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산 중턱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성전 터(2016년11월 JP 찍음)

 

안식월 중인 남편이 전에 하던 대로(전에 하던 것보다 더 자유롭고 간절하게) 아침마다 말씀 묵상 글을 올리고 있다. 약속한 것처럼 아침에 둘이서 말씀으로 만난다. 가끔은 같은 구절을 선택하고 비슷한 묵상으로 겹칠 때가 있다. 남성, 조직신학 등을 공부한 T 목회자의 언어와 여성, 영성을 공부한  F 비목회자의 언어가 대비되는 것이 즐겁다. 두 배로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지난 한 주 동안 인상 깊었던 묵상이다. 나란히 걸어두고 싶다. 

 

마태복음 24:1-14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걸어가시는데, 제자들이 다가와서, 성전 건물을 그에게 가리켜 보였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3 예수께서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실 때에, 제자들이 따로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와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이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6 또 너희는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소문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당황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7 민족이 민족을 거슬러 일어나고, 나라가 나라를 거슬러 일어날 것이며, 여기저기서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8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은 진통의 시작이다.“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줄 것이며, 너희를 죽일 것이다. 또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0 또 많은 사람이 걸려서 넘어질 것이요, 서로 넘겨주고, 서로 미워할 것이다. 11 또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을 홀릴 것이다. 12 그리고 불법이 성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다.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14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서, 모든 민족에게 증언될 것이다. 그 때에야 끝이 올 것이다."

 

JP 묵상

성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때가 올 것인가? 예수께서 그런 날아 올 것이라 하셨다. 그날은 세상 마지막 날일 거라고 제자들은 생각했다. 마지막은 또한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면 그날은 언제인가? 거짓 메시아들의 등장, 전쟁의 소문. 이는 진통의 시작이다성도의 박해, 내부 고발과 갈등, 거짓 예언자들, 서로 분열시키는 식은 사랑...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끝까지 견딘다는 것은 무엇인가첫째, 진짜와 거짓을 잘 분별하는 것이다. 가짜들의 혀에 현혹되지 않도록 깨어있는 분별력이 중요하다. 둘째, 세상 흉흉한 소식이 들려오더라도 담대해야 한다. 전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지역갈등을 부추기고, 편을 가르며, 공포를 조장하여 원수의 낙인을 찍는 행위는 어리석은 일이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신을 믿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이들이 적지 않다. 셋째,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무수한 회유와 협박의 목소리가 우리를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한다. 기복신앙인들부터 먼저 무너질 것이다. 신자는 바르게 믿을수록 물질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참 평화를 얻는 것이다넷째, 사랑을 붙잡고 끝까지 사랑편에 서는 것이다. 미워할 일이 많다. 미워할 이유가 많다. 미워해도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최대한, 최선의 사랑을 지키자

 

주님,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바르게 분별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두려움에 쫓기는 신앙이 아니라 담대하게 포용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고난 중에 불평이 아니라 감사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머무르게 하소서.

 

 

SS 묵상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13)

그대로 견뎌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다. 끝까지 견뎌라. 그러면 너희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구원을 받을 것이다.”(13, 메시지성경)

 

복음이시고,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인데, “디스토피아 선언같다. 한 조각의 희망도 남기지 않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허튼 희망이나 긍정성 따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대로 견뎌라고 하신다.

 

토마시 할리크의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의 서문이 생각난다.

 

내가 생각하기에 신앙과 무신론의 가장 큰 차이는 인내다. 무신론과 종교 근본주의와 손쉬운 광적 신앙의 공통점은 우리가 하느님이라 부르는 신비를 너무나 성급하게 함부로 다룬다는 점이다.”

 

전쟁, 기근, 지진... 이 모든 것들을 쉽게 함부로 성급하게 논평하고 속단하며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이들은 무신론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빠르게 속단하고자 하여 내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두려움이 거짓 지도자들에의 의존을 낳는다. 거짓 지도자들은 오직 자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기에 사람들의 두려움을 담보삼아 자신의 성경해석 능력을 자랑한다. 내 유익을 위해 사람을 반복과 갈등으로 밀어 넣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불법이 성하고 사람들 사이 사랑이 메마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예언하신 일이다. 눈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올 것이 왔구나! 여기며 끝까지 견디는믿음을 견지해야 한다.

 

주님, 벌써 이렇게 알려주신 일인데, 제 방식대로 이 땅의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그저 잘 되고, 좋고, 행복하기만 한 환상을 꿈꾸기에 자주 우울에 빠집니다. 무너질 것이 무너지는 일에 놀라지 않고, 고통당하는 일에 호들갑 떨지 않으며 인내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오늘 하루 살면서 순간순간 성령님 의지하여 참된 인내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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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와 일주일이 지나고 보니 뉴질랜드 남섬을 꿈에 봤던가 싶다. 탄성이 절로 터져나오는 大,  大, 大자연에 압도되었었는데, 이제 와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장면은 이 장면들이다. 사진은 대브분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찍은 것이다. 달리면 본 풍경이라는 뜻이다. 저런 장면을 보고 싶었고, 시시각각 옆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가만히 바라보던 저 풍경,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떼의 풍경이 정말 좋았다.
 
여행에서 각자 역할 분담을 했는데, 유흥담당 '오락부장'으로서 음악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침 음악, 저녁 음악, 달리는 차 안에서의 음악. 저 풍경 때마다 바흐의 칸타타 BWV 208 "양들을 평화로이 풀을 뜯고"를 듣고 싶었는데. 희한하게 그때마다 인터넷 연결이 좋지 않아서 결국 듣지 못했다. 저 풍경을 바라보면서 꼭 들었어야 하는데...
 
오늘은 비도 오고 하니 목소리 대신 피아노 듀오로 듣는 이 음악이 적절하다. 나의 하루, 그의 하루, 우리의 하루가 평화로운 시간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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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을 위해 집을 떠나는 남편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바로 집으로 올 수 없었다. 짧은 안식을 위해 남편과 함께 찾곤 하던 카페에 가서 얇은 책 한 권을 끝내고 돌아왔다. 나는 점심으로 동네에 국수 먹으러 가면서도 가방을 챙긴다. 남편은 늘 어이없어 하며 놀린다. 국수 먹으러 가는데 가방은 왜? 가방 안에 책은 또 뭐야? “아니이… 국수 먹고 카페에 갈 수도 있잖아…” (갈 일 없고, 가능성 제로!)“그냥 애착인형 정도로 생각해줘. 몸 근처에 책이 없으면 불안해서 그래ㅋㅋ"라고 이실직고. ㅜㅜ

책 중독이다. 중독은 늘 어떤 고통스러운 느낌을 피하고자 하는 선택이다. 감정과 영성을 강의하고 안내하는 일을 하면서, 이렇듯 감정을 피해 책으로 도망치는 짓을 한다. 자주 한다. 감정은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인데 말이다.
 
차 안에서 남편이 묻지도 않은 마음을 꺼내 놓았다. 자신의 감정을 알겠다고.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느끼고 체험하고 있노라고. 수치심, 설교자로 목회자로 살면서 느끼는 수치심을. 죄책감, 마음이 무너진 어머니를 어떻게도 잘 도울 수 없는 것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어떤 분노, 막막한 내일과 함께 오는 불안. 그 모든 감정들을 '느낀다'라고 했다. 안식월을 맞아 쉬러 가는데, 왜 그런 부정적 감정이냐 할 수 없다. 안식이 시작되어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다. 반갑고 고맙다. 그 모든 감정 꾹꾹 누르며 역할에 충실했던 시간, 잘 버텼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여기에 더해 나와 아이들을 두고 집을 떠나려니 또 다른 힘든 마음이 된다고 했다. 전에 신대원 다닐 때 월요일마다 느끼던 그 감정이라고. "그건 슬픔이야..."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실은 나도 그렇다. 채윤이가 일곱 살이었던 그때. 월요일마다 기숙사로 보내고 울면서 음악치료 다니던 그때 그 감정이 문득 살아났다. 슬픔과 함께 그리움이었다. 감정을 만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없는 셈 치고 일에 매진하거나, 무엇에든 몰입하여 산다. 하지만 감정을 만나지 않으면 진실한 나로 살 수가 없다. 50이 된 남자 사람 목사가 있는 그대로의 자기감정을 만나고, 이름 붙이고, 표현할 수 있다니. 자랑스럽고 고맙다.
 
남편 블로그 제목은 '아픈 바람'이다.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라는 홍순관 노래의 가사가 대문에 걸려 있다. 거기서 '바람'은 실은 감정이라고 말했다. 맞다. 감정은 끊임없이 바뀌고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내가 붙들지만 않으면, 감정은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흘러간다. 나는 늘 감정을 강물로 표현하곤 하는데, 남편에겐 바람이었구나! 감정을 모른다고, 그래서 공감을 못한다고 평생 구박해왔는데. 남편은 원래 감정의 결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생애 후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발적 광야에 들어간 남편은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니까. 수치심에 죄책감에 불안에 분노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그 감정을 만나고 글을 쓰고 성찰하면서 살아 돌아올 것이다. 
 
남편을 보내고 카페에 가서 책 한 권을 뚝딱 하고 온 것은 어떤 감정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슬픔, 그리움, 연민, 분노, 불안... 이런 복합적인 것들인데. 실은 이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파고, 파고, 파고, 파보면... 그 뿌리는 모두 사랑에 닿아 있다. 그러니 이 불편한 감정들은 사랑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불편해서 피하고자 하면 사랑도 잃게 되니, 아픈 바람을 나도 피하지 말아야지. 그래서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말하는 것이다. 감정은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뉴질랜드 남섬, 마운틴 쿡을 향해 가는 후커 밸리 트래킹 중. 그늘 없는 길을 걸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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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는? 어떻게 큰아들 원두? 작은아들?" 키득키득...
 

JP와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 좋지만 남들은 안재미, 우리만 재미있는 농담따먹기가 참 좋더라. 뉴질랜드 컵에 모닝커피 마시기로 했는데, 오늘의 원두는 큰아들 또는 작은아들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져온 두 개의 원두에 붙인 이름이다. 원두를 선사해준 각각의 두 가정을 우리끼리 그렇게 부른다. 뉴질랜드에는 두 아들이 있는데, 우리 아들이 아니라 이번 뉴질랜드 원정대 대장이셨던 '서쉐석목짠님'께서 복음으로 낳은 아들...이다. ㅎㅎ 뉴질랜드 펠로우십교회와 교회를 개척한 이들에게 쏟는 목짠님의 정성과 애정, 또 목짠님을 따르고 존경하는 그들을 보면 영락없이 아버지와 자녀이다. 그 사랑의 덕을 우리 부부가 보았다. 
 
뉴질랜드 남섬 대자연이 봉기하여 결혼 25주년을 축하해주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광에 감탄사보다 먼저 나오는 소리가 "이거 실화냐!"였다. 사진 무지 많은데, 눈으로 본 감동을 다 담을 수가 없었다. 차차 공개해 볼 예정. 그리고 저 컵 얘긴데. 오른쪽은 2년 전 뉴질랜드 코스타에 갔던 JP가 사온 것이고, 왼쪽은 이번에 사온 것이다. 다녀오니 보이는 게 있다. 두 컵에 같은 새가 그려져 있고, 저 새와의 만남은 마주했던 어떤 풍광보다 깊고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이 얘기도 차차 공개할까, 혼자만 간직할까 생각 중이다. 
 
아래 사진은 결혼 25주년 기념이라는, 또는 52주년까지 잘 살자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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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모시고 민속촌에서 몇 시간 보내고 명절이 끝났다. 나의 명절은 이렇게 끝나고 남편의 명절은 아직 길게 남아 있다. 주일 설교가 남아 있고, 설교 마치고는 어머니 모시고 1박2일 여행하는 일정이 남았다. 명절 시작은 혼자 어머니께 가서 하룻밤 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산더미 같은 만두를 빚고, 열 가지 넘는 전을 부치며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짐이 무겁던 나의 명절은 가고, 몸과 마음이 약해지고 부서진 어머니를 돌보는 짐을 진 남편의 명절이 왔다. 어머니를 뵈면서 어머니보다 더 부서진 마음으로 힘겨운데 의연하게 감당하는 남편이 자랑스럽다. 끝없이 변하는 명절의 풍경, 끝없이 다가오는 생의 변화에 따라 기꺼이 변하는 모습이 고맙다. 
 
오늘 말씀 묵상의 본문은 마 11:25-30인데, 여기 붙인 남편의 묵상 또한 인상 깊다. 에니어그램 5유형인 남편의 앎, 지식에 대한 고백이다. 지성을 선물로 받은, 또는 지성에 집착하는 사람 5유형으로서 좌절하고 깎이며 다다른 자기 비움임을 알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사랑을 살며 버티고 있는 5유형의 아름다운 고백이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마 11:25)

주 예수님,
우리에게 지성을 주셔서 지식을 추구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한 섭리하고 계시오니,
주 예수님은 모든 지식의 주인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신학뿐 아니라,
교육학, 경제학, 물리학,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모든 분야의 진정한 설계자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주 예수님, 그러하오니,
지식 안에서 영과 진리와 생명과 인격으로 존재하시는 주님 앞에 서있게 해주십시오.
언제든지, 무엇인든지 ‘안다’고 할 때,
삼위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알게 해주십시오.
나의 지식은 부분적 지식일 뿐입니다.
이 지식을 움켜잡을 때 도리어 진리가 닫히고,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여 둘다 구덩이에 빠질 뿐입니다.
주 예수님, 책을 통해 배운 지식, 자연을 통해 배운 지식,
사람을 통해 배운 지식, 여러 미디어를 통해 배운 지식,
그 지식에 갇혀, 지식의 주인인 양 교만을 떨지 않게 해주십시오.
늘 어린 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에 대해 열린 질문을 던지고,
마음으로 배우게 해주시며,
주 예수님께서 알려주시고 열어 보여주시는 그 신비의 힘,
하늘나라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체험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을 향한 제 지식이 제 삶과 우리 삶과 만나게 해주시고,
주님께로 인도하는 인격이 담긴 지식이 되게 해주십시오.

 
 

Panta Rhei, 모든 것은 흐른다. 흐르는 삶에 몸을 맡기고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들여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참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모든 다가오는 날들을 새로운 날로 사는 것이 "새로 오는 아침을 새롭게 하시는 것에 성실하신, 성실하게 새로우신(애 3:23)" 그분 닮은 삶이고 영성이지...

 
To live means to grow,
To grow means to change,
To change means to dec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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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대구 어느 교회의 수련회에 초대받아 다녀왔었다. 처음 만남이 아니다.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로 시작한 교회이고 오래전에 내적 여정 세미나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래전 그날이 참으로 의미 있는 날(영성 일기와 시국선언문)이어서 말이다. 이래저래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교회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 만난 목사님과 날수를 헤아렸다. "벌써 7년이네요! 아, 그래요? 7년이나 지났군요..." 하고 나는 당연히 촛불집회를 떠올렸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첫날, 졸이는 심장으로 내려갔던 그 길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뜨거웠던 겨울이 벌썬 7년 전의 겨울이구나!  헌데 목사님은 다른 기억을 말했다. "부임하신 지가 벌써 7년이나 되셨으니... 어떠신가요? 그때 남편 목사님께서 새로운 교회로 청빙 받으셨다고..." 
 
아, 교회 7년! 꽉 채운 7년이구나... 7년이라... 도통 현실감 없는 세월의 헤아림이다. 최근 뉴스앤조이의 기획 기사로 몸 담고 있는 교회 이야기가 쓰였다. 나는 주야장천 나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무슨 생각을 했네, 어느 새를 만났네, 뭘 해 먹었네... 그냥 한 생각을, 스쳐 지나듯 만난 새 한 마리를, 만들어 먹은 음식을 글로 쓰면 다른 것이 보인다. 그것과 나 사이 거리가 생기면서 말이다. 뉴스앤조이 기사로 누군가 '써 준' 나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 이 느낌이 생경하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나의 이야기라 할 수는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나의 체험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기사는 현실감 없는 나의 7년을 살아있는 나의 역사로 느끼게 한다. 객관적인 기사에 나는 왜 위로를 받는 거지? 
 
이 교회로 오는 일, 누구 하나 찬성하는 사람 없는 선택이었다. 현실감을 장착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고, 견디지 못할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모두들 힘들 거라고 했지만, 무엇이 힘들지 얼마나 힘든지 알 수는 없다. 힘들 거라고 말했던 이들이 알 수 없는 그 힘듦, 말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면서 아마도 이것은 '벌'일 것이다, 생각했다. 한국교회와 불특정 목회자를 싸잡아 혐오하고 냉소했던 신앙 사춘기 비행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은 죄를 착한 남편이 받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많이 회개했다. 
 
연구소 카페에서 헨리 나우웬의 『두려움에서 사랑으로』로 영적 독서를 하고 있다. 이 즈음 주제가 "원망에서 감사로"이고, 엊그제 내용은 이것이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의 돌덩이를 깎아 원망의 돌조각들을 파내시도록 가만히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영성 계발이다. 돌조각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크고 작은 아픔이 있다.
익숙한 감정,
아까운 개념,
값진 아이디어,
결정적인 인생 계획,
정당화될 만한 태도,
습관적 행동,
특히 소중한 우정이나 공동체
를 내려놓아야 할 때마다우리 마음에 항변이 생긴다. 그러나 작업 중인 하나님의 애틋한 손길을 볼 용의가 있다면 우리는 알게 된다. 그렇게 많이 깎아 내야만 빈 공간이 생긴다는 것을. 거기서 비로소 우리가 채워지고 치유되어 마침내 하나님이 의도하신 우아한 춤추는 자로 변화될 수 있음을 말이다. 

 
지난 주일, 추수감사주일에 현실감 없는 7년을 헤아리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자아의 돌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견디도록 도와준 눈빛과 표정과 손길들을 떠올리며 일일이 복을 비는 기도를 드렸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감사는 쉬운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다. 감사와 짝을 이루는 원망과 닿아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감사에는 원망과 상실감의 흔적이 어른거릴 테니 순도 100%의 감사란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원망의 흔적이 깊은 감사일수록 찐 감사일 거라고... 겨우겨우 부지하는 부족한 믿음을 가진 나를 스스로 격려한다. 
 
7년 전, 더함교회에 강의 갔을 때 사모님께서는 아이를 품고 있었다.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저보다 어린 아기들을 돌보는 일곱 살 언니가 되어 있었다. 교회 동생들 돌보는 목사의 딸, 내겐 너무나 익숙한 나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 로은이가 손수 꽃을 한 송이 만들어 주었다. 팔공산 맑은 공기를 배경으로 사진 한컷으로 찍어 마음에 담았다. 7년은 그런 세월이다. 세상에 없던 생명이 나와 제 손으로 꽃 한 송이를 만들도록 여무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남은 여생, 뭘 하든 7년은 견뎌보기로 마음먹었다. 혹 내가 죄를 지었다면 7년 정도의 벌은 달게 받겠노라 결심했다.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복무했고, 느부갓네살이 교만의 죄로 7년 짐승 같은 생활을 한 것이 여사로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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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뜨거운 여름을 더욱 뜨겁게 했던 교회 수련회 '이우 가족 힐링캠프'를 마쳤다. '힐링 캠프 in 힐링 캠프'라는 프로그램을 맡아서 그 준비로 조용히 바쁜 몇 주간을 지냈고. 비밀에 부친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역할을 맡은 분들과 열세 개의 단톡방을 운영하며 준비하면서 "나 이벤트 회사 실장님 같애" 농담도 했는데. 잘 마쳤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수련회 보이지 않는 주제였다. 내가 맡은 '힐링캠프in힐링캠프'가 그랬고, 남편의 설교도 가만 톺아보면 내내 그 얘기였다. 내 상처가 완전히 다 낫고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상처 치유를 위해 내 마음을 잇대는 것이 오늘 우리를 초대하시는 자리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강의에 가끔 인용하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랍비 요쉬아 벤 레비는 랍비 시메론 벤 요하이의 동굴 입구에서 예언자 엘리야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에게 물었습니다.  
“메시아가 언제 오실까요?”
“가서 그분에게 직접 물어보시오.”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성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그분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앉아 계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한꺼번에 다 풀었다 다시 싸매지만, 그분은 한 번에 한 군데씩 상처를 풀었다 다시 싸매십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아마 내가 필요하게 될 거야. 그때 잠시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나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만 해’라고 혼잣말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저 커다란 그림 <탕자의 귀향>은 어떻게 하다 저기 걸려 있게 되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탕자의 귀향'으로 연극을 한 조가 있었는데, 그 조에서 걸어 놓으신 건지...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저 그림 하나로 쓴 <탕자의 귀향>은 상처 입은 치유자를 연상시키는 또 하나의 서사인데 말이다. 
 
그 그림 아래에서 노는 아이들! 수련회의 꽃은 역시 아이들이었는데. 강당 한쪽에 돗자리가 깔려 있고, 아이들은 저기 앉아 놀다가, 뭐든 따라 하다가, 뒤에 넓은 공간에서 뛰다가... 조에서는 마스코트 역할을 하면서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아이들 생각만 하면 사랑이 차올라 내 입술을 깨물게 된다. 하필 저 그림 밑에 아이들 자리가 있다. 상처 입은 치유자의 그늘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는 아이들! 이런 사진을 건지다니. 정말 멋진 2박 3일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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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휴일. 전날 월요일에 '놀월 안식일' 루틴으로 놀았는데 아이들이 각자 공부로 바쁘니 연이어 이틀을 둘이 놀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영화 저 영화를 마음으로 전전하다 그냥 집에서 각자도생 휴일을 보내기로 했다. 수련회를 앞둔 터라 부담 때문에 놀아도 노는 게 아닐 테니. 각자 안방에서 거실에서 할 일을 하다 끼니때가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어나 식탁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어제 남은 떡볶이와 순대로 순대볶음 만들어서 한 끼 먹고. 또 냉장고 털어서 카레로 한 끼 먹고.  따로 또 같이 제각각 모양의 유리잔에 아이스 핸드드립 커피도 한 잔. 혼자인 듯 둘이 같이, 둘인 듯 혼자서 휴일 하루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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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촌에 드라이브 갔다가 K 목사님 밥 사주고 올까? 오케이!
오늘 안 된다네. 남한산성 시장에 김치 사러 갈까? 오케이!
그냥 카페 갈까? 오케이!
와아, 이건 사진 찍으라는 프레이팅이네.... 찰칵찰칵... 찰칵... 아, 잠깐 또 찰칵... 잠시만! 찰칵...
(촬영 끝나도록 하염없이 기다려 줌)
수련회에서 내가 맡은 프로그램 의논 좀 할까? 들어볼래? 오케이!
안 되겠다, 그냥 책 보자. 오케이!
에어컨 춥다. 갈까? 오케이!
돌고래 상가 가서 반찬 살까? 오케이!
기름 넣고 세차할까? 오케이!
저녁은 벽산아파트 장에서 떡볶이 사서 먹을까? 오케이!
나 떡볶이 사는 동안 세탁소에서 수선한 바지 찾아줄래? 오케이!
애들 삼겹살 숙주볶음 해주려고. 숙주 반 봉지만 씻어 줄래? 오케이!
 
기본적으로 안 되는 것이 없음.
 

당신 참 온유하고 수용적인 사람이야. 뭘 말하면 안 된다는 게 없어. (욕구가 뚜렷하고 안 되는 게 많은 나로서는 존경스럽지,라는 말은 하지 않음) 기본적으로 성찰적이고. 그래서 보통 사람, 보통 남자와는 차원이 다른 훌륭한 사람이야. 그런데 중년 고개를 넘어가면서 보니까, 위험한 지점이 있더라. (가끔 벽처럼 느껴진다는 말은 하지 않음. 아슬아슬했는데 '위험한 지점' 정도의 표현을 찾아냄) 중년의 고개를 넘으면 누구든 내 성격의 빛이 아닌 그림자를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거 진짜 어렵지. 보통 남자들이 그 과업을 제대로 하는 걸 잘 못 봤어. 생애 전반에 착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당신도 그런 면에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해. (딸이 그 지점에서 답답해 죽는다는 얘기는 안 했음) 다행인 건 당신이 설교하는 사람이라는 거야. 아니, 단지 설교하는 사람이 아니라 설교한 대로 살기 위해서 애쓰는 목사라는 거지. 설교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하기 때문에 뼈아픈 한 발을 내디디는 걸 알아. 당신이 목사인 것이 당신 자신에게, 내게, 아이들에게 진심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소명 때문에 당신을 바꾸려 애쓰는 고군분투를 아이들도 알아. 당신 좋은 목사야. (좋은 남편이라고는 하지 않았음. 정확히 말하면 목사 점수보다 남편 점수가 조금 높다고 하는 게 좋겠는데... 남편 점수는 유동적이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데… 요즘 좀 하락세라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여기서만 밝혀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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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구들보다 두어 시간은) 일찍 일어나는 새다. 일찍 일어나 연구소 카페에 '읽는 기도' 필사해서 올리고,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 묵상 나누고, 기도하고, 글 좀 쓰고 있으면 늦게 일어나는 새들이 한 마리씩 나온다.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늦잠 자는 채윤이를 제외하고  JP(제이피, 아니고 종필로 읽어야 함)과 현승 두 남자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이 여름 아침 식사는 아이스 라떼와 빵 한 조각이다. 그러고 앉아서 아침을 먹노라면 나는 뭔가 막 신이 난다. 신이 나서 이 얘기 저 얘기, 농담 따먹기를 하노라니... 어느 날 현승이가 말했다. "와, 나 여기 앉을 때부터 엄마가 입을 쉬지를 않네. 조잘조잘조잘조잘..." 그러자 JP이 "나 그래서 귀에 염증 생긴 거야." (귀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이석증' 재발인가, 하고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귀에 염증이 생겼단다.) 니 엄마 때문에 귀에서 피가 나. 이쪽 귀잖아. 딱. 그래서 염증 생긴 거야 "
 
나 저항 없이 인정했음. 왠지 정말 그런 것 같아...ㅜㅜ 그래도 좀 참을 수는 없음. JP은 매사 좀 귀찮아 하는 스타일이라... 귀찮게 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하지 말라고 짜증내면 더 귀찮게 하고 싶다. 귀 염증, 내 탓이라 여기겠음. 이번 기회에 진심 회개하고 장난 그만치기로! (JP에게는) 
 
늦잠 자고 싶은 채윤이가 "제에~발 좀 아침에 엄마 아빠 식탁에서 얘기 좀 하지 말라고오! 잠 좀 자자고오! 아, 진짜 그리고 얼음 꺼내는 소리... 진짜!!" 한다. (채윤이 방이 주방 바로 옆) 그런 말을 들으면 또 참을 수가 없다. 다음 날 아침, 라떼 만들려고 얼음을 푸다가... "김채윤 깨워야지, 김채윤 짜증 나게 해야지. 우헤헤..." 얼음삽으로 통을 휘저어서 소음을 일으켰다. 신이 나서 아드레날린이 폭발이다. 커피 내리던 현승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그러다 진짜 지옥 가!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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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선교여행을 가는 JP이 떠나기 전날에 꽃을 사 왔다. 자기 없는 사이 자기 본 듯 보란다. 왠지 당신이 싫어할 조합이지만...이라고 했다. 어, 완전 내가 좋아할 조합인데! 꽃아서 식탁에 두었다. (미안해, 여보. 밥 먹으며 꽃을 보는데 꽃이 꽃으로 밖에 안 보여. 당신 생각은 꺼졌나 봐...)

 

캄보디아에 함께 간 남자 둘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속속 보내오는 세 남자 사진을 보면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왤케 대견한지...라고 말하다가 깨달았다.  "아, 조장 누나 마인드구나!" 근 30여 년 전에 저기 두 남자의 청년부 조장 누나였었다. (지금은) 남편을 캄보디아에 보낸 (한때) 성경공부 조장이었던 누나 둘이 간절하게 기도하며 며칠을 보냈다. 두 조장 누나 각각의 오랜 (또는 그리 오래지 않은) 기도응답에 대한 기도일 수도 있고. 

 

세 남자의 비행기 안 셀카를 보고 채윤이가 "셀카 각도 실화?" 했는데. 내 눈엔 예쁘기만 한데. 세 남자가 꽃보다 더 예쁜데!  했더니 "셋이 뭔가 비슷한 느낌이긴 하다. 셋 다 뭔가 착하잖아."라고 했다.

 

꽃보다 예쁜 남자들 인천공항에 내렸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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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가 저녁으로 삶은 계란을 싸가고 있다.
반숙, 반완숙 등을 주문하면 내가 또 기가 막히게 삶아서 주는데...
잘 삶아진 계란을 유리그릇에 담다가…
이것 말고 냉장고에 있는 날계란을 넣어 보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맛있게 먹을 생각에 두근두근 계란을 탁 깼는데 주르륵....
"으.... 정신실!!!!!" 
남편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생각만 해도 웃기고 신이 난다.
이게 '감동란'이지.
 
고난주간인데, 고난주간 저녁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참았다.
언젠가는 꼭... 감동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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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16강 진출!! 김종필 메롱~" 식탁에 아이패드 놓고 그 역사적이고 짜릿한 포르투갈 전을 혼자 관람한 채윤이 작품이다. 16강 진출의 기쁨과 '축구 친구 김종필'에 대한 배신감이 고스란히 담긴 몇 마디이다. 현승이는 친구들과 보러 가고, 엄마는 원래 축구에 관심이 없는데... "아빠는 안 봐. 내가 보면 져."라고 말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버린 아빠, 결국 이 재밌는 순간을 주먹으로 입 틀어막고 보게 한 아빠에 대한 배신감과 복수심이다. 축구에 너~어무 진심인 아빠는 '보면 질까 봐'가 아니다. 설교를 향해 몸과 마음을 만드는 금요일의 리듬이 깨질까 피한 것이다. 몸은 물론이거니와 축구 승패로 마음이 요동칠까 하여 미리 피한 것이다. 축구할 때 보면 김종필이 아니라 그냥 아저씨다. "야아, 그걸 왜 그쪽으로 보내. 에휴... 저런 멍청한... 안 돼, 안 돼. 우리나라는 안 돼..." 평소 김종필에게 볼 수 없는 아저씨 본능이 그대로 나온다. "그렇게 잘하면 니가 가서 해!"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일종의 아바타 같은 거란다. 자신의 승부욕을 투사받아 대신 싸워주는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하란다. 아, 그렇다면 이해되지.


축구보다 설교에 진심이다. 그의 일주일 시계는 설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설교하는 직업이 아니면 삶이 훨씬 더 여유로울 것이다. 뉴질랜드 코스타에서 맡은 설교는 콘퍼런스 마지막 날 오전이었다. 지난여름 미주 코스타에 참석했던 채윤이가 "아빠, 어떡해. 그 시간은 애들이 거의 다 자. 마지막 날 새벽까지 놀고 얘기하고, 설교 듣는 애들이 없을 걸." 했다. 게다가 새벽에 월드컵 우루과이 전까지 있었으니 청중은 거의 사망이라고 봐야... "마음을 비우고 해. 한 사람은 깨어 있을 거야. 그 친구만 보고 설교해. 나도 전에 어느 청년부 수련회 마지막 날 오전 강의에서 회장만 깨어있는 강의 한 적 있어. 그냥 당신 자신을 위해 진심의 설교를 해." 본인도 충분히 각오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정반대. 설교자로서 근래에 경험해보지 못한 충만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청중과 함께 뜨거워지는 그 맛, 영혼이 살아나는 그 느낌을 나도 좀 안다. 역전골을 넣는 순간,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너와 나 구별 없이 모두 얼싸안고 뛰는 느낌에 비할 수 있을까?

축구에 진심이고, 축구보다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설교에 진심인 JP(‘제이피’ 아니고 ‘종필’로 읽어야 함) 은 달라스 윌라드에 진심이다. 목회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께 배우고, 영성은 달라스 윌라드께 배우는 모범학생이다. 연구소에 오는 목회자들을 위해 달라스 윌라드의 <마음의 혁신> 읽기 모임을 이끌어주었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정성을 들여준 것인지 잘 안다. 그에게 시간은 내게 정말 마음에 드는 정장 원피스처럼 소중한 것인데, 매주 꼬박꼬박 시간을 내어주었다. 시간뿐 아니라 진심을 담아주었다. 보상도 없이 내어준 모든 것에 감사하다. 모임 후기를 남겨두고 싶다. 설교에 진심인 JP에 주신 위로와 격려가 코스타의 경험이라면, 목회에 진심이고 싶은 JP에게 주신 기회와 성취감이 이번 책모임이 아닐까 싶다. 2022년 가을, 늦가을의 소중한 경험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고, 메마른 일상의 설교에 지칠 때 꺼내볼 수 있었으면. 자신의 진심을 믿어줄 수 있었으면.

 

 

 

 

❝혼자서는 버거웠을 ‘마음의 혁신’이라는 산을 넘을 수 있도록 월요일 저녁마다 마음으로 함께해준 벗님들께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달라스 윌라드를 닮으신 가이드님의 친절한 안내덕분에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역자로서 잔꾀와 산만함을 버리고 제자로 살고, 제자 삼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 열망이 커졌습니다. 가장 단순하고 하찮은 일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며 사는 인생 후반이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요 몇년은 제게 무척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이 때에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꿈모임, 꿈 북스터디, 그리고 "마음의 혁신"을 귀한 분들을 통해 만났고, 다시 저를 살려내는 여정이 이어지고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뽀이님,소장님, 그리고 친구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저의 내적 여정은 조금씩 계속됩니다. 기대하기는 여려분과 함께 다시 볼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혼자 읽었더라면 평면적으로 밖에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인데, 함께 스터디를 함으로써 입체적으로 보는데 도움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캐릭터가 다르면서 고뇌하는 목회를 하시는 세 분의 젊은 목사님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울림을 주었구요. 특히 이 책이 주는 느낌과 이미지가 비슷한 뽀이님의 균형잡힌 설명과 목회 현장의 이야기들은 마음의 혁신을 이루어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영성이라는 모호함을 정리해주고 알게해주는, 그래서 삶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책모임이었습니다. 삶의 자리는 다르지만 함께 고민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특별히는 이해를 위해, 소화를 위해 노력해주신 뽀이님 감사합니다! 비록 앞으로도 시스템 속에 살아가겠지만,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고 시스템이 아닌 영혼에 주목하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어려울 때마다 달라스 원정대를 끝까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신 간달프 뽀이님께 감사드리고, 일주일의 고단함 속에서 오아시스같은 모임으로 함께 해주시는 소중한 분들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달라스의 여정이 끝나지 않길 바라며, 다음엔 함께 하나님 음성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마음의 혁신 스터디’는 저에게 ‘고급 한정식 코스요리’였습니다. 한정식 중에 더러는 처음 먹어보는 맛도 있지만, 대부분 먹어본 음식입니다. 마음의 혁신의 내용도 그러했습니다. 한 때, 심취했던 ‘개혁주의 성화론’과 내용상 겹치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한계를 맛보고 떠나왔던 그 음식을 하나님이 다시 먹으라고 하는 느낌!
 
그런데, 맛이 고급이었습니다. 이전에 먹어봤던 음식이지만, 대가의 손길을 거친 음식은 역시 맛이 달랐습니다. 또한,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맛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스요리였습니다. 분리될 수는 없지만 구분되는 인간의 자아의 다양한 차원들을 코스요리처럼 찬 챕터씩 서빙해주었습니다. 총체적이고 통전적인 요리였다는 점에서 이번 식사는 특별했습니다.
 
늘 새롭고 특별한 음식을 맛보고 싶어하는 저에게... 하나님은 이제 다시 건강한 ‘한정식’을 먹자고 하십니다.
그 동안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추구하며... 놓아버렸던 ‘위로부터의 영성’을 다시 붙들게 하십니다. 저의 내면 안에는 이 둘의 충돌이 여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제 안에서는 아직 달라스 윌라드와 안셀름 그륀이 약간 싸우고 있습니다. 둘의 잘 연결되고 통합되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저에게는 진행중입니다.
 
그래도, 뭔가 한 고비를 넘어간 느낌입니다. ‘위로부터의 영성’을 놓아버릴 자유를 허용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다시 이것을 잡고 싶어졌습니다. 버리지 않고, 포함하여 뛰어넘고 싶어졌습니다. 스터디를 통해, 이 갈망을 심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들게 얻은 이 씨앗...잘 키워가겠습니다. 귀한 스터디를 열어주시고, 가이드해주시고, 함께 동행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오래전에 알았던 책이었으나 읽고 싶어도 어렵고 어려워 고이 모셔놨던 책을 이렇게 멋진 인도자의 도움을 받고 친구님들께 배워 완독을 했다는 기쁨이 큽니다!이제 여정이 비로소 시작된거 같습니다. 이 모임을 통해 얻은 갈망을 붙잡고 또 한걸음 전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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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뉴질랜드 코스타 참석하느라 집을 비웠다. 현승이 수능 날에 출국하여 마지막 논술시험 마치는 날에 들어오는 일정으로. 일정도 어쩌면... "중요한 때 아빠가 액운을 싹 몰아가지고 바다 건너갔다가 끝나고 오는 거라고 쳐. 어쩌면 아빠 자신이 액운... ㅎㅎ"


월요일 아침 현승이와 둘이 밥을 먹다가 말했다.
월요일인데, 월요일엔 아빠랑 같이 보내는 안식일이거든. 걷고, 밥 먹고, 카페 가서 책 보고.... 그렇게 쉬는 날인데. 아빠가 없으니까 어쩐지 월요일이...
허전해?
아니. 휴가받은 느낌이야. 쫌 좋아. 월요일에 아빠랑 쉬는 거 진짜 좋아하거든. 그런데 오늘 여유 시간이 생긴 것 같고 막 뭔가 홀가분하고 그러네.
아,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구나. 엄마 아빠....
(015B 노래 '아주 오래된 연인들' 맞다. 현승이 태어나기도 전 노래지만, 이걸 말하는 거 맞다. 얘는 어렸을 적 장래희망이 '옛날 가수'인 애라서 그렇다.)
일종의... 그런가 봐.

낮에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가사를 찾아보았다.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 /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거야~이야

 

아닌데... 아직 두근거리는데. 설렘도 있는데... (빡침과 싫증이 없다고는 안 했음)

저녁에 현승이에게 다시 말했다.
현승아, 엄마빠 '아주 오래된 연인들' 그거 아니야. 가사 다시 찾아봤는데. 아니야. 엄만 아직 아빠한테 설레. 아침에 말한 느낌은 좀 다른 거야.
아, 그런 거구나! 나도 시험 때 아빠가 없으니까 뭔가 편한 게 있어. 아빠가 죽은 것도 아니고... 시험 끝날 때 올 거고. 아빠는 노력해서 한 마디 하는데, 내가 예민해 있을 테니까 또 짜증 낼 수도 있잖아. 그러면 또 아빠가 엄청 신경 쓰일 거고, 그런 아빠를 아니까 나는 더 신경 쓰이고... 그래서 뭔가 마음 편한 게 있어.
그치? 그치? 그 비슷한 걸 말하는 거야.

MBTI로 NT 아빠-NF 아들, 에니어그램으로 5번 아빠-4번 아들 사이 긴장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데, 가끔씩 도통 이해 못 하는 그런 지점이 있다. 그걸 말하는 거다. 아무튼, 그가 오늘 돌아온다! 현승이 논술 입시도 오늘이면 끝이다!

 

와이카토 대학 캠퍼스에 선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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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bath diary 42 : 영화 취향, 신학 취향  (0) 2022.09.05
그만해. 그만하라고 했잖아.
가르치듯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기분 좋아?
설명하고 가르치는 거 싫어하잖아.
토요일은 설교준비 하니까 말 못 하고.
주일은 설교하고 힘드니까 말 못 하고.
월요일은 긴장 풀고 느슨해져야 하니까 말 못 하고. 언제 말해?
그냥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해도 되잖아.
좋은 뜻으로 말하는 거였어.
그럼 그렇게 말하는데 잘 들어져?
도와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었다고.
상투성이 악이야. 한나 아렌트가 말했어.
악이라니! 그런 말을 함부로 해?
베드로한테 사탄이라고 하는 거랑 똑같애.
(침묵.......)
아우, 기분 나뻐.
나도 기분 나뻐.


월요일, 기분 좋게 걸어서 보정동 카페거리로 점심 먹으러 갔다가, 맛있는 편백나무 찜을 앞에 두고 설전을 벌이고 말았다. 누가 쏜 총알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피차에 쏘았다. 기분 좋게 식당에 들어갔다가, 말 한마디 없이 먹고 나왔다. 한 몸처럼 가깝고 친밀했던 사이가 1km로 멀어지는 것은 순간이다.

커피 마실 거야? 됐어. 집에 갈 거야. 스콘 사 가지고 집에 갈 거야. 나란히 걷지만 마음은 그새 2km 멀어져서 퉁퉁퉁퉁 걷는 길이었다. 탄천 길 버리고 산길을 선택했는데, 어머 산 입구 공원에 단풍이 왜 이리 예쁜 거야? 감동인데, 뚱한 얼굴에 감동을 담기는 그렇고... 카메라 들고 사진 찍어댔다. 예쁜 풍경 담다 보니 표정이 자꾸 풀리려고 해서 민망하다. 어, 새다! 박새로 추정되는 작은 새 두 마리가 폴짝폴짝 놀고 있는데 표정관리는 다 틀렸다. 헤벌쭉.... 그렇게 단풍 아래서 머물고 다시 걷는 길에 쓰윽 손을 잡아 버렸다. 새는 내게 하늘의 메신저인데, 이 순간 사랑에 깨어나라고 하시는 그분의 메시지인데 거부할 수가 없다.

손 꼭 잡고 집에 와 마음 상한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은 스콘과 함께 커피를 마셨다. 서쉐숵 목짠님께서 이태리 여행에서 사다주신 에스프레소용 원두로 모처럼 모카포트에 커피를 만들었다. 다시 마주 앉으니 조금 민망하고, 아까 그 기분 나쁜 느낌이 다시 살아나긴 했지만, 스콘이 맛있고, 커피가 좋아서 그럭저럭 괜찮은 시간이었다.

위의 사진은 가을 초입의 어느 비 오는 월요일에 운치 있는 카페에서 달달했던 순간이다. 달달한 순간에 읽기 딱 좋은 책 제목이 <악>이었다. JP의 책이지만, '악'은 우리 둘 모두 관심 있는 주제이다. 악에 관한 많은 책 중 내겐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 만큼 깊이 있고 실용적인 책이 없다. 성경만큼 가까이 두고 있는 책이다. 해마다 연구소 지도자 과정에서 함께 읽는 책이기도 하고. 마침 이번 주 지도자 과정이 이 책 나눔이다. 많은 이들을 만나 상담했던 스캇 펙은 악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며 대부분은 그냥 피상적으로만 관찰하더라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악을 치유하려는 씨름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최대의 무기가 될 것이라고. 늘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이다. 마틴 부버의 말을 인용하여 두 유형의 악인을 구분한다. 하나는 악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 또 하나는 본질적으로 악에 먹혀 추락한 자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늘 악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과정 앞에 선다고 생각한다. 미끄럽다. 그 길이. 여차하면 미끄러져 들어간다. 악에 대한 여러 정의 중 "악한 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생명과 성장을 거스르는 일에 자신을 헌신한다"는 말은 연구소 이름에 '성장'이라는 말을 넣은 이유이다.

사랑은 행복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문제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두 사람이 성장하려면 투명한 소통이 있어야 하고,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한다. "화해한 상태"에서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단풍나무에서 노닐던 두 마리 작은 새는 내 입으로 뱉은 말들을 순간 떠오르게 했다. 말이 아니라 태도를 생각나게 했다고 하는 게 맞다. 늘 '화해한 상태'를 유지하고, 언제든 화해하려 하는 사람은 JP이다. 나는 어떻게든 싸우려 하고, 더 싸우려 하는, 화해할 수 있는 상태에서 더 강퍅해지는 그런 부류이다. 내 약점이다. 약함이 여차하면 악함이 된다. 악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된다. 약함과 악함의 기로에서 어설픈 '성장'을 선택하는 것이 덜 악한 자로 사는 노하우이다. 내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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