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은 정서적 영적 성장을 위한 보물창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강의하기 전에도 어렴풋이 모르지 않았었다.
엄마와의 복잡다단한 애증이 해결되면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엄마와의 그것은 그대로 어린시절 부터 있어왔던 피해의식과 분노이기도 했었다.

과연 어린시절은 보물창고다.

그러나 이런 표현과 접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반감으로 더 거리를 두게 한다는 걸 알기에 조심스럽다. 에니어그램과 내적여정 강의를 할 때도 '어린시절'을 다룰 때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다.






'어린시절 작업'(이라고 부른다. 보통) 을 하면서 맨 처음 나는 '행복하고 사랑 많이 받은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과연 그랬다. 늙은 목사님에게서 태어난 딸이었다. '이삭'이라 불리며 엄마 아버지는 안아볼 새도 없이 여기서 저기 예쁘다고 데리고 다녔다고 했다. 개구장이 동생이랑 늙은 엄마 아버지를 놀리고 재롱을 떨면서 재밌고 소중한 추억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그러나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충격으로 분명 내상을 크게 입었다는 정도였다.


(갑자기 딴 얘기, 그러나 같은 얘기)


정말 용서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수 년 전에 만난 사람이다. 우리 교회에 부임한 어느 부교역자의 사모님이었고, 나는 '사모님'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마음이 있기에 참 반갑게 따스하게 대하고 싶었다. 헌데 처음 대면부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느낌이더니 대체로 나를 받아주질 않았다. 딱히 자주 마주치는 관계도 아니었기에 '나같은 스타일 별론가보다' 했었다.(그 때 난 평신도였었다)
나중에 이 사모님이 청년시절 후배의 친구라는 걸 알았다. 그 후배는 그야말로 뭔가 나랑 잘 맞지 않는 아이였고 여차저차한 일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 아이다. 그 애 역시 그럴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친구로부터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얘길 들었고 그 정보를 가지고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을 제꼈다고 생각하니..... 난 이 부분에 대해서 아직 용서할 수가 없다.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할 때마다, 그 분의 자서전을 읽으며 전율하는 부분이다. 한 두 사람이 아닌 국민 대다수로부터 그저 그냥 무조건 '김대중'이란 이름이 '빨갱이'라는 등식으로 가는 이 하늘 무너지는 억울한 오해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그리고 돌아가시고 난 후 알았다. 이 분이 정말 예수님을 만난 참 신앙인이셨구나.
김대중 대통령께서 전두환을 용서했을 망정 나는그 사모님에 대한 마음을 해결할 길이 없다고 느낀다. 이 한 마디를 그 마음에 꽂아주고 싶다. '성경에 있습니다. 엄히 말하노니 편견을 버리라' 당신의 편견으로 제 영혼을 한 순간 말라비틀어졌었습니다.








3학년, 6학년 때 두 번 왕따를 당했다. 6학년 때는 정말 심했던 것 같다. 이 왕따 이야기가 가끔씩 가볍에 떠올리며 했던 작업이기에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를 겪어보지도 않고 어디서 들은 편견을 가지고 나를 거절해버린 그 분에 대한 과.도.한 분노가 어디서 오는가? 분명 과.도.하다. 얼마나 과도하면 일생에 용서할 수 없는 일로 표현을 하겠는가? 내 안의 어딘가에서 오는 과도함인 걸 안다.
왕따를 시켰던 아이가 그랬다. '넌 나보다 이쁘지 않아. 내가 제일 예쁘고 그 다음이 너야' 그러면서 어떨 때 자신의 그룹에 넣어주고 잘해주다가 나를 왕따시키기 시작하면 무서웠다. 반에서 어떤 아이도 나하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나는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위 사진을 꺼내 보면서 왕따가 한창이었던 6학년 때의 내가 어땠나를 생각해봤다. 대체로 나는 까불고 밝은 아이였다. 사진들이 그렇다. 6학년 때 사진은 확실히 다르다. 함께 사진을 찍은 친구가 울면서 나에게 말했었다. '너랑 얘기하면 안 돼'  그 시절이 지나고 중학교 가서 잘 지내다가 2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그 때 헤어지면서 저 친구가 많이 울고 미안하다고 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날 찍은 사진이다. 어쩌다 공부좀 한다는 여자애들이 통틀어 모여서 찍게 되었다. 이 날 나는 독감으로 무지 아팠다. 여기서 한복을 입은 아이들은 나를 왕따시킨 아이와 그 일에 앞장섰던 아이들이다. 세월이 지나고 다시 만나서 잘 지내고 있지만 이 사진의 나 역시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마음에 상처받은 아이가 울고 있다고 한다. 사실 그런 표현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만 , 누구나 마음에 큰 결핍이 있고 상실감이 있다. 대체로 어린시절의 경험과 맞닿아 있고 그걸 다루는 것, 특히 하나님의 사랑에 빛에 그 결핍과 상처를 비춰보는 것은 꼭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왕따로 인해서 나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왕따로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다. 담임선생님이 알게 되고 반의 남자 애들이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늘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었는데 어쩌면 그 왕따 사건으로 인기가 더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한테 자꾸만 '넌 나보다 예쁘지 않다'고 말했던 그 친구가 내 인기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왕따를 당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엄마가 심어준 치명적인 마음의 습관이 있다. '니가 모가 나서 그러는 거다. 교만하면 안된다. 하나님을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 이런 훈계였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은 둥근거예요.
나만이 잘났다 하지 않고요.
모지고 외톨이 되지 않아요.
언제나 웃으며 사이 좋지요.

이 노래는 딱 나의 노래가 되었다. 모지고 외톨이 되는 건 나다. 왜냐면 나만이 잘났다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상을 받아와도, 누가 날 이쁘다 한다해도, 내가 어디서 뭘 잘했다고 해도 일단 이렇게 말했다. '교만허지마. 교만허믄 안 돼. 그게 다 니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녀'






몇 학년 때인지 모르겠다. 어린시절에 기억하는 나는 저 아이다. 밝은 아이다. 늙은 엄마가 브로치 꿈을 태몽으로 꾸고나서 브로치처럼 이쁘지만 약한 아이여서 애지중지 키웠을 것이다. 목사 사모이면서 생계를 위해서 비단장사를 했기 때문에 나름 패션 감각이 있어서 장에서 이쁘다는 옷은 다 사다 입히면서 이쁘게 키웠다고 했다.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 하고 시골 애 같이 안 생기고 이뻤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걸 인정하면 교만한 아이기 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왕따 당하거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건 역시 내가 교만하고 잘난 척하는 것이 이유다.


 




얼마 전 왕따 당하는 채윤이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었던 감정,
그리고 어떤 계기로 올라온 감정과 그 감정을 따라 내려가면서 '왕따'를 다시 맞닥뜨린다.
내 속에 왕따 당한 어린 아이가 울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미 다뤘던 작업이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울고 있는 것 같다. 울다가 분노하고, 울다가 수치심에 웅크리고, 울다가 지치기도 하면서 어른이 된 오늘의 관계를 좌지우지 하는 것 같다.
다시 직면하려고 한다.
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랑스러운 아이(사란)이라 생각하며 동시에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느낀다. 내 실체를 알며 모두 날 싫어할 거라 느낀다. 나는 뭣도 잘 하고 뭣도 잘 하고 사람들에게 호감형이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관계의 실패자라 여긴다. 언젠가는 관계가 틀어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를 질투하여 왕따시키는 타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내가 교만하고 모가 난 탓이라 여긴다. 그 사이에 늘 끼어있다.
답을 어디서 찾을 지, 그 아이를 어떻게 다시 만나 달래주고 보듬어 줄 지, 늘 그렇듯 공식같은 해법은 없지만 어떤 모양으로든 그 분의 사랑의 빛 앞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사진의 저 아이처럼 도도하고 교만해 보이는 아이와 왕따 당해 울고 있는 아이가 통합되고 아직도 과거를 살고 있는 내 마음에 그 덫에서 조금 자유로와지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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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이 곧 교회생활인 나의 40여년을 돌아본다.
태어날 때 부터 지금까지 교회생활은
주목받고, 박수받고, 칭찬받기 위해 다녔다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물론 단 한 번도 교회가면서 그걸 또렷하게 인식한 적은 없다.


어렸을 때는 노래 잘하고 똑똑한 목사님 딸로,
자라서는 찬양 율동 선생님,
찬양 인도자,
리더,
지휘자,
커피 내려주는 사모님...
의도하지 않은 것 같지만 결국 늘 주목받는 자리를 놓치지 않았었다.


새로운 교회에서 육 천 여명 성도 중에 제대로 아는 사람이 남편 밖에 없다.
누구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내 존재를 주목해주지 않는다.
잠깐 한 번 들렀다 가는 교회처럼 지난 한 달을 다녔다.
낯섦으로 인한 위축, 그리움, 상실감 같은 것도 살짝 지나가곤 했었다.
새해의 선물처럼 오늘 아침 나도 모르는 새 마음이 생겼다.
일찍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회 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차를 한 잔 마시고 예배를 드렸다.


외부에서 날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늘 내 마음에 세워두고 다니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관객조차 의식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보일까?’ 하는 어리석은 질문과 애쓰는 걸 접어두려 했다.
어떤 모습도 애써 만들지 않고 그저 ‘신 앞에 정직하게!’ 예배드리려 했다.
마음 한 구석에 새털 같은 자유로움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며 목을 매던 것을 놓거나 잃고 상실감이 찾아올 때,
바로 그 때 자유가 선물처럼 오는 것일가?


차분한 기쁨이 마음을 가득 메우는 날이다.



* 위는 100주년 기념교회 로고. 볼수록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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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이별로 얼룩진 한 해가 집니다.

해가 지는 이 시점에 비통한 죽음의 소식이 전해져 다시 마음을 후벼팝니다.


젊은 시절 가혹한 고문으로,

그 고문의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문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생명과 죽음을 생각합니다.






지난 여행 중 매일매일 서해의 장관이라는 낙조를 기다렸습니다.

마지막 날 땅끝마을에 도착하여 비로소 지는 해를 만났습니다.

땅의 시작이 아니라 땅끝을,

일출이 아니라 일몰을 향해 여행기을 달렸지요.

우리 인생도 그러하겠지요.

기쁘고 슬픈 여행 끝에 해가 지며 하루가 끝나 듯 끝을 맺을 겁니다.

그것이 깊게 삶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이지요.

부엉이 바위에 몸을 던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너무 많은 아픈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아픈 김근태님 죽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합니다.

죽음을 짊어진 인생을 더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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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 년 전 어느 휴가 주일이었습니다.
도통 다른 교회 예배를 경험할 수 없는 목회자에게는 금쪽 같은 날이라
심사숙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교회 몇을 물망에 올렸다가 최종 선택한 곳이 양화진에 있는
100주년 기념교회였습니다.
시간이 그닥 늦지도 않았는데 본당에는 못들어가고
어느 별관에서 스크린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쉬워서 이재철목사님 설교 CD를 몇 장 사왔습니다.
나오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교회 옆 성당을 한 두 장 찍었습니다.



2.

많은 이유로 예배가 기쁨의 자리가 아니라
일주일 중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가 된 지가 오래였습니다.

주일이 아닌 날에 기도와 일상 속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아주 또렷이 보이는데
예배의 자리에만 가면 하나님은 먹구름 뒤 푸른 하늘처럼 숨으시고
도통 하늘 향기를 느낄 수 없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아버지 앞에 안기라는 사랑의 메세지 대신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실 태도를 만들라. 긍정적이 돼라.
의심하지 말라'는 메세지가 귀에 쟁쟁합니다.

더욱이 내 안의 참소하는 자의 목소리는
'니 탓이다! 니 탓이다! 니 탓이다!'를 외치면 더욱 옥죕니다.

그런 날 집에 돌아오면 질식하여 쓰러질 것 같은 메마른 영혼으로
이재철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를
들었습니다.
창세기 강해를 들었습니다.

반복해서 외울 만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나의 하나님이 보이고
묵은 땅 처럼 딱딱해지 마음이 보드라워지기도 했습니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늦게 어렵사리 목회의 길에 들어선 이상 이재철 목사님 같은 설교를 하고, 이재철목사님 같은 목사님이 돼. 난 그렇게 기도할거야'



3.

10월말로 교회 사임만 결정됐을 뿐 앞으로의 행보가 정해진 것이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책없이 그만두는 젊은 사역자 부부를 애정어린 걱정으로 바라보셨고,
여러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뒤흔들고 또 뒤흔들어대는 여러 일들에도
남편의 선택이 일신의 편안함, 성공, 높은 자리와는 반대 쪽이라는 걸 알기에
깊은 곳에서 흔들리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허나 시간이 지나고 현실에 부딪히면서
우리 부부처럼 까칠한 사람들이 부교역자로 갈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두렵기도 서럽기도하여 비로소 꽉 쥔 주먹을 풀고 어린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앞은 광야였습니다.



4.

우연인지 필연이지 젊은 시절 신앙과 인생의 큰 길을 안내해주신 스승님께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사역자를 구한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어려운 3주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한영교회 마지막 인사하기 전 날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같은 교단도 아니고,
한 번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교회였습니다.



5.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예배드린 지 3주째.
매우 예전적이고 조용하게 진행되는 예배의 형식에 몸이 적응을 해갑니다.
아, 예배에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두근거립니다. 언젠가 나는 늘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예배에서 하나님을 찾아 헤매다 좌절하고 절망하여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라고 외치기도 했었습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이 보입니다.
아무 걱정 없이, 아무 헤아림 없이 나의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지난 몇 년 간의 눈물에 대한 위로입니다.




6.

합정동에 이사와서 생각보다  좋은 일이 많아서 감사합니다. 
걱정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지내줘서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새로 온 교회 안에 상식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 상식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아, 이게 상식이었지!
교회를 가면 나를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지만 참 좋습니다. 이게 상식이니까요.
몇 년 전 어느 휴가 주일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오늘의 조용하지만, 그렇게 잘 나는 눈물 한 방울 없었지만,
나의 하나님이 아주 가까이 느껴졌던 그 예배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반전일까요?
몇 년 전 어느 주일에 깔렸던 복선 결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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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랑 통화하며 정줄 놓고 시어머니에 대한 콤플레인을 별 여과없이 쏟아내고 난 후였다.

채윤이가 옆에 와서는
엄마, 내가 들을려고 그런 건 아닌데 들었어. 난 엄마가 할머니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쫌.... 너무 그래서 피아노 치는데 자꾸 그 생각이 나.

... 추.... 충격받았어?

그런 거 비슷해. 할머니가 엄마를 좋아하시잖아. 그리고 우리가 멀리 이사가니까 섭섭해 하기는 거 같고, 요즘도 매일 우리한테 잘해주려고 애쓰시는 것 같은데... 엄마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아시면...

맞어. 할머니가 밥도 해놓으시고 잘 해주시지. 엄만 근데 할머니가 몸도 약하시고 요리도 힘들어하시는데 그렇게 안하셨으면 좋겠어. 애써 해놓으시고 우리가 많이 고마워 안하면 화가 나시는 거 같거든.

그냥 그건 엄마! 난 그럴 때 그냥 그건 그 사람의 성격이라고 생각해. 나도 내 성격이 있는거고.. 그건 바꾸라고 할 수도 없는 거잖아(똬아~ F 엄마 열등감 고조시키는 T 딸의 쿨한 정리)

그것보다 좀 더 복잡해 채윤아. 할머니가 머리랑 많이 아프신 게 그런 거랑 상관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 엄마가 저녁에 가서 하겠다고 해도 자꾸 하시거든. 엄마는 할머니가 진짜 원하시는 것만 하시고 마음이 편하셨으면 좋겠어.

(근심이 더 많아진 표정으로) 엄마 언제부터 할머니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어? 할머니가 엄나한테 태우러 오라고 하시고 막 그럴 때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고모도 있고 큰엄마도 있는데 엄마한테 그렇게 하시는 건 그래도... 음... 그게 어... 좋은 거 아냐? 그 전에 엄마가 우리한테 할머니를 많이 사랑해드리라고도 했잖아. 그래야 머리 아픈 거 나신다고 했잖아.

어떻게? 나쁘게 생각하는 거 같애? 채윤아, 엄마가 지금 할머니가 힘들고 조금 밉기도 한 게 사실인데 걱정하지마. 엄마가 할머닐 사랑해. 어떨 땐 사랑해서 밉고, 밉다가 더 사랑하게 되기도 하는거야. 채윤이가 크면서 더 잘 알게 될거야.

(왜 아니겠어? 이 엄마가 할머니를 모시면서 처음에 두려워서 하는 공경과 사랑으로 하는 공경을 구분도 못한 채 질퍽거렸고... 시간이 지나며 할머니의 남모르는 상처와 고통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데... 함께 울어드리는 것이 치유임을 알고 그저 들어 드렸고, 그러면서 진짜 사랑한다는 게 뭔질 배웠는데...
걱정마. 채윤아! 엄마란 여자 하늘의 보물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포기하진 않아. 다만, 지금은조금 더 어려울 뿐이야.)

* 딸과의 긴 대화로 내 마음이 더 잘 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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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아가들하고 유리드믹스(라 이름하는 음악수업)으로 일주일에 한 번 만난다. 오늘 달뜰반 수업 들어갔는데 어린이집 오기 싫다고 울다울다 등원한 아이가 계속 울고 있었다.

헬로송을 부르면서 '안녕 별뜰반~(실은 달뜰반)' 이러면 애들 답답해서 가슴을 치며 '아아~니예~에요. 달.뜰.반이예요'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어, 미안 미안... 안녕 달.... 빛반' 이러면서 완전 멍청한 표정 지어주면 답답해 돌아버리겠다는 표정으로 웃겨서 쓰러진다. 어느 새 울던 녀석도 깔깔거리며 뒤로 나자빠진다.

한 감정에 오래 매여있지 않고 지금 지금 이 순간 새로 오는 자극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누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원래 우리의 지어진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감정과 나를 분리시키지 못하고 감정이 나라고 믿으며 사는 어리석은 어른은 오늘도 아이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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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요예배 갔다 왔더니 현승이가 발바닥에 뭐가 들어가 아프다며 보란다. 들여다보니 어디에 살짝 베인 것 같았다. 그 와중에 현승이가 '우리집 바닥에 이렇게 거칠거칠한 게 많잖아. 그래서 그랬나보다' 한다. 순간 '얌마! 우리집 바닥에 부스러기 젤 많이 떨어뜨리는 놈이 누군데!'하는 말이 올라왔으나 기회를 놓쳐 못했다.
오늘 아침 청소하며 생각해보니 현승인 그저 '바닥에 모가 있다'는 얘기였는데 나는 '엄마가 청소를 성실히 하지 않았다'로 들은 것이다.
난 현승이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현승이 말에 비춘 내 마음을 듣는다. 문제는 내 마음의 많은 부분은 크고 작은 콤플렉스, 꾸겨 넣은 분노, 자기연민....으로 채워져 있다는데 있다.

오늘도 창조의 첫 날 처럼 그 분의 손에 의해 내 속에 정한 마음이 새롭게 지어져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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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풀타임을 할 때 오전에 수영한다는 아줌마들 보면 '저 여자는 무슨 복이 많아서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수영하고... 늦잠도 자고...' 하면 부러워했다.

파트타임 전환하고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 끝나자마자 빛의 속도로 화장하고 일하러 가는 내게 '왜 이리 빠뻐. 커피 한 잔 하고 가' 하는 여유만만 여사님들을 보면서도 '내 팔자야' 하면서 부러워했다.
...
그렇게 수영에 매진한 결과 이제는 수영이 그 자체로 좋아졌다. '내 수영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귀하다' 고백하며 열심히 하니 '이 몸과 세상 간 곳 없과 레인과 영법만 보이도다' 하면서 즐기게 된다.

풀타임 때나, 파트타임 때나 지금이나 내가 몰랐던 건 이거다. '내게 없는 걸 가진 사람은 무조건 행복할거다' 라는 잘못 입력된 명제를 붙들고 있었다는 것. 다른 때 다른 곳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의 정점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가 됨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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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한다는 핑계로 아이들 학교 학부모 활동을 거의 해보지 않았는데 어찌어찌 올 해 녹색 어머니 교통지도를 하게 되었다. 2학기 개학날로부터 사흘을 섰는데....
꼴랑 사흘 하루 40분 서서 녹색어머니 한 번 해보고 건져올린 생각 주절거리기. 시작.


마음의 성장, 인격의 변화.
이것이 30대에 음악치료를 하면서,
아니다. 20대에 기독교세계관을 공부하며 이원론을 접하면서,
아니다. 청소년기에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처음 고민할 때부터....
그 때부터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런 질문과도 통한다.
'믿음이 좋은데 왜 인격은 이 모양인가?'
'기도를 한다는데 왜 이리 견고한 진같은 완고함 덩어리인가?'
'하나님을 목터져라 부르짖는데 왜 사랑이신 그 분이 느껴지질 않나?'
등등...
이런 질문들이 결국 내게는 다 '마음의 성장'으로 통한다.
때문에 내게 마음의 문제는 신앙의 문제이고, 삶의 문제이고, 모든 것이다.


내 마음에 투영된 '나'를 바라보는 관점, 나에 대한 의식은 이 과정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흘 동안 하루 하루 달라지는 자의식의 변화에 마음의 여정을 비추어보는 재밌는 경험이었다.


pre 녹색

녹색 어머니를 한단 얘길 들고 가족들의 이바구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빠는 '현승이 너 인제 클났다. 니네 엄마 녹색 하면 인제... 니 친구들 오면 손 흔들고, 민영아 안녕! 하면서 난리부르스 칠텐데 챙피하겠다'로 시작해서.
채윤이는 '아우, 생각만해도 웃겨. 옷이 엄마한텐 다 클텐데....' 이러고.
결국 집을 나서는데 현승이는 '엄마, 이따 나 보면 손 흔들지마. 진짜야. 진짜 손흔들면 안돼. 그냥, 살짝 소리내지 말고 나 쳐다보고 웃기만 해. 알았지. 진짜야!' 다짐을 했다.


+1

머리털 나고 처음 해보는 녹색어머니에다가 워낙 학교하고 담 쌓고 살아서 '나는 학교에 대해서 모른다' 의식에 충만해서 너무 긴장이 됐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옷과 모자가 들어있다는 캐비넷을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 쪽팔림을 무릅쓰고 대표엄마에게 문자를 찍어서 '전송'을 누르는 순간 눈 앞에 나타난 캐비넷.
암튼, 파란 제복을 꺼내 입고, 명성교회 앞 사거리로 가서 깃발을 찾아들었다. 아우, 신호등 색깔 바뀔 때마다 깃발을 옆으로 옮기는데 이거 절도 있게 해야할 지, 슬쩍 해야할 지 부터 시작해서 버스지날 때 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 쪽팔려서 죽을 것 같았다. 마음 속으로 저 애들 축복하는 기도나 해야지. 하면서 이 뻘쭘한 상황을 나름대로 극복해보려는 어설픈 노력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딱 현승이 밖에는 못 봤고 애들은 다 똑같은 얼굴인 것 같고, 현승이 친구들이며 우리 동네 애들을 하나도 못 봤다. 출근하는 아가씨들, 애들 데려다주는 아줌마들 하고 눈 마주치면 바로 눈깔고 뻘쭘과 쪽팔림 속에서 40분을 보내고 첫날을 마쳤다.

온통 우스꽝스런 내 모습만 가득한 아침, 1일차.


+2


제복도 집을 가져왔겠다. 어제 한 번 서봤겠다. 아침에 나가는 발걸음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서 있기 시작하는데 지나는 아이들을 보니깐 그 누구도 나한테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들 뿐이랴 행인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횡단보도 옆에 있는 전봇대처럼 등교길에 늘 있는 녹색아줌마였다.
어제는 그렇게 나로 충만하여 등교길 명성교회 앞 사거리가 온전히 파란 옷 입은 나로 가득찼었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긴장이 풀리면서 바로 옆에서 공사를 하는 포크레인 구경에 정줄을 놓기도 했다.  신호등 색깔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그러고 있는 내게 어떤 여자 아이가 '아줌마! 빨간불인데요' 하면서 친절한 지적을 해 줄 지경이 이르렀다.

커다란 등교길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인식한 2일차.


+3


한결 여유가 생겼다.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더 홀가분하기도 했다.
어제 그 포크레인도 없으니 신호등도 보고 애들도 하나 하나 보곤 했는데, 세상에 아는 애들이 그렇게 많네. 그 애들과 따듯한 눈인사도 하고, 신호등 한 칸 남았을 때 뛰는 아이들 마지막 건널 때까지 눈으로 지켜봐주기도 할 수 있었다. 내가 제대로 정줄을 잡고 서 있으니 현승이 친구 민영이가 '아줌마, 현승이 갔어요?' 하면서 먼저 알아보고 말도 시켜주었다. 삼 일째 비로소 불필요한 긴장와 미약한 존재감에 대한 위축을 넘어서 힘빼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온통 나/아무것도 아닌 나'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찾은 조금 균형잡힌 자의식의 3일차.




세상보다 큰 나,
커다란 세상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발휘하지 않는 미미한 나.
이 '두 나'를 모두 '나'로 통합시켜 잘 받아들일 때 홀가분해지고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썰은 끝나고 뱀의 발)

아놔, 김현승 이 자식! 손 흔들지 말라고(요란스럽게 인사해서 주의가 자기에게 쏠리도록 하지 마라) 다짐에 다짐을 해놓고는. 저 쪽에서 오는데 눈이 딱 마주쳐서 난 약속대로 살짝 웃어줬는데.... 이 녀석 소화전 뒤에 딱 들어가 숨어 있다다 파란불 바뀌니까 탁 튀어나와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신발주머니 든 손 살짝 흔드는둥 마는둥 하며 도망가네. 내가 뭘 어쨌다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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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요즘 정줄 잡고 잘 살고 있는데 뭐 그리 한 구석 허전한 것이었을까요?


방학인 아이들과 참 잘 지내고 있고,
두 아이 다 여유롭고,
그 여유로움 중에도 채윤이는 하루 다섯 시간 이상의 피아노 연습을 즐기고 있(을까?)고,
엄마의 본분에 충실하여 나름 열심히 잘 챙겨 먹이고 있고,
수영을 열심히 하며 점점 어깨가 떡벌어지고 있고,
바쁜 남편에게 홍삼을 챙겨 먹여가며 같이 놀아달라 보채지 않고 있고,
맘에 드는 책 한 권 만나서 재밌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한 달 한 달 원고는 잘 넘어가고 있고 그러면서 내 마음도 한 고비 한 고비 넘어가는 신비로운 경험과 함께 마음이 여정에 대해서 단순명료한 나만의 이야기들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어요.


사실 위의 모든 일들이 평안하게 잘 굴러가는 건 그래도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단순하게 내 삶에서 정신줄이란 기도줄이라 해도 무방.


페이스북에 푹 빠져 살고 있어요.
블로그 친구들은 거의 오시지 않는, 트위터도 아닌 페이스 북이죠.
잔재미가 있어요. 적당히 치고 빠지면서 즐기고 얕은 성찰을 하기도 하고요.
짧은 글을 올리고 사진도 올리고 하죠.
어쩌면 아주 그냥 정신실이라는 사람의 본래의 스타일에 딱인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무게감이 있어도 안되고,
너무 인상 쓰면서 진지한 것도 그렇고....
청년들이 속속 페북으로 입문하고 있어서 팔팔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맛이 젤 좋죠.


마음에 어려운 일들도 있지요.
혼자 되신 어머니. 전보다 더 외로우시고 외로우신 만큼 친구이자 상담자이기도 하다는 막내 며느리를 더 많이 원하시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메마른 마음도 있어요.
인생의 하프타임을 보내면서 후반전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하는 좀 거시적인 고민을 하면서 기도 하는 중 염려 반 기대 반으로 한 구석 마음 묵직함도 있지요.
페북에서 즐거운 교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어떤 일들로 내 안의 쓴뿌리들이 요동을 치고,
악한 욕구들이 투사되어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미움에 사로잡혔다가 바로 두려움이 되었다가 하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 마음의 짐들 역시 그나마 기도줄을 잡고 있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 빨라지고,
아프고, 외롭고, 두렵고, 슬프고, 억울함이 더 큰 은혜임을 아주 조금씩 더 배워나가고 있어요.



이런 일들을 차근차근 정리해야 내가 살텐데.....
그게 일기쓰기와 블로그 글쓰기인데 한 동안 그게 안돼서 한 구석 허전하고 사는 것 같지 않았더 거예요. 쓰다만 글이 줄을 서 있는데, 노트에는 몇 개의 문장들이 막 흩어져 꿰서 보배를 만들어 달라는데요.
데스크탑이 정줄을 놨다 붙들었다 하다가 이제 아주 놓으셔서 자리만 차지하고 계시죠.
아이폰으로는 페북이나 할 일이지 사람을 안전시켜서 글을 쓰게 만들진 않으니까요.
하도 답답해서 남편의 오래된 노트북을 끼고 앉았습니다.
말이란 주절거려야 제 맛이고,
글도 말을 닮았으니 이렇게 좀 탁 트인 공간에서 글자수 의식하지 않고 막 쳐대야 맛인데요.


우야튼, 써야 사는 여자. 쓰고 봅니다.

내일은 진짜로 광주 로이스커피 다녀 온 얘기 정리하고야 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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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사귀 명상

                                                이해인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뽀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웃고 있다

머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므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지난 4월 어느 화요일 아침.
어린이집 음악수업을 위해서 하남으로 향하는 길에 가슴이 설레고 들떴다.
자동차가 아니라 구름차를 운전하는 듯....
이유는 별 것이 아니었다.
움트는 새 봄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서였다.
적당히 따스한 햇살, 멀리 뵈는 산에서 막 움트는 잎들이 만들어내는 연두빛....
그 풍경에 반응하여 내 안에서 기쁨과 생명이 마구 일렁거렸다.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지만 노래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 아름다운 봄날을 만드신 이유만으로도 그 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듯 했다.

음악수업을 하는 다섯 살 짜리 꼬마들은 또 얼마나 귀엽고 예뻤던가.
오후에 만난 특수학급이라는 곳에 모여있는 아이들을 음악치료하는 일은 나를 치료하는 일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메일함을 열었는데....
죠이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자는 메일이 와 있는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일렁이던 기쁨과 생명은 현실적인 선물꾸러미가 되어 내게로 왔다.


그리고.
그 다음 수요일.
아버님은 하남의 어느 병원에서 암선고를 받으셨고,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아득해지는 정신으로 시누이 손을 잡고 울다가,
아버님을 모시고 덕소로 향하는 길.
신안아파트 벚꽃길을 지났다.
남편과의 사랑의 추억과 시부모님과의 우연한 첫 만남이 있었던 아름다운 장소.
뒷좌석에 계신 아버님께 들키지 않기 위해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차마 고개 돌려 그 길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것과 마주할 수가 없었다.


.................................



어제 남편의 수요예배 설교를 통해서 고난의 의미에 대해서 되짚어 보았다.
사랑의 회초리.
그 회초리 끝에 달린 살을 파내는 갈고리는 결코 나를 향하지 않는다.
그 회초리가 나를 휘감아 한 번 때릴 때마다 갈고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향하여, 그 분의 살을
뜯어낸다. 오래 전 사람되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 채찍을 맞으셨던 것처럼.

그 들뜨고 행복했던 화요일 이후
사랑하는 한솔이를 보내고,
아버님의 투병을 지켜보고,
일식이 아버님을 보내드리고......
눈 코 뜰 새 없는 아픔들이 나를 때려댔다.
그 회초리가 사랑일까?

고통의 한복판에서 연한 꽃잎처럼 떨던 한 친구가 있었다.
처음에 내가 그의 손을 잡아주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둘 다 떨고 흐느끼고 있었고,
둘이 서로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가 내게 내민 책 한 권을 받아 읽으면서 그 찬란했던 화요일 봄을 떠올렸다.

앞으로 닥칠 고통을 대비해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마음의 쿠션 하나를 대어 주신 듯한 그 화요일을 떠올렸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꽃 피던 짧은 봄날이 가고 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그 분의 사랑을 마음 깊이 새긴다.
그 분의 사랑을 마음 가득 새긴다.
그 분의 사랑은 내 일상에 주신 '사람'의 옷을 입고 오신다.

이제 사랑의 힘을 빌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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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은 비록 땅을 벗하며 살찌라도
내 영혼 저 하늘을 디디며 사네
내 주님 계신 눈물 없는 곳
저 하늘에 숨겨둔 내 소망 있네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들 많이 생각나

때론 가슴 터지도록 기다려지는 곳
내 아버지 너른 품 날 맞으시는
저 하늘에 쌓아둔 내 소망 있네


주님 그 나라에 이를 때 까지
순례의 걸음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나 두렵지 않네
주와 함께 걷는 이 길에



========


한솔아,
약해지고 낡아진 육신의 옷을 벗고
아버지의 너른 품에 안겨 있는 너를 그린다.
고통 속에서 그리도 느끼고 싶었던 그 사랑의 숨결을
이제 그 품에서 가까이 느끼고 있을 것을 알기에
그간 너를 위해 올려 드렸던 그 기도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생각한다.
땅을 벗하며 사는 삶일지라도 저 하늘을 디디며 사는 것이 얼마나
손에 닿을 듯 가까운 일인지 너로 인해서 배웠어.
고통 중에도 하늘소망을 품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알아가고 있단다.


잠시 후에 내 육신 또한 장막을 벗을 때,
그 때 만나자.
암으로 인해 지치고 쇠약해진 몸이 아니라 해처럼 빛나는 몸을 입고
만날 그 날을 소망할께.


한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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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2011년 부활절에 부활의 소망이 없이는 버틸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이제 마음을 추스려봅니다.


시아버님, 아니 그냥 아버님. 우리 아버님께서 지난 주에 암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일흔을 넘기신 연세에 누구보다 건강하시고, 허리도 꼿꼿하시고, 동안이시고, 잘생기신 아버님이 말이죠.
몇 년 전 까지도 다 큰 현승이가 걷다가 힘들어하면 바로 업어주시고,
옆에서 질투하는 채윤이까지도 업어주시던 아버님이셨습니다.


사랑하던 또 한 사람이 죽음의 자리 가까이 갔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별다른 특별한 말도 못하고 이별의 인사를 하고 왔습니다.


이런 일들로 고난주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 이후로 울며불며 보낸 시간 어떻게 갔는 지 모르겠습니다.


부활의 신앙에 대해서 뼈아프게 생각하고 느껴봅니다.
믿는 모든 사람들이 부활을 소망한다는데 우리는 부활은 확신하지만 부활 전의 필수 코스인 죽음은
그냥 넘어갔으면 싶고, 내게는 없었으면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패스였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너무 슬프고 두려운 일이라 우리 삶에서 지웠으면 좋겠는,
입에도 담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신다면 죽음은 되도록 먼훗날에, 아니면 아예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제거해주시길 바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죽음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 우리는 늘 죽음으로 한 발짝 씩 다가가는 삶을 삽니다.
직장을 잃을까 두렵고, 아이가 잘못 클까봐 두렵고, 사람들에게 거절당할까 두렵고, 몸에 병이 생길까
두려운,,,, 우리의 크고 작은 두려움들은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두려움과 맞닿아 있는 지 모릅니다.
죽음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다는 건 천국이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뜻도 됩니다.
또 지금 여기서 천국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함, 실패, 고통을 피하고 외면하고 '긍정'으로 덮으려는 노력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천국을 꿈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2011년 부활절에 부활의 영광을 꿈꾸고 붙들기 전.
피조물인 나 자신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며 무릎을 꿇습니다.
죽음이 이미 삶 안에 들어와 있듯 내 삶의 빛과 그림자를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천국도 이미
지금 여기에 있음을 믿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기도의 나눔을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버님이 부활의 소망을 붙드시길 기도해 주세요.
부활의 소망을 붙드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이 내 뜻대로 내가 선택해서 살아온 것
같지만 실은 내가 주인이 아니었음을 알고 고백하며.
피조물된 우리 자신을 인정하고 그 분께 온전히 내어맡기는 믿음을 가지시길 기도해 주세요.
아버님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장 약하고, 무력하고, 실패같아 보이는 십자가를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일 때
진실한 부활의 영광을 붙들 수 있음을 알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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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엔


 

용혜원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신나도록 필 때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겨우내 얼었던 가슴을
따뜻한 바람으로 녹이고
겨우내 목말랐던 입술을
촉촉한 이슬비로 적셔 주리니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온몸에 생기가 나고
눈빛마저 촉촉해지니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피어
님에게 바치라 향기를 날리는데

아! 이 봄에
사랑하는 님이 없다면 어이하리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아파트 현관 앞까지 봄이 와 있어요.
툭 건드리면 터질 듯한 목련의 봉우리들이 사철 중 가장 아름다운 며칠을 보내고 있어요.
그리 긴 겨울이 가고,
꽃샘추위라며 그 지루하고 길디긴 차거운 옷자락을 쉬이 거두지 않더니만...
아, 오늘은 정말 봄이 한가득이예요.


내 마음에는 종달새가 한 마리 노래해요.
아주 오래 전에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찬양하며 지저귀던
기쁨의 새라지요.
기나긴 겨울처럼 그 분의 따스한 사랑이 자취를 감춘 듯 시린 마음에 그 새는 얼어죽었고 말았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다시금 어린 날의 그 종달새가 지저귀지 않을 것 같았지요.


딱 한 달 전 어느 숲 길을 걸으면서 내 시선과 귀를 사로잡은 이름 모를 새가 말해줬어요.
겨울을 갔고, 메마른 날 동안 너는 참 잘 견뎠다고.
네 안에 혹시 잊혀진 너의 노래가 없냐고....
그리고 오늘은 몽우리진 목련과 함께 봄이 왔고, 봄의 따사로움은 이미 모진 겨울바람에도 내 안에
이미 있었다는 확인을 해주었어요.


어느 날 받은 사진 한 장의 선물이 종달새의 기쁜 지저귐을 더 잘 들리게 해주었고,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고맙고 예쁜 얼굴들로 이 봄엔 사랑하지 않으면 못 배길 터예요.


두려움을 가득 머금은 봄비가 내렸던 다음 날에 찾아온 봄이라 더 찬란하고 따뜻해요.


봄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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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의 <탕자의 귀향>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


그러니까 12년 전 채윤이를 품고 있을 때 처음 헨리나우웬 신부님의 <탕자의 귀향>을 읽었다.
그 후에 저 그림 한 장을 집에 걸고 싶어서 나름 백방으로 찾아봤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언젠가는 걸고 말리라는 마음은 끝내 버리지 않고 있었다.
책 <탕자의 귀향>의 개정판이 나와 다시 한 번 읽은 지가 오래지 않은 일이다.
아,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번에 기도하러 가서, 예배당에 들어갔는데 한 벽에 이따시만한 '탕자의 귀향'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그림 한 장 만으로도 내게는 큰 위로와 선물과 은혜였다.
그리고 3박4일 내내 그 아버지 품에 있는 것 같았다.
탕자에게 기꺼이 유산을 주시고,
자기 길을 가도록 두시고,
기다려주시고,
맞아주는 탕자의 아버지가 바로 하늘의 내 아버지다.


너무 사랑해서 당신을 거부할 자유까지 허락하시는 분.
너무 사랑해서 나에게 매여 있으신 분.


잠깐 산책을 하는데 한 구석에서 서적 몇 권과 성화를 파는 곳을 발견했다.
으아.......... 이게 뭣이다냐!!!!
바로 저 그림이었다.
중년을 고개를 넘으며 맞는 생일에 내가 나에게 만족스런 선물 하나를 줘도 좋겠지.
이게 어디 내 선물만 되겠는가.
네팔에서 돌아온 남편이 벽에 저 그림이 걸려 있는 걸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사무실에서 쓰는 남편 책상 위에 놔 주려고 손바닥 만한 책상용으로도 하나 더 샀다.


식탁 내 자리에 앉으며 딱 보이는 그 자리에 걸었다.
아주 멀리 계시고,
내 죄를 찾아내기 위해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지켜보시고,
마지막 날에 나를 추궁하기 위해 내 잘못을 일일이 적어 평가하고 계시는
두렵고 엄격한 하나님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서 내 중심에 살아계시고,
선하고 아름다운 나의 삶을 위해서 늘 은밀하게 내게 말을 걸어오시며,
내게 한 없는 자유를 주시되 끝까지 기다려주시고,
내가 드리는 그 어떤 행위보다 나 자신과 함께 하고 싶어하시는,
탕자의 아버지같은 그 하나님이 한결 내 곁에 가까이 계신듯 하다.


내 생애 최고의 득템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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