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부터 <청소년매일성경>에 연재합니다. 독자가 청소년인 것도, 주제가 너도 나도 전문가인 MBTI라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MBTI 과몰입 친구들의 '자기만의 MBTI' 때문에 답답해 죽겠는 딸 아들의 도움을 받아 한 번 써보기로요. MBTI 지표 설명보다는 사용법, 태도에 대해 다루려고요. MBTI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Carl Jung의 심리유형론의 관점을 피력하고자 하는데... 이 깊은 영성심리를 청소년들 눈높이에 맞추는 게 관건이네요. 그래서 이름도 Jung 쌤으로 갑니다. 정 쌤이기도 융 쌤이기도. 첫 번째 글입니다.
너, MBTI가 뭐야?
안녕. 나는 Jung 쌤이라고 해. 앞으로 여기서 MBTI를 좀 가르쳐줄 거야. 아, 그런데 QT와 MBTI가 무슨 상관?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MBTI를 무척 좋아하고, MBTI에 진심인 편이긴 한데, 그냥 MBTI는 아니야. 성격과 성경, 말씀 묵상과 기질, 성격과 하나님 형상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에 지대한 관심이 있지. 너는 MBTI가 뭐야? 나는 ESFP야. 유형만 들어도 딱 알겠지? 이 글은 일단 무조건 재미있을 예정이야. ESFP는 재미에 죽고 살거든.
나는 MBTI를 좋아하는 만큼 내 유형인 ESFP를 좋아해. 물론 내 유형을 거침없이 좋아하기까지 사연은 좀 있고. 일단 소개를 좀 더 할게. 내 본래 직업은 음악심리치료사야. 음악치료를 잘하기 위해 MBTI를 배웠는데, 이게 너무 재밌는 거야. 세상에나! 모르던 내 마음을 알려주는가 하면,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 막막 이해되니까. 본업인 음악치료보다 MBTI 같은 성격심리학 공부가 더 재밌어서(나, ESFP...) 신나게 매진했지. 한 20년쯤 됐어. 하아, 그러니까 너네들 태어나기 전부터!
생각해 보면 음악치료를 전공하게 된 것도 다 사람 마음에 대한 관심이었어. 어렸을 적부터 사람 마음이 궁금했거든. 아니, 내 마음이 궁금했어. 분명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왜 이리 싫은 사람이 많은 거야. 학년마다 반에 싫은 애가 꼭 한두 명 있더라고. 학년이 바뀌고 반이 갈라져서 쟤랑만 헤어지면 모든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지 싶어서 일 년 참아보건만, 그런 애는 꼭 다시 생기고. 게다가 왜 그리 마음은 쉽게 이랬다저랬다 하는지. 내 마음 나도 몰라, 라는 말이 있듯이 내 마음이 너무 어려운 거야.
시편 기자가 이렇게 기도했어.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 139:13-14a) 기묘하다고 하네. 우리를 만드신 것이 기묘하다고 하니 어려운 게 맞아. 인간을 기묘하게 만드셨으니, 기묘한 마음을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거지. 그 앞에는 대놓고 이렇게 기도했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6절)
도통 모르겠는 마음의 모양을 대략 구분하여 알려주는 것이 성격유형 도구야. MBTI도 그중 하나인데. MBTI 유형으로 내가 설명되고 친구의 마음을 알아지는 게 놀랍잖아. 내 발로 다 밟을 수 없는 넓고 복잡한 땅을 지도로 볼 때 느낌일 거야. 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 이제 내가 내 유형을 찾게 된 사연을 조금만 들려줄게. 처음 MBTI와의 만남은 교회 청년부에서였어. 소문은 들어서 이름만 알고 있던 MBTI였어. 아무것도 모르고 일단 검사를 당했지. 검사결과는 INFP였어.
INFP라니!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결과였는데, 웃긴 건 그때 “맞아, 맞아. 나 완전 이래!” 했다는 거지. 이런 경우는 INFP는 ‘검사 유형’이라고 해. 다시 말하면 검사결과와 내 진짜 유형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거지. 사실 INFP가 나온 이유가 있었어. 당시 썸타는 남자애가 있었거든. 그 애가 INTJ였어. 내향형에 직관형인 그 친구가 그렇게 좋아 보이는 거야. 나도 모르게 그 친구와 비슷한 점을 찾게 되고, 그 마음이 체크 리스트에 반영된 거지.
그러니까 분명한 건 말하자면, 내 진짜 유형(true type)과 MBTI 검사로 얻은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거야. 검사할 때마다 다르게 나온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데, 같은 이유야. 내 진짜 유형이 무엇인지 결론 내리는 사람은 나 자신이야. 사실 나에 대한 전문가는 나거든. 검사는 어쩔 수 없이 그때그때 내 바람과 스트레스를 반영하게 돼.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의 성향이나, 엄마가 되라고 하는 모습을 체크할 수 있다는 거지.
물론 MBTI는 통계학적으로 신뢰도 타당도를 인정받은 검사 도구야. 단, 전문기관과 전문가에 의한 것이라면! 인터넷에 떠도는 무료 검사들은 신뢰하지 않는 게 좋아. 아무튼 자기 진짜 유형을 찾고, 그 유형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유로워져. 심지어 매력적인 사람이 돼. 그게 MBTI가 주는 선물이라니까. 나만의 장점, 나만의 약점, 나만의 사랑법, 나만의 말씀 묵상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되고, 그렇게 자신을 아는 사람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지.
자기 유형을 정확하게 알고, 진심으로 좋아해야 MBTI를 통해 가장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어. 주변에 그런 친구 없어? 누가 봐도 E(외향형)인데 자기 I(내향형)이라고 우기는 애 말야. 그런 게 제일 문제다. 자기 유형을 잘못 알고 엉뚱한 하게 우기면 좀 난해한 상황이 돼. 매력이 없고, 가까이하기 싫고 그런 친구가 될 수도 있어. 내가 그런 애를 딱 알거든. 어, 음, 아... 실은 그게 나였어. 그 얘긴 다음에 들려줄게. 아무튼, 오늘은 이걸 묻고 싶었어. 너 MBTI가 뭐야? 음, 네가 알고 있는 너의 MBTI 유형은 정말 너의 것일까?
“기도해보고 결정할게요.” 청년부 시절 한 사람이 가끔 난다. 크고 작은 결정사항 앞에서 늘 이렇게 대답했다. 주보에 실을 수련회 후기를 써달라 부탁한 적이 있었다. “음, 기도해보고 결정할게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걸 두고 뭐라 할 수도 없는 것이 부모님 계신 고향에 갈 때도 버스를 탈지, 기차를 탈지 기도하고 결정하는 친구였으니. 그저 그의 하나님께서 글을 쓰라는 결재를 내려보내시길 기도(아, 기도!) 할 수밖에. 그의 말에 자주 거부감을 느꼈다. 실은 이 친구가 싫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집사님이 계셨다. 친절하게 손잡아주고 위로해주시는 따뜻한 분이기도 했다. 가끔 교회 복도에서 마주쳐서 이런 말씀만 하지 않으시면 참 좋았는데. “정 선생님, 요즘 힘들어요? 내가 기도해보니까 정 선생님이 힘든 것 같던데…… 하여튼 힘내요. 내가 늘 기도하고 있으니까.” 위로로 다가와 순간적으로 울컥하려는 감정을 확 밀어 넣게 되었다. (인생 힘들지 않은 순간이 얼마나 있다고!) “하나님도 참. 제가 힘든 걸 아시면 저한테 직접 말씀하시든지, 해결을 해주시든지. 왜 집사님께 뒷담화를 하시죠?” 속으론 그렇지만, 대충 훈훈한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돌아서는 마음은 한없이 갑갑했던 기억.
기도하면 뭐가 그렇게 잘 보이고, 하나님 음성이 잘도 들리기론 우리 엄마가 1등이었다. “엄마가 기도해보니까 이번 일 잘 되겠더라. 기도 끝에 니가 활짝 웃더라고.” 엄마가 기도해보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시험도 잘 볼 거고, 면접 결과도 좋을 거고, 맡은 행사 잘 진행할 거고, 아픈 데는 큰 문제 아닐 거고. 어쨌든 엄마의 기도는 힘이 되었다. 시험 기간에는 내 시간표에 맞춰 꼼짝하지 않고 내내 기도를 하셨다. 공부는 안 했어도 엄마 기도 때문에 든든했다. 문제는 이랬던 엄마가 “엄마가 기도해보니 너 그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이런 점괘, 아니 응답을 받아올 때였다. 가령 엄마 마음에 차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고 다닌다든지 할 때.
기도라는 이름의 욕망의 투사, 기도로 위장된 간섭과 통제, 기도라는 이름 뒤에 숨은 회피를 드러내는 예는 신앙생활 일상에 허다하다. 이런 행태를 간파하고 비판할 신학적 지식과 판단력이 내게 없지도 않다. 기도에 관해 읽은 무수한 책들이 내 편인 듯한데 무언가 찜찜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자고 저 기억들은 30여 년, 10여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 청년, 그 집사님, 엄마 앞에 섰을 때의 ‘벽’이었다. 막힌 느낌,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느낌. 그 벽의 이름이 인간의 가장 성스러운 행위인 ‘기도’라는 것이 무엇보다 큰 좌절이다.
닫힌 종교와 종교 중독
독실한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나 조부모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그 전통 안에서 진리를 찾고자 애썼던, 이후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가톨릭 신자가 된 쉴라 파브리칸트 린(Sheila Fabricant Linn)의 영적 여정에 공감되는 바가 크다. 유대교 전통 안에서 만물 안에 현존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가톨릭 신학교에서 만난 교수들의 열린 태도와 사랑에 안내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 종교를 넘나들며 그가 고민한 것은 ‘열림과 닫힘, 그리고 자유’였다. “(종교 안에) 닫혀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도달했단다. 그렇게 기독교 신자가 된 쉴라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다시 이런 질문 앞에 섰다고 한다. “왜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어떤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보다 더 닫혀 있게 하는가?” 유대교 공동체에서 만났던 벽을 자유를 찾아 안착한 기독교 안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중독과 회복’에 대한 이해에서 찾게 되었다고 한다.
쉴라와 그의 동료들이 정의하는 중독은 ‘우리의 삶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현실 특히,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피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실체 또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중독의 목적은 한마디로 ‘자신과 대면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발견은 종교나 종교 행위들이 약물이나 알코올처럼 내면 안에 있는 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종교 중독’을 정의한다. 종교 중독은 ‘엄격한 믿음의 체계를 통해서 고통스러운 내면의 실재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엄격한 믿음 체계 안에 갇혀 모든 문제를 종교적 행위로 환원시키는, 그렇게 함으로 마주해야 할 내면의 진실로부터 끝없이 멀어지는 것이 중독 행동의 양태이다. 이 같은 중독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야기가 『어린 왕자』에 나온다.
“거기서 뭘 하고 계시죠?” 빈 병 한 무더기와 술이 가득 차 있는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술꾼을 보고 어린 왕자는 물었다. “마시고 있다.” 술꾼은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마셔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잊으려고.” 술꾼이 대답했다. “무엇을 잊어요?” 어린 왕자는 벌써 그를 불쌍하게 여기며 캐물었다. “내가 부끄러운 놈이란 걸 잊기 위해서.” 술꾼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털어놓았다. “뭐가 부끄러운데요?” 어린 왕자는 그를 도와주고 싶어 자세히 물었다. “마신다는 게 부끄러워!” 주정뱅이 말을 끝내고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어린왕자』 열린책들 (52쪽)
위의 세 사람, 기도에 특별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내게 벽으로 느껴진 이유는, 모든 대화가 ‘기도’나 ‘하나님’으로 환원되는 것이었다. 도통 대화의 주제, 문제의 핵심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배우자나 아이의 신앙 성장을 위해 기도하는데, 열심히 기도하는데 그들의 신앙이 성장하기는커녕, 관계만 더 나빠진다면, 종교 중독 증상을 의심해봐야 한다. 기도할수록, 신앙에 열심을 낼수록 배제하고 배척할 대상이 많아진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행위를 강박적으로 지키고, 그것만이 옳다는 확신 속에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닦달하고 통제하고 있다면 거의 확실하다. 여타의 중독과 달리 종교 중독이 가진 치명적 해악이 여기에 있다.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누가 봐도 나쁜 것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이 있다. 책상 밑에, 장롱 안에, 술병을 숨겨두거나 ‘난 그 정도는 아니야’하며 자신의 중독 행동을 깎아내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종교 중독의 행위들은 곧바로 종교적 자부심이 된다.
새벽기도, 십일조, 주일성수 등의 행위가 진실한 자기 대면을 대체할수록, 즉 중독 증상이 심화 될수록 흔히 믿음 좋은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 중독 권하는 교회에서의 현실이다. 청년부 시절 그 친구, 교회 복도에서 만나는 집사님, 엄마가 “내가 기도해보니까”라며 치고 들어오면 반격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너는 저들만큼 기도하냐?”는 목소리가 내 안에 울린다. 기도와 말씀 생활에 할애하는 절대 시간을 비교하면 나는 작아지고 만다. “기도도 안 하는 것들이” “주일성수도 안 하는 것들이” 중독 행동으로 공격한다면 방어할 도리가 없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들 기도 중독자를 어떻게 당해낼 것인가. 부끄러움 없는, 거침없는 중독 행동에의 몰입은 필연 ‘나만 옳다’는 자아 중독으로 귀결된다. 자아 중독의 몹쓸 폐해, 다른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은 방식으로 믿어야 한다고 확신하며 통제하고 억압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자기와 다른 방식으로 신앙하는 사람을 배제하고 심지어 혐오하기에 십상인 것이다.
누가 종교 중독자인가?
『중독과 은혜』를 통해 제럴드 메이(Gerald G. May)가 우리에게 준 충격적인 통찰은, 우리 모두 중독자라는 것이다. 출간된 지 한참 된 그 책이 아직도(아니, 이제야) 사람들 사이 회자 되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경험적 증거가 쌓여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코올이나 마약 등, 약물 중독을 넘어 비물질적인 것들에의 중독 증상이 당신과 나의 일상에 흔하다. 어느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다.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 열 명이 있다면 그중 7명은 알코올 중독이라고. 누가 종교 중독자인가? 신자 10명이 있다면 그중 7명은 종교 중독자 아닐까?
종교 중독은 여타 물질 중독과 달리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다. 스티븐 아터번(Stephen Arterburn)과 잭 펠톤(Jack Felton)의 『해로운 신앙』에서는 종교 중독자를 진단하는 다양한 지표들이 나와 있다. 그 지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특히 동기를 더듬는 일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체크리스트 몇 항목으로 단정 지을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행위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떤 사람의 열정적 행위가 사랑의 발로인지, 자기과시이거나 현실도피인지를 누가 판단할 수 있겠는가. 오직 동기를 달아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All a man's ways seem innocent to him, but motives are weighed by the LORD. 잠 16:2, NIV)
‘무의식’의 지도로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그려낸 프로이트(Freud)의 업적을 이은 신 프로이트 학파의 분석가 카렌 호나이(Karen Horney)가 열어준 마음의 세계는 더 깊고 영성적이다. 정신 병리적 관점으로 환자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치유할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의 이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건강한 성격발달과 성격장애 사이 어디 즈음에 있다.” 종교 중독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영성발달과 종교 중독 사이 어디 즈음에 있다.”
위의 기도 중독자 세 사람을 대놓고 비난할 수 없었던 것은, 단지 내가 그들만큼 기도하지 못해서만은 아니었다. 종교 중독의 개념을 처음 배웠을 때, 그런 종류의 신앙인에게 붙일 언표를 얻고, 속이 시원했다. 주변의 불편한 신앙인들, 하나님을 믿는지 산신령님을 믿는지 알 수 없는 기복신앙을 비추는 만능 거울을 손에 넣은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거울에서 낯익은 얼굴이 어른거리니, 그것은 엄마의 얼굴이 아니라 엄마를 닮은 내 얼굴이었다. 누가 종교 중독자인가? 나다. 내가 종교 중독자이다. 나는 한때 지독한 종교 중독자였다. 아니 지금도 회복 중인 중독자이다. 이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중독과 은혜』의 저자 제럴드 메이가 먼저 길을 열어주었고, 그의 진실한 고백과 연구로 가만히 나를 진단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백이다.
“나는 니코틴, 카페인, 설탕, 초콜릿, 등 다양한 물질들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물리적 중독’일까 혹은 단지 ‘심리적 의존’이었을까?…… 결국,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물질에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끝없이 나열할 수 있는 다른 수많은 행위에도 중독되어 있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중독자이며, 알코올이나 다른 약물들에 대한 중독은 다른 종류의 중독들에 비해 그저 좀 더 명백하고 비참한 중독일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살아 있다는 것은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하다.” 『중독과 은혜』 IVP (21, 23쪽)
종교 중독, 유발자는 누구인가
종교 중독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성적 학대 분야의 권위자인 패트릭 칸스(Patrick Carnes) 박사가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우리의 연구는 아동 학대가 중독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 …… 그리고 아동기에 학대를 많이 받을수록, 성인기에 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독과 학대 경험은 떼어 설명하기 어렵다. 아동기 학대 경험이 중독으로 이어진다면, 종교 중독은 영적 학대와 맞물려 있다고 하겠다. 폭력적인 부모에 의해 아동 학대가 발생한다면, 폭력적인 영적 지도자에 의해 종교 집단의 영적 학대가 일어난다. 아동이든 종교 생활을 하는 성인이든 학대의 피해자는 치명적인 약자이다. 학대 가해자가 가진 힘과 권력에 대한 피해자의 두려움은, 학대를 지속시키는 동력이 되어 악의 고리를 더 강화하게 되어 있다.
앞의 쉴라 파브리칸트 린(Sheila Fabricant Linn)과 한 팀인 마태오 린(Matthew Linn, S.J)신부는 정서적 학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두 살 아이에게 열 살 아이처럼 행동하도록 기대하거나, 열 살 아이에게 두 살 아이처럼 계속 의존하도록 하는 것’. 그대로 영적 학대에 빗댄다면 아직 믿음의 초보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성숙한 신자의 종교 행위를 강요하고, 충분히 성숙한 사람을 유치한 신앙과 신학으로 통제해 목회자에게 의존하도록 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하나님 이미지의 투사 대상이다. 아동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한 인간의 신적인 연결을 위해서는 ‘매개자로서의 다른 인간’과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로 그 매개자 역할을 공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목회자, 종교지도자이다. 종교 중독 유발자는 일차적으로 이런 목회자들이다. 신도들의 영적 갈망, 세속적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 그들이 가진 수치심(하나님 앞에서 뭔가 늘 부족하다는 느낌, 존재 자체에 흠이 있다는 느낌)과 (징벌에 대한) 두려움을 연료로 삼아 종교 행위를 활활 불태우도록 하는 목사들 말이다. “집사님, 이렇게 기도를 안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아이 앞에 시온의 대로를 열어주시겠습니까?”
모든 중독의 핵심적인 감정은 ‘수치심’이다. 학대 피해자로 자란 아이들은 수치심을 내면화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항상 울리는 메시지가 있다. “믿지 마, 느끼지 마, 생각하지 마.”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혹 느끼거나 생각하더라도 자신의 그것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독으로 이어지는 학대의 메커니즘이다. 신앙의 여정에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자신의 느낌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목회자들이 영적 학대자들이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다른 사람의 영적 여정을 통제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학대라고 하였다. 종교 중독을 유발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목회자는 학대자이다. 역할로 부여받은 목회적 권위를 권력 삼아 휘두르고, 하나님과 자신을 동급으로 여기는 과대망상에 빠진 목사를 추종하는 교인들이 심각한 종교 중독 증상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중독에 빠진 책임과 거기서 벗어나야 할 의무가 당사자에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동 학대 피해자와 달리 우리는 힘을 가진 성인이고, 무엇보다 직접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이다. 성인 학대 피해자의 힘의 부족은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한다. 그 무력감이 ‘학습’되었다면 새로운 ‘학습’이 필요하다. 참된 앎으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현실 특히,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피하고 통제하기 위한 빠른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을 대면하지 않기 위해 의존하는 종교적 행위들이 중독의 실체임을 알고,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다시 술을 마시는 순환을 멈추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중독 치료로 알려진 A.A(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를 창설하고 12단계 회복프로그램을 만든 빌 윌슨(Bill Wilson)은 중독자를 일컬어 “통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두통이 있는 사람”과 같다고 했다. 느끼지 않기 위해 기도하고, 교회 봉사를 하고, 헌신하고, 하고, 하고, 하는…· 망치질을 일단 멈춰봐야 한다. 두렵더라도 두통의 실체를 맞서고 드러내야 한다. 망치질 권하는 학대자의 목소리를 분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학대자와 함께 중독 유발자가 되는 것이고, 그 피해는 오롯이 망치질에 부서지는 자기 머리통이다.
종교 중독의 치유, 다시 잇기
A.A 12단계의 1단계는 이렇다. “우리는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우리의 삶을 수습할 수 없게 되었음을 시인했다.” 즉,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만큼 중독에서 벗어나는데 명확한 첫걸음은 없다. 우리 모두 종교 중독과 건강한 영성발달 단계 사이 어디쯤엔가 있다면, 건강의 지표는 중독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실존적으로 인정하는 정도가 아닐까. 다시 말하면, 회복과 성장을 위한 희망은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나는 결코 종교 중독자일 수 없다,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인이다” 자부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철저하게 타자화하고, 거침없이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타자화한 그 존재와 유사한 경우가 많다.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자기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저 사람 사기꾼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내면에 사기꾼의 개념도 있어야 하고, 그 개념을 형성한 직간접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 타인의 종교 중독이 알아 차려지고 유난히 잘 보이는 것은 거기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일군의 노인들이 서명대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소동 후에 행패를 부리던 노인 한 명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정혜신 박사는 소란에 대해 말하지 않고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었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시작했다. 노인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 얘기 등,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한참 만에 노인이 불쑥 꺼낸 말이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세월호 유가족)들한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였다. 나는 광화문에서 세월호에 욕설을 퍼붓는 노인을 떠올리면 지독한 종교와 이념에 복합적으로 중독된 구제 불능의 중독자가 연상된다. 종교 중독의 그러데이션에서 가장 진한 부분, 저쪽 끝 어디에 두게 된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자기 성찰을 끌어낸 정혜신 박사의 내적인 힘이 놀랍기만 하다. 그 책에서 내내 말하는바, 존재에 주목하면 이어진다는 것이다.
종교(religion)의 어원 re-ligio는 “다시 묶는다, 다시 띠를 두른다”라는 뜻이다. 나와 타자, 나의 실존과 일상의 고통, 지금의 나와 미성숙했던 나를 분리하는 한, 중독의 회복도 영적인 성장도 불가능하다. 분열된 것들을 다시 잇는 참된 종교의 회복이 종교 중독으로부터의 치유이고,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회심인지 모르겠다. 잠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우리에게 ‘연결되자’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인지 모르겠다.
* 출처 : 월간 <복음과 상황> 356호(2020년 7월호) 커버 스토리 “중독과 열정 사이”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마치고 맞은 겨울방학이었다. 겨울에 태어난 친구가 집에서 축하모임을 한다고 초대를 해왔다. 교회 동기들이었고 예닐곱 명의 남자아이들과 함께 나는 유일한 여자였다. 시험 결과야 어떻든 자유로움으로 붕붕 뜬 시간을 보내는 중에 한바탕 놀 기회라니. 신나게 달려갔을 것이다. 친구 어머니께서 떡 벌어지게 차려 내놓으셨다. 기분 좋게 떠들며 식사를 하려던 찰나, 상 밑에서였는지 아니면 밖에서였는지 맥주병과 잔이 함께 들어왔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이미 주(酒)를 영접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 같았다. 그 순간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깽판을 치고 나온 것이다. 센 여자 하나에 착한 남자 친구들이 모인 집단이라 당시 내 별명은 ‘꼬맹이’였으나 영향력이 작지는 않았다. 모르긴 해도 밥맛, 술맛, 놀맛이 싹 다 떨어졌을 것이다. 다시 떠올리기도 부끄러운 바리새인 같은 짓이었다. 술도 술이지만 다른 친구도 아니고 교회 친구들과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신다는 것은 더 큰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고백컨대, 나는 당시 회심이 필요한 ‘모태 바리새인’이었다.
입장 바꿔 누군가 내가 한 그 짓을 했으며, 나는 그 엉망이 된 자리에 남겨졌었다면 그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겨진 친구들이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하고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없으나 다행히도 이후 다시 문제 삼지 않았다. 여전히 만나면 찧고 까불며 오랜 시간 좋은 친구로 지냈다. 실은 이런 진상 바리새인 짓이 처음은 아니었다. 여름 수련회 가면 숙소 뒤편 으슥한 곳에 숨어 담배 피우는 친구들을 잡아 전도사님께 고발했다. 바리새인에 어용 경찰(‘짭새’라 부르는 게 제격)이었다. 한 번은 수련회 기간 중 식사시간이었는데 친구 녀석들이 보이질 않았다. 악랄한 경찰관으로서 느껴지는 촉이 있어서 수련회 장소였던 교회를 빠져나와 가게들이 있는 곳으로 나갔다. 어느 식당에 모여 닭볶음탕을 시켜놓고는 희희낙락하고 있는 친구들을 현장범으로 체포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한 마디에 착한 친구들은 보글보글 끓는 닭볶음탕을 입에 넣어보지도 못하고 줄줄이 수련회장으로 연행되었다. 이런 짓을 했다. 친구들아 미안했어, 라고 말하고 싶어 글을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쓰고 보니 그것이 아니다. 당시 ‘믿음은 내가 일등이지.’ 하는 우월감으로 살았지만 인간적으로 더 성숙한 쪽은 오히려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아, 그때의 나를 받아줘서 고마워, 못 이기는 척 당해줘서 고마워.
바리새인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교회의 청년부에서 교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주일, 청년부 모임 후 장애인 시설 봉사를 마친 후였다. 선배 한 사람이 주도하고 몇 사람이 어쩌구저쩌구 하더니 우르르 치킨 집으로 몰려가게 되었다. 자연스레 ‘치맥’ 타임이 되었다. 걸걸한 여대에 다녔고 직장생활도 하면서 술과 술자리는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때였다. 그럼에도 고3 겨울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불편함으로 마음이 일렁거림은 부인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편하게 마실 일이지 굳이 교회 사람들과 술을 마셔야 하나?’부터 시작해서 ‘믿음이 연약한 후배들이 시험 들면 어쩌려고’까지 여러 생각이 오갔다. 그러나 결코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관리도 아주 잘했다. 문제는 돌아와서, 그 이후 마음에 쌓았다 부수고 쌓았다 부순 정죄의 모래성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하나하나를 향해 보이지 않는 집게손가락을 흔들어댔다. 차라리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했던 폭력적 태도가 솔직하여 순수한 듯. 얼굴을 마주하고 한 마디 비난의 말을 한 적 없지만 마음이 한 짓은 어마어마하다. 겉으로는 큰 갈등 없이 그 시절을 지냈다.
나이를 먹었고 나도 이제 중년이다. 인생의 정오를 지나 오후로 접어든 어느 시점, 신앙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함께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신앙하며 살아온 모든 나날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에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긴 터널의 끝에서 내가 다시 보였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율법의 우산 속을 더 안전하게 느끼며 살아온 바리새인, 내가 보였다. 아픈 깨달음과 함께 두 번째 회심의 순간이었다. 그즈음 문득 청년 시절 치킨 집에 함께 둘러앉았던 사람들 생각이 났다. 주도했던 선배, ‘가끔 이렇게 알코올로 내장 소독을 한 번씩 해 줘야죠.’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고 애썼던 후배, 그리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조목조목 따졌던 내 마음의 소리가 부끄럽고 아프게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내 마음속에서 벌어진 전쟁이라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어떤 배역으로 등장했는지 상상도 못하겠지만 이렇듯 기회가 주어졌으니 ‘미안했어요.’ 속으로 말해본다.
자신을 일컬어 ‘부랑아’라 했던, 그리하여 ‘부랑아 복음’을 설파했던 브레넌 매닝은 바리새인을 이렇게 진단한다. ‘자신에게 아무 결함도 없다는 믿음이 그의 결함이다. 그는 남을 경멸한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자기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는 자기 의에 빠져 불의하게 남을 정죄하는 사람이다.’ 과연 그 시절 나는 ‘내가 옳다, 나만 옳다’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주일에 며칠 씩 교회 가서 청년부, 주일학교, 성가대 등에 남다른 봉사하며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는 등 근거 충만한 자부심이었다. 말 그대로 나의 의에 빠져 죄책감 없이 누구든 정죄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정말 미안해해야 할 대상은 어린 날의 나, 젊은 날의 나 자신인지 모르겠다. 종교적 우월감으로 자아에 도취해 있는 동안 가장 외롭고 불행한 것은 나였으니까 말이다. 대입 시험 마치고 가장 홀가분한 시절, 신나게 먹고 놀며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박차고 나와 씩씩대며 걷는 어린 나를 상상해본다. 마음의 법정을 열어 이 사람 저 사람 돌려세우며 기소하고, 선고를 내리던 젊은 날의 나를 떠올려도 그렇다. 정작 감옥에 갇혀 자유를 잃은 것은 나 자신이었다. 율법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내적인 자유라고는 맛보지 못했으니 정작 못할 짓은 나 자신에게 한 것이다. 어쩌다 어린 시절부터 바리새인이 습성이 몸에 딱 붙어 그 누구보다 나를 괴롭게 했다. 친구들과 이웃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켰고 그것은 다시 왜곡된 우월감이 되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우월감은 내면 깊은 곳으로 감추고 겸손한 말투와 태도로 위장하는 방식은 세련되어 간다. 어린 나, 젊은 날의 나, 아니 어제의 나에게 미안하다 말해본다. 아픈 직면과 회심을 통해 다시 그러지 말자 다짐했건만 여전히 입은 줄도 모르게 이미 입고 있는 바리새인의 갑옷이다. 미안할 줄 알면 다시 하지 말아야지! 나 자신에게, 나의 이웃에게 미안할 짓 하지 않는 오늘을 사는 것, 나의 기도는 이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혼자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하는 말이다. 낙서 같기도 피카소 작품 같기도 한 그림 한 장, 대충 쌓은 것 같은 블록 몇 개, 심지어 어떤 때는 도대체 뭘 보라고 부른 것인지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와우, 잘 만들었는데’ 엄마의 피드백에 의기양양해져 또 다른 작품에 도전하며 자신감을 키우고 몸과 마음이 자랐다. 자아의식이 생기던 그때부터 우리는 ‘바라봐 주는 누군가’를 부르고 찾고 기다린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빠르게 보편화된 SNS는 앞 다투어 현시 욕구를 발산하고 충족시키는 광장이 되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고 있다, 난 이런 멋진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여친과 나 멋진 곳에서 데이트 중이다.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띄운다. 그리고는 페친들의 ‘좋아요’를 기다린다. 어렸을 적 엄마가 ‘어머, 우리 아들 잘했어!’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관심이겠지만 그럴듯한 나를 봐주고, 부러워해주는 것이 좋다. 표현하는 방법이 조금 더 세련되고 아니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 속 욕구는 비슷할 것이다.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면 왜 굳이 일기장에 쓰지 않고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내놓겠나. 올리자마자 속속 늘어나는 ‘좋아요’ 개수에 기분이 좋아지고 심지어 존재 자체로 인정받은 느낌까지 든다. 우린 모두는 봐주는 사람이 필요한 존재이다.
나도 널 본다
나도 수시로 본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친구들의 ‘지금 여기’를 본다. 친구의 글과 사진을 본다고 믿지만 많은 경우 그 '글'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내 마음'을 비춰보는 것이다. '그 사람'의 '그 글'이 불편하고 '보기 싫다'고 느끼지만 불편함과 보기 싫음의 절대 잣대는 없다. 그 글이 내.게. 불편한 것이다. 내게는 몹시 불편한 글을 다른 멀쩡한 사람이 매우 좋다고 열광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떤 친구의 여행사진에는 기분 좋게 ‘좋아요’ 해줬는데, 오랜만에 일상을 떠난다는 다른 친구의 공항사진에는 ‘그래, 너 잘나가서 좋겠다. 좋은 직장이라 돈도 잘 벌고 휴가도 마음대로 낼 수 있으니’ 하며 싸늘하게 쓱 밀어내리기도 한다. 저녁으로 뭘 먹었다는 시시한 글에 '좋아요' 누르는가 하면, 어떤 친구가 고백하는 깊은 아픔을 읽으며 '위선 떨고 있네' 하며 시야에서 쓱 치워버리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 '투사'는 일상에서 늘 일어나지만 얼굴 맞대고 커피 한 잔 하면서 자연스레 해소되는 것이 많다. 휴가내고 해외여행 간다며 공항사진 올린 친구를 우연히 만나 ‘여행 갔더라. 잘 다녀왔어?’ 물었는데 직장 상사로 인해 사직을 고민하는 중이었다는 얘기, 그 얘길 하는 친구의 피곤하고 슬픈 눈을 마주하고는 ‘잘 나가서 좋겠다’며 뒤틀렸던 심사가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의 이미지로만 관계를 맺는다면 결국 투사 속에 허우적대다 과대망상, 피해망상 속에 빠져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본다
애매하게 주어를 생략해서 쓴 위의 이야기들은 불특정 페북 이용자들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즉흥적인 반응에 강하고, 감각적인 농담 따먹기는 더 좋아하는 터라 페이스북은 딱 내 스타일이었다. 무엇보다 현시욕 강한 내게 페이스북은 재미와 의미가 공존하는 놀이터였다. 문제는 항상 바보들의 놀이 ‘비교’에서 시작한다. 본업은 아니지만 어쩌다 B급 글쟁이로 이런 저런 글을 쓰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은 내 글과 다른 사람의 글을 줄을 세워 보여준다. ‘에잇, 이 사람은 도대체 언제 이렇게 책을 많이 읽은 거야. 글은 또 왜 이렇게 잘 써?’로 시작해서 투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마음은 금세 지옥으로 내려간다. 내 글보다 나을 것도 없는데 ‘좋아요’가 엄청나게 붙은 페친의 글을 째려보고, 허점을 찾아내고, 그러다 자존감이 쪼그라든다. 신앙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의 수려한 글을 읽다보면 심장이 벌떡거린다. 나보다 기수도 낮고 공부도 그리 잘했던 것 같지 않은데 교수님 호칭을 달고 있는 후배를 페친으로 만나는 날엔 유치한 줄 알지만 우울해지는 마음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 이미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투사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치러야할 시간적 정서적 비용이 컸다.
나만이 나를 본다
연금술에서 ‘바스 헤르메티스’(‘vas hermetis’ 라틴어로 ‘헤르메스의 그릇’)라고 불리는 금을 만들 때 사용하는 그릇이 있단다. 그 안에 납을 담고 그릇을 밀봉한 뒤 열을 가하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행여 그릇이 깨지거나 금이 가서 열기가 새어나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단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그릇을 ‘테메노스’(Temenos) 즉 심리적 그릇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새어나가지 않는 나만의 비밀이 있는 장소이다. 새어나가는 비밀이 없이 고요히 침잠한 심리적 에너지가 쌓일 때 납이 금이 되듯 심리적으로 성숙하고 통합된 인간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금으로 단련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에너지를 단속할 일이다. 페이스북 등 SNS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다 뒤로 빠지고 그러다 어느 새 다시 몸을 담그고, 또 한 발 물러나고……. 이런 지점에서 나는 ‘테메노스’를 생각한다. 그럴듯한 나의 통찰과 경험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날 때 나의 테메노스에 깊이 던져두기로 하면 시끄럽던 내면이 조용해진다. 타인이 포장해 내놓은 이미지를 바라보며 혼자 소외감 느끼고, 좌절하고, 분노할 때도 내 마음의 그릇에 담겨 있어야 할 욕망들이 투사되어 나와 춤추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본다. 드러내고 표현하길 권하는 투명사회를 살면서 비밀스럽게 담아두는 것의 미덕을 깊이 생각해본다.
나의 페이스북 사용법
여전히 나는 페이스북 유저이다. 뭣 모르고 뛰어들어 신나게 놀아보기도, 마음을 다쳐 앓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다른 사람 아닌 내 마음에서 일렁이는 욕구와 숨어있는 욕망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 내가 이 나이에도 나를 바라봐주는 눈을 그렇게나 갈망하는구나. 아무것도 아닌 ‘좋아요’ 하나에 울고 웃고 하는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이구나.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페친은 영락없이 나 스스로 보기 싫어서 밀어 넣고 숨겨놓은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들이구나. 페이스북 뉴스피드을 거울로 인식하고 여기에 반사되어 꺾인 시선이 다시 내 안으로 향했을 때 생각의 전환, 일종의 회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내 의식수준과 마음그릇에 딱 맞는 페이스북 이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 스마트폰 화면에 페이스북은 ‘언론’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다. 뉴스 기능을 하는 페이지나 개인만 팔로우하여 구독하고 있다. 뉴스를 보던 무심한 눈으로 친구들의 일상을 ‘보게 됨’을 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근황이 궁금한 친구는 일부러 검색해서 찾아 들어가 읽고 ‘좋아요’든 댓글이든 흔적을 남긴다. ‘조용히 훔쳐보기’가 모두에게 허용되는 곳이 SNS 타임라인이다. 은밀하게 훔쳐보며 내게 필요한 정보를 슬쩍 챙기고, 그러다 부러워하고, 부러워하다 손가락질하고, 얼굴 보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낯선 웃음을 짓는 나의 관음증적 관계들. 내 영혼이 갈망하는 참된 만남은 그 관음증적 관계를 뒤집은 정반대편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여.
제가 청년들에게 받는 가장 흔한 질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요?’ 입니다. ‘최근에 소개팅한 사람이 이런 사람이고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이 정도 마음인데 제 짝일까요?’ ‘그다지 설레진 않지만 만나면 편안한 사람이 있어요. 대시를 해왔는데 하나님이 주신 사람인지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나요?’ ‘아직 사람을 제대로 사귀어 본 적도 없지만 내 짝인지 확인하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상황에 따라서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내 짝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를 찾는 방법’이라고 표현하며 괜히 더 있어 보이고 왠지 괜찮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여하튼 이것은 제가 공개석상에서 받는 대표적인 질문입니다. 말하자면 연애강사가 한낮, 밝을 때 받는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밤의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수 년 전에 청년들이 보는 잡지에 연애 관련 글을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즈음 독자들로부터 많은 상담 메일을 받았습니다. 물론 강의를 마친 후에 무선 마이크를 통해 듣는 질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대략 예상이 되시겠지만 스킨십이나 성에 관련된 문제가 바로 밤의 질문입니다. 이런 상담은 비신자와 교제하는 이들보다는 이른바 CC, 즉 교회 내에서 사귀는 커플이 대부분입니다. 상황과 처지는 다 다르지만 결국에 성관계 후의 죄책감, 상대에 대한 분노, 두려움 등으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안타까운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이것을 어디에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고요. 때문에 이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는 등 외적인 일상을 유지해가는 것입니다. 여전히 찬양팀 싱어를 하고 조장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죄책감은 더 커집니다. 분열적인 시간이 오래 가면서 이 부자연스러움마저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청년의 고뇌, 청년부 목사님의 딜레머
해맑은 표정으로 ‘내 짝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어요?’라고 묻는 청년과 장문의 비밀 메일을 보내온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청년이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한낮의 청년과 밤중의 청년은 같은 사람일 수도 있고, 적어도 완전히 다른 부류라고 따로 줄을 세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낮과 밤의 다른 고민, 바로 우리 시대 크리스천들의 이성 문제를 보여주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기독청년들이 일찍이 성경험을 했다.’는 식의 통계, 이면에 눈여겨 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몇 살에 성경험 몇%’는 그저 수치가 아니라 인격이고, 얼굴을 가진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입니다. 확신에 찬 모습으로 교회 생활하는 청년부 회장, 믿음 좋은 선배들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몇 시간이고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수련회 꼭 가자고 설득하며 열정을 다하는 모습과 달리 연애 문제로 가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욕망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분열된 삶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든,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든 어쨌든 교회에만 오면 다시 멀쩡한 새벽이슬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청년부를 지도하시는 목사님께도, 청년들 자신에게도 이 불편한 진실이 특별히 새로운 사실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어제 오늘 일도 아닙니다. 청년부 지도 목사님이 싱글이던 때도, 아니 담임 목사님이 총각으로 선을 보러 다니실 때도 어느 구석에선가 있었을 법한 문제입니다. 그래도 그 시대에는 ‘어디! 혼전 성관계를! 게다가 임신을?’ 하면서 징계를 하거나 지옥에 떨어질 사탄의 자식쯤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면,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내 몸의 주인은 나’라며 내가 선택한 섹스, 책임질 수만 있으면 되니 당당해지라는 목소리가 교회 안팎으로 커졌습니다. 여기다 대고 어설프게 혼전순결이니 하는 말로 조언을 하거나 책망하다간 감각 없고 촌스러운 꼰대가 되기 십상이니 청년부를 지도하는 목사님이나 저 같이 어설픈 강사들에게 참 곤혹스러운 시대입니다. 청년들은 그들대로 성에 있어서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지도자들은 그들대로 원칙만 들이댈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없는 이유가 복잡하게 엉켜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는 한 없이 복잡한데, 끊어버리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그럴수록 좌절은 더 깊어 가는데 교회에서 듣는 지침은 혼전 성관계 안 된다는 원칙뿐이라면 더더욱 입을 닫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고민은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문제가 아니라 여기기 십상이니, 더욱 길을 잃고 몸이 이끄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둘 밖에요. 그렇다고 목사님이 동아리 선배 형도 아닌데 청년회장이 여자 친구와 일박 여행 갔다 왔던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입술의 고백 속 하나님, 뇌구조 속 하나님
생년월일과 성별을 입력하면 뇌구조를 그려주는 스마트폰 앱이 있더군요. 별 기대 없이 입력했는데 완전 공감 뇌구조 그림이 나왔다며 자신의 SNS에 공유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실 그 정도 뇌구조는 나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싱글 청년들의 뇌구조라면 더욱 자신 있습니다. 뇌를 거의 다 채울 만큼 큰 영역을 그리고 거기에 ‘연애하고 싶다.’ ‘올 크리스마스도 솔로란 말인가’ ‘내 짝은 어디에?’ 등 연애에 관한 내용을 넣어줍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 대충 취업, 다이어트, 여행가고 싶다, 이런 정도 끼워 넣어주면 공감 터지는 건 시간문제죠. 발달 심리학자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청년기는 이성을 향한 에로스(eros) 에너지 충만한 시기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청년의 믿음은 새벽기도나 단기선교 참여 회수, 조장 경력 등이 아니라 어떻게 연애하고, 헤어지고, 짝사랑하고 거절당하느냐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불과 몇 시간 전 하늘의 방언과도 같은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찬양으로 초청했던 교회 오빠가 모든 순서 마치고 데이트 자리로 가면 이 몸과 세상 간 곳 없고 여친의 몸만 보이는 상태가 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품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뭐 그리 문제가 되겠습니까. 생각과 말에는 충만한 하나님이 데이트 자리에서는 도통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그 괴리가 문제라면 문제이지요.
외모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자매의 외모만 보는, 형제들의 경제력을 최우선으로 보는 청년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자 외모를 봐요.’ 또는 ‘내게는 남자 경제력이 중요해요. 저는 하나님도 좋지만 정말 명품가방 없이 살 수 없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자 일 순위는 물론 신앙이에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선택은 늘 외모이거나 경제력인 청년들보다 여러 모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일단 결혼 가능성은 물론이고 심지어 신앙 성숙의 가능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적인 문제로 자매들의 상담을 받았을 때의 흔한 스토리-예를 들어 어떤 교회 오빠와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졌고 심지어 임신하고 중절한 경험도 있었는데 오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른 자매와 교제하는데 이전의 관계를 발설할 수 없다. 누워서 침 뱉기이고 여자인 나 자신을 스스로 매장하는 것 아니냐. 억울함과 분노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의 남자주인공은 날날이 신자인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과 남성적 매력을 겸비한 킹카 회장 오빠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름대로 건전하고 건강하게 데이트 한다는 커플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렇게 꼬장꼬장한 오빠가 데이트할 때만 되면 더 깊은 스킨십을 요구하고, 한두 번 거절하는 것이 반복되면 싸움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싸우고 나서 대화로 해결하자고 마주 않았는데 ‘나는 대화 필요 없어. 니가 뽀뽀만 해주면 다 해결 돼.’ 라고 말하는 오빠는 개그 콘서트의 ‘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의 보통남자만이 아닙니다. 바로 이 지점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자는 것입니다.
밝은 곳으로 나와야 할 기독청년들의 성
혼전 성관계, 임신 등의 문제가 더 이상 교회 밖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일날 교회는 나오지만 주중에 어떤 애들을 만나고 어떻게 놀고 사는 지 뻔히 보이는, 내놓은 자식 같은 집중 케어 대상 청년들이 아니라 청년부 임원, 리더들의 현안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다른 동네, 잘 사는 동네, 큰 교회 얘기지. 우리 청년부는 그 정도 아니다’라 믿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요. 그리하여 수련회의 한 프로그램으로, 한 텀의 성경공부 주제로 ‘성’이 자연스럽게 밝은 곳으로 나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지금 하는 짓도 충분히 망나닌데 그런 애들에게 마당을 깔아주자는 것이냐, 신앙생활 잘 하는 순진한 애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면 어떡하나, 두려운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청년들의 입으로 자신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인 성문제를 교회에서 얘기할 수 있는 마당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잘 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지만 더 자주, 더 격렬하게 청년들 스스로 토론해야 하고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소신 있는 가르침을 위해 공부하고 전해야 하고요. 주일 저녁 임원회를 하고 은혜롭게 기도회를 마친 청년회장과 부회장이 그 날 늦은 밤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록 제가 연애 강의를 하지만 저는 연애 문제에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디 연애뿐이겠습니까.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기질이 다른데 짧은 질문을 듣고 ‘지금 이 순간에 대시를 해라. 그 사람과는 헤어져라. 대화의 기술을 익혀라. 좀 더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꿔라.’ 이런 답을 주는 것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에는 쉬운 답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신앙의 여정입니다. 백이면 백 사람에게 각각 다른 길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문에 복잡한 문제를 푸는 좋은 방법은 ‘이건 어려운 문제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연애, 게다가 거기에 성문제가 얽히면, 게다가 크리스천 남녀의 문제라면 정말 복잡한 문제입니다. 어렵다는 전제와 더불어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 매우 아픈 일이라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끊지 못하는 성관계 뒤에는 아마도 결핍된 사랑에 대한 목마름과 얻은 사랑을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지 모릅니다.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방법이 인격이 아니라 몸뿐이라고 애초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문제가 불거지면 쯧쯧 혀를 차며 ‘다른 형제자매들이 알고 영향 받을까 무섭다.’가 아니라 참 어려운 문제를 아프게 겪고 있구나. 라고 바라봐주는 시각이 있어야 이 문제들이 밝은 곳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말하게 해야
쉽지는 않습니다. 성에 관한 고민을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행사 하나도 조심스러운 것이 교회 안 현실입니다. 청년부 수련회에서 성문제에 관해서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을 가진다 합시다. 프로그램이 알려지기기 무섭게 당장 교회 어르신 들이 걱정 하실 것입니다. 어찌 은혜 받으러 가는 수련회에서 성을 논한단 말인가. 청년 시절 성에 관한 고민, 죄책감 등을 내놓고 다루어 본 적이 없으신, 아니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으셨던 어른들로서는 당연한 걱정일지 모릅니다. 순결 서약식이나 하면 아름다운 일이라 박수를 쳐 주시겠지만요. 순결 서약식 같은 것으로 청년들 개개인의 성이 통제될 거라고 믿는 것은 믿음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것 아닌가 싶습니다. 때로 결단하는 것도 필요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의 공증 세러모니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결단의 주체인 청년들로 시작되어야 의미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향식 행사로서의 순결 서약식과 거기서 끼워주는 서약반지는 더 큰 죄책감의 올무가 되기 십상입니다. 청년들이 연애, 특히 성에 관한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안전한 자리가 교회 안에 꼭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련회 프로그램이 됐든, 결혼한 선배 집의 거실이 됐든, 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자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 그래서 잘 통제가 되지 않는 내 행동은 이름붙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아직 싱글인 청년이 주일 아침부터 교회에 나가 예배, 주일학교 봉사, 조모임, 뒷풀이 까지 마치고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의 느낌을 아시나요. 마음에 부는 한 줄기 차가운 바람. 강의 중에 이 얘길 하면 여기저기서 공감의 웃음이 큭큭 새어나옵니다. 느낌 아니까요. 이때의 느낌이 ‘외로움’이고 이것은 전혀 나쁘거나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싱글이라서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고, 어쩌면 하나님이 아담의 뒷모습을 보고 읽으셨을 느낌-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이었을 것이라고요. 이렇듯 이름을 붙인 감정들에는 이유 없이 압도되거나 끌려 다니지 않게 됩니다. 성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입 밖으로 꺼내고 이름을 붙여놓으면 조금 더 다루기 쉬워집니다. 그러기 위한 마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다루지 않거나, 다른 순진한 아이들까지 물들일까봐 쉬쉬하는 것은 결국 청년기의 이 중요한 문제를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게 만들 것입니다.
무엇보다 청년부 지도교역자들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청년의 시기는 성욕이 넘치는 시기인데 그렇다고 그 욕구를 채울 수 없으니 운동 같은 걸 열심히 하거나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는 꽤 오래된 교회 내 처방이 있습니다. 단기선교, 수련회 준비, 교회 큰 행사의 스텝봉사 등으로 쉴 틈 없이 젊음을 불태우는 것도 하나의 처방이라고 합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압도되는 에너지가 운동을 한다고 사라지겠습니까. 땀 흘려 운동하고 기분 좋게 샤워하고 자려고 누운 밤 스멀스멀 올라오는 욕구는 어쩌구요. 주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봉사하며 지내고 돌아와 누운 밤, 외로움과 함께 고개를 드는 욕구는요. 선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젊음의 에너지도 좋지만 자칫 승화 아닌 회피가 되어 사랑하는 청년들이 죄책감과 고뇌로 혼자 외로운 곳에 버려지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런 청년들을 위해 청년부 목사님들께서 사랑의 용기를 내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1년에 몇 번이라도 스킨십, 성을 주제로 설교를 하시고, 때로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준엄하게 꾸짖으시고, 청년들의 상처 난 몸과 마음을 붙들고 함께 우시면서 정면으로 돌파하셨으면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런 노력이 이 시대 청년사역을 하시는 목회자분들께서 맡으신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데이트 하는 청년이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빠가 널 정말 사랑해서 너와 자고 싶은 거야.’ 가 아니라 ‘오빠가 정말 너를 사랑해서 참을게. 도와줘.’라고요. 지금 여기서 자신의 연애와 성문제를 진지하게 복음에 비춰 고민하는 청년들이 장차 결혼해서는 좋은 부부관계를 위해 고민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아이를 양육을 하면서는 성적으로 줄 세우는 세상에서 어떻게 키우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부모의 삶일까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욕구하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정직하게 만남이며 제자도란 삶의 자리 바로 거기에서의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청년들 스스로 고민하는 힘을 키워주고, 질문을 던지게 하고 목사님들 역시 치열하게 함께 고민하며 전하는 설교.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습니다.
답은 없지만 길은 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고 신대원에 들어간 남편이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전도사님들의 고민도 별다른 것이 아니라서 데이트하며 겪는 스킨십 문제로 찾아와 상담하는 후배가 있었다고 합니다. 주말이 와 설렘 반 고뇌 반으로 데이트를 향해 가는 전도사님에게 남편이 그랬답니다. ‘정 그러면 이번 주말에 목표를 하나 세우고 지키고 와라. 데이트 하며 뽀뽀하되 손을 옷 안으로 집어넣지 마.’ 한 번의 데이트에서 그 정도는 지킬 수 있게다 싶어 흔쾌히 받아들이고 가셨나보죠. 월요일에 남편의 기숙사방에 들어서는 전도사님이 팔을 내밀며 하는 말이 ‘형, 제 손을 잘라주세요.’였답니다. 이 전도사님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고 결혼하여 아이의 아빠가 되셨는데요. 모르긴 해도 그때 그 경험과 고민이 지금 하시는 청년사역에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하며 혼자 미소 짓곤 합니다. 수도원이 아니라 먹고 자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삶의 에너지가 정점을 찍는 청년시절은 그래서 더욱 방황의 연속일 것입니다. 이 복잡한 삶의 문제에서 쉬운 답을 찾자면 오히려 한 없이 어려워지고 꼬이고 죄책감에 허덕이게 되어 있습니다. 쉬운 답은 없지만 남과 다른 나만의 길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렵기만 한 성문제 역시 답을 찾아 고민하고 때로 좌절하면서도 나만의 길을 가는 것, 스스로 주체가 되어 통과할 여정입니다. 청년들은 찾아나서야 하고 선배와 지도자들은 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정답은 없지만 길은 있을 것입니다.
정신실 : 음악치료사, 늦깎이 목사의 아내, 일상에 숨겨진 영원의 빛을 보는 맑은 눈을 선망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오우 연애」 「와우 결혼」(이상 죠이선교회)의 저자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은 긴장의 나날이었다. 친구와 선생님을 새로 만나야 한다는 낯섦에 대한 부담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커지는 학업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지니 말이다. 학기가 시작하는 3월과 9월, 엄마는 밤마다 철야기도를 했다. 저녁에 아홉 시 쯤 교회에 가시면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기도를 마친 후 일곱 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오셨다. 그저 엄마의 습관이려니 했었는데 내가 학부모가 되어보니 그 마음의 절절함을 알 듯 하다. 아이가 가진 부담감을 모르지 않지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같이 학교에 가 줄 수도, 공부를 대신해 줄 수도 없다. 게다가 일찍 남편을 하늘나라에 보내고 어린 남매를 혼자 키워야 하는 엄마로서는 아버지이며 남편인 하나님께로 가 무릎을 꿇는 선택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아니, 훨씬 이전부터 엄마는 그랬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목회를 하던 아버지와 하루 종일 심방을 하고 돌아오신 날 밤에도 자다가 깨보면 엄마의 이불이 푹 꺼져있다. 또 교회로 가신 것이다. 아주 어릴 적에 연탄가스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곳은 교회 마당, 엄마의 등이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기도인지 찬송인지 모를 목소리가 엄마의 등을 통해 내 볼로 전해지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기도는 원래부터 모든 엄마들의 의무인줄 알았다.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는 것처럼, 기도는 엄마 역할의 기본옵션인줄 알고 자란 것이다. 시험 날에는 내가 시험 치는 시간 내내 엄마가 집에서 기도하는 줄 알고 있었기에 못해도 잘할 줄 알았다. 시험 뿐 아니라 엄마가 기도하니까 내가 뭘 해도 잘 할 줄 알았다. 엄마의 기도는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 나의 비빌 언덕이었던 것이다.
엄마 기도의 빛과 그림자
그러나 또 신앙의 여정을 돌이켜보면 엄마의 기도만큼 싫은 것이 없다. 몸이 약해서 자주 병치레를 했던 나를 놓고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엄마는 수시로 안수기도를 하셨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마귀야 썩 나와라.’ 엄포를 놓는 엄마 목소리가 얼마나 싫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웬만한 일은 다 기도로 해결하려는 엄마의 단순함이 날이 갈수록, 머리가 커질수록 싫어졌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하는 말 속에 담긴 엄마에 대한 애증처럼 ‘기도’ 역시 내게는 가장 갈망하면서 동시에 가장 피하고 싶은 신앙 행위였던 것 같다.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런 확신이 마음에 차오르면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내일이면 밀린 월급을 한꺼번에 받을 반짝 하는 소망이 샘솟는다. 그래서 소망을 품고 기도한다. 또 ‘기도응답의 조건’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라니까 ‘될 줄로 믿쓉니다.’를 빼 먹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구했던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 아닌 ‘거절’ 판정 받는 게 일쑤다. 엄마가 ‘기도해보니 잘 될 것 같다.’던 일이 잘 되지 않은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청소년기와 청년 시기를 지나면서 나는 정말 우리 엄마가 믿는 것처럼 하나님이 모든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기도를 하면서는 미리 좌절했다. ‘칫, 이런 것까지 들어주실 리 없어. 그래도 어쩌겠어. 졸라는 봐야지.’ 하는 심정이었을까?
수련회의 기도, 집에서도 할 수는 없나요?
중고등부 때는 물론 청년부 수련회의 뜨거운 기도시간에 아주 잠깐 누리는 천국 같은 평안함, 세상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관용의 마음, 무엇보다 하나님 한 분이면 될 것 같은 만족감은 그 시절 내 기도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그 절정은 너무도 짧아 1년에 한 번, 합치면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라는 것이 함정. 일상에 돌아오면 바라던 직장에 꼭 가게 해달라고, 마음에 둔 형제도 나를 좋아하게 해달라고, 나를 괴롭히는 직장 선배 좀 어떻게 해주시라고 기도하며 다시 답이 없는 나를 확인한다. 하나님 한 분을 바라보되 그 분 손의 쇼핑백을 수시로 힐끗거리게 된다. 그게 아닌 것을 알지만 매일 집에서 수련회를 할 수도 없으니 기도는 자주 길을 잃었다.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수록 기도에 대한 열망은 커지지만 기도는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어른이 되었으니 져야할 책임이 많아진 만큼 그 만큼의 무력감을 느꼈고, 그 무력감은 ‘기도’가 되었다. 기도라 봐야 ‘이런 요구조건이 있지만, 하나님 맘대로 해주세요.’였으니 이건 뭐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기도를 배우고 싶었다. 리챠드 포스터의 <기도>, 김영봉의 <사귐의 기도>, 포사이스의 <영혼의 기도>, 래리크랩의 <파파기도>를 읽으며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그 관계 말이다. 20분 정도 내 요구조건 브리핑하고 나면 할 말이 없어서 쩝쩝거리는 대화가 아니라 그 분과의 만남이 너무 좋아서 하염없이 앉아있고 싶은 관계, 그렇게 될 수는 없을까? 그런 기도를 할 수는 없을까?
기도의 길을 잃다.
그런 갈망에 더욱 목이 말라갈 무렵 남편은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늦게 신대원에 입학을 하였다. 새벽잠이 많아서 목사는 할 수 없을 거라고 부모님께 농담을 듣던 남편의 새벽이 영롱해지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신대원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나서 보내오는 메시지에서 하루가 다르게 투명해지는 그의 영혼이 느껴졌다. 나 역시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깊고 투명한 기도를 갈망할수록 나의 기도는 메말라 가는 것이었다. 방언을 구해보기도 했으나 그 분의 쇼핑백에서는 방언의 은사는커녕 이제 사소한 기도응답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신대원을 마치고 남편이 전임사역을 시작하자 내게 ‘사모’란 이름으로 새벽기도 의무사항이 주어졌다. 새벽기도를 안 하는 사모는 세상 무엇을 한다 해도 치명적인 결격사유를 가진 것으로 치부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하여 ‘기도의 여사도(女使徒)’ 친정엄마 역시 거드신다. ‘너 새벽기도 해야헌다. 내가 기도혀도 소용없어. 사모가 기도허야 김서방이 목회 성공하는 거여.’ 내가 가장 잘 하고 싶은 것이 기도인데, 기도에의 열망과 열정이 새벽기도로 하나로 대치되어 내 존재를 판단 받게 되다니 분열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 새벽기도에 나가면 큰 소리로 기도하지 않는다는 꾸지람을 듣거나 정죄당하기 일쑤였다. 새벽기도에 나가면 내 존재가 분열될 것만 같은 고통으로 눈물만 하염없이 쏟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침묵기도로 가는 신비로운 이정표
이즈음 직업적 필요 반, 신앙적인 갈망 반으로 공부를 하나 시작했다. ‘성격유형’에 관한 공부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우연 같은 필연으로 가톨릭 기관에서 배우게 되었다. 알고 보니 단지 ‘성격유형’이 아니라 ‘거짓자아’에 대한 공부였고, 예수회 신부님들의 자기성찰을 위한 영성수련 방법 중 하나였다. 머리를 키우려다 마음을 터치하는 도구를 만난 것이다. 이렇게 열린 문은 신비롭게도 침묵기도 피정으로 가는 길로 이어져 있었다. 단지 말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생각과 욕망의 침묵을 통해서 비로소 내 존재의 중심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을 들을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배운 침묵기도를 통해서 그렇게 갈망하던 쇼핑백 아닌, 쇼핑백 든 하나님을 조금씩 응시하게 되었다. 애써 선택한 것이 없는데, 그저 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만 붙들고 있었는데 어느 새 나는 멀리 와 있었다. 목회자의 아내로 ‘보이기 위한 기도’에 대한 압박으로 괴로워 흘리던 눈물을 ‘하나님’ 아닌 ‘하느님’이 닦아주시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 그렇게 갈망하던 기도를 (‘기도의 사도’인 엄마가 이단이라 믿으시는) 가톨릭에 와서 배우게 되다니. 낯선 예전과 언어들 속에서 남의 나라 언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처럼 위축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낯선 어느 경당에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며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 저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것인가요? 이 낯선 곳에서 이방인 같이 앉아 있습니다. 엄마에게 배운 기도가 있는데, 내 어머니의 교회에서 배운 신앙의 전통이 있는데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온 것인가요? 당신은 하나님인가요, 하느님인가요?‘ 동냥젖을 얻어먹는 아기처럼 배고파 정신없이 빨지만 마음까지 편안한 건 아니었다. 깊은 울음과 긴 흐느낌 끝에 사랑하는 베드로를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마음의 눈을 들어 그 눈빛에 내 눈을 맞췄다. 아, 예수님이 나를 이렇게 보고 계시는구나. 공허한 기도 속에서 정신없이 그 분을 찾아 돌아다닐 그 때도 이 눈빛은 나를 향하고 있었구나.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그 분의 아들이시며 그 분 자신이신 예수님이 말이다.
쉬지 않는 기도
삶은, 신앙은 신비이다. 주변에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여정 속에서 혼란스러웠지만 혼란보다 큰 평안이 점점 나를 감싸가고 있었다. 그 분과 연결되고 싶은 열망 하나로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 분이 바로 내 안에, 내가 있는 바로 여기에 계셨다. 한적한 피정집이나 내가 자란 교회의 예배, 둘 중 한 곳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일상 한가운데에서도 그리운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었고, 그것이 기도이다.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무한 경쟁의 세상에서 내 아이만 뒤로 쳐지는 것은 아닐까 극한 불안감에 휩싸일 때, 어딘가에서 나를 비난하고 있을지 모르는 관계가 틀어진 친구를 상상하며 두려워지는 순간에, 더 이상 남편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강퍅하게 마음 문을 닫아버린 어느 날. 바로 그 순간에 지체하지 않고 주님을 부를 수도, 그것이 가장 깊은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메말라 윤기 없는 목소리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그 분을 부를 때 불안과 두려움과 분노를 밀어내고 들이닥치는 사랑의 침노를 느낄 수 있다. 불안과 두려움과 분노의 원인이 당장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며 바라보고 계신 사랑의 눈동자는 내가 고개만 들면 눈 맞춤 할 수 있는 곳에 아주 가까이 계시니 말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도달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었구나.)
나의 기도는 이런 것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난 집안.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옷가지며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감은 복잡한 내 마음 같다. 그래도 라디오 FM에선 쇼팽이 흘러나온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내 마음이 편안하게 조급하다. 이걸 마치고 거실의 낡은 탁자 앞에서 있을 데이트 때문이다. 아무런 꽃단장이 필요 없는 만남이다. 아니, 얼룩이 묻거나 찢어져 상처가 흉할수록 더 귀하게 대접받는 데이트이다. 얼룩과 상처를 내보이고 아픔과 두려움을 인정하면서 시작되는 기도는 그 분의 충만한 현존으로 나를 이끌어간다. 어떤 때는 속이 시끄러워 그 자리에 앉아서 단편 소설을 써대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그 단편소설 그냥 그대로 흘려보내고 다시 나의 연인의 눈을 바라보면 여전히 그 눈빛 그대로 여기 계시다. 이 아침의 기도가 깊어질수록 일상 속 ‘쉬지 않는 기도’는 더 힘을 받는다. 매일 마음의 얼룩을 지운다고 지워도 나도 모르게 끼는 묵은 때가 있다. 이것이 쌓이면 가까이 계시는 그 분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보인다. 일상의 의무를 벗어나 그 분과 단둘이 긴 시간을 보낼 때가 왔다는 신호이다. 이틀 삼일 엄마가 피정을 가겠다는 말에 아이들의 반발이 거세다. 왜, 왜 꼭 기도하러 가야하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아빠가 부지불식간에 대답을 내놓았다. “응? 엄마가 기도 안 하면... 음, 죽어.” 아이들의 원성을 잠재우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나온 표현이지만 내 가슴에 박혔다. 기도 안 하면 죽어.
많은 문제로 고민을 하던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님을 만났다고 한다. 그 기회에 테레사 수녀님의 충고를 듣고자 긴 시간 자신의 문제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우웬 신부님이 입을 다물자 테레사 수녀님은 조용히 말했다. “글쎄요. 하루 한 시간씩 주님을 사모하며 보내고, 잘못인 줄 아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없을 것입니다.” 기도를 향한 여정 끝에 생의 오르막길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내게 주신 주님의 말씀이기도 하다. 하루 한 시간씩 주님을 사모하며 보내고, 잘못인 줄 아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 삶. 나의 기도와 기도의 삶은 이런 것이다.
돌려서 다른 사람 얘기하듯 말하는데 그게 딱 자신의 얘기인 것을 감으로 알겠는 때가 있다. ‘아니야, 아닐거야. 정말 다른 사람 얘기일거야’라고 애써 믿고 싶었는데 결국 그것이 그 애의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주에 통화할 때 K는 ‘언니 제 학교 친구 얘긴데요...그 애 교회도 나름대로 열심히 다니거든요. 그런데 그 애가 임신을 하고, 수술을 했어요. 죄의식 때문에 교회도 못 나가겠다 하고 너무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 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해줘야 하나요?’ 하고 말했다. 어쩌면 핸드폰의 통화품질 때문인가도 했었지만 그 목소리에 뭔지 모를 긴장과 떨림이 베여 있었다. 결국 오늘 만나서 얘기하면서 그 애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여울 정도로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내게는 청년부 후배로 보다는 몇 년 전 중등부 교사를 할 때 중등부 찬양팀에서 봉사하던 수줍음 많던 여중생의 모습으로 더 각인 되어 있는 아이다.
대학 때 친구 Y를 따라서 산부인과를 갔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잠시 우리 교회를 나오기도 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교회와는 발을 끊었고, 유일하게 나에게만 연락을 했었다. 가끔씩 만나도 자기 속내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곤 했었다. 하긴 속내랄 것도 없지. 속내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삶을 마구 쏟아놓곤 했었으니까. 그 친구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하는 얘기가 내게는 사사건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여러 남자와 동시다발적으로 교제를 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육체관계는 기본적이 것으로 보였었다. 때문에 그 친구가 임신을 했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병원에 중절수술을 하러 가는 파트너로 내가 선택된 것이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지금 돌이켜봐도 참으로 당혹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 세대에 정말 비일비재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교회에서 너무 ‘성’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고들 한다. 너무 터부시 하면서 교육은커녕 대화의 주제가 되지도 못하니 성은 크리스챤 청년들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고들 한다. 그런 것 같다. 어른들이 너무들 안 가르쳐 주시는 것 같다. 청년들에게는 이성교제를 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모두에게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 성에 대해서 말이다. 교역자든 선배든 누구하나 잘 가르쳐주는 이 없는 것 같다. 각개전투 하라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는 신실하게 훈련받고 봉사하는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인 것 같은데, 그런 청년이 어쩌다 보면 혼전임신을 하고 있는 상황이 각개전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단지 교회에서 우리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들 안에 있는 다양한 성적인 문제들에 대한 온전한 원인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통제할 수도,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소위 말하는 성인이 아닌가? 그렇다. 책.임.전.가.를 할 수는 없다.
K의 얘기를 듣고 도움을 받아 볼까 해서 데이트에 관한 책을 몇 권 훑어보았다. ‘남성들은 여성보다 더 충동적이니 여성들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남성들은 시각적 자극에 약하기 때문에 자매들은 데이트 할 때 노출이 심해서 자극할 수 있는 의상을 피해야 한다’ 이런 얘기들이 여러 번 눈에 띈다. 저자가 모두 남성이었다. 비슷한 표현들을 계속 보면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K의 얘기를 들으면서 느꼈던 느낌이기도 하다. ‘나는 안 된다고 했는데....나는 정말 안 될 것 같았는데....오빠가....’ 결국 책.임.전.가.다.
자매들이 옷을 야하게 입어서가 아니라, 오빠가 너무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결과다’라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 우리들 성문제의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것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나의 연애와 그 연애의 실패 경험으로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솔직해야 한다. 책임전가할 생각을 애초부터 하지 말고 정직해야 한다. 정직한 대화가 없으면 사랑하는 사람끼리 몸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도를 나가게 마련인 것 같다. ‘나는 당신을 만날 때 손을 잡고 싶고 뽀뽀를 하고 싶다’ 라고 상대방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정직하게 인정하고 말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쉽게 건강한 방식들이 찾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그 감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선배에게 들었던 잊혀 지지 않는 얘기 하나. 남자친구와 데이트할 때마다 스킨쉽의 문제로 고민하다가 시도한 방법이라고 했다. 둘이 데이트하기 위해서 만나자 마자 그 날의 데이트를 위해서 함께 기도한단다. 기도하되 구체적으로 스킨쉽을 잘 제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단다. 참 아름다운 장면일 것 같다. 그 어떤 낭만적인 데이트의 모습보다 아름답지 않은가? 이렇게 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상대방에게도 정직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스스로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고자 하며 무엇보다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다시 내게 데이트의 기회가 온다면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K를 위해서 기도한다. 어서 빨리 죄책감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단지 혼전 임신을 하고 낙태를 했다는 것만을 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경적으로 데이트하는 것을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한다. 미혼의 날 동안 성적인 외로움으로 인해 삶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이성에 대해서 맑은 눈을 잃지 않기를 위해서.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나의 배우자 역시 그렇게 맑은 눈으로 젊음의 날을 지켜가고 있기를..... 그 배우자를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기를 ㅜ.ㅜ
지난여름에 결혼한 K 선배의 집들이를 갔다 왔다. 서로 시간이 맞질 않아서 미루고 미루다 해를 넘긴 집들이가 되었다. 청년부의 수석 권사님 격인 Y 언니의 결혼인데다가, 그 상대가 농담 삼아서도 연결해 보지 않았던 K 선배라서 두 배로 충격을 주었던 커플이다. Y 언니가 연상이라는 것 역시 두 사람을 연결시켜 그림이 나오지 않았던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었다. K 선배는 회장, Y 언니는 부회장, 나는 회계로 함께 봉사하던 생각을 해 보면 부부가 되어 저렇게 한 집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낯설기도, 민망하기도, 결국... 부럽기도 하다. 지금이야 포기한 지 오래지만죚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말이다TT 죚 그래도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그리던 모습은 같은 공동체 안에서 만나 교제하고 결혼하는 것이었으니까.
부러우면 얼렁들 결혼해!
신혼냄새 폴폴 나는 인테리어에, 깔끔하고 감각적인 식사 메뉴에, 연예인 같은 결혼 앨범에.... 이런 것들은 이제 하도 많이 봐서 식상할 때도 됐건만 여전히 볼 때마다 부러운 것이다. 이런 신혼집에 초대받는 일은 늘 유익한 것 같다. 닭살 부부가 서로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을 지켜보면서 '시집가고자 하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는' '염장질'을 당해주는 것도 그렇고.... (슬프도다, 브리짓 인생이여!)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룬 가정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냔 말이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꾸밀 가정에 대한 소망의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하니 말이다. 함께 공동체를 섬기다 결혼을 한 Y 언니의 집들이는 그런 저런 기대로 약간은 들뜨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신혼부부를 가운데 앉혀 놓고 인터뷰를 하는 시간까지는 충분히 내 예상과 각본대로 진행되어 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밝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보면서 “아우∼ 너무 예쁘다.”로 시작하여 자매들은 끊임없이 “너무 예쁘다”, “너무 예쁘다”를 연발했으니까. Y 언니는 만족스러운 듯 “호호호호, 부러우면 얼렁들 결혼해!” 아∼ 나도 저런 대사를 날릴 날이 올 것인가?TT “부러우면 빨리 결혼해!”
염장질-외적 매력으로가 아니라 삶의 내용으로
'부러우면 결혼해!' 시리즈의 백미, 신혼부부의 얘기를 듣는 시간이 되었다. 둘 다 워낙 찬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둘이 함께 집에서 찬양도 하고 그러냐?” 하는 질문이 나왔다. “허허허허, 찬양? 결혼들 해보세요. 결혼하고 기타를 꺼내 보지도 못했네요. 하긴 이러면 안 되는데.... 사실 결혼하고 큐티를 해 본 적이 없거든요. 공동체에서 매주 하던 모임이 없어지니까 흐트러지는 것 같아요. 결혼은 일상이거든요. 다들 결혼하기 전에 열심히 큐티하고 열심히 찬양하고 열심히 봉사들 하고 그래요. 결혼해서는 뭐 그냥 열심히 사는 거죠. 이런 저런 여유가 별로 안 생겨요.” 계속되는 질문과 대답 속에서 처음 집에 들어서며 집안의 인테리어며 연예인 같은 사진들에 연발했던 감탄사는 점점 사그라져 갔다. 단지 함께 찬양하거나 말씀 묵상을 나누는 일이 없다는 얘기 때문이 아니다. 두 사람의 사는 모습은 그냥 그렇고 그래서 적어도 내게는 별로 염장질이 되지 않았다. 얘기를 듣다 보니 이 선배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던 우리 오빠 죚자타가 공인하는 그저 교회를 댕기는, 나이롱 신자 죚 부부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 같이 훈련을 받으며 교제를 시작하고 일군 가정이 아닌가? 함께 했던 뜨거운 찬양, 그 바쁜 와중에도 타오르던 기도에 대한 열정, '특새'의 시간들, 빼먹는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말씀대로 살아보자고 힘겹게 붙들고 있던 묵상의 훈련, 단기선교로 뜨거웠던 여름.... 그런 공감대를 가지고 시작한 선배 부부는 단지 결혼의 외적인 매력으로가 아니라 결혼한 삶의 내용으로 후배들에게 염장질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청년의 때에 전혀 예수님과 관련 없는 사람처럼, 오직 취직시험 합격과 그로 인한 삶의 풍요가 인생의 목적인양 살았던 우리 오빠 가정하고는 다른 결혼의 그림을 보여 주길 기대하는 건 나 혼자 너무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믿는 남자 만나서 결혼했다?
선배 집에서 나와서 H와 차 마시며 이런 얘길 했더니 “나도 좀 실망스러운 점이 없는 건 아냐. 그런데 뭐, 결혼이 다 그런 거라잖아. 야! 브리짓! 너 너무 이상이 높아. 그러니까 결혼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어. 그러려면 아예 목사님하고 결혼을 해라. 1년 내내 둘이 같이 GBS하고, 결혼에 관한 책 펴놓고 교과서대로 대화하면서 그렇게 살면 되겠네. 니네 엄마 너 얘기 들으시며 그러시겠다. '아따, 별 걱정 다 하고 앉었네. 결혼이나 하구 그런 걱정을 해라. 이 화상아!' 네가 이 나이에 그런 것까지 따지면 결혼할 수 있겠냐?” 한다. H의 진단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내 이상이 너무 높은지도. 그래서 내게는 결혼이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 Y 언니 부부를 보면서 결심했다. 결혼식 자체나 결혼의 외형과 결혼의 내용을 헷갈리지 않기로 말이다. 형제들의 수가 자매들에 비해서 현격하게 적은 현실 속에서 '그래도 믿는 남자 만나서 결.혼.했.다.'는 정도를 가지고 부러워하지 않기로.... 결혼의 내용에 대해서, 즉 바로 내 손으로 만들 가정의 모습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며 그림을 그려 보기로 하자. 신혼집 인테리어에 신경 쓰는 만큼이라도 그 안에서 만들 가정에 대해서 계획을 세워 본다면 형식보다 내용으로 감동을 주는(아니, 스스로 감동이 되는) 결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 이런 준비를 결혼할 사람을 만나서 함께할 수 있으면 얼매나 좋을까? 그럴 날이 올 것이다! 브리짓! 힘내자! 언젠가 나도 목에 힘주고 이렇게 말할 날이 있을 것이다. '부러우면 결혼해∼' 남들과 똑같은 결혼의 겉모양으로 사는 부러움이 아니라 삶으로 부러움을 사는 그런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비록 오늘은 '꿈꾸는 자가 오도다' 하면서 비웃음을 당할지라도....
오랜만에 엄마랑 한판했다. 며칠 전 “토요일에 엄마 친구 딸내미 쭛쭛 있지? 걔 결혼한다드라. 걔가 나이가 몇이더라…너보다 한참 어리지? 에휴∼” 이러실 때부터 이미 예고된 한.판.이었다. 엄마 나름대로 참고 참으시던 불안이 결혼식만 보고 오시면 폭발하게 되는 것 같다. 결혼식 음식이 어떻더라, 신부 인물이 신랑한테 빠지더라는 둥 하시며 결혼식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리포트하시다 결국 불똥이 튈 곳으로 튀는 것이다.
오늘은 내 기분도 말이 아니었다. 뭐 초반전에는 그럭저럭 한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는 열어서 흘려보내며 듣고 있었다. “니 나이가 몇이냐? 이놈, 저놈 다 싫다고 콧대 높게 굴어봐야 뾰족한 수 있는 줄 아냐? 결혼해서 살면 다 마찬가지다….” 이런 정도의 얘기는 곧장 흘려보낼 수 있다. “그러구 앉었다 좋은 놈들 다 놓친다. 봐라. 니 친구 그 누구냐? 그놈도 알쩡댈 때 얼른 잡지. 결국 놓치고 말었잖어. 참∼너는 속두 편해서 좋겄다. 나는 그런 저런 생각하면 불안해서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난다.” 이 부분에서 진정 나의 안전핀은 뽑히고 말았다.
'너는 참 속두 편해 좋겄다'
오늘 내가 바로 '그놈'과 '그놈이 결혼할 여자'를 만나고 들어온 것 아닌가! 수년간 내 주위를 맴돌면서 이제나 저제나 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친구. 어떻게 해서든 내 마음을 사 보려고 끊임없이 친절하게, 따뜻하게, 때로 비굴하게 내 곁을 서성이던 친구.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여자를 소개시키겠단다.
사실 그 자리가 썩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뭐 딱히 불편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으로 느껴지는 불편함보다 훨씬 강도 높게 표현되는 내 표정언어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다정한 두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 줘야 할지…. 아무튼 나는 마음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불안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고, 그 친구가 은근히 기대했을 소기의 정서적 복수를 충분히 당해 준 셈이다.
돌아오는 길, '나는 정말 당당한가?'라고 자문해 보았다. 어쩌면 나는 많이 불안한지도 모른다. 내 나이 계란 한 판인데 이러다 정말 하나 둘, 괜찮은 남자들은 다 가버리는 건 아닐까? 단순하게 이것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들에 불안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다. 괜찮다. '하나님의 때와 내 때가 다르다고 했다' 하고 마음에 와 닿지도 않는 말씀을 되뇌면서 애써 마음을 달랜 토요일 밤이었다. 거기다 대고 엄마가 불을 댕긴 것이다. '너는 참 속두 편해 좋겠다.
' 엄마가 비아냥거리듯 말씀하신 것처럼 뭐 내가 결혼에 대해서 그렇게 느긋하고 속이 편한 건 아니지만서도…그렇다고 맘이 편하고 느긋한 것이 잘못일까? '나는 왜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아직 남친이 없을까?'를 매일 묵상하고 성찰하며, 우는 사자와 같이 남친을 찾아 헤매는 것이 계란 한 판 되어 여전히 싱글인 나의 마땅히 할 바란 말인가?
엄마의 염려와 불안(사실 이 불안은 내 것이기도 하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모든 일을 전폐하고 소개팅만 하고 다니면 맘에 드는 남자가 찾아질까? 아니면 주변에서 만나는 모든 남자들을 향해 오로지 '이성(異性)의 안경'을 끼고 들여다보면 찾아질까? 아니면 앞뒤 가리지 말고 단지 싱글을 벗어나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 누구하고든 교제를 하고, 아무하고든 결혼을 해 버리는 것이 능사인가?
'브리짓, 염려하지 마!'
이렇게 생각해 보면 너무도 자명해지는 답을 두고 엄마는(아니, 사실은 나는) 왜 그리 흔들리고 있을까? 얼마 전에 묵상했던 잠언 말씀을 떠올려 본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잠 19:14). 슬기로운 아내는, 즉 '좋은 배우자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는다'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
굳이 구별을 지어 보자면 결국 배우자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배우자를 얻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차라리 잘 기.다.리.는.일. 이것뿐이지 않을까? 기다림의 시간을 '남친이 없어서 2% 더 불행한 하루'가 아니라 '여호와로 말미암은 남친을 기대하는 소망 있는 하루'로 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더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온갖 불안함을 유발하려는 세상의 잣대들을 좀 더 정신 차리고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오늘처럼 엄마의 애정 어린 걱정의 옷을 입고 찾아오기도 하는, 그러나 결국 마음의 불안과 패배감만을 남기는 것들에 대비해 마음을 무장할 필요가 있겠다.
엄마를 비롯한 인생의(신앙의) 선배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브리짓, 염려하지 마! 결혼은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잖니? 단지 싱글을 탈피하는 것이 결혼의 목적이 아니란다. 행복한 결혼이 목적이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해. 너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너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없으시겠니? 주변의 멋진 남자들이 하나씩, 둘씩 다 결혼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도 너의 배우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는 것 잊지 마! 염려하지 말고 오늘을 즐겁게 살렴!”
이렇게 말이다. 선배들에게 들을 수 없다면 내가 내 영혼에게 말하리라.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내 후배들에게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하리라.
벌써 거리는 성탄 분위기다. 거리는 온통 노아의 방주처럼 쌍쌍이 걷는 커플들로 가득 차 있다. 노아의 방주 같은 거리에서 저주 받은(?) 한 마리처럼 홀로 걷는 순간에도 쓸데없는 불안이 나를 덮지 못하게 하리라.
<QTzine>에 11월호부터 '브리짓 자매의 미혼일기'라는 꼭지의 글을 씁니다. 교회생활에 열심인, 아직 결혼계획도 남친도 없는 브리짓이라는 30세 자매의 입을 빌어서크리스챤 미혼청년들의 문제를 애기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글이고, 두 번째 원고를 며칠 전에 넘겼습니다.실은, 제가 스물일곱 되는 해부터 '싱글일기'를 썼더랬습니다. 대학노트 한 권을 거의 다 채우고 결혼을 했지요. 그 때 솔직하게 써놨던 것들이 이 글을 쓰는데 효자노릇하고 있네요.
주일이다. 몸과 마음의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들어온 듯 하다. 이 시간이면 손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지만 깊은 밤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생긴 극단적인 감정 교차에 대해 더 이상 그러려니 넘어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종일 교회에서 보내는 주일은 사실 내게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 아침에 유년부 아이들과 드리는 예배로 시작해서 청년예배, GBS, 그리고 나서 리더모임과 중보기도모임까지…. 하다못해 유년부 예배를 마치고 잠깐 갖는 교사들의 티타임조차도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인가. 매주 열정을 다해 피를 쏟듯 선포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는 또 얼마나 도전을 주면서 은혜와 감동의 도가니탕을 만드느냐 말이다.
그런데 주일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느껴지는 이 우울하고 허탈한 감정은 또 뭐지? 나는 왜 주일마다 그렇게 황홀한 천국의 하루를 보내고 나서는 이 시간쯤에는 허전한 마음으로 지옥에 내려온 듯한 무거움 속에 빠지는 걸까? 내 믿음에 문제가 있는 건가? 사실 이건 한두 주 겪는 문제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주일 저녁은 늘 이런 마음이었다.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로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가게가 떠나가라 웃고 떠들었다. 그러고는 지하철역 앞에서 사람들과 헤어지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 순간부터 스멀스멀 어두워지고 무거워지는 마음이라니…. 이렇게 심하게 정서가 오락가락 하다니…. 혹시 나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주일 저녁에 느끼는 외.로.움.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이 허전한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적극적으로 생각했다. 감정에 지배받지 않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직면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뭘까? 주일 저녁마다 혼자 있기 힘든, 견디기 힘든 이 느낌말이다. 아! 그렇다. 이건 단지 허전함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가끔은 이 외로움에 대해 한두 사람에게 '혹시 너도 주일 저녁에 이런 느낌이 드니?' 하고 묻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선뜻 물을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이것이 '외로움'의 감정이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주일 내내 교사로, 리더로, 청년부의 선배로 성도의 교제에서 핵심에 서 있었던 내가 '외로움'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고 고백한다면? 그 화려했던 성도의 교제는 도대체 무엇이 된다는 말인가? 아니 솔직하게 자존심이 상해서 할 수 없는 것이지, 이게 외로움이라면 일단 이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게 내 마음이다. 누구에게 대고 '나 외로워. 주일날 저녁이면 유난히 더 외로워.'라고 고백할 수 있겠나.
혼란스럽다. 정말 이 외로움의 문제는 나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 공동체 모두의 문제일까?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오늘 열심히 예배하고 기도하고 돌아간 다른 리더들도 느낄까?
'독처'로부터 오는 외로움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오면서 혼란스럽고 답답한 마음에 작년에 결혼한 K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슬쩍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언니 혹시 예전에 청년부에서 리더할 때요…주일 날 같은 때 집에 혼자 가면서 뭐 허탈감이나 그런 감정 안 느꼈어요?' 했더니 '허탈감? 허탈감은 무슨, 외로움이겠지!' 하는 것이었다. '외로움? 언니도 그랬어요? 주일 저녁이 되면 유난히 더 마음이 쓸쓸하고 외롭고 그랬어요?' '당연하지.' '그러면 지금은요?''지금? 지금은 외로울 새도 없다∼야. 한 번 외로워봤으면 좋겠다야. 근데 지금 애기 젖 줘야 하거든 담에 통화하자.
' 딸깍! 정작 본론은 얘기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순간 한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독처! 혹시 이 외로움이 창세기에 나온 '독처(獨處)', 그걸 말하는 게 아닐까? 우리 공동체의 교제가 공허함 때문도 아니고, 내가 진실하게 마음을 다하여 교제하지 못함도 아니며,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 온전히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함이 아니라 '독처' 즉 '싱글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 그 감정이 아니겠냐 말이다. 가끔 교회 내에서 새로 생긴 커플들이 커밍아웃 하거나, 유비통신으로 커플탄생의 얘기를 듣는 주일저녁은 유난히 더 마음이 무거웠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런 일에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괜한 죄책감에 이중으로 힘들었던…결국 '독처'로부터 오는 외로움과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감정의 혼란스러움 아니었었나?
아∼ 이렇게 쉽고 단순한 진리를!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신 이 감정,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18). 이것이 이 밤에 나를 무겁게 누르는 감정 그것인가보다. 그래! 풍성한 교제를 맛보고 돌아온 주일 저녁에 유난히 더 싱글의 외로움이 찾아드는 것도 당연하겠구나. 그렇다면 쓸데없는 죄책감들을 먼저 털어버려야겠다. 예배를 잘 드리고 왔는데 왜 마음이 어두울까? 열심히 섬기고 삶을 나누고 기도했는데 왜 외로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하는 식의 생각을 떨쳐 버리는 것이 좋겠다.
싱글의 외로움과 맞짱 뜨기
막연하던 실체에 대해서 분명히 규명을 했으니 맞짱을 떠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스멀스멀 주일 저녁 신드롬이 고개를 들면서 마음을 좀먹기 시작할 때 자기연민에 빠져 질퍽거리지 말아야겠다. 늘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독처의 외로움'으로 정의한 이 감정을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자. 오히려 이것이 결혼을 위해 주시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 그리고 이 '독처의 외로움'으로 불필요한 감정의 낭비를 하고 싶을 때면 일기를 쓰자. 외로움에 직면해서 미혼일기를 써보자. 오늘처럼 끝까지 생각하다 보면 미혼의 삶에 대해서 좀 더 잘 정리될 것이고, 잘 정리되는 미혼의 삶은 좋은 결혼 준비가 될 것이다.
오늘 이 지구 어느 구석에서 나처럼 '독처하는 외로움'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하나님께서 손수 지어 놓으셨을 '돕는 배필'을 기대하며 맞짱 뜨는 거다. 싱글의 외로움과 맞짱 뜨는 거다.
>>> 브리짓 자매가 다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 왔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올 초여름까지 란 인기 연재글로 QTzine의 지가(紙價)를 올려놓았던 브리짓 자매는, 유아교육과 음악치료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이곳저곳에서 아이들과 음악으로 신나게 놀아주고 있으며, 교회에서는 악보를 잘 모르던 50대 어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찬양대 지휘자로 즐겁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