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신고 아장아장
느린 걸음 걸을지라도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나도 예수님 따라갈 테야


ktx 광주송정역에서 광주역 가는 무궁화호 안이다.

어릴 적에 서울 갈 때 타던 장항선 열차를 탄 것 같다. 

흔들흔들 앉아 옛 기억 더듬다 소환되어 나온 노래. 

서너 살 때부터 불렀던 내 18번이고 인생 첫 노래다. 

장항선 열차 안 의자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면 엄마 아버지가, 

또 다른 좌석의 어른들이 연양갱을 사주셨다. 


건너편 빈 좌석에 네 살 짜리 내가 어른거린다. 

먹어도 먹어도 맛있던 연양갱도,엄마도 아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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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 한 노래 있어 21

 

 

경험과 그것이 만들어놓은 상상력의 협소함이란! ‘, 이 찬송 들어봐.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뭐가 생각나?’ 지금까진 물어본 사람들에겐 100% 합의된 정답이다. 야외예배! 그렇다, 우리에게 이 찬송(478)은 야외 예배다. 이에 견줄 야외예배 찬송이 한 곡 더 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79) 3절 밖에 안 되고 찬송 길이도 짧아서 더 자주 뽑히는 곡이 참 아름다워라일 것이다.

 

여러 교회 청년부에 강의를 다니며 다양한 공동체 문화 일일체험 하는 것이 큰 기쁨이다. 특히 찬양시간은 흥미진진하다. 교회마다 다르고, 인도자마다 다르고, 음악적 수준도 천차만별이인데 그 모든 수준이란 것들과 상관없이, 때로 나의 취향도 뛰어넘어 가슴으로 훅 들어오는 찬양이 있다. 여름 수련회 강의로 갔던 작은 청년부의 찬양시간이었다. 기타 한 대, 키보드 한 대와 찬양 팀 서너 명이 인도하는 작은 찬양 팀이었다. 싱어 중 하나가 솔로를 했다.

 

참 아름다운 곳이라 주님의 세계는 정말로 내가 나답고 솔직할 수 있는 곳

 

정말로 내가 다답고 솔직할 수 있는 곳이라니, 그렇지, 그런 곳이 있다면! 아슬아슬 떨리는 목소리의 찬양이 마음으로 쑤욱 들어왔다. 이 수련회의 주제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두려움 없이 내가 나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 아닌가. 낯선 멜로디이지만 마음으로는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이 478. 싱어들 소리가 몇 파트로 쫙 갈라지더니 금세 화음으로 만났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이다. 수십 년 선입관이 깨지고 야외예배 느낌은 싹 지워졌다. 바깥 풍경이 아니라 내 마음의 풍경으로 시선이 옮아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는 마태복음의 말씀일 터.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6:28-29) 예뻐지고자 뭘 더 하지 않아도 그냥 예쁜 백합화 이야기이다. 하나도 꾸미지 않았는데 저 화려한 임금 솔로몬의 옷 100벌 보다 낫다는 것이다.

 

내가 나답고 솔직하게 있어도, 애쓰지 않고 있어도 정말 저렇게 아름답다면 뭘 더 바라랴. 그나마 회사보다는 안전한 교회에서 조차도 포장지 없는 나로 있기는 쉽지 않다. ‘에잇, 너무 말을 많이 했잖아. 조금만 참을 걸 그랬어. 너무 나대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아냐?’ ‘나는 왜 이리 소심하고 바보 같을까? 아까 그 말을 했어야 하는 건데. 다들 한 마디 씩 하는데 질문 받고 나만 말을 못했어. 정말 한심다고 생각했을 거야.’ 매순간 가장 적절한 모습이고자 애쓰는 우리의 내면은 쉴 새 없이 손을 놀려 길쌈질 하는 형국이다.

 

지금으로 충분해,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이 좋아! 이런 말이 좋은 건 안다. 내게 이런 말 들려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다지 와 닿지도 않는다. ‘말은 그렇게 하지. 내가 정말 나다운 모습 보여줘 봐? 네게 맞추려고 지금 이 순간도 애써 짓는 표정과 말, 모두 거두고? 실망하여 나가떨어질 걸. 그나마 내가 이거라도 하니까 나를 받아주는 거 아니야?’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의 있는 그대로를 싫어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이런데 아름다운 공동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만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바깥 풍경에서 내 마음 풍경으로 옮겨갔던 시선은 이제야 말로 다시 밖을 봐야 하는 시점이다. 고개를 들어서 들의 백합화를 보고, 심지어 공중에 나는 새에게도 눈길을 줘보라는 예수님의 뜻을 알겠다. 백합은 백합이 되려하지 키 큰 해바라기를 선망하거나 매혹적인 장미가 되려 하지 않는다. 새는 그저 새로서 창공을 날며, 시냇물을 흘러가고, 나무는 나무로 서 있다. 자연의 모든 것은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끝도 없이 비교하고, 지금의 나보다 예전의 나, 더 나아진 미래의 나에 마음이 팔려있는 것은 사람들뿐이다. 그래서 때때로 야외 예배가 아니라도 자연을 바라보아야한다. 백합이 백합이고 참나무가 참나무이듯 너도 너 자신으로 충분해. 너 자신이 되어라, 하시는 주 음성이 거기서 들려, 내게 전하시는 바 그 뜻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나 알 듯 하도다

 

 







아침 9시는 

7시에 켰던 클래식FM 라디오를 끄고,

설거지와 정리 마친 깔끔한 거실에 커피 한 잔 내려 앉아서

메시지 성경을 읽고, 기도 시간을 갖는

묵상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었었었었었다.


아침 9시는 

클래식FM의 새 진행자, 오래 전 세음 진행할 때보다 말이 훨씬 많아진 김미숙의 목소리 반,

식구들 목소리 반,

시끌시끌한 거실과 한 통속인 주방에서 반찬 만들기 딱 좋은 시간이다.


어쩌다 점심 도시락까지 싸들고 나가게 된 1인 사원인 직장에 가는 종필, 입시생 채윤이.

돌고래상가에서 사 온 김치가 있고, 비비고 새우 볶음밥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으니.

한참 키가 크고 있는 현승이도 있으니. 

날날이 주부라도 반찬을 안 만들 수 없다.

그나마 가장 시원한 시간, 어차피 조용히 보낼 수도 없는 아침 9시에 반찬을 만든다.


미역냉국에 넣다 깨가 쏟아져버렸다.

깨가 쏟아져서 엄청 들어갔다.


82년생 김지영을 온 가족이 읽은 후, 

식구들이 나름대로 너도 나도 가사에 참여한다.

현승이도 밥을 하고 채윤이는 늘 설거지를 하고, 남편은 그 모든 걸 하고 허드렛일 도맡는다.

다들 그렇게 알아서 열심히 하는데도 땀 뻘뻘 흘리며 반찬 몇 가지 하다보면 짜증 지수 점점 상승.


도시락 싸들고 다들 나간 후에 마음이 고요해지면

미안함이 밀려온다.

점심 잘 먹었다는 남편 톡에 내가 얼마나 힘든지 토로하다 고백한다.

"어쩌구저쩌구 블라블라 나불나불........ 그래서 예민하게 굴었던 거야.

어차피 하는 것 이러고 짜증 내고 싶지 않은데."

돌아온 답신.


"그러면 수고한 줄 몰라. 고마워 하지도 않아. 정신실은 완벽해."


그 짜증을 수고로 번역하여 다 받아주시니 이 사람, 참! 참으로 참한 사람, 착한 사람.

착한 남편과 주고 받는 메시지에 깨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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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 낮은 책꽂이 위의 초록이들.

폭염 속 동사(凍死) 위기를 넘긴 기특한 화초들이다.

밤낮 쉬지 않고 돌아가는 에어컨 바로 옆에 줄을 서 있던 친구들.

스치로폼 독자리로 냉기 차단벽을 만들고 애를 썼더니 살아 남을 놈들은 살아 남았다.

장하고 기특하다, 내 새끼들.

아침마다 들여다보고 매만져주었다.


가끔 슬쩍 건드렸는데 툭 떨어지는 잎이 있다.

멀쩡하게 파릇한데도 가지에 붙들고 있던 힘이 다 빠졌단 뜻이다.

아, 이 녀석 아프다는 뜻이다.

누렇거나 메마른 기색 없는데도 툭 떨어지는 잎이 있다는 건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가장 아끼는 두 녀석이 그렇다.


좁디 좁아서 가만히 서 있어도 짜증이 밀려오는 주방이지만

주방 탁자 명당 자리로 옮겨 에어컨과 분리시켜 놓았다.

적당한 볕이 있고, 더 자주 눈을 맞출 수가 있다.

어,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냥 지나쳤는데 얘가 뚝 떨어지네.

이제 식구들도 알아차린다.


언뜻 보기에 아직 멀쩡하지만

결국 하나 둘 떨어지고 말 것이다.

나름대로 붙어 있으려 애를 써봤을 텐데, 저도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이겠지.


건강한 화초들을 손으로 쓱 훑어본다.

끄떡 없고 쨍쨍하다.

아픈 화초도 그리 해보고 싶지만, 그리 했는데 다들 끄떡 없이 붙어 있음을 확인하고 싶지만

손을 갖다 대지 못한다.

우수수 죄 떨어져 버릴까하여.


속이 상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붙들 수 없다.

제가 붙들고 있지 못하는데 내가 어찌 도와줄 것이 없다.

무력함을 느끼고,

안도감을 느낀다.


애써도 안 되는 것인데, 

내가 하면 될 줄로 알고 나를 볶고 남을 볶았던 때가 있었다.

고장난 의지에 뒤틀린 자기확신을 곁들여 내가 다 하고, 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건장하던 녀석이 툭 떨어지는 것 하나도 돕지 못하면서 말이다. 

애초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하니 안도감이, 심지어 자유로움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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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련회 시즌이 끝났다. 지난 주 금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달리고 달렸다. 지난 주 금요일엔 우리 교회 수련회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지리 감각이 통 없는 통에 무리하게 달리며 시즌을 시작했다. 강의 요청이 왔는데 우리 수련회가 겹쳐 거절 했다. 듣고보니 수련회 장소 바로 옆인 것 같아 다시 수락을 했다. 강화도와 영흥도. 서해안이라고 다 바로 옆이 아닌데. 새벽 6시 일어나 강화도에서 강의하고 2시간 운전하여 영흥도 수련회장에 갔다. 힐링캠프라는 이름의 널널한 수련회라 중간중간 방에 처박혀 연재 원고를 썼다. 둘째 날 밤에는 정말 오랜만에 음악치료사 페르소나를 발휘, 노래하고 춤추고 노래 만드는 프로그램을 인도했다. (아직도) 낯설고 많이 부끄럽지만 미친 척하고 분위기 띄우는 거 잘한다. 다음 날 눈을 뜨니 한쪽 눈 혈관이 터져 핏빛이 되었다. 아, 일주일 내내 있을 각종 수련회 강의는 좀비 눈알을 하고 다녀야겠구나. 막막하게 맞은 일주일이었는데 원고도 강의도 미션 클리어 하고 새 아침을 맞았다. 어제 오후부터 자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한 열두 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새로운 몸을 입은 아침이다.


+
그렇게 강의를 많이 하다니 돈을 얼마나 많이 벌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청년부 강의 많이 다녀서 돈 벌었다는 사람 못 봤으니 앞으로도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열심히 달린 후에는 푹 자고, 알아서 챙겨 먹기도 하니 몸도 괜찮다. 볼이 폭 패이고 말라 있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자꾸 각인 시켜주지 않으셔도 된다. 이미 충분히 부끄러운 말라 주름진 얼굴이다. 장기하가 부른다. 별일 없이 산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
사실을 말하자면 강의 마치고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 피곤이 턱까지 내려와 졸음운전 걱정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뭔가 강의 내용이 미흡했던 것 같아 침대에 이르기도 전에 이불킥을 하곤 하지만 말이다. 이른 아침 SRT 타러 가는 길, 식구들 잠든 현관문을 닫고 나설 때 이유 없이 왈칵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원고 써 내놓고 악플까지도 아닌, 부정적인 단어 한 두 마디에 심장이 뛰기도 하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 장보러 마트에 들르면서 누군가 된장찌개 끓여 놓고 날 기다주면 좋겠다 싶어, 문득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음 원고 생각으로 꽉 찬 머리 속에 이 말 저 말 뒤섞여 돌아버릴 지경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
지난 주 가장 멀리 다녀 온 강의가 광주, 수련회 장소는 정확히 전라도 화순이었다. 광주송정역에 내려서 맞으러 나온 청년의 차를 타고 화순으로 가는 중 '주남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임철우의 소설 <봄날>이나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자료에서 본, 너무나 익숙하지만 낯선 주남마을이다. 그리고 보이는 이정표는 보성, 화순, 벌교. 그러니까 민주화항쟁 당시 게엄군이 주둔하며 길을 막았다는 바로 그 길인 것이다. 연애 강의 하러 가는 길인데 내 마음은 온통 80년 광주에 가 있었다. 묻고 대답하는 강의 중 청년들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온 '충정로' 라는 말에도 멈칫했다. 일주일, 강의 다니는 외적인 삶보다 더 많은 일들이 내 마음에선 일어난다. 수련회서 만나는 청년부 목회자들 한 분 한 분이 내겐 의미이다. 황폐해진 청년부를 맡은 1년차 목사님,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청년부를 떠날 수도 있겠다는 목사님, 으쌰으쌰 살아 꿈틀거리는 공동체에서 신뢰받고 행복한 목사님, 작은 청년부를 맡아 온몸으로 뛰는 목사님. 강의 일주일이 아니라 만남 일주일이다.


+
일주일의 마지막 강의. 토요일에 덕산으로 운전하며 가는 중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의 찬송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채윤이를 키우면서 자장가로 그렇게 불러주셨던 찬송이 생각나 혼자 불러봤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주시니 내게 부족한 전혀 없어라' 찬송 가사가 엄마처럼 따스해서 또 왈칵 눈물. 엄마의 찬송 소리를 많이 녹음해 두어야지 싶었다. 강의 마치고 홀가분하게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찬송 불러봐. 못 부른다. 잠시 침묵 후 '예수 소유 하야서 나는 부자 되고 예수 한 분 잃어서 나는 그지 되네' 신청곡 아닌 다른 곳을 혼자 부른다. '엄마, 그거 말고 주는 나르을 기르시는 목짜아요 이거 불러봐' 내가 선창을 해도 못 부른다. '나 다 잊어버렸어. 끊어'란다. 전화 끊고 울며 운전했다.


+
별일 없는 일주일 보내고, 새로운 날들을 맞는다. 일상이 흘러간다. 별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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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베트남 가서 그 장소와 상관 없는 생각이 막 떠오르는 거야. 그럴 수가 있나? 아무튼 가서 꽃친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 (내년에 누나처럼 '꽃다운 친구들'과 함께 1년의 안식년을 가질까 고민 중인 현승) 솔직히 나는 꽃친은 현실도피라고 생각 하거든. 그런데 베트남에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어. 꽃친은 멈추고, 그리고 되돌아 가는 거야. 다들 고등학교를 가잖아. 그게 쭉 가는 거지. 그런데 일단 쭉 나가지 않고 돌아선 거니까 회피는 회피지. 하지만 누나를 보면 되돌아서 가다보니 오히려 이 길이 진짜 누나의 길이었잖아. 길이 하나가 아니야. 방향이 하나가 아니라고. 돌아서서 가는 방향이 어떤 사람에게는 쭉 가는 방향인 거야. 그런 생각을 했어.


++


그런 방향을 정하고 그러는데 부모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애. 그런데 부모는 네비게이션이 아니야. 가장 빠른 길을 딱 정하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는 네비게이션이 되면 안 되고, 지도여야 해. 그냥 부모는 보여주고 아이 스스로 찾아가도록 하면 되는 거야. 엄마 아빠? 지도지! 지도야. 가끔 내가 헷갈릴 때는 네비게이션이 되어 주기도 하지. 


+++


엄마, 내가 원래 하나님을 안 믿잖아. 알지? 내가 목사 아들이지만 교회는 원래 다녔으니까 그냥 다니는 거고 예수님을 믿어서 다니는 건 아니라는 거. 그런데 실은.....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어..... 실은...... 엄마, 나 요즘 기도해. 뭘 해 달라 이런 기도는 아니고. 그냥 굉장히 모순적인 기도를 해. 말하자면 나한테 믿음이 없잖아. 아씨, 나 믿음, 은혜 이런 말 싫어하는데...... 아무튼 내가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게 되거든. 그런데 그 기도를 내가 아직 확실히 믿지 않는 하나님에게 하는 거야. 말이 안 되지? 사실 믿고 싶어서 기도하는 건 아니야. 홀로코스트나 이런 걸 생각하면 나는 하나님이 있다는 걸 아예 안 믿어. 그런데 안 믿는 하나님에게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걸 하고 있다니! 이런 모순적인 기도를 계속 해야 하나? 그런데 나도 모르겠어. 내가 왜 기도하게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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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말고는 가르칠 게 없었습니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 튀어나와 심장에 꽂힌 한 문장이다.

'어느 가족'의 모양새는 엄마 아빠, 아이들과 할머니가 사는 가족이지만 알고 보면 가족이 아니다.

피 한 방울 섞인 것 없는 어른 아이 여섯의 집합이다.

본인들은 끝까지 아니라 우기지만 법적으론 유괴로 얻은 아이가 있고,

그 아이들에겐 도둑질을 가르쳐 생필품을 얻는다.

거주하는 집의 소유주이며 가족의 안정적인 수입원인 연금 수혜자인 할머니도 있다.

이 할머니의 행적도 그리 정상적이진 않다. 


교회에서 잘 쓰는 표현으로 '깨어진 세상의 깨어진 가족'이라고 하면 딱 어울리겠으나

알고 보면 사랑하는 아름다운 가족이다.

법의 잣대로 범죄자 집단으로 치부되어 그야말로 가족이 깨어지고 뿔뿔이 흩어지며 영화는 마친다.


제 집으로 돌아간 막내 유리가 그린 바닷가 파도 놀이 그림에 울었다.

깨어져 없어진 그 아름다운 가족이 그리워 내가 울었다.


모양새 그럴 듯한 역기능 가정과

일그러지고 보잘 것 없는 사랑의 가정 사이 

진정한 가정은 어디 쯤에 있냐고 '어느 가족'이 내게 묻는다.


부모교육 강의나 내적 여정 안내를 하면서 '나의 가족 이야기'는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다.

수많은 가정을 만난다.

그럴 듯한 가족으로 보이고자 덮어 쓴 포장지 아래 질식하여 메말라가는 아이와 어른을 본다.

그럴 듯하게 보이는데 에너지를 소진한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

아이의 바램이 어디 있는지에 쓸 관심과 에너지는 없다.

그런 엄마는 영화 속 유리의 엄마처럼 폭력의 화신이 되고 만다.

영화 속 유괴맘 노부요의 말처럼 사랑해서 때린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아이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양심의 가책은 없었냐는 형사의 질문에

좀도둑 아빠 오사무가 말한다.

그것 밖에는 가르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없는 것을 줄 수는 없다.

내게 없는 것을 돈으로 사서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아이를 질식시킨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아는 부모는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운가.


그리하여 깨어진 가족의 좀도둑 엄마아빠의 자녀교육의 어떻게 되었나?

깨어진 가족을 깨트린 것은 아들 쇼타이다. 

도둑질 하다 일부러 잡히는 것으로 어느 가족을 끝낸다.

동생에게 도둑질 시키지 말라는 문방구 할아버지의 유언 같은 말 때문이다.

사춘기를 지내 어른이 되는 쇼타는 스스로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이상한 사랑의 가족을 잃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끝내야 한다고 용기를 냈을 것이다.

얼마나 잘 키운 아들인가.

얼마나 멋진 자녀교육인가.


폭력적인 정상 가정으로 돌아간 유리의 일상이 아프다.

그것이 현실이다.

유리가 그린 그림을 다시 보러, 

아니 그 행복한 바다 놀이 장면을 다시 보러,

깨어진 아름다운 어느 가족을 다시 보러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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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내적여정 세미나 안내입니다.

(드디어 주말 세미나! 토요일입니다)


에니어그램 세미나 1단계는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합니다.
영성과정에선 자연스럽게 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내게 하나님은 누구신가’

평생 무언가를 찾아 밖으로 헤매던 시선을 안으로 돌려보는 시도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일상에서 물러나 마음 깊은 곳으로 떠나는 피정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을 가지고요. 


[일시]
. 기본1 : 2018년 9월 8일(토) 오전 10:00 ~ 오후 5:00

. 기본2 : 2018년 10월 6일(토) 오전 10:00 ~ 오후 5:00
. 심화1 : 2018년 11월 3일(토) 오전 10:00 ~ 오후 5:00
. 심화2 : 2018년 12월 1일(토) 오전 10:00 ~ 오후 5:00
. 영성 : 2018년 12월 22일(수) 오전 10:00 ~ 오후 5:00

[장소] 한빛누리 재단 3층 Hearts&Minds (종로구 자하문로 8길 17, 3호선 경복궁역)

[인원] 9명 (선착순)      [참가비] 각 강좌 12만 원

[문의] 010-6209-0635 010-4235-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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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맞는 돋보기가 없어서 ‘읽기’를 포기하신지 오래다. 

94세 우리 엄마. 

‘저녁 먹었응게 예배 드리야지. 같이 드릴려? 안 혀? 그려’ 

하고 가.정.예배 드리러 들어가셨다. 


설거지 하고 살짝 문 열어보니 돋보기 끼고 찬송가 펴놓고 부르고 계신다. 

어? 엄마, 보여? 

아니이, 잘 안 보이는디 그냥 감이루 보고 불러. 23장 맞지?” 17장 펴놓고 부르신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리라.


내가 확인한 바, 엄마의 가정예배는 쉬지 않고 50년 째다. 

어렸을 적엔 그렇게 우리를 닦달하던 시간이다. 

아주 그냥 저녁마다 정말 고달픈 시간! 

식구들 다 떨어져 나갔는데 원망도 그 무엇도 없이 혼자 여전히 지키는 가정예배 시간이다.


동생 식구가 휴가를 가서 아기가 된 엄마 돌보러 친정에 왔다. 

저녁 먹고 앉아 1000번도 더 들었던 몇 개 남지 않은 인생 에피소드 레퍼토리를 꾹 참고 들어드렸다. 

그리고 엄만 예배를 드리러 들어간다. 

저런 엄마 팔아서 쓴 원고를 넘기곤 온 날이다. ㅠㅠ 그

래서인가. 더욱 마음이 저릿하고, 지난 세월이 미안하고..... 같이 있어도 벌써 그리운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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