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이는 사랑니 발치 후 제 손으로 죽을 사들고 들어오기로 했다. 저녁은 패스하겠다며 빈손으로 들어오더니 "아, 약! 약 먹으려면 뭘 먹어야 하는데..." 한다. 돌발상황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누룽지만 끓여주는 건 그렇고... 누룽지에 계란을 풀어볼까? 이상한가? 생각하다... 채윤이 '최애 죽'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샤브샤브나 전골을 먹고 남은 국물에 끓이는 죽을 우리 채윤이가 엄청나게 좋아하지! 그것 뭐 맛만 비슷하면 되는 거지. 꼭 전골을 먹어야 하나?! 쯔유와 새우분말, 표고버섯 분말 같을 것을 때려 넣고 육수를 만들어서 누룽지 부숴서 끓였다. 그리고 계란을 풀었다. 성공적이다! 싱크로율 100%에 가깝다! 아깝다! 마취가 덜 풀려서 맛을 못 느끼는 김채윤이라니... 내 기분만 좋았다. 게다가 사진을 찍고 말고 할 비주얼도 아니어서 어떻게 뭐, 달리 자랑 뿜뿜 할 수가 없네.
 
오이을 봤는데, 며칠 전 어느 릴스에서 본 '지중해식 샐러드' 생각이 나서 두 개를 사왔다. 채윤이가 꾸부정하게 식탁 앞에 앉아 '성공한 실패 죽'을 처묵처묵 하는 사이 막막 만들어 보았다. 그까이 꺼 막 올리브유 대충 넣고 식초 넣고... 오, 맛있다! 숙성시키면 더 맛있다니 내일 아침에 먹어야지, 하고 냉장고에 넣었는데. 성경공부 마치고 늦게 돌아온 JP의 야식으로 다 털었다. 
 
어제 종일 원고 붙들고 있었는데... 딱 두 문장을 썼다. 자괴감이 든다. 창의성이 글로 가야 하는데... 요리로 다 바꿔 먹어 버리니... (요리 책을 내겠다고 작심을 하면, 요리 아닌 다른 창의력이 폭발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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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그는 있으나 없는 존재이다. 아빠, 남편, 사람 JP는 껍데기만 남기고 내일로 이미 떠나고 없다. 설교 준비로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의 동굴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집에서 준비하다 점심 먹고 교회에 가겠다고 하면 신경(질)이 많이 쓰인다. 요즘 주방은 시도 때도 없이 휴업 상태인데, 토요일에 이러면 뭔가 좀 해줘야 할 것만 같다. 실은 나도 주일에 강의가 있어서 그리 여유 있는 편이 아닌데. 그와 내가 다른 점은 "해야 할 일"을 앞두고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느냐, 마느냐에 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은 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해야만 하는 일"이 있으면 유난히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떠오르고. 결국 그것을 해버리고 만다. 텅 빈 냉장고이지만, 샐러드용 야채 한 팩이 있었다. 거기에 파스타면 대충 비벼서 샐러드 파스타를 하려고 했다. 오전 운동 다녀오는 길에 방울토마토 사고, 냉동실의 새우 한 줌을 꺼내서 준비했더니,  "대충 파스타"가 아니게 되었다. 갑자기 신이 나서 발사믹 드레싱 제조하고. 맛을 보니 간이 또 딱 맞아 맛있고 난리인 것이다. 그러자... 신이 났다. 영감이 차올랐다. 곧 대림절인데, 에라! 크리스마스 리스 파스타다! 

 

노는 것도 일하는 것처럼 하는 JP, 설교 준비 파이팅!

일하는 것도 노는 것처럼 하는 나도 강의 준비 파이팅!

맛있게 먹고 힘내서 제 할 일 하는 가을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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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이 갑오징어를 좋아허잖여."

그는 ‘김서방’이 되기까지 갑오징어의 존재를 몰랐다. 김서방이 되어 장모님 밥상에서 처음 갑오징어를 먹었고, 그날부터 그는 갑오징어를 좋아하는 김서방이 되었다. 장모님은 늘 갑오징어를 준비했다.

"엄마여~"

장모님은 김서방에게 전화를 하면 늘 ‘엄마여~’라고 말했다. 늦둥이 딸의 엄마인 장모님은 김서방에겐 할머니 뻘이었다. 김서방의 외할머니와 장모님이 동갑이셨으니, 그냥 할머니이다. 그리고 김서방은 ‘엄마’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일찍 철이 들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려서부터 엄마를 어머니라 불렀다. 그런 김서방에게 할머니 뻘 장모님은 "엄마여~"하고 전화를 했다.

김서방이 되어 갑자기 갑오징어 좋아하게 된 그에게 갑오징어 숙회를 해주었다. “사람이 참 찬찬혀. 착허고 점잖여." 하며 김서방을 예뻐하던 우리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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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도 피정에 들어간다.
기도 피정 떠나는 마음은 늘 무겁게 가볍다.
설레면서도 벌써 지루하다.
외롭고, 무엇인가 그리워서 조금 슬프다.

오늘은 좀 다르다.
오랜 시간 홀로 가 앉아 기도하던 곳에 벗들을 인솔해서 간다.
덜 외롭고, 덜 무겁고, 덜 슬프다.

며칠 머물 짐을 싸는 일보다
남겨두고 가는 일상을 미리 챙기는 일이 더 분주하다.
이제는 각자 알아서 잘 챙겨 먹는 식구들이지만, 두고 떠나는 내 마음은 또 다르다.
소고기 뭇국을 마음 담아 끓였다.
펄펄 끓는 국은 벌써 드리는 기도이다.
기도하는 엄마, 기도하는 아내의 공석을 기쁘게 감당해주는 가족들에게 남기는 감사의 편지이다.

그리고 이제 떠난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애인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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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올리고당 안 섞고 100% 꿀로만 레몬청을 만들었다. 요리에 쓰고 남은 레몬이니 몇 개 되지 않아 양이 적으니 아끼지 않고 꿀을 투하했다. 손바닥 만한 작은 병에 담아 필라테스 선생님에게 가져다주었다. 참 고마운 젊은이다. 채윤이 나이나 되었을까? 자기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참 예쁘다. 강사로서 열심히 배우는 것 같다. 배운 것을 또 바로 학생들에게 시전 한다. 운동의 의미와 순간 쓰이는 근육과 호흡의 방식을 알려주려 애를 애를 쓴다. 그 열정이 목소리에 담겼다 싶었는데, 성대결절이 와서 수업을 못 한 적도 있다. 성대결절에 결국 성대파열... 그리고 수술, 그리고 한 달 묵언수행. 내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자!" 하며 사는 게 모토인지라. 이 선생님을 좋아하며 감사하고 있다. 신비로운 것이 사람 마음이라, 선생님도 나를 참 좋아해준다. 무슨 선생님이 나이 든 엄마 같은 학생에게 비싼 필라복을 선물하고, 자기 입을 티를 사며 한 장 더 사서 건네기도 한다. 나도 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주고 싶다. 안 그래도 즐거운 운동이 더 즐겁다. 즐겁게 운동했더니 태생이 몸치이고 운동신경이라고는 100m 21초 수준인데, 학원의 에이스가 되고 있다. (학원으로 방송 출연 섭외 요청 왔는데 뽑혔었음. 당연히 거절함. 마침 CBS에서 녹화하고 방송 기다리고 있던 즈음이었는데, 방금 기독교방송에서 눈물 글썽 간증하던 여자가, 다른 채널에서 레깅스 입고 필라테스 하고 있을 생각 하니... 가관이다... 싶었음)

 

이 선생님이 나에게만 친절하지 않아서 참 좋다. 모든 회원들에게 친절하고 진심이어서 보기 좋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좋은 생존 기술이다. 아침 기도 마치고 어제 놓친 카톡 답신 보내려 창을 열었다가 이 선생님과 주고받은 메시지에 마음이 좋아졌다. 의례적인 인사일 수도 있지만, 곱씹으며 크게 은혜 받았다. 누구에겐 좋은 사람, 누구에겐 찌르고 상처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 사람에게도 어떤 때는 좋은 사람, 어떤 때는 나쁜 사람이기도 하다. 좋은 엄마였다가 나쁜 엄마이기도. 좋은 아내였다가 악처가 되기도. '그래도 어딘가 누구에게는 좋은 사람이지...' 싶어서 은총의 메시지가 되었다.   

 

강사들끼리도 신실님 넘 좋다고 칭찬한답니다.
항상 여유로우시고 밝게 웃으시고 저도 신실님처럼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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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위에 창작활동을 하였다.
시원하고 간이 딱 맞는 오이미역냉국이다.
냉동 볶음밥과 함께 점심 도시락을 싸주었다.
이 더위에, 이렇게나 정성스러운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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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공연하고 오후 느지막이 들어오신 따님께 좋아하시는 호박전을 해드림. 호박에 밀가루 옷을 입히면서 옆에서 조잘거리심.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도 본인은 외향형인 것 같다고,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은 편) 집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나가서 에너지를 소비하니 더 에너지가 나온다고 하심. 딸이 에너지 충전 되었다는 말에 엄마도 조금 충전이 됨. 우리 딸은 호박전을 좋아하심. 내 덩치로 (저 덩치 딸에게)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호박전 좋아하는 우리 딸 참 귀여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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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철이구나! 맛있는 감자를 나눠주는 벗과 교우들이 있어서 알게 된다. 비닐봉투에 담겨 건네온 몇 알의 감자에서 사랑을 느낀다. 소소하고 큰 사랑이다. 기도 피정에 가면서 남은 식구들 아침 식사로, 또 식사 제공을 하지 않는 수도원이라 내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가야 하는 상황이기도 해서 감자샐러드를 만들었다. 이 계절에 한 번씩 그러하듯 산더미같은 양의 감자 샐러드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감자샐러드가 나는 그렇게 좋더라고. 아주 만족스러운 요리이다.
 
사랑으로 받고 사랑으로 만들었더니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과 나누게 되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필라테스 선생님에게 빵과 함께 가져다 주었다. 내게 운동하는 시간은 몸으로 드리는 기도 시간인데, 그 시간을 복되게 하는 예쁜 선생님이다. 예쁘기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랑하는 아이들의 오후 간식으로도 전달했고. 수도원에서 처음 만난, 향심기도 20년 내공의 낯설지만 친근한 처음 보는 대학원 후배님에게, 지도해주시는 신부님과도 나누었다. 사랑으로 온 감자를 사랑으로 흘려보냈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 수도원에서 아침기도 마치고 침묵 속에 먹었던, 내가 만든 감자샐러드 가득 채운 모닝빵 하나와 쥬스 한 잔은 세상 맛있는 식사였다.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가위 가위 보!
사랑이 이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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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멜로가 체질>이 내 머릿속에 '미역국 라면' 칩을 넣었다. 미역국을 보면 꼭 한 번은 거기에 라면을 끓이게 됨. 손감독과 진주작가의 꽁냥꽁냥 장면에 '파 많이 넣은 떡볶이' '평양냉면' '미역국 라면' '사골국' 등 음식이 등장하는데 희한하게 모두 내 취향이다. 영화나 드라마로 보는 이병헌 감독 개그가 진짜 마음에 드는데... 개그 취향과 함께 음식 취향도 나랑 비슷한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됨. (아, 미역국은 내 '최애 국'이다. 현승이 낳고 산후조리원에 갔는데 끼니마다 다른 미역국이 나와서 행복했던 기억이다. 한 달 내내 미역국, 질린다며 억지로 먹는 산모가 대부분이었음. 그래서 식사 때마다 미역국 때문에 설레던 내 마음이 조금 부끄러웠던 기억... 미역국 라면을 끓이며 그 얘기를 현승에게 들려주었다.) 

 

이 더운 날에 양지머리를 덩어리 째로 넣어 미역국을 한솥 끓이고 거기에 다시 라면을 끓였다. 당연히 맛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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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으며 남편이 "현승아, 너는 어떤 때 만족감을 느껴? 만족감을 자주 느껴?"라고 했다. 내게 물은 건 아닌데 답을 찾게 된다. 흠... 나는... 끙끙거리며 쓰던 글을 완성했을 때! 그리고 갑자기 요리의 신이 임해서 전에 해보지 않았던 요리를 뚝딱 만들고 났을 때. 
 
끙끙거리던 글을 마치자마자 냉동실에 있던 갈치 몇 조각과 야채 박스에서 뒹굴던 무 한 토막을 꺼내서 우다다다 갈치조림을 하는데, 마침 고사리 불린 것이 한 줌 남아서 마지막에 넣고 졸였는데,  식구들이 "대애~박!"이라며 어떻게 여기 고사리 넣을 생각을 했냐며, 엄지 척 처묵처묵 해주실 때. 만족감이 열 배였다.   

 
또 뭐 갑자기 닭다리살에 소금 후추 등으로 최소 양념을 해서 파와 함께 구웠는데, 이거 당신이 양념한 거냐, 양념된 걸 산 거냐 하며 믿을 수 없는 맛있는 맛이라는 표정의 JP, 엄마가 한 거지! 그냥 생고기였는데 엄마가 양념한 거야, 엄마 간이 진짜 딱 맞아! 하는 아들, 처묵처묵하는 아빠와 아들을 볼 때. 만족감이란 것이 차오른다.
 
셋이 먹고 입 싹 닦으려고 했는데... 퇴근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한 딸이 못내 눈에 밟혀서 퇴근 시간에 맞춰 1인분 용으로 한 번 더 해서 내놓았는데... 아, 이건 무슨 고기이고, 어디서 샀냐며 행복하게 드실 때... 참으로 만족스럽다.

 
나의 만족감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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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 안식월을 보낸 남편의 복귀 첫 출근 날이다. 안식 후 첫날(부활하신 예수님...) 점심은 단호박열무국수를 해서 감동적으로 맛있게 먹었다. 안타깝게도 안식 후 첫날을 맞은 남편은 당연히 집에 없으니 채윤이와 둘이서 먹었다. 안식월 마지막 날인 어제 그는 혼자 홀연히 나갔다. 요셉수도원에 가서 낮기도에 참여하고는 수제 소시지를 사 왔다. 단호박열무국수에 소시지를 곁들였다. 그의 복귀 출근을 애도... 아니 응원하며 둘이 맛있게 먹었다.

 

(단호박열무김치, 최곱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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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점심은 벽산아파트에 서는 알뜰장 떡볶이 아주머니가 차려주신다. 운동 갔다 오다 들러 "오뎅 떡볶이 순대 일 인분 씩 주세요."라고 하면 "순대 내장은 섞어요?" 한다. "내장 많이 주세요." 하면 '이 사람 배운 사람이네! 순대 먹을 줄 아네!' 하는 표정으로 만족스러워하며 내장을 듬뿍 섞어 주신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한 번씩 MSG 듬뿍 넣은 떡볶이를 먹어줘야 한다. 맛있고 고맙다. 고맙고 좋은 마음에 오늘은 대놓고 사진을 좀 찍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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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피정집이나 수도원은 밥이 참 좋습니다. 소박하며 동시에 풍성한 식탁이고 그것을 누리는 행복감이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러 간 건지 밥 먹으러 간 건지 헛갈리는 정도. 침묵의 생활이기에 이 좋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 참으로 미묘하게 좋은 곳입니다. 그저 천천히 맛과 식감을 느끼며 먹는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밥은 먹는 자체가 기도입니다. 달그락달그락 그릇 소리만 나는데도 영혼이 기뻐 아우성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그런 맛있는 시간입니다.
 
여기 수도원 순례에 와서는 정작 그런 식사는 없습니다. 예상과 다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이조차 주어지는 대로 누리자니 벌써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순례기는 안 나올 것 같고 수도원 음식 사진 염장질로 대신합니다. 한국 시간 밤 10시 쯤, 야식 땡기는 시간에 올리려고 비장하게 품고 있었는데 시차 때문에 도저히 그걸 못 맞춰서 아쉬울 뿐....      

압테이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Abtei Schweiklberg) 아침 식사, 빵
압테이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Abtei Schweiklberg)의 아침 식사, 창을 바라보는 좋은 자리 앉았음.
압테이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Abtei Schweiklberg) 아침식사, 자세히 보면 이러함.
압테이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Abtei Schweiklberg) 아침식사, Tea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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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가 주일에 교회 점심으로 나온 꼬마 김밥 남은 걸 챙겨 왔는데... 

아무도 안 먹고 굴러다니고 말 것이었는데...

계란말이로 만들어 맛있게 한 끼 했다!

이럴 때 보람, 어디에 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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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물드는 시간> 에필로그는 "인생 후반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진짜 여행이고 여행지는 네팔이다. 독자들은 어쩌면 지나칠 이야기이겠으나, 가장 무게가 실린 내용은 이것이다. 네팔에서 지낼 1년 동안 머리 염색을 끊겠다는 결심이다. 30대부터 흰머리인지 새치가 나서 일찍이 뿌리염색을 시작했다. 그전까지 말총머리로 굵고 검고 빛나는 머리칼이었는데... 한두 달에 한 번 하는 염색을 건강한 모발이 견디지를 못했다. 언젠가 염색을 끊으려 했는데 현승이가 성인 될 때까지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했는데, 성인이 되었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꾸역꾸역 하고 있다. 
 
이래저래 시기를 놓쳤더니 뿌리 쪽이 또 하얗다. 동네 두피관리 샵 같은 게 생겼는데 "뿌리염색 25,000원"이라고 쓰여 있다. 가격도 좋고, 집 앞이니 산책 나가는 길에 예약을 하려고 들어가 보았다. 예약은 무슨 예약, 바로 지금 할 수 있다고 한다. 할 때가 한참 지났으니 이게 웬 횡재냐, 덥석 앉았다. 열심히 할 일을 하는 주인장에게는 미안한데 한 시간 반 정도 앉아 염색하는 동안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신상 캐기와 영업, 영업과 신상 캐기를 오가는 대화에 온갖 기를 다 빨리고 나왔다.
 
왜 이렇게 되도록 염색을 안 한 건지, 그러다 바빴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신상을 물어가며 조여 들어오는 대화. (직업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게 어렵다. 심리치료사, 연구소 소장, 작가, 강사... 뭐라 소개해도 깔끔하게 끝나는 법이 없다.) 손톱 관리를 좀 해드릴까, 두피 케어는 이래서 좋다, 심지어 동충하초 술을 한 잔 마셔보겠느냐, 동충하초 술과 함께 두피 관리를 받으면 머리숱이 이렇게 많아진다, 동충하초가 몸에 이렇게 좋다, 비싼데 병원비 내는 것보다 낫다...  칼같이 자르지도 못하고 적극적으로 듣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친절함으로 에너지를 다 탈렸다.
 
배가 고프고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고... 뭔가 먹어야 하는데 집에 당장 먹을 것이 없다. 애들 뭘 먹일지는 생각도 안 나는데 다행히 현승이는 냉동실 고기 꺼내어 굽고 있고, 채윤이는 밥 생각이 없단다. 냉장고에 있는 건 야채... 샐러드만 먹을 수는 없는데... 탄수화물이 필요한데! 몸이 빠르게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파스타 면을 삶아서 파스타 샐러드를 만들었다. 정말 나를 위해서, 나만 위해서 만들었다. 생각 없다던 채윤이가 달라붙어 먹기에 포크질에 신경질을 담았더니 조금 먹다 나가떨어졌다.
 
좋아서 하는 요리, 진심으로 나를 위해서, 나만을 위해서 요리하는 행복도 찾아야겠다. 평생 요리해 놓고 "맛있어? 맛있어? 맛이 어때?" 반응과 피드백, 인정과 칭찬에 울고 웃는다. 좋아서 해놓고 내 방식의 반응을 강요한다. 이거 신혼 때 벌써 깨달았던 건데... 나는 남편을 위해 하는 요리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요리는 당신이 좋아서 하는 거 아니야?"라고 천진한 T가 천진난폭하게 현타를 날렸었는데 말이다. 아, 사랑은 주는 사람이 정의하는 게 아니야. 받는 사람이 사랑으로 받아야 사랑이야! 이때 이후로, 이 큰 깨달음으로 강의에서 우려먹고 있지 않은가. 요구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배려를 선제적으로 투하하고 피해의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F짓은 (다시) 좀 자제하자.
 
좋아서 하는 요리를 나를 위해서 했더니 기분이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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