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때문에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닌 밤이다.

환경의 영향을 직방으로 받아 감정이고 행동이고 널을 뛰는 나는 안방-거실, 침대-소파를 오가는 밤이다.

잠결에 에어컨을 틀었다 껐다, 스마트폰을 들어 뉴스를 봤다 말았다 하는 밤이다.


새벽이 되어야 더운 공기도 진정이 되고 나도 진정이 되는 것 같다.

5시쯤 되면 제대로 잠을 자기 시작한다.

침대에 안착하여 제대로 잠이 들기 시작하는데 '끙끙' 본능적으로 안 듣고 싶은 소리가 들린다.


눈을 반만 뜨고 보니 죽은 듯 자던 남편이 일어나 엎드려 끙끙거린다.

여보, 아파?

아니야. 가슴이.....


'아니야'까지만 접수하고 잤다.

잠이 들자 꿈이 널을 뛰었다.

잠들기 직전에 회피한 것을 꿈이 정직하게 이어 받았다.

남편이 죽을까 봐 두렵다.


신혼 초, 내가 정말 김종필과 결혼 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할 때 매일 걱정하고 매일 확인했다.

김종필, 죽으면 안 돼! 죽어도 죽으면 안 돼!


가장 사랑하던 남자를 죽음으로 잃어버린 여자의 병 짓이다.

가장 행복하던 순간에 행복을 빼앗긴 자.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중학교 1학년 12월.

그 12월의 1일, 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행복이 극에 달했던 신혼 초, 그 트라우마가 되살아 와 매일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죽음'은 입에 담지도 말라고 김종필이 화를 냈다.

그럴 때마다 '아, 당신은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모르는구나,

입에 담지 않는다고 피해지지 않아. 당신은 죽음을 모르는구나.'

좌절했다.


2011년. 

아버님과 한솔이를 한 달 사이에 잃은 남편은 비로소 죽음을 알게 된 듯 했다.

2012년 봄, '죽음을 짊어진 삶'이란 글을 쓴 남편은 나보다 한 걸음 앞서게 되었고 든든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 써야 할 원고가 두 개.

집중하고 싶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자 얼른 정리하고 늘 드리는 '향심기도'부터 시작했다.


향심, Centering prayer인데.......

한 곳으로 향하지 않는 마음으로 침묵 가운데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다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말이 방언처럼 터졌다.

 

주님, 노회찬 의원 돌려주세요. 이럴 수는 없어요!

그리고 바로, 

'주님 채윤이 아빠 죽으면 안 돼요.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지만 저는 견딜 수 있지만

채윤이와 현승이 좀 봐 주세요. 저처럼 아버지 잃은 상실감에 청소년기 보내지 않게 해주세요'


향심기도 드리다 중간에 포기한 것 처음.

그러다 밑도 끝도 없는 기도가 터져나온 것도 처음.

이게 내 본 마음인 것은 자명한 일.


한참 기도하다 눈물 끝에 웃음이 좀 났다.

가장 행복한 때에 사랑을 잃는 법이니, 다소 불행한 지금 사랑을 잃을 리 없을 거야. 

이럴 때가 아니고 원고를  쓸 때지!


원고, 채윤이 입시, 선교 여행 가 있는 현승이, 설교 준비하는 종필,

마음에 살아 있는 여러 벗들을 떠올리며 기도하다 눈을 떴다.


-----------


김종필, 죽어도 죽지마. 

죽으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라고 했더니,

알았어. 당신한테 죽으면 두 번째 사망이야? 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에 빼앗기는 일은,

내가 죽은 자처럼 사는 것과 같다.

두 번째 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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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정을 끝으로 상반기 세미나 마쳤습니다.

강의하는 제가 더 많이 배우고 깨우치는 여정이었습니다.

돈을 받은 제가 더 많은 것을 남긴 시간들이었습니다.

공부하고, 기도하고, 혼자 울던 시간의 의미를 밝혀주신 분들입니다.

고맙습니다. 

남겨주신 후기 일부입니다. 


+ 의문투성이 안개 속 터널 속 같이 답답했던 궁금증들이 '아하'를 몇 번 외치며 하나씩 깨달아졌습니다. 나의 아픔과 고통 가운데 늘 함께 하셨던 주님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에니어그램 신청 안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나에게는 관심 없으신 하나님, 내 기도 들어주지 않는다며 하나님 떠나있었는데..... 나의 아픔 가운데,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 깨닫고 감격했습니다.


+ 책으로 읽고 익히(안다고 생각했던 '무지') 알아오던 개념들을 뛰어 넘어 세미나에 둘러앉아 여러 삶을 경청하며 새롭게 알아들어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앎이었습니다. 그룹 나눔의 힘을 새삼 알게 됩니다. 


+ 어렸을 때 처음 접했던 경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는데 나이가 주는 혜택이겠지요. 가장 알맞은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 4년 전 첫 강의 때 들려주셨던 시편 139편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아마 알에서 깨어나기 전 ‘나의 존재에 대한 알아차림’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 깨워주고 아픈 부분 회복시켜주는 귀한 여정이었습니다.


+ 나에 대한 인식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고의 패턴이 된다는 것, 자기수용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도 더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을 깨우게 된 것 같습니다.


+ 하나님께로 한 무릎 더 가까이 다다갈 수 있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과정이었는지 모릅니다.


+ 일 년 만에 수혈한 느낌이에요.(재수강) 향심기도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이미 걸어오신 분들이 계셔서, 그 길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모태신앙으로 시작된 신앙의 세월이 이렇게 긴데 왜 나는 변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나를 알고 싶어 시작한 여정이 이제 한 단락 맺었습니다. 가면 속의 나, 그림자 속의 나,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많이 아팠지만 하나님 형상인 나를 알게 되고 사랑하기 시작하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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