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때문에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닌 밤이다.

환경의 영향을 직방으로 받아 감정이고 행동이고 널을 뛰는 나는 안방-거실, 침대-소파를 오가는 밤이다.

잠결에 에어컨을 틀었다 껐다, 스마트폰을 들어 뉴스를 봤다 말았다 하는 밤이다.


새벽이 되어야 더운 공기도 진정이 되고 나도 진정이 되는 것 같다.

5시쯤 되면 제대로 잠을 자기 시작한다.

침대에 안착하여 제대로 잠이 들기 시작하는데 '끙끙' 본능적으로 안 듣고 싶은 소리가 들린다.


눈을 반만 뜨고 보니 죽은 듯 자던 남편이 일어나 엎드려 끙끙거린다.

여보, 아파?

아니야. 가슴이.....


'아니야'까지만 접수하고 잤다.

잠이 들자 꿈이 널을 뛰었다.

잠들기 직전에 회피한 것을 꿈이 정직하게 이어 받았다.

남편이 죽을까 봐 두렵다.


신혼 초, 내가 정말 김종필과 결혼 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할 때 매일 걱정하고 매일 확인했다.

김종필, 죽으면 안 돼! 죽어도 죽으면 안 돼!


가장 사랑하던 남자를 죽음으로 잃어버린 여자의 병 짓이다.

가장 행복하던 순간에 행복을 빼앗긴 자.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중학교 1학년 12월.

그 12월의 1일, 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행복이 극에 달했던 신혼 초, 그 트라우마가 되살아 와 매일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죽음'은 입에 담지도 말라고 김종필이 화를 냈다.

그럴 때마다 '아, 당신은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모르는구나,

입에 담지 않는다고 피해지지 않아. 당신은 죽음을 모르는구나.'

좌절했다.


2011년. 

아버님과 한솔이를 한 달 사이에 잃은 남편은 비로소 죽음을 알게 된 듯 했다.

2012년 봄, '죽음을 짊어진 삶'이란 글을 쓴 남편은 나보다 한 걸음 앞서게 되었고 든든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 써야 할 원고가 두 개.

집중하고 싶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자 얼른 정리하고 늘 드리는 '향심기도'부터 시작했다.


향심, Centering prayer인데.......

한 곳으로 향하지 않는 마음으로 침묵 가운데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다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말이 방언처럼 터졌다.

 

주님, 노회찬 의원 돌려주세요. 이럴 수는 없어요!

그리고 바로, 

'주님 채윤이 아빠 죽으면 안 돼요.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지만 저는 견딜 수 있지만

채윤이와 현승이 좀 봐 주세요. 저처럼 아버지 잃은 상실감에 청소년기 보내지 않게 해주세요'


향심기도 드리다 중간에 포기한 것 처음.

그러다 밑도 끝도 없는 기도가 터져나온 것도 처음.

이게 내 본 마음인 것은 자명한 일.


한참 기도하다 눈물 끝에 웃음이 좀 났다.

가장 행복한 때에 사랑을 잃는 법이니, 다소 불행한 지금 사랑을 잃을 리 없을 거야. 

이럴 때가 아니고 원고를  쓸 때지!


원고, 채윤이 입시, 선교 여행 가 있는 현승이, 설교 준비하는 종필,

마음에 살아 있는 여러 벗들을 떠올리며 기도하다 눈을 떴다.


-----------


김종필, 죽어도 죽지마. 

죽으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라고 했더니,

알았어. 당신한테 죽으면 두 번째 사망이야? 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에 빼앗기는 일은,

내가 죽은 자처럼 사는 것과 같다.

두 번째 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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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정을 끝으로 상반기 세미나 마쳤습니다.

강의하는 제가 더 많이 배우고 깨우치는 여정이었습니다.

돈을 받은 제가 더 많은 것을 남긴 시간들이었습니다.

공부하고, 기도하고, 혼자 울던 시간의 의미를 밝혀주신 분들입니다.

고맙습니다. 

남겨주신 후기 일부입니다. 


+ 의문투성이 안개 속 터널 속 같이 답답했던 궁금증들이 '아하'를 몇 번 외치며 하나씩 깨달아졌습니다. 나의 아픔과 고통 가운데 늘 함께 하셨던 주님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에니어그램 신청 안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나에게는 관심 없으신 하나님, 내 기도 들어주지 않는다며 하나님 떠나있었는데..... 나의 아픔 가운데,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 깨닫고 감격했습니다.


+ 책으로 읽고 익히(안다고 생각했던 '무지') 알아오던 개념들을 뛰어 넘어 세미나에 둘러앉아 여러 삶을 경청하며 새롭게 알아들어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앎이었습니다. 그룹 나눔의 힘을 새삼 알게 됩니다. 


+ 어렸을 때 처음 접했던 경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는데 나이가 주는 혜택이겠지요. 가장 알맞은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 4년 전 첫 강의 때 들려주셨던 시편 139편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아마 알에서 깨어나기 전 ‘나의 존재에 대한 알아차림’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 깨워주고 아픈 부분 회복시켜주는 귀한 여정이었습니다.


+ 나에 대한 인식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고의 패턴이 된다는 것, 자기수용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도 더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을 깨우게 된 것 같습니다.


+ 하나님께로 한 무릎 더 가까이 다다갈 수 있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과정이었는지 모릅니다.


+ 일 년 만에 수혈한 느낌이에요.(재수강) 향심기도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이미 걸어오신 분들이 계셔서, 그 길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모태신앙으로 시작된 신앙의 세월이 이렇게 긴데 왜 나는 변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나를 알고 싶어 시작한 여정이 이제 한 단락 맺었습니다. 가면 속의 나, 그림자 속의 나,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많이 아팠지만 하나님 형상인 나를 알게 되고 사랑하기 시작하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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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것을 봤다 하고, 

아는 것을 안다 하며 

관계를 맺으면 괜한 에너지 소모가 덜할 것 같은데.


이 놈의 SNS 세상은 

보고도 안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은 기본이고.

몰래 보고, 못 본 척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게임판 같기도 하고.

뭘 그렇게 사람이 베베 꼬여 있느냐, 쿨하게 보고 넘기고 하면 되지,

라고 말하지 마시지 말고 하고 싶으면 하시라.

나는 태생이 쿨하지 못한데다 마음 바닥이 좁은 편이다.


나의 페북 사용법은 '그것은 알기 싫다'이다.

일일이 축하 하거나, 찬사를 보내거나, 아픔에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개인사를 알고만 있기가 싫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를 이해하려는 태도 없이,

그와 얼굴을 대면하고 물을 수 없는 바를 은밀히 캐기 위해 

훔쳐보고는 불행한 SNS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면서도, 페북에서 유명한 싸움 구경은 꼭꼭 찾아본다. 큐큐)


친구 요청이 와 수락하고 친구가 된 후에는

진심 존중의 마음을 담아 팔로우를 취소를 누른다.

누군지 모르는 분의 일상을 눈팅 눈팅 눈팅, 하다

혼자 좋고 싫음의 투사 드라마나 쓰며 논평하는 게 예의가 아닌 듯 하여.


블로그의 보이지 않는 독자를 사랑한다.

일등 칸에는 본 것을 봤다 하고 아는 것을 안다 하는 분을 모신다.

댓글을 남기거나 적극적인 표현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오프에서 나누는 한 마디 대화, 눈짓으로도 알 수 있다.


지난 주에 갔던 청년부 수련회의 포스터이다.

처음 뵙는 목사님, 청년부였다.

본 것을 봤다 하고, 아는 것을 안다 하는 디테일이 살아 있다.

숨통이 트인다.


이틀 만나고 온 담당 목사님과 청년부는 살아 있는 만남으로 마음에 심겨진다.

강사를 치켜 세우는 포스터에 으쓱해져서 이러는 건 아니다.

나야 이제 어쩔 수 없이 책으로 블로그로 내 패를 다 보여준, 

상대가 어디까지 봤는지 모른 체 홀랑홀랑 벗어 제끼는 게 주특기인,

그걸 밑천으로 글쓰는 사람이다.

숨어 훔쳐 보는 사람이 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저 여기까지 봤어요' 하며 다가오는 만남은 얼마나 고마운가.


강사로 산다는 건, 딱 한 번 보고 말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는 일인데.

딱 한 번 만남을 진정한 만남으로 간직하게 되는 일이 있다.

아는 만큼, 본 만큼 이해하고 표현하는 투명함이 주는 선물일 터.

헛헛함과 슬픈 헤아림만 남기는 에너지 소진의 만남은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고 싶으나,

살아간다는 것은 이것을 견디는 것일지도. 

100 번의 가면 쓴 만남에 단 한 번의 생기 있는 만남,

홍수 속의 목마름에 생수 한 병 같은 만남이 있으니 살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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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 한 노래 있어 20

 

 

믿지 않는 가정에서 혼자 신앙생활 하는 청년들에게 가정예배에 대한 로망을 자주 듣는다. 결혼 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이 둘러 앉아 예배드리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좋다는 것이다. 모태신앙이며 특히 부모님의 믿음이 열정적인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렇다. 내게 가정예배는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저녁 먹고 숙제도 다 하고 마음 편히 TV에 빠져들 시간이면 영락없이 들리는 소리, ‘성경 찬송 가져와라.’ 매일 밤 새롭게 귀찮고 짜증나고 지겨운 것이 가정예배였다. 교회 저녁 예배가 있는 수요일과 주일은 해방의 시간이었다. “고귀한 시간, ‘낭비예배”(마르바 던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를 고통스럽게 허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랬으니 어머니의 성경책은 나를 괴롭게 하는 율법책에 지나지 않았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솔직히 어머니가 내게 들려주신 하나님 이야기는 기쁜 소식, 복음보다는 고된 소식에 가까웠다.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은 월요일에 학교 가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고, 주일성수라는 미명하에 일체의 매매 행위는 금지였다. 과자 하나도 사먹을 수 없었다. 꼭 필요한 학교 준비물도 주일에는 살 수 없었다. 교만하지 마라, 친구를 미워하지 마라, 동생을 사랑해라, 주일 성수해라, 순종해라. 지켜야할 목록은 한이 없는데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지켜보신다니 고된 복음일 수밖에. 부모님을 통해 소개받는 하나님은 내가 지은 죄를 깨알 같이 적고 있는 까다로운 기록관 같은 분, 잠복근무 하며 죄 짓기를 기다리다 걸려 넘어지는 순간 잡았다, 요놈!’ 하는 경찰관 같은 분이었다. 철이 들고 사유가 깊어지며 나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가게 되었다. 왜곡된 하나님 이미지가 변하기도 했지만 어릴 적 새겨진 하나님 상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로 인해 사랑의 하나님께 온전히 안기고 내어맡기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는 가정예배며 부모님의 종교교육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이 찬송의 가사처럼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하나님이 그립고 아름답고 재밌는 분이었다면 어땠을까. 가정예배가 기다려지고 자발적으로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이었다면. 그 예배에서 읽는 성경 말씀이 달고 오묘하였다면. 텔레비전 연속극보다 더 재미있어서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이었다면 어땠을까. 내 젊은 날 하나님은 내가 뭔가를 해드려야 보상으로 복을 주시는 분이었고, 예배는 그 중 가장 큰 의무조항이었다. 고된 소식에 부응하여 늘 뭔가를 해야만 하는, 지킬 것투성이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신앙생활 했다. 이런 유산을 남긴 어머니의 헤어진 성경책은 내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여기서 끝이었으면 가계를 흐르는 슬픈 하나님 이야기가 되었을 텐데 다행히 그렇지 않다. 사춘기, 청년시절을 지나며 어머니가 소개한 하나님을 의심하며 신앙은 자라게 된다. 뭘 모르던 때는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는 하나님 두려워 무작정 순종했는데, 교회 봉사 열심히 해야 좋은 배우자도 주시고 직장도 열어주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님을 깨달아 가며 그분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기도제목,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같은 것이 하나님의 심통이 아니라는 것, 그분과 나의 생각이 동급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가게 되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소개받은 하나님 이미지가 걸림돌인 줄 알았는데 거기 걸려 넘어져 코가 깨지고 무릎 까지면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것은 디딤돌이었다.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난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니가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성경 이야기를 재밌게 들려주시는 법은 잘 몰랐다. 그저 읽으라 했고, 기도하라 했다.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 대목에선 언제 어디서나 곧바로 목이 메어 울먹이곤 하셨다. 내 어릴 적에도 그러시더니 노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신다. , 이 순진한 십자가 사랑이 엄마의 힘이구나. 기복적 신앙이라고, 왜곡된 신앙교육에 해로운 신학이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 이렇게 믿음에 서 있는 것은 저 순진한 사랑과 기도 때문이구나. 수십 년 동안 일 년 일독을 지켜 온 어머니의 성경책은 나달나달 헤어져있다. 철없이 반항하고 방황하던 시절에 비하면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한결 찬송 가사에 가까워져있다. 귀하고 귀한 성경책이다. 내게도 다른 선택이 없다. 시시때때로 성경 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사는 일 외에는.






쟝르를 불문하고 모든 글은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형식이 다를 뿐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논문이든 신문 기사까지. 모두 쓴 사람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자전적 소설'이라는 말은 동어 반복이다. 자기 현실과 재현 사이의 거리는 글마다 다르지만, 가장 어려운 글쓰기는 <헝거> 같은 형식의 이야기이다. '자서自敍'는 '자서전自敍傳'과 다르다.

성별과 인종, 계급 등 사회적 위치성과 무관하게 '자서'는 상처와 고통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이 이슈들은 '드러내기 어렵다'기보다 '잘' 드러내기 어렵다. 자기 연민과 나르시시즘은 최악의 인성이자 글쓰기 태도인데 그 덫에 걸리기 쉽다. 예술에서 권력자는 상처받은 사람,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하긴 상처가 아니라면, 왜 글을 쓰겠는가? 상처가 없으면 쓸 일도 없다. 작가는(학자도 마찬가지다) 죽을 때까지 '팔아먹을 수 있는' 덮어도 덮어도 솟아오르는 상처wound가 있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 생각,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삶이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산을 넘는 일이다.



록산 게이의 『헝거 : 몸과 허기에 대한 고백』 추천사 중 일부. 정희진의 글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정말 잘 쓴다. 정희진!'라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던 사실을 일깨우는 글보다는 나도 생각했던 바로 그걸 글로 잘 풀어냈을 때 나는 감동이 되더라. 그럴 때 '앗따, 글 참 잘 쓴다.' 감탄하게 된다. 정말 내가 요즘 쓰는, 써야만 하는 고통에 뒹굴며 하는 생각들이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정희진 참 정말 잘 쓴다고, 라 생각하며 읽어 나가는데 추천사의 다음 부분은 이렇다.


록산 게이의 헝거』를 읽고, 나는 열패감과 좌절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는 '감히'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해냈다'. 그것도 아주 잘 해냈다. 나도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 '페미니스트', 나이 들어가는 여성, 건강 약자로서 그리고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할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실은, 많이 썼다. 매일 쓴다. 돌이키기도 묘사하기도 힘든 기억을 쓴다. 하지만 쓸수록 자존감은 자학의 동의어가 된다. '감성팔이' '사연팔이'... 그토록 질색했던 글들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헉, 정희진도 이렇다고?! 그런데 내가 정희진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감성팔이' '사연팔이'가 없어서인데. 온통 감성팔이, 사연팔이 투성이인 내 글과 너무도 비교되어 부러워하곤 했는데?! 아무튼 페이지 넘겨 본론으로 들어가 록산 게이를 읽으며 글을 잘 쓴다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생각을 했다. 이렇듯 가르치지도, 주장하지도, 누구를 비난하지도 않으며 페미니즘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니. 자기 상처를 쓴다는 것은 상처 입힌 그 사람을 가해자라는 이름으로 규정해야 하고, 그런 후에는 활활 타오르는 분노가 뒤따르는 것이 수순일 터인데. 어릴 적 성폭력으로 망가진 몸과 마음을 고백하며 이다지도 밋밋하고 덤덤하여 사실적일 수 있다니. 감동 그 이상이다. 그냥 숙연해졌다.


나도 내 상처를 쓴다. 그야말로 프로 사연팔이er. 사연팔이의 기본은 자기 경험을 과하게, 늘 조금씩 넘치게 드러내는 것이다. 경험, 너무나도 쓰고 싶은 경험, 글로 써버리고 싶은 상처를 쓰다보니 일인칭 '나'의 대척점엔 늘 상처 준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나쁜 나라 만들기가 일쑤이다. 그렇게 쓰고나면 한편 후련하고, 한편 민망하여 견딜 수 없다. 정희진의 말대로 록산 게이는 상처를 해석하고 글로 써내는 것을 해냈고, 아주 잘 해냈다. 록산 게이의 글을 읽으면서 '글을 잘 써서' 부럽다는 생각이 1도 들지 않았다. 그저 매료되었다. 자기 상처를 바라보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객관적 태도가 놀라웠다. 초고도 비만인의 몸에 관한 고백이지만 삶에 대한 태도는 적당히 결핍도 넘침도 없다. 이렇듯 허위의식 느껴지지 않는 글이라니! (페미니스트적, 작가적, 심지어 피해자적 허위의식까지도)


또 하나의 글을 써서 떠나 보냈다. 어렵게 쓰는 동안 곁에서 록산 게이가 함께 해주었다. 많은 힘이 되었다. 한때 정희진 글을 배우고 싶어 필사를 하기도 했는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선망이었다. 어쩐지 그 선망이 조금 시들해진 것은 그의 글에 '감성팔이'가 없어서였나, 싶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감성팔이, 사연팔이 전공. 그리하여 부전공은 이불킥. 또 감성을 끼워 사연을 팔아 글을 또 하나 써냈는데. 어쩐지 마음이 자꾸 무겁다.







어떤 일에 찬사를 받을 때 좋아지는 기분에 연연하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힘을 얻지만,

나를 자라게 하는 늘 그 반대 지점에 있다.


남편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문득 나간 말이다.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할 뜻을 가지면 아프고 화나지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돌아보려 하면 아프지만 자유로워져


남편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내가 들어야 할 말이었던가.

되새기고 있다.


아프던 겨드랑이 밑이 간지러워져 날개가 돋아나

아프지만 자유로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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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 있던 일정을 끝내고 휴우~ 하면 거실 내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창가의 다육이 화분.

어머, 저게 뭐야?

떨어진 잎에서 싹과 뿌리나 나고,

흙지 붕 뚫고 새싹이 하나 돋아난 것이다.

두 생명체가 서로를 향하고 있다.

가 닿으려는 듯.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 정성 들여 돌보지도 못했는데.

시들시들 고개를 떨굴 때야 깜짝 놀라 물을 주기도 했는데.

나 모르는 사이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고 있었다니.

뭉클한 감동이다.


전에 [큐티진]에 썼던 글의 일부이다.

보이지 않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한다는 것,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미국의 낭만파 시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시를 쓰고 가르치는 일을 노년이 되기까지 열정적으로 했다고 한다. 그 비결을 묻는 말에 정원 한 구석의 고목을 가리키며 이렇게 답했다고. “죽은 듯 보이는 저 나무가 봄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네. 그 이유는 저 나무가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도 그렇다네.” 살아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사랑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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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되어 신앙하기'

내적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영성 단계’ 세미나가 있습니다.

내적여정은 잃어버린 길, 마음의 길을 따라 하나님께로 가는 여정입니다. 

기도의 여정이고 사랑의 여정입니다. 

영성과정에서는 우리 안에 있는 왜곡된 하나님 상을 확인하고, 

전에 해보지 않은 기도인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를 안내해 드립니다. 


영성과정은 1단계 이상 들으신 분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차근차근 2단계와 심화과정을 밟아서 오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만. 

중간에 시간이 안 되어 함께 하지 못하신 분들, 

여정의 마지막이 궁금하신 분들 함께 하실 수 있도록 열어두겠습니다. 

재수강도 가능합니다.

 

[일시]2018년 7월 18일(수) 오전 10:00 ~ 오후 5:00
[장소] 마포구 신수로 56 순총빌딩 B1층 (광흥창역 4번 출구)
[인원] 9명 (선착순) [참가비] 12만 원(재수강 3만 원)
[문의] 010-6209-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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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상담이나 치유 그룹에서는 흔히 별칭을 쓴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생소하고 오글거리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내 이름 정신실을 두고 '나리'로 불리는 건 나와 거리를 두는 일이다. 2인칭 또는 3인칭으로 불러 나를 타자화 시키는 방법이다. 새롭게 만난 그룹에서 직업도, 성별도, 나이도 구분 없이 부르는 별칭은 페르소나를 지양하는 뜻이 담기기도 한다. 언젠가 나도 오글거리던 적 있었지만 이젠 별칭 짓기 권하는 자리에 자주 앉는다. 드물게 바뀌지만 나의 별칭은 주로 '나리'이다. 나리꽃의 그 나리. larinari의 nari 역시 바로 '나리'이다. 굵직한 별칭 만남들의 마침표를 찍었다.


5,6월 8회기의 글쓰기 자조모임을 동반했다.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라고 쓰기도 싫은, 그러나 분명 그 끔찍한 일을 겪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니, 잘 살아가지 못하는 '나'들이다. 8주간 함께 쓰고 읽으며 나도 쓰고픈 말이 많이 일렁였다. 아니, 쓰고 싶은 말이 없었다. 모임이 있는 금요일엔 늘 새벽까지 깨어 있게 되었다. 매주 생각보다 많이 웃었고, 조용히 울었다. 제가 오히려 배우고 치유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8주였는데. 마지막 8주차에는 '네, 저도 치유고 배움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네요' 하고 뛰쳐나와 가해자 목사를 찾아내 단죄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여기서 나는 '나리'였다.


작년 가을부터 준비한 여정 캠프, 그러니까 싱글들을 위한 2박3일 캠프가 있었다. '나를 찾는 길 위에서 너를 만나다'라는 부제를 붙여봤는데 '에로스를 찾다 아가페를 만나다' 이런 사심을 품기도 했다. 하긴 부제로 붙일만 한 사심이 한 둘이 아니다. 소개팅과 결혼 압박에 지친 싱글들의 힐링 캠프. 전에 해보지 않은 재미있는 연속 소개팅. 나는 왜 사랑이 두려울까, 두려움 극복 프로젝트. 매칭 부담 없는 매칭 프로그램. 등등.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해야겠다. 생면부지 15명의 청년들 캐릭터부터 날씨, 장소, 나눔, 상담, 케미, 피날레. 여기서도 나는 나리였다.

 

캠프 떠나기 하루 전인 수요일엔 에니어그램 심화 세미나가 있었다. 아침 일찍 운전을 하고 가는데 음악을 듣다 툭,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전 주 금요일 글쓰기 자조모임 이후 차분히 감정 돌볼 시간이 없어서였을까. 연이은 묵직한 강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마침 이날 심화과정의 주제는 '감정'이었다. 예언 같은 울음이었을까. 미처 울지 못한 뒤늦은 울음이었을까. 그렇게 '나리'로 살았던 6월은 끝났다. 오늘 주일 예배에선 여정캠프에서 만난 15명, 에니어그램 세미나의 6명, 글쓰기 자조모임의 4명.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흩어져 이어지는 그들의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또 울었다. 울음이 아니라 기도라고 하자.  



'나리'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그룹이 있다. 매주 만나는 꿈과 영성생활이다. 2박3일 여정캠프를 지원하고자 모인 사람들처럼 카톡으로 무한 에너지를 보내왔다. 캠프가 있었던 연천으로 가는 길을 전화 통화로 함께 하며 얘기를 들어주고 깨달음을 주는 벗이 있었다. 연천의 한옥호텔에 도착하여 긴장 속에 자기소개를 마쳤다. 물론 나를 '나리'로 소개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데 어머나, 정원에 지천으로 핀 꽃이 나리꽃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주님! 신경 많이 써주셨군요! 나리는 마태복음 6장 28절의 '들의 백합화'이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있는 그대로 족한 들꽃이다. 




캠프에서 상담하는 중 세 사람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강의하고 상담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 것 같은데 어떻게 충전하는가, 조금 걱정된다, 는 뜻도 담긴 것 같다. 나리는 나리가 되고 참나무는 참나무 되는 것으로 족한 만남에서 끝없이 재충전 한다고 대답할 걸 그랬다. 돌아가 그런 벗들이 있고, 벗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살아있는 숨결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 그 숨결의 근원이신 분을 만나기도 한다고 고백할 걸 그랬다. 나는 나임이 부끄럽지 않다. 나를 나리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온몸으로 하고픈 말이기도 하다. 각자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그분의 큰 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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