬송가 406장의 2절 가사에 자주 마음이 머문다. 거절당함 또는 버려짐,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단절에의 두려움 때문이다. 필자의 관계 집착이 과하다 느껴지시는가? 인간의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한 홈즈-라헤 척도라는 것이 있다. 가장 높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생의 위기는 100점으로 환산되는 사별이라고 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랭킹 5위까지의 공통점이다. 이혼, 별거, 수감, 가까운 사람의 죽음 등 관계의 끊어짐이다. 그렇다. 아무리 독립적인 듯 보이고 강하게 보여도 알고 보면 따스한 연길이 필요하다. 그것을 상실할 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함께 춤추시는 하나님을 본떠 창조된 존재이다. 어우러지고 연결되어 있을 때 인간답고, 본성에 부합하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 행복의 극단에 있는 불행감은 단절이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감정 중 하나가 끊어져 고립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교만과 불순종으로 에덴동산을 잃고, 존재의 근거인 하나님과 단절된 그때로부터 시작된 감정일 것이다. 그러니 이 두려움을 인정하고 나는 찬양한다. 조금 지질해보여도 살짝 과한 자위의 노래 같지만 당당하게 부르련다. ‘세상 친구들 나를 버려도 예수 늘 함께 동행함으로 주의 은혜가 충만하리니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그러고 보니 369죄짐 맡은 우리 구주도 있다. 3절이 이러하다.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에서 참된 위로 받겠네비슷한 내용이지만 이 곡의 예수님은 대놓고 좋은 친구라니 한결 더 편안하다.

 

관계에 연연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또는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 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같은 말씀이 주는 부담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할 것 같고, 누구와도 화평을 이루어야 예수님의 제자 인증 받을 것만 같다. 이러며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하고 초인적 자아상을 만들어낸다. 사랑스러운 그 사람에게도 한결같은 순도 100%의 사랑을 줄 수 없음을 안다. 하물며 밉상 그 친구까지,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니!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목표를 앞에서 나는 늘 죄책감에 허덕인다. 사랑이라곤 없는 죄인이다. 허튼 애를 써본다. 그러나 죄책감으론 온전한 사랑을 이룰 수 없다.

 

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리 예비한 힘을 주시며

위태할 때도 안보하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연약한 믿음,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마음자리, 늘 부족한 사랑이어도 괜찮겠다. 대체로 연약하고 흔들리며 아주 가끔 큰 믿음 보이는 나를 위해 이미 예비 된 힘이 있단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펄럭펄럭 하다 꺼져가는 위태위태한 믿음이라도 그분이 붙드는 손은 차원이 다르다. 유한한 우리를 붙드는 영원한 팔이다. 이 대목에선 405장의 또 다른 주의 팔이 떠오른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친절한 팔이다! 영원하며 동시에 친절하고 따스한 팔이다. ‘으이그, 도대체 언제 철이 들래? 언제 나를 닮아 완전한 사랑 장착하고 모든 이들과 더불어 화평할 거냐고, 네가 그렇듯 사랑이 없으니 친구들이 너를 멀리하지. 제발 좀 완벽한 사랑의 사람이 되거라!’ 다그치고 타박하며 팔 빠지도록 끌어당기는 우리 엄마의 손과 다르다. 근본적으로 다르다. 친절한 팔이다. 그 팔이 영원하다. , 주님 당신 그 팔, 팔 배게 삼아 쉬고 싶어요.

 

능치 못한 것 주께 없으니 나의 일생을 주께 맡기면

나의 모든 짐 대신 지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QTzine] 7월호




각종 주제로 각종 단체와 교회에 강의하러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새벽 6시 강의는 처음입니다. 5시10분 분당 출발, 5시 55분 쌍문동 도착.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한 영장산과 도봉산을 한 시간 차로 마주했습니다. 


'피택 장로님을 위한 교육'에 초대 받아 간 것입니다. 새벽 강의라니,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텐데 초대하신 목사님을 알기에 기꺼이 가게 되었습니다. 예비 장로님 교육의 주 내용이 다름 아니라 '렉시오 디비나' 등의 기도 훈련과 영적 식별 등이라니요! 새로 부임하신 교회에서 조용히 준비된 만큼의 목회철학을 펼치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영적 우월감에 빠져 삶과 신앙의 정답을 다 아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자아팽창에 허덕이며 과도한 확신 속에 교인들의 영적 삶을 통제하지요.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폭력적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며 교인들 각자의 영적 여정을 겸허히 인정하는 분들이죠. 


몇 주 전, 어느 교회 수련회에 가서 뵌 목사님 모습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강의안 올려놓고 강단으로 쓸 탁자(수련회 장소니까 식사 때는 밥상으로 쓰인)를 살피시다 ‘어이쿠, 상이 끈적하네.’ 하며 닦으시더군요. 그냥 본인이 닦으셨습니다. 


근거 없는 영적 우월감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내어주는 목사님들이 좋습니다.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저 산처럼, 그런 목사님들 건강하게 든든히 서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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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시간 : 저녁 6시 - 8시]


93.1에서는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 나오는 시간.

한낮에도 컴컴한 거실이 잠시 밝아지는 시간.

넘어가는 해가 주방 쪽 길쭉한 창으로 잠시 고개 내밀고 지나가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사람 : 까칠하고도 부드러운 사람]


자아가 다소 강한 듯하여 매운 맛이 있는 까칠한 사람.

감추지 못하고 끝끝내 드러낸 까칠함 있어 부끄러울 것 있는 사람.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잃을 수 없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나 : 열심히 공부하고 마냥 널부러지는 나]


강의와 글쓰기를 위해서 중독자처럼 강박적으로 읽는 나.

뭐 하나 끝나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혼자 잘 노는 나.

어떤 경우에도 나의 나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나.


[드물게 찾아온 찰나의 기쁨]


해 넘어가는 저녁 7시 어간에 여유로이 집을 누리는 게 얼마만이냐.

까칠한 중 3이 어디 안 가고 옆에서 알짱거리는 것은 또 얼마만인가.

"엇, 시간이 이렇게 됐네. 현승아, 라디오 좀 틀어줘"

"왜 엄마?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 들으려고? 오늘은 김현승의 세상의 모든 음악 어때?"

하고 제 돈으로 새로 산 블루투스 스피커 연결하여 음악 들려주는 시간.

그리하여 비틀즈와 김광석과 마마무가 돌아가며 열창하는 '김현승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 시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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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방식이 있다.

요리하는, 파스타 만드는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한 번 꽂히면 헤어 나오지 않(못)기로 하는 방식이다.

질릴 때까지 먹는 방식이고, 재미없을 때까지는 올인하는 방식이다.


이웃의 저이 담긴 마늘쫑을 얻어서는 가장 아름답게 활용하고자 고심하였다.

마늘쫑 장아찌나 볶음도 해야 하지만 색다른 요리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마늘쫑 명란 파스타를 잉태했고, 맛있었고, 성공적!


노 권사님의 정성 가득 담긴 고사리를 얻었다.

정말 맛있는 고사리인데 잘 삶는 게 관건이라 하시며 손수 삶아 건네주시니

노구의 병약한 손으로 다듬고 삶은 고사리는 차라리 어떤 간절함이다.


이 특별한 고사리 또한 나물로만 먹고 싶지가 않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간! 

상상력, 경험의 한계 내에서의 상상력.

최근 가장 만족스러운 요리 활동으로 꼽히는 마늘쫑 명란 파스타를 변주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명란 고사리 파스타가 만들어졌다.


질릴 때까지 먹을 예정이다.

다양한 명란 **** 파스타가 탄생할 것이다.

순간에 충실할 예정이다. 충실하게 만들고 먹을 예정이다.

전에 먹어본 적이 없다는 듯, 앞으로 어디서 이런 걸 먹어보겠냐는 듯

다양한 명란 **** 파스타에 순간순간 몰입할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 관계 맺는 습관을 많이 생각한다.

지금 여기 꽂힌 사람에게 거침없이 올인한다.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친구라는 듯, 여기서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볼 친구인 듯.

마음의 에너지를 흘려보낸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투명함으로 만나 함께 자라가는 역동이다. 


화요일 두 시, 금요일 두 시.

지난 몇 개월 나의 사이클은 두 개의 오후 두 시를 중심으로 돈다.

화요일에는 꿈 집단, 금요일에는 글 집단.

꿈이라는 매개로, 글이라는 도구로 집단을 만들어 치유와 성장을 도모하는 모임이다.

명란 마늘쫑 파스타, 명랑 고사리 파스타처럼 맛있고 아름다운 식탁이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나 자신이 되는 일, 나라는 존재로 가장 아름답게 꽃피우는 일을 살아가는 방식 삼고 싶다.

혼자 그리되고 싶지는 않다. 아니, 혼자 그리될 방법이 없다.

또 다른 '나'들과 연결되어 함께 자라가는 방식이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이다. 

마음과 영성에 관해 쌓인 읽고 배운 것들이, 글 쓰고 대화하는 감각이 내 냉장고 안에 들어 있다. 

누군가 건넨 선물처럼 나의 것이 되어 있다.


자르고 다지고, 지지고 볶고, 한데 무쳐서 마음의 양식을 요리한다.

이런저런 재료 손질로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

운전하며, 걸으며 온통 이 요리 레시피 생각이다.

만들어 놓고 보면 그저 그런 한 줌 스파게티일 뿐이건만.

누군가를 위해서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아도취 해서 나 혼자 먹자고 만든 것도 아니라,

하하호호 나눠 먹는 방식이라 좋다.   


사람마다 방식이 있다.

내가 사는 방식이 번듯하지 않다고 느껴져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이만큼 믿을만 하고 적절한 방식도 없다.

나처럼 요리 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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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보물입니다.

직면하고, 이름 붙이고, 충분히 느끼면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치유 되고, 성장합니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느끼고 건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가장 건강한 사람입니다.

감정은 영혼의 외침입니다.


라고 말하고, 독려하여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내곤 한다.

낮에는 이렇게 강의를 하고, 이런 취지의 별별 상담을 한다.


어느 밤에는 공허감, 슬픔,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외로움이 패키지로 몰려온다.

직면하고, 이름 붙이고, 충분히 느끼라고 나를 토닥여보지만, 

정답을 익히 알고 있는 이 삐딱한 자아가 순순히 말 들을 리 없다.


이런 밤에 읽을 책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글을 읽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게다가 몇 줄 끄적일 수 있으니.


어제의 낮은 지워지고, 내일의 낮은 오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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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6일, 할아버지 7주기 추도예배 가는 길.

거리거리 펼쳐진 선거 현수막에 대화 주제는 6.13 지방 선거.

엄마 아빠는 선거일 전에 사전 선거 하겠다는 말에 '그러면 선거날에는 완전 노는 거냐'는 현승이 질문.

결국 휴일에 어떻게 노느냐, 어떻게 놀았느냐, 로 대화 주제가 흘러간다.


엄마 : 우리 이번 선거일에 예봉산 갈까? 털보 아저씨네 하고. 

아빠 : 맞아, 8년 전이네. 지방선거 날이었지?

엄마 : 등산 갔다가 명일동에서 같이 투표했는데. 얘들아 털보 아저씨한테 말씀 드려볼까? 

        예봉산 갈래? 아이스 께~~~~에끼, 기억 나?

채윤 : 나는 좋아. 

현승 : 아니, 난 그럴 수 없어. 휴일이 두 번인데 두 번 다 가족한테 쓰는 건......

엄마 : 가족, 의문의 일패!

아빠 : 그래, 현승아. 선거날은 친구들이랑 농구 하고, 게임 하고 놀아. 바이바이(사춘기 나라로 잘 가)~

현승 : 나 떠나온지 오래 됐는데.........

아빠 : 알아. 알고 있어. 이제 곧 돌아올 때가 됐지.

채윤 : 내가 있잖아. 내가 이렇게 돌아와 있잖아.

현승 : 아냐, 끝이야. 돌아가는 거 없어.

엄마 : 누나는 돌아왔잖아. 돌아온 거 아냐?

현승 : 아냐, 누나도 그런 건 아냐. 

아빠 : 알았어. 이제 엄마 아빠만 남은 거 다 알아. 아빠는 엄마만 있으면 돼.



그리하여 다시 허전한 마음에 8년 전 예봉산 갔던 날 털보 아저께서 찍어주신 사진을 찾아본다. 

한 장 한 장 다 예뻐서 막 올려본다. 

우리 모두 '그 나라'의 존재를 몰랐던 시절.

아니 존재는 알았으나 실체는 몰랐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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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하루 피정으로 진행되는 내적여정 세 번째 하루를 지냈습니다. 심화과정으로 성격 또는 거짓자아가 형성되는시기, 어린시절을 돌아보았습니다. 3월 1단계를 시작으로 연이어 수강하시는 분들을 세 번째 만남입니다. 아침에 서로 얼굴 보자마자 "보고싶더라고요. 언제 봤다고 보고싶더라고요" 하며 반갑게 손을 맞잡았습니다.


준비한 간식보다 들고 오신, 간식이 더 많고요. 손수 만든 맛있는 쿠키가 종류 별로 풍성합니다. 나가사키에서 온 쿠키도 있네요. 네, 나가사키에서 심화과정 듣기 위해 날아오신 선생님(선교사님)이 들고 오셨습니다. 작년에 한국 나오셨을 때 1단계를 수강하신 선생님께서 심화과정 듣기 위해 나오신 것입니다. 간절함과 열정에 뭉클합니다.


재수강 오신 선생님과는 1단계 동기라서 더 반갑고, 모인 분들 즉석으로 나가사키 성지순례(라고 쓰고 룰루랄라 여행이라 읽지요)단이 구성될 기세였습니다. 강의가 아니라 열어 보이시는 마음이, 마음 한 구석 얼어붙은 감정과 기억이 살아 있는 가르침입니다. 이렇듯 배우는 마음과 살아있는 영성은 강사인 제가 최고의 수강자이고 수혜자입니다.


일부러 맞춘 듯, 개성있는 스타일이지만 컬러만 같은 상의의 세 분이 나란히 앉으셨습니다. 애써 연출해도 어려울 장면, 모시기 어려울 모델들이시라 바로 촬영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함께 한 우리가 참 아름답습니다.






집에서 식사 한 번 하시자고 조르고 졸랐다.

몇 달 졸라 허락하시더니 결국 저녁식사 후 잠깐 들러 차 한 잔이다.

시 또는 기도문 한 편을 써오셔서 낭독하셨다.

딱 한 시간 앉아 계시다 일어서시며 폐를 많이 끼쳤다 하셨다.




현승이 왔구나,

이름을 불러주시고 흰 편지봉투를 쥐어 주셨다.




사랑하는 채윤아,

교회에선 늘 무섭게만 보이는 장로님께서 

제 이름을 기억하고 다정하게 부르며 쓰신 편지에 감동 크게 먹은 채윤이다.



생은 어쩌면 이렇듯 기대와 다른, 예상을 빗나가는 만남과 위로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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