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여행에서 돌아온 밤. 집에 계시지 아니하시는 딸 아드님 대신에 현관 앞에 기다란 박스 하나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뭣이다냐? 미나리도 한 철! 이 계절에만 나온다는 한재미나리가 마중 나와 계신 것이었다. 첫 끼니로 떡볶이를 했다. 요즘 계속 국물떡볶이를 밀고 있는 중인데. 당면을 넣고 바짝 졸여서 끈적한 떡볶이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미나리 먹기 위한 소스인 셈이다. 떡볶이에 아삭하고 향긋한 미나리 섞어서 맛있게 먹었다. 뉴질랜드 남섬 양고기... 까지는 살살 녹는 맛이었고!  저녁으로는 초무침을 했다. 증말... 내가 무쳤지만 감동의 맛이다! 내가 만들고 폭풍흡입 했다. 내 솜씨를 사랑한다! 늘 이때 서프라이즈~ 미나리를 보내곤 하시는 나의 은경샘, 귀국 날짜에 딱 맞춘 것도 야심 찬 서프라이즈였을 것이다. 이런 계획을 도모하면서 혼자 좋아서 헤헤 웃으시는 것도 다 보인다.  미나리의 마중은 감동, 만사가 감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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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을 다녀와야 해서 냉장고를 비우는 쪽으로 끼니를 때우게 된다. 오래된 배가 하나 남아 있었는데, 후식으로 먹으려는 JP를 막았다. 나는 "먹어 치운다"는 말이 싫다. 끼니를 "때운다"는 말도 싫다. 냉장고를 비운다는 것은 사실 먹어 치우고, 먹어 치운다는 것은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막았나 보다.) “그거 해줄게!"라고 했다. 며칠 전 JP가 "어머님이 하시던 그 부추 샐러드"라는 말을 했었다. 배를 갈아서 소스를 만들고 영양부추와 찢은 맛살 위에 뿌리는 샐러드이다. 마트에 갔더니 영양부추가 없다. 할 수 없이 그냥 부추 한 묶음을 샀다. 샐러드 한 접시 하고 나니 반이 남는다. 남은 게살, 냉동새우 털어 넣고 전을 부쳤다.
 
엄마 기일에 JP에게 엄마를 떠올리면 어떤 좋은 기억들이 나냐고 물었더니. 갈 때마다 정성스럽게 밥을 해주시던 것이란다.(그래서 내가 굳이, 수고스럽게, 남은 배 하나를 엄마의 샐러드로 심폐 소생하려 했나 보다.) 살림을 놓기 전까지 갈 때마다 정말 정성스럽게 밥을 해주셨다. 메뉴는 거의 비슷했지만, 정성만은 늘 새로웠다. 부추 샐러드, 모양은 비슷한데 엄마의 그 맛은 아니다.  JP는 어머니 그 맛이라고 했다. 처음 우리 집에서 식사할 때 먹고 "맛있네요!" 한 마디 하는 통에 "김서방이 좋아한다"며 이 샐러드가 빠지지 않았었다. 
 
엄마표 샐러드는 추억으로 먹었고, 남은 부추로 만든 전이 더 맛있었다. 시든 배 하나를 잘 먹어 치웠다! 한 끼를 맛있게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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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역국 끓일 때, 산후조리 하는 집처럼 산더미 같이 끓인 후에, 먹고 먹고 또 먹고 하는 게 참 좋던데. 먹다 질리면 거기에 수제비나 라면 넣어서 미역국 수제비, 미역국 라면으로 먹으면 그렇게 맛있던데... 미역국 정말 좋아하는 편. (조금만 정줄 놓았다면) 한 달 내내 남이 해주는 다양한 미역국 먹는 즐거움에 애를 하나 더 낳을 수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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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 압박도 있고,

줌 강의도 있고,

아침 식사는 호이호이 꿀호떡이었는데,

"아아, 며칠 동안 호텔 조식 먹었는데..."

캄보디아 단기선교 다녀온 사람들의 한 마디에

바로 일어나서 스크램블드 에그와 토마토 구이를 만들었다.

호텔 조식, 캄보디아 호텔 조식과 혼자 싸움.

몹쓸 승부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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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에 두세 번은 아침부터 출근을 한다. 출근 거리 1미터. 긴 테이블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 자리로 도보로 옮겨가 zoom 사무실에 출근카드 찍기. zoom 강의가 있는 날에 늦잠 자는 아이들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았다. 세상에!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찌뿌둥한 기분으로 나와서 이걸 발견하고 기분이 막 좋아졌다나 뭐라나. 그래? 그러면 또 참을 수 없지! 다음 날 또 zoom 사무실 출근 전에 샌드위치 밥상을 차려 놓았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건 참 좋은 거라...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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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수 오전 줌강의를 마치면 배가 고플 대로 고프다. 자장면을 시켜 먹을까? 생각했는데 모처럼 네 식구가 다 있네! 뭐라도 만들어야지 생각하며 애호박과 두부를 꺼냈다. 현승이가 "된장찌개 끓이게?" 한다. "왜애? 된장찌개 먹고 싶어?" 하니 "아니, 재료가 딱 된장찌개잖아." "오~ 그러네! 그런데 된장찌개 아니야. 잔칫집 분위기 만들 예정이야...."
 
호박전과 김치전과 두부부침을 했다.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다. 기름칠이 필요한 영혼이다. 왁자지껄한 냄새로 영혼의 흥을 돋구고 싶었던 것 같다. 생애 가장 고군분투하며 지낸 7년을 마무리하는 JP를 격려하고 싶은데 냉장고에 준비된 재료가 없고, 나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JP 만큼이나 내 영혼도 버석버석하다. 그래서 그의 영혼 나의 영혼에 다다르길 바라며 지글지글 전을 부쳤다.
 

 

오징어채 무침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할 걸!  JP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프라이팬에는 전을 부치고 한 손으로는 오징어채를 무쳤다. 몰아서 반찬 만드는 줄 알았겠지만, 뜻이 담겨 있다. 오징어채는 늘 JP를 위한 나의 마음이다. 당신 훌륭해, 당신 멋져, 당신 유능해! 이런 뜻을 오징어채에 담았다. 
 

 

또다시 줌 강의를 앞둔 저녁에는 떡볶이를 했다. 약속이 있는 채윤이는 나가고, 주기적으로 맥도날드를 복용해야 하는 현승이는 현승이 대로 저녁을 해결하고. 떡볶이라면 언제라도 좋아하는 JP만을 위해서 만들었다. 사순기간 탄소금식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도 담아서 냉장고 털기 떡볶이. 한 줌 남은 배추와 한 조각 남은 곤약을 넣어 만든 국물 떡볶이로 JP는 다시 감동했다. 
 
내가 줄 수 있는 작고 확실한 격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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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좋아서 한 일인데, 벗들의 축하를 막 받자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졸업 축하 선물로 소고기를 받아서 비 오는 월요일 점심에
오랜만에 다 모인 네 식구가 김치우동 곁들여서 맛있게 먹었다.
논문 하나 더 쓰고, 졸업 한 번 더 할까? 소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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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와 집에서 자겠다고 하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정확히 누구에게 고마운 건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특히 채윤이 친구는 더 그렇다. 채윤이 친구 인생사에 엄빠로서 지은 죄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러 지은 죄는 아니지만 늘 미안하고 마음 아픈 지점이다.  아빠의 진로로 한 번, 두 번, 세 번... 좋은 친구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이다. 아빠 상황, 아빠가 매인 교회 상황 때문에 초3부터 학교 친구 없는 동네에서 살기 시작. 태어나면서 유아실 동기들과 함께 자랐던 소중한 교회에서 떠나기. 좋은 찬양팀과 리더 선생님 만나 이제 막 음악과 신앙을 꽃 피우려는데 또 떠나기... 학교 친구, 교회 친구를 제대로 만들기 참 어려운 환경이었다. 대학에 가더니 친구를 만나고, 친밀감을 쌓고, 갈등을 겪어내고 하더니 후반에는 정말 활발한 친구 생활을 누리는 것을 보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하는 친구들과 신나게 음악하고, 찐 우정을 쌓고 놀고... 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행복하다. 죄책감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고맙다. 채윤이도 채윤이 친구들도. 드물게 친구를 데려와 자는 날 아침에는 뭔가 특별한 대접을 하고 싶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아침을 먹어야 말이지!
 
나름의 무엇으로 샌드위치를 해주곤 하는데. 정말 나름의 마음을 담는다. 채윤이가 마침내 어떤 친구에게 이 말을 들었다고 한다. "너네 집 베이글 샌드위치가 그렇게 맛있다며?" 음... 진짜 죽어도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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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프다고 음악치료를 해달라고 했다. 음악치료 손 놓은지 오래되어 치유력이 별로 없다고 소용 없다고 했다. 음악치료 대신 밥 치료를 시전했다. 치료인지 뭔지도 모르고 처묵처묵 하시지만, 결국 치료가 될 껄! 밥은 힘이 세다.
 
라고, 어젯밤에 침대에 누워 폰으로 일단 작성해 두었는데... 오늘 아침 말씀 묵상에서 확신을 얻었다. "지극히 작은 일로 참된 제자가 된다"고 하시는 예수님께서 이 작은 치유의 기도를 기억하실 거라는 확신이 든다.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 올린 마 10:32-11:1 묵상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10:42)

내가 너희를 부른 일은 큰 일이지만, 주눅들 것 없다. 작게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를테면,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잔을 주어라. 베풀거나 받는 지극히 작은 일로 너희는 참된 제자가 된다. 너희는 단 한도 잃지 않을 것이다.(10:42, 메시지성경)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삶이 너무나 거창하다고 여겨집니다. 엄청난 박해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해야만 하는 소설 <침묵>에 나오는 기리스탄들의 상황이 상상됩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밟거나 죽음을 택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요. 예수님께 순종하기 위해 가족을 버려야 할 것 같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 같은...

주님, 저같은 쫄보가, 이기심 가득한 제가 과연 그런 순종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제 마음을 벌써 알고 계시는 듯, 메시지 성경으로 읽는 마지막 절에서 말씀해 주시네요. 거창한 일이 아니라고요. 작고 좁은 마음 그릇을 가진 저이지만...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작은 베풂, 작은 용서, 작은 사랑으로 시작하라고 격려해 주시네요.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하는 미미하고 어설픈 순종을 주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말씀으로 들려서 용기가 생깁니다. 주님,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다가오는 가까이 있는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잔 내어주는 기회를 잃지 않는 오늘 하루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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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생으로서 엄마로 하여금 덮밥왕이 되게 하셨던 아들

마음의 질곡이 없다 할 수 없으나, 입시를 잘 뽀개고

아빠와 함께 학교 앞 원룸텔을 보러 다녀올 월요일.

오는 길에 친구 만나러 가더니

엄마빠 떡볶이 순대로 오붓하게 저녁식사 마치고

설거지까지 딱 마치고 났더니

"저녁 안 먹었는데" 하고 들어오셨다.

 

재료는 일 인분도 안 되는 냉동 삼겹살.

고기는 거들뿐!

 

덮밥왕 엄마가 이르시되

"편마늘 덮밥이 있으라" 하시니

편마늘 덮밥이 있었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아들이 드시고 "엄마는 정말 덮밥의 달인이 된 것 같아" 하시더라.

덮밥왕 엄마의 창의력은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우니

엄마의 성실하심은 크도다.

성실하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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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아주 모처럼 네 식구 여유롭게 식사하는 주일 저녁이었다. 한동안 밖으로 나돌던 채윤이, 뭘 해줄까? 벌써부터 나는 (행복한) 고민이었는데. "나는 주일 저녁에 피자 먹을 거야. 도미노 피자... 너무 먹고 싶었어!" 라니. 이게 무슨 고마운 메뉴 선정인가! 나는 정말 행복하였다. 피자 치킨 후에는 꼭 라면을 끓이는 사람들이라... 피자로 노고를 덜었으니 정성스럽게 라면을 끓여보았다. 냉동실에 고이 모셔둔 전복과 어제 장 보면서 싸길래 사둔 꼴뚜기 한 팩을 넣어서 끓였다. 궁물이... 궁물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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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어 철이라는데. 한 번 먹고 싶었는데. 먹고 싶은데에, 먹고 싶은데에… 하며 제철을 보내고 있는 중. 토요일 점심에 JP가 교회 집사님 댁에 가서 대방어를 영접하고 왔다. 3년 된 묵은지에 직접 만드신 쌈장이 일색이라니 말이다. 침 질질 부럽다고 하니 안 그래도 사모님도 같이 오시지 그랬냐고들 하시더라고. 부럽다, 부러워…

이게 무슨 일! 저녁에 대방어 배달이 왔다. 말로 듣던 3년 된 묵은지와 쌈장, 문어까지 곁들여 직접 집으로 가져오신 것이다. 교회 모임 마치고 10 시 넘어 들어와 야식을 했다. 어제 공연 마친 채윤이, 청년부 mt 다녀온 현승이, 낮에 이미 잔뜩 먹었다는 JP까지 온 식구 달려들어 맛있게 처묵처묵 했다.

얼마 만의 야식, 얼마만의 방어냐…
사모님 되길 잘했…. 응?

돌아가시기 몇 년 전쯤부터 엄마 입에 붙어 있는 말이 있었다. "고맙다, 복 받어라!" 자녀들은 물론 조카들에게, 아마도 가만히 침대에 누워 통화하던 이모, 삼촌, 예전 교우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안다. 고마운데, 갚을 수 없는데, 갈수록 더욱 갚을 수 없는 몸이 될 뿐 아니라, 곧 이 땅에서 사라질 존재가 될 엄마의 마음. 무력한 존재의 지극한 감사의 마음이다. 방어 먹고 바로 침대에 누워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집사님. 복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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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2호가 요즘 자꾸 거슬린다. 미세하게 거슬리는 것들이 쌓였나 보다. 남자 2호님도 이젠 성인이니까... 여자 1호인 나는 급성 노화 현상으로 일상의 부적절 포인트 쌓고 있는 중이니까… 짜증 나겠지! 이해하자, 이해해... 거슬린다고 일일이 잔소리 할 수도 없고, 한다고 들을 것도 아니고... 하지만 미세하든 어떻든 억압한 것이 삐져나오지 않을 수 없다니까.

꽤나 빡이 치고, 킹 받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 알았다. 별 일 아닌 것으로 남자 1호를 향해 시위를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여자 2호가 급하게 나서서 팽팽해진 시위를 잡았다. "워워, 엄마! 엄마 지금 킹 받은 거... 이쪽 아니고 저쪽에서야. 저쪽 꺼를 이쪽에 하면 안 되지...."

여자 2호가 남자 1호를, 아니 남자 2호와 함께 (누구보다) 여자 1호까지 다 살렸다. "아, 맞다! 그치? 야, 남자 2호 진짜 열받지? 엄마가 화날 만하지?" "음, 화날 만 한데... 정신 차려 그쪽 아니니까..." 방어 태세 갖추고 있던 화살받이 남자 1호가 "우리 구주, 우리 딸!" 하는 눈빛으로 긴장을 풀었다. 
 
멋진 여자 2호는 나가시고. 휴가 마지막 날을 보내는 남자 1호와, 매일이 휴가이며 부쩍 거슬리는 남자 2호에게 점심으로 "시금치 파스타"를 해주었다. 아주 그냥 모든 불화와 긴장이 싹 사라졌다. 맛있다... 음… 간이 딱 맛네... 파스타 면 돌돌 말고 있는, 한 없이 겸손한 두 남자 영혼…
 
너네들 나한테 까불지 마라! 밥이 권력이다. 게다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잠 25:11)"인 것처럼, 경우에 합당한 음식은 금이다! 모든 것을 이긴다. 내가 진짜 이 타고난 능력을 권력 삼아 남용하지 않으려고, 날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는구만. 어! 
 
다 까불지 마! 취향 저격, 상황 저격, 맛있는 음식! 이거 안 해준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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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옥금 여사는 사골국을 끓이면 한약 달이듯 정성을 쏟았다. 한 번 끓이고, 두 번째 끓여서 다시 섞고, 세 번 끓여서 냉동실에 넣으며 묵처럼 되었다. 겨울 아침, 학교 가기 싫은 날에 파 듬뿍 넣은 사골국은 맛있었는데 싫었었다. 파를 먹지 않는 나를 위해 파 듬뿍 넣어서 향만 내고 죄 건져서 엄마가 먹어주는 배려도 있었다. 그렇게 뽕을 뺀 뼈는 냉동실로 보내 얼린다. 사골국 다 먹고 어느 헛헛한 날에는 냉동실에 있던 걸 다시 꺼내 끓인다. 투명해진 뽀얀 국물이 나온다. 국물이 또 나온다. 거기에 된장을 풀어 시래깃국, 배춧국을 끓인다. 그게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다.... 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도대체 뭘 넣었길래 엄마 된장국이 맛있는 겨? 결혼하고 물었더니 그 비법을 알려주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꼭 사골국을 끓이게 된다. 작정하지 않아도 그렇다. 엄마처럼 한 번, 두 번, 세 번. 밤새 끓이고 섞고, 파를 썰어서 보관용기에 한가득 담아 놓는다. 밤새 사골국 끓이는 냄새에 현승이는 "나는 내일 아침에는 사골국을 먹을 수 있네"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를 개사해 부르며 행복하게 잠에 든다. 뼈를 냉동실에 얼린다. 한참 지나 장을 보다 배추가 눈에 띄는 어느 날, 엄마한테 배운 배춧국을 끓인다. 뼈를 꺼내 다시 끓이면 투명해짐 뽀얀 국물이 또 나오니까. 된장을 풀고 배추를 듬뿍 넣어 끓인다. "어머니는 된장국을 끓여주려 하셨나 보다... 나는 내일 아침에는 사골 된장국을 먹을 수 있는...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느 점심. "현승아, 점심 뭐 먹고 싶어?  된장국 너무 많이 먹었지?" "그래도 맛있는데! 그럼 엄마 된장국에 칼국수 끓여주면 안 돼. 저번에 감자탕 국물에 칼국수 끓였던 것처럼..." 오, 천잰데? 냉장고에 있던 부추까지 넣어서 끓였더니 '세젤맛'이다. 현승이가 "캬아, 캬아... 이건 보통이 아니야..." 하면서 먹었다. 
 
끓여도 끓여도 또 국물이 나오는 사골은 우리 엄마 같다. 우리 엄마는 마흔다섯, 마흔일곱 그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키웠다. 안 그래도 칼슘 손실이 막대한 갱년기 즈음에 아이 둘을 연달아 낳았으니 뼈에 있던 칼슘은 다 빠져나갔을 것이다. '골다공증'은 노년 엄마 몸의 다른 이름이다. 엄마의 사랑, 엄마의 창의력을 내가 다 뺏어왔다. 내 창의력을 업그레이드시킨 버전이 현승이인데... (된장 칼국수를 생각해 낸 것을 보라!) 삼대의 창의력과 요리 사랑이 만든 메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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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착실하게 점심밥 하는 편.
김치 콩나물 굴 감자수제비는 남은 재료 모아 모아서 나온 맛있는 점심.
 

 

주문 제작 오리떡볶이.
수시 입시로 논술시험 한창인 현승에게서 주문 들어옴.
 

 

허를 찌르는 메뉴 선정을 즐기는 편인데.
자연드림의 즉석식품인 카레우동.
소시지 하나 토핑으로 얹어 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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