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코스타 일정을 잘 마쳤습니다.

네네, 잘 마쳤지요.

컨퍼런스 마친 오후 느긋하게 찍은 사진 두 장입니다.

기럭지로는 여느 아메리컨 부럽지 않은 채윤이는 이 학교 학생이라 해도 믿겠지요?

파랑과 하양, 하늘과 깔맞춤한 제 패션도 괜찮죠?


실상을 알려드리자면.

휘튼 칼리지 재학생 느낌의 채윤이는 코스타 기간 내내 영어사람 친구들 속에서

에헤헤헤, 어리바리 하고 있다가 숙소에만 들어오면 침대 엎드려 우는 나날.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하나 된 듯한 채윤이 엄마는 강의하고 상담하고,

다시 강의 준비하고 또 상담하고, 화장실도 제때 못가는 며칠을 보냈답니다.

그러니 저 멋스러운 여유는 사진발. 헤헤.


지금은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채윤이와 둘만의 시간입니다.

오늘(여기는 주일) 한인교회에서 강의 하나를 마치니 이제야 온전히 홀가분입니다.

다운타운 나와서도 근사한 사진은 꽤 건졌습니다만.

사진 밖에서는 채윤이와 신경전, 대놓고 말싸움, 대놓고 짜증.....

이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야 조금 마음의 틈이 생겨 사진발로 소식 전합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 







꽃다운 친구들은 어른들을 만난다.


예를 들면,

G&M글로벌문화재단 문애란 대표, 서울대 우종학 교수님 같은 분들.
두분 다 검색해서 기사 몇 개만 읽어봐도 어마어마한 분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카피를 만든 카피라이터였던 문 대표님.

또 내 지식으론 소개하기도 어려운, 음... 유신론적 진화론의 우종학 교수님.

다양한 만남을 통한 배움이 주는 유익이 풍성하다.


라고 믿고 싶다.


령 채윤이 입을 빌자면 이런 배움을 얻고 있다.

문 대표님 만나고 온 날.

"엄마, 대박! 여의도의 진짜 높은 빌딩인데 주변이 다 보여. 대박.

문 대표님 완전 멋있고..... 나는 진짜 나중에 나이 들면 그렇게 하고 다닐 거야"

우 교수님 만나고 온 날.

"엄마, 우종학 교수님 알아? 완전 완전 완전 대박 멋있어. 잘 생기고, 말하시는데 너무 멋있어. 아흐. 헐, 그분도 코스타 강사였어? 얘기 해봤어? 완전 멋있어"

(멋있게 말하시는 그 '내용'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었던 듯)


그리고 어제는 게임회사 Nexon 탐방을 하고 왔다.

물론 여느 날 못지 않게 (자기 식의) 감동을 받고 왔다.
"그래서 나는 이제 결심했어! 게임을 할 거야. 그동안 나는 게임을 너무 안 했던 것 같애. 이제 컴퓨터 게임에 입문할 거야. 카트라이더를 해야겠어 (주먹 불끈불끈)"


티브이도 없는 집에서 순결하게 자란 채윤이,

이렇게 게임의 세계로 가는 건가?

그리고 채윤이는 나이 들어서 문애란 대표님처럼 염색하지 않고

짧은 은발을 할 것이고,

우종학 교수님 같이 잘생긴데다 지적이기까지 한 남자를 이상형으로 꿈꿀 것 같다.

꽃친 프로그램의 효과, 또는 역효과 대박이다. 꽃친은 대박이다.








채윤이 아빠의 카톡 상태 메시지가 '느린 사람에게만 보인다'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연상되어 별 다섯 개 상메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 담긴 그의 깊은 마음은 느낄 수 있다. 느리게 살지 못하는 현실에의 아쉬움, 자신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그나마 느린 일상을 사는 채윤이로 인한 대리만족 같은 것이지 싶다. 느리게 사는 채윤이는 그간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는 것 같다. 엄마 아빠, 현승이를 보고, 한강변 여유로운 산책길을 보고, 평일 낮 지하철의 풍경을 보고, 꽃친 친구들의 말과 그 이면을 보고, 교회 친구의 속마음을 보고, 머리 컬러링의 디테일을 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현승이 얼굴의 여드름을 보고, 씽크대에 쌓인 설거지감을 본다. 무엇보다 채윤이는 이웃을 본다. 강도 만나 피 흘려 쓰러진 이웃을 본다. 느린 삶을 사는 채윤이에게 꽃친의 다양한 놀이는(궁금하면 파란 글씨 클릭!) 울고 있는 이웃에게 가는 길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놀이'란 인간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극대화시킨 모든 활동을 말한다.) 세월호의 미수습 언니, 다윤이 언니의 엄마를 만나고 피케팅을 하고 쓴 글이다. 허락을 받고 공개한다.  

 

벌써 세월호 2주기가 지났다. 2년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길고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텐데 나한테는 꽤 긴 시간이었다. 2년 적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 전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호는 마치 한 달 전 같이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세월호에 대해 나는 덤덤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고, 노란 리본은 누군가의 시선을 바라며 달고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다윤이 언니 어머니를 만나고 피케팅을 하면서 세월호와 그 가족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간 거 같다. 그저 관심을 가지는 거 그 이상으로 세월호가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2주기인 만큼 독서모임에서도 세월호 관련된 책인 <다시 봄이 올 거예요>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세월호에 탔던 한 사람 한사람의 이야기와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그저 세월호 생존자와 희생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로 다가와서 더 마음이 아팠다.

나는 이번 2주기 때 페이스북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이럴 때만 되면 세월호와 관련된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온다. 근데 그 게시물들이 추모하고 애도하는 거보다 비판적인 것들이 많아서 보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이럴 때만 세월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닌데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들어갈 때마다 올라오는 세월호 영상들 때문에 마음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세월호 너무 마음 아프고 화가 나지만 그렇게 피케팅 하고 해봐야 달라지는 거는 없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쳐다봐주고 리본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그 순간 만큼은 세월호를 기억하듯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일 년 안식년을 하며 가졌던 소박한 바램이란 채윤이가 채윤이 다워지는 것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채윤이가 자기다움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자 '자기'가 제 혼자만의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표현해내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채윤이의 '자기'가 확장되고 있다. '나'가 되는 '너'가 생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너'들이 이 시대 울고 있는 '너'들이다. 채윤이가 세월호에서 잃은 언니 오빠들, 그들의 가족이라는 타자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느끼는 감각이 생긴 것 같다는. 이것은 내가 정말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최선의 가치이다. 굳이 하나님 사랑, 예수님 희생이라며 설교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랑을 살아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타인의 고통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실 수 없는 고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채윤이가 거창한 것을 깨달았다는 뜻은 아니다. 종교적으로 100번을 듣고 입으로 줄줄줄 말할 수 있는 이웃사랑이 아니라, 이웃을 더욱 확장된 나로 보는 그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채윤이 방은 피아노와 키보드 한 대로 꽉 차있다. 그대로 채윤이의 오늘이며 꿈이다. 채윤이 책상과 피아노 위에는 보물찾기 쉽게 숨겨놓은 형국으로 노란리본과 노란리본 뱃지가 흔하다. 이 역시 채윤이의 마음인 것 같아서 뭉클하고 뿌듯하다. 내가 키워내고 싶었던 아이는 이런 아이이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이런 아이들이 많아져서 결국 이런 어른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세월호 관련 (공개)일기 다음 글인 난민 이야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꽃친을 통해 한 박자 쉬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을 말해준다.   


"꽃친 하기 전에는 나한테만 신경 쓰느라 이웃에게 관심 갖지 못했는데....."






"엄마, 나 이제부터는 이렇게 하려고.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괜히 신경 쓰지 않으려고. 그런 결심을 했어."


꽃다운 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와서 툭 내뱉은 말입니다. 엄마로서는 깜짝 놀랄말이라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냐 물었더니 다음에 얘기하겠다고 밀린 잠을 자러 들어가더군요.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물어봤습니다. 엄마가 보기에는 참 소중한 깨달음인데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냐고요.


여행 중에 중등부 **샘에게 톡이 왔답니다. **샘은 찬양팀에 함께 하던 청년 쌤인데 채윤이를 동생처럼 친구처럼 대해주는 좋은 쌤이지요. 고등부가 된 지금도 주일마다 찾아가 만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용건없이 톡이 왔는데 그때 깨달음이 왔나봐요. **쌤은 가족 외에 처음으로 이유없이 나를 받아준 사람이라고 합니다. 꽃친 여행에서 친구들과 마음이 편안한 순간에 받은 톡이라 더 의미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감사하며 지내면 되는구나.....


사실 채윤이는 5학년 때 친구들과의 어려웠던 경험으로 관계에 대한 염려가 많았습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친구는 없는지, 자신을 두고 수근거리지는 않을지. 단지 그 경험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조차 대물림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엄마인 제가 내적여정, 심리 영성 공부로 여기까지 온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관계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두려움. 꽃친을 시작하고도 내내 마음에 폭풍이 치는 날이 많았습니다. 여자 꽃친들은 다들 단짝이 생겼는데 자신만 홀로라는 두려움, 꽃치너들이 모두 좋아서 두루두루 친하고 싶은데 막상 다가가지 못하는 수줍음, 어떤 말과 행동으로 친구들의 미움을 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초기에는 이 걱정을 들어주고, 괜찮다 괜찮다 해주는 일이 큰일이었습니다. '꽃친 일 년을 지내며 적어도 이 두려움에 맞설 힘이 생기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주님'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요.


저녁마다 솔직한 일기를 쓰고, 엄마에게 끊임없이 묻고 고백하며 자신의 감정과 정면돌파 하며 생각보다 빠르게 편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채윤이를 지켜보는 엄마 마음이란. 채윤이의 두려움에 곱하기 10, 채윤이의 외로움에 곱하기 100, 채윤이의 걱정에 곱하기 1000이었습니다만. 스스로 겪어내며 배우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지켜보았습니다. 기도하면서요. 2박3일 여행을 마치고 마음의 긴장이 훨씬 더 많이 풀린 채윤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허튼 에너지 쓰지 않겠다'고 하니 할렐루야! 입니다. 마음의 힘이 생긴 것입니다. 혹여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괜찮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견뎌낼 힘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카렌 호나이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신경증 환자는 이상엔 맞춘 자아상을 만들어내는데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 같은 당위입니다. 어디 신경증 환자 뿐이겠습니까. 인간은 모두 정상적 성격발달과 성격장애 그 어디쯤에 있다고 역시 카렌 호나이가 말하고 있으니까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내게 대한 오해를 다 해명할 수는 없지, 이것을 자포자기의 심정이 아니라 아프게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입니다. 치유란 결국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힘이기도 하지요. 채윤이게 그런 힘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단 시간이 있고, 무엇에 쫓기지 않는다는 전제, 가만히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거기다 꽃친이라는 안전한 공동체(이번 꽃친 모임에서 '공동체'라는 말이 마음에 떠올랐다는 고백도 하더군요.)가 이렇게 저렇게 마음의 쿠션을 대주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아직은 미미한 힘이겠으나, 발견되었다는 것이 큰 의미입니다. 엄마도 다시 한 번 새겨야겠습니다. 좋아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고민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붙들고 마음의 에너지를 쓰지 않을 일입니다. 알고보면 이것이 자유입니다. 이 둘 사이를 분별해내는 것이 지혜이고요.









블로그에 쓰다만 글이 하나 있어서 마무리 하고 나가려고 앉았습니다.

까똑!이 울렸고, 열어보니,

친구가 오늘 자 경향신문 기사 한 쪽을 사진 찍어 보내줬습니다.

대통령님 말씀에 받은 은혜가 커 혼자 간직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일하러 나가기 전에 처리할 가사업무를 밀어놓고

대통령님 '오늘의 말씀 묵상'에 집중하였습니다.

한 번 읽고 지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자꾸 읽어보니 아닌 게 아니라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읽고 끝내서는 안 된다. 은혜받고 거기서 끝내서는 안 되지.

내 일상에 적용하여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채윤이에 관해 쓰던 글을 백지화 하고

오늘 받은 은혜를 힘입어 내 삶에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채윤이가 일 년을 쉬기로 한  안식년 체제에서는 뭔가 놀게도 하고 또 쪼기도 하고 뭔가 돼야 되는 일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또 이런 식으로 열일곱 살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실질적으로 또 애한테 뭔가 도움이 되고 인성이 활성화 되는 데도 좀 힘이 되어주는 부모로서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뜻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꽃다운 친구들'서 만들어준 틀속에서 하는 게 낫지, 더 어려운 것은 또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성적을 막 올려라, 또 뭔가 잠을 줄이더라도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는 이거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학교 내부에서 막 이리 간다고 그러면 또 저리 가야 된다고 그러고, 아이들이 혼란하다고 봅니다. 뭐 하여튼 채윤이는 채윤이대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줄 것이니 뭔가 엄마는 또 빨리 준비하고 나가서 또 뭔가 오늘도  바쁜 벌꿀처럼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명일동에 있는 털보부인이 혹 시간 되면 가보라고 포스터를 하나 날려주셨는데.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작가와의 만남이다. 

어머, 은유 작가! 잉, 양화진 청소년 학교, 우리 교회 고등부네.

학교 안 다니는 대신 고등부 찬양팀 반주에 올인하고 있는 채윤이,

바로 그 채윤이가 좋아하는 고등부 행사를 명일동 ok 언니에게 전해 듣다니. 하하.

은유 작가의 강의는 팟캐 벙커1 강의로 들었었다.

피아노 연습이랑 친구 약속도 있다며 빼는 채윤이에게 살짝 압력을 넣었다.

아빠는 '채윤아, 경험해. 뭐든 기회가 되는대로 경험하기. 경험주의자가 되기!'

바람을 잡고. 




다녀와서는 나쁘지 않았다며,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단다.

털보부인께서는 강의 안내를 해주시더니 페북에 올라온 사진도 보내주셨다.

그리고 냉큼 책을 선물해주셨다.

그리하여 채윤이가 엄마가 속으로 읽어야지 하고 있던 책을 먼저 손에 넣는,

이제 독서에 관해서도 엄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청소년이 되었다.

(언제 다 읽을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강의 들으러 갔다가 고등부 독서 동아리 '북앤톡'에 가입하고 왔다고.

여기서 나눌 책이라며 세월호 2주기에 맞춰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주문하여 읽고 있다.


김포에서 '서당'을 열고 아이들 글쓰기를 가르치는 외삼촌에게도 간다.

훈장님이며 삼촌은 책읽기는 물론 글쓰기에 토론까지 가르쳐준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오는 차 안에서

"아, 오늘 토론 시간에 엄청 깨졌어. 다음 번에 제대로 준비해서 다 발라버릴 거야"

이런 전투의지 좋아! 하하.


꽃친에서는 지속적인 일기쓰기를 격려하며 가끔 보여주는 일기를 써서 나누나보다.

세월호 2주기를 보내는 생각과 느낌을 적은 글을 끙끙거리며 썼다.

보여주는 일기로 썼으니 엄마 아빠 다 돌려서 보여주는데,

오, 김채윤! 글 쓰는 여자!


태어난지 사흘 만에 집에 왔는데 집이라고 생긴 게 온통 책으로 둘러 싸였더라는,

기동력 생기고 제일 먼저 해본 놀이가 책꽂이 1층의 <인물과 사상> 죄 꺼내기였던,

환경적으로 책과 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채윤이였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하던데.

채윤이는 일찍이 책 읽기에 멀미난 케이스.

책 읽는데 귀찮게 한다고 구박하고 짜증내는 엄마 탓인줄 알고 있다.


엄마는 그랬지만 엄마보다 좋은 어른들이 계셔서 책 멀미 극복하고 있다.

털보부인, 꽃친 샘들, 외삼촌.

아흐, 이런 키미테 같은 고마운 어른들.






방학이 일 년이라서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한가한데도,

그래도 주말을 다르고 싶은 모양입니다.

엄마..... 엄마, 글 쓸 거 있어? 나랑 목욕 갈래? 아니면......

됐거든. 엄마 매일 수영하고 늘 사우나 해. 엄마도 모처럼 쉬는 토요일이라 맘 편히 책 읽고 쉬고 싶어. 너대로 놀아.

딱 잘라 버리는데 쉽게 포기하고 방으로 쑥 들어가버리는 게 더 마음이 쓰입니다.




날씨는 디게 좋고.

채윤아, 엄마랑 한강 갈까?

채윤이야 '엄마랑 놀기'는 늘 목마른 건데 뭐든 콜이지요.

보던 책 딱 접고 일어섰습니다.

한강에 나가 걸으며 멀리 바라봅니다.

건너편 선유도 공원의 연하디 연한 분홍빛, 연두빛이 눈길을 확 사로잡습니다.

너 선유도 공원 가봤어? 정말? 여기서 5 년짼데 한 번도 안 봤어? 갈래?

내친 김에 선유도 공원까지 걷습니다.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를 남발하는 채윤이에게

"채윤아, 하나님 창의력 쩔지? 어쩌면 저렇게 꽃마다 잎마다 색깔이 달라?"

"엄마,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래? 엄마는 자주 하는데. 그나저나 저 색깔 좀 봐. 저  버드나무 말야. 수양버들.

수양버들 꿈꾸는 길에 꽃가마 타고 가네..... 이런 노래도 있는데"

(부르지 말 걸. 너무 올드하다)

"저 나무 이름이 버드나무야? 현승이랑 나는 저걸 열쇠나무라고 부르는데. 덕소 할머니 집 가다보면 저 나무가 있는데 어느 때부턴지 열쇠나무라고 불렀어"

"아무튼 엄마는 바로 저 연두색, 딱 이때만 볼 수 있는 저 색깔을 보면 죽을 것 같애.

좋아서."

(채윤이 쩜쩜쩜)





4월 1일 금요일,

만우절을 기점으로 인근의 꽃들은 동시에 봉우리를 터뜨리기고 약속한 모양.

목련 먼저, 개나리 먼저..... 이런 순서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피기로 한 모양.

그래도 아직은 봉우리가 대세입니다.

그늘이라곤 없는 곳에 서 있는 탓일가? 화알짝 피어서 곧 져버릴 것 같은 목련이 있네요.

"채윤아, 그런데 꽃이 피면 좋은데 왜 활짝 핀 꽃보다 늘 봉우리가 더 예쁜 걸까?"

"아닌데. 나는 어설프게 핀 꽃보다 활짝 핀 꽃이 더 좋은데....."

"아, 그렇구나. 넌 젊어서 그래. 그렇지. 활짝 피어야지....... 으흐흐흐"

"엄마, 나는 자연이 이렇게 좋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





하긴, 꽃봉우리 같은 채윤이에겐 이제 활짝 피울 일이 남아 있지요.

암요. 그렇고 말고요. 이제야 비로소 생의 봄날을 맞은 건데요.

인생의 정오를 지나고 막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한 엄마 눈에 예쁜 것과는 다르겠네요.

그리 생각해보면 생의 봄날을 사는 아이에게, 가을 또는 겨울을 사는 이에게는

다른 것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나를 앞서 늦가을과 겨울을 사는 분들이 보는 세상을 쉽게 재단할 일이 아닙니다.

모두들 제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충분히 느끼고 살면 족합니다.

생의 봄날을 사는 채윤이가 짧아서 아쉬운 이 볕을 충분히 쪼이고 누렸으면 싶습니다.

그래야 어느 날엔가 활짝, 화~알짝 꽃피우겠지요.












(여섯 살 목소리)

엄마, 이거 사진 찍어. 사진 찍어서 엄마 미니홈피에 올려.

엄마, 내가 만든 거야. 사진 찍어서 미니홈피에 올려서 삼촌 보라고 해.


(열일곱 살 목소리)

엄마, 왜 내가 만든 거에 관심이 없어.

나 장래희망이 바뀔 수도 있다고.

나 재즈피아니스트 안되면 플로리스트 할 거야.

빨리 사진 찍어서 엄마 블로그에 올려.

집에 가서 물에 꽂으라고 했단말야.

사진 찍고 포장지 다 벗겨서 물에 꽂아야 돼.


여섯 살에서 열일곱 되기까지에는 중간에 그런 시절도 있었다.

사진 한 장 찍혀주는데 그렇게나 비싸게 굴고.

내 얘기를 왜 사람들이 보게 하냐! 왜 엄마 마음대로 내 얘기를 블로그에 올리냐!

안 올린다 하면서 올릴 거 다 안다!

엄마 진짜 짜증난다!


오늘은 꽃다운 열일곱 채윤이가 꽃다운 친구들과 꽃시장에 다녀왔다.

화이트데이 기념으로 꽃다발 만들기를 했단다.

사진 몇 장으로 연속으로 찍으서

'자, 꽃다발 몰아주기!' 하니 바로 안 그대로 예쁜 꽃 더 예뻐 보이게 몰아줬다.


중학교 시절 언제였던가,

현승이가 '엄마, 누나가 너무 불쌍해. 매일 매일 웃지도 않고, 말도 잘 안하고.....'

걱정하던 날도 있었다.

일 년짜리 방학 효과로 표정이 살아나고 있다.

여자 짐캐리 정신실 엄마의 딸, 엄마보다 레벨업되어 나온 딸의 표정이 살아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사진은 뽀너스.

표정 카피는 기본, 감상 포인트는 눈동자 위치.












왜애?

뭐가?

엄마가 지금 나를 한참 봤잖아.

부러워서. 니가 제일 부러워.

촴, 아빠도 내가 제일 부럽다는데.


채윤인 이런 나날을 살고 있다. 진짜 


월요일과 목요일에 두 번 꽃친에 놀러간다.

요즘엔 꽃친 중 뜨개질 잘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 지도 하에

동대문에 실을 사러 다녀와서는 목도리 뜨기에 열을 내고 있다.

잔뜩 늘어진 채윤이가 실타래를 늘어뜨리고 뜨개질 하고 있는 걸 보노라면

일 없는 고양이가 앞발로 실타래 굴려가며 뒹굴고 있는 그림이 오버랩 된다.


뜨개질에 여념이 없는 누나를 현승이가 자꾸 가 건드린다.

때리고 도망가고, 내가 확 풀어버린다! 하면서 나꿔채고.


평소같으면 한 대 맞고 두 대 때리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야 하는데....

그러다 먼저 선발대로 혼나는 게 채윤이 배역인데....

인내심이 장난없음이다.

심지어 오히려 현승이가 선발대로 엄마 아빠에게 구박을 듣게 된다.

김현승, 누나 그만 건드려. 그만하라고 했다.

너 내일 학교 가지? 좋을 말 할 때 누나 건들지 말고 가서 자.

중요한 것은 이런 와중에 채윤이 여전히 평상심을 잃지 않고

뜨개질 하는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


현승이 학교 가고 여전히 소파에 앉아 뜨개질 중이던 채윤이의 한 마디.

엄마, 나 참 여성스러운 것 같애.

이렇게 뜨개질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차분해지고 너무 여성스러워져.


아닌 게 아니라 너 어제 현승이가 아무리 까불어도 흥분 안 하고 다 봐주더라.


엄마,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내가 뜨개질을 하다보니가 나도 모르게 여성스러워져.

애써서 참은 게 아니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거야.

그리고 중요한 걸 깨달았는데.....

내가 그렇게 참으니까 엄마가 나를 인정해주더라.

내가 먼저 흥분해서 소리 질러서 더 많이 혼난다는 게 무슨 뜻인 줄 알았어.


뜨개질 하다 여성스러워지는 채윤이 긍정 포인트 쌓이고 있음.

사춘기 오면서 비기싫음 포인트 막 쌓이는 현승이 덕에 더욱 돋보이고 있음.


햇살 쏟아지는 거실 카페트 위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는 고양이처럼

방학이 일년인 채윤이의 하루는 뭔가 너무 여유로워 턱이 빠질 것 같은 그런 시간이다.







 

 

 

요즘 청소할 때마다 치우면 또 나오고 치우면 또 나오는 물건이 있습니다.

교회 요람에 발이 달렸나?

제자리에 꽂아 놓아도 어느새 거실 탁자에서 굴러다니곤 합니다.

교회학교로 학기 초가 되었으니 새로운 선생님들 신상털기용으로 자꾸 꺼내보나?

 

일 년짜리 긴 방학이 시작되어 놀짱 채윤이가 돌아오고 있는지,

교회 요람은 놀이용이었더군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채윤이가 왕년에도 제일 좋아하는 책이 '교회 요람'이었지요.

한글을 떼고 제일 감명 깊게 읽은 책이 '한영교회 요람'이었을 겁니다.

8년 전 채윤이에게 교회 요람이란? 클릭클릭! 

 

대형교회 요람의 메리트를 한껏 살린 놀이는 이렇더군요.

1. 가위 바위 보! 순서를 정해서 요람을 딱 펼친다.

2. 펼친 페이지에 아는 얼굴이 있으면 이긴다.

3. 아는 얼굴이 흔치 않아서 여러 번 펼쳐야한다.

4. 게임은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선생님 디게 좋아.

야, 이 선생님이 그 선생님 동생인 거 알아?

헐, 진짜야?

블라블라.... 수다수다.... 떠들떠들....

 

(여왕의 귀환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야, 좀 조용히 좀 하자.

각자 자기 방에 들어가.

아오, 진짜 정신이 없다. 정신이 없어.

야! 조용히 좀 하라고 했지.

나 얘들 진짜.....

여보, 얘네들 왜 이래?

야, 아빠 좀 쉬자. 어, 조용히 좀 쉬자고.


요즘 우리집은

뭔가 집이라고 하기엔 뭔가

집이라고 하기엔 뭔가 너무 정신이 없게

정신이 하나도 없게

뭔가 시끄러운 게 도때기 시장 같은 게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게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은 게....

(ft. 장기하)


왜 그런가 했더니

방학이 일년인 아이가 자꾸만 거실을 접수하려 넘보니 오래 전 그날로의 회귀로다.

주일 저녁 엄마 아빠 소파에 나란히 앉아 독서를 하시자니

두 녀석 마주앉아 보드게임 하는 것이 낯설고도 익숙하다.

한때 거실은 저 아이들 것이었다.

당연히 시끄럽고, 물론 기본설정은 늘 도떼기 시장이었고.


(오래 전 그날의 거실은 늘 아래와 같았습니다.)












*

새 운동화를 안고 어쩔 줄을 모릅니다. 사자마자 갈아 신고 잠실까지 다녀온 운동화를 매만지며 '엄마, 이걸 현관에 둘 수가 없어. 그냥 하루만 방에 두고 자면 안 돼?' 정말 좋은가 봅니다. 나달나달 해어진 운동화를 신고 다녔습니다. 남의 시선을 무척이나 의식하는 채윤이가 어쩐 일인지 엄마 없는 애 같은 운동화를 잘도 신고 다녔습니다. 사줘야지, 사줘야지, 했는데 입시를 앞두고 운동화 사러 갈 여유가 없었고. 날이 갈수록 거지가 되어가는 운동화를 채윤이는 군소리 없이 신고 다녔습니다. 입시 마치고는 섣부르게 사지 않고 마음에 꼭 드는 걸 사겠다며 오래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채윤이 마음에는 꼭 드는 운동화를 샀습니다. 


**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있고,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하시던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신발을 갈아 신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드디어 꽃친 가족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가족모임 겸 송년회였습니다. '안녕, 그리고 안녕'이라는 표제를 달고 모였습니다. 앞의 안녕은 'good-bye'의 안녕이고 두 번째 안녕은 'hi'라로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채윤이는 무언가를 향해 안녕을 고한 것입니다. 꽃다운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고 손을 잡고 수줍은 '안녕'을 했습니다. 신발을 갈아신고 새날을 향해 떠납니다. 무엇에게 '안녕'하며 등을 돌리고 무엇을 향해 '만나서 반가워, 안녕!' 하게 되는 것일까요?


***

채윤이의 운동화 사진은 팽목항에서 바다를 향해 놓여 있던 뉴발 운동화 한 켤레와 오버랩 되어 다시 눈물이 치밀어 오릅니다. 이맘 때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뉴발 새 운동화를 사다 둔 엄마의 마음을 백 번 천 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무너집니다. '돈 없다. 허튼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 하며 '엄마, 뉴발 운동화.....' 하던 아이의 말을 묵살해 버렸던 것을 두고두고 가슴을 치며 후회할 것입니다. 다시 새신을 신길 수 없는 차거운 발을 안고 정신을 잃고 또 잃었을 엄마의 고통이 어찌 그 엄마만의 것이겠습니까. 새 운동화를 신고 펄쩍펄쩍 뛰는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 과연 나의 것이어도 될까요? 이 평범한 행복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려도 되는 것일까요? 네, 저는 아직도 세월호 얘깁니다.


****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세월호 이후 더욱 절절하게 들립니다. 어쩌다 안산에 살았고, 어쩌다 단원고에 다녔고, 어쩌다 제주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고, 어쩌다 세월호를 탄 그 아이들이 우리 채윤이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를 빼앗긴지 2년이 되어가는데 밝혀진 의혹이라곤 없고, 죽은 아이 팔아 돈이나 챙기려는 사람으로 몰리는, 벼랑 끝에 선 저 부모들과 나는 또 말입니다!  지난 여름 수련회에서 '세월호'를 주제로 선택 특강을 준비하던 남편이 말했습니다. '신학과 철학이 세계 1,2차 대전의 충격으로 전혀 새로운 물음을 물어야 했듯, 세월호를 겪은 우리의 신앙과 삶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우리 부부에겐 세월호 이후의 신앙과 삶은 그 이전과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

내가 사는 나라의, 교회의,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시대 부모들의 민낯을 세월호가 다 비추어주었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를 이보다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요. 맹목적인 성적관리, 대학입시, 돈을 기본옵션으로 하는 성공, 무엇보다 돈 돈 돈. 역겨움과 환멸이 밀려왔습니다. 결혼 전 젊었을 적부터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93.1 라디오를 트는 것이었는데 작년 4월 16일 이후로 그것도 잊었습니다. 꽃 같은 생명이 눈앞에서 사라져 갔는데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세상, 청명하고 미끈한 목소리로 희망을 논하는 진행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귀와 마음이 그 목소리는 물론 음악까지 뱉어냈습니다. (다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두어 달 전입니다.) 10여 년을 해왔던, 좋아하는 운동인 수영을 끊어버렸습니다. 건강을 생각해 다시 시작해야지 마음먹어보지만 영 다시 발걸음 하게 되질 않습니다. (주부수영 끊은 사연, 클릭) 제 마음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밖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몸서리를 쳤지만, 그 욕망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입니다. 의식있는 척, 성적 따위 관심없는 척 말도 글도 잘 나불거렸지만 마음 깊은 곳의 세속적 욕망은 숨길 수 없습니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꽃다운 생명들, 그 생명을 품었던 엄마들에게 마음을 포개고 바라보니 돈과 성공에 미쳐버린 세상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함께 미쳐돌아가는 제 모습도 더 잘 보였습니다. 물론 어찌나 포장술이 뛰어난지 자신마저도 속고 있었지만요.

 

*******

중학교 졸업하고 안식년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리고 수진 부부가 꽃친을 하겠다 했을 때 쌍수 들어 환영했지만 왠지 결국 우린 함께 하지 못할 거라는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예중, 예고 가서 웬만한 대학에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만하면 보통의 엄마들과는 다르게 키우고 있으니 됐다, 적당히 줄타기하면서 살아야지, 어쩌겠나.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생명들이 자꾸만 제게 묻습니다. 채윤이와 현승이가 당신 것이냐고, 세상이 정하고 당신이 세운 계획으로 보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내일의 무엇을 위해서 오늘의 사랑과 행복을 유보하느냐고. 무엇을 위해서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자리에 연연하고, 돈과 명성에 영혼을 파느냐고. 매일 단원고 엄마들을 생각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기도의 손을 모을 때 엄마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 엄마들은 다름아닌 나이기 때문입니다. 새 운동화를 사주고 좋아 어찌할 줄 모르는 채윤이를 보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편치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 채무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수장되었고 그 엄마 아빠들도 고통의 바다로 내몰려 빠져버렸습니다. 남은 자의 몫은 회개, 돌이킴입니다. 


********

살아남은 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남은 날이 적다. 더 많이 먹고 더 실컷 놀자, 가 아닙니다. 두 아이와 사람들이 내게 맡겨져 있을 시간이 많지 않다, 오늘 이들의 행복하게 하는 일을 미루지 말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그만 신경 쓰고 내가 있어야 할 곳, 해야 할 말과 사랑을 유보하지 말자, 입니다. 정권은 사악하고 교회는 천박하여 사방을 둘러봐도 절망이지만 분노하고 서명하고 피켓팅하는 것 이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 삶을 근본적으로 돌이켜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경고이며 동시에 기회입니다. 생명이 스러져가고 숨이 끊어져 가는데도 알아채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남의 아이인줄 알지만 실은 우리 아이인데, 내 아이의 생명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데 알아채질 못합니다. 그래서 내 아이도 나도, 우리 모두가 함께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내 숨을 쉬며 살겠노라는 선택이 어떤 모양새가 될 것인지 잘 압니다. 번듯할 수 없습니다. 까칠하고, 이상하고, 바보같고, 과격하고, 고독한 길이겠지요. 그렇더라도 남겨진 자의 의무를 살아야겠습니다. 남겨진 엄마로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사랑의 의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남겨진 아이들의 행복한 오늘을 지켜야겠습니다.  꽃친을 시작하는 '안녕, 그리고 안녕'에서 채윤이 엄마의 안녕은 그런 뜻입니다. 일부러 더 반대로 가겠다는 뜻의 안녕입니다. 그런 삐딱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이것은 단지 힘들게 준비하여 합격한 예고를 포기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단지 1년을 쉬겠다는 그런 얘기만도 아닙니다. 단지 채윤이 얘기는 아닙니다. 아닙니다만 결론은 채윤이를 주어로 맺어야겠지요.


채윤이는 앞을 보고 막 달려오다 멈춰섰습니다. 그리고 휙 뒤돌아서 '안녕!'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막막한 미래를 향해 '아....안녕' 수줍게 인사했습니다.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꽃 같은 나이 열일곱에 제 숨을 쉬게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 꽃친 첫 가족모임에서 채윤이가 수줍은 '안녕'을 건네고 있습니다.

* 연재는 이렇게 끝입니다. 진짜 꽃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겠지요.






 

 

 

월요일 데이트에 채윤이가 함께 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루 가족여행에 현승이가 빠졌습니다.

'나는 집에 있으면 안 돼?' 사춘기 도래를 알리는 이 한 마디! 드디어 나왔습니다.

두 번 당하는 일이라 충격이 크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2년 여 전에 채윤이 빠진 하루 여행을 다녀와 당시 기고하던 <크로스로>에 

사춘기 사추기라는 글을 썼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아무튼 채윤이는 자동차 뒷좌석을 혼자 다 차지하고

현승이가 태어나기 전 29 개월 동안 누렸던 '독점의 기쁨' 다시 누리기였습니다.

'전주 한옥마을'보다는 '주전주리 마을'이 더 어울리는 이름 같은데, 거길 갔습니다.

식구 중에 가장 위대한 채윤이에게는 딱 좋은 곳이었습니다.

콩나물국밥 먹고 바로 간식을 끝없이 흡입할 수 있는 여자 사람은 흔치 않거든요.

엄마로서는 여러 가지 걱정이 되어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또, 또 뭐 먹을래? 저거 사줄까? 뭐든지 먹고 뭐든지 사"

아빠 포스에 눌려 입 닫고 쭐래쭐래 따라만 다녔습니다.

(길쭉이들 한 걸음에 나 두 걸음. 바쁜 발걸음 속에.... 아, 뭔지 모를 소외감)

 

 

 

 

 

가족의 여행은 오가는 길 자동차 안의 대화와 음악이 의미 박스 입니다.

아빠랑 나랑 닮은 점이 뭐야? 채윤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뭐가 닮았을까?  여러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다같이 꽂혀서 들은 신해철 2집 앨범 <myself>는 대박이었습니다.

장래희망이 '옛날 가수'인 현승이와는 음악적 정신세계가 많이 통하는데요.

세 식구가 김광석, 이적, 윤도현, 하동균, 김연우.... 이러고 있을 때

채윤이는 귀에 이어폰 꽂고 알 수 없는 음악에 흐느적거리곤 하거든요.

그런데 오랜만에 현승이 없이 셋이서 신해철 노래로 대통합을 이뤘습니다.

아빠가 대학 2학년 때 '이런 가수가 있나?' 하고 들었다는 2집 앨범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는 딱 자기가 쓴 것 같다며.

이 노래를 듣고 용기내서 군대에 갔답니다. 가사를 옮겨 적지 않을 수 없네요.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 얘기를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젠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이상 우리가 사랑했던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호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웬일인지 채윤이가 쏙 빠져서 노래를 듣습니다.

가사에 공감이 많이 되는가 봅니다.

운전하랴  입으로 DJ하랴, 바쁘신 아빠가 <길 위에서> 를 추천합니다.

이거 딱 채윤 노래야.

딱 채윤이 노래네요. 

 

 

차가워지는 겨울 바람 사이로
난 거리에 서있었네
크고 작은 길들이 만나는 곳
나의 길도 있으리라 여겼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어가다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었지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끝없이 뻗은 길의 저편을 보면
나를 감싸는 건 두려움
혼자 걷기에는 너무나 멀어
언제나 누군가를 찾고 있지
세상의 모든 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삶의 끝 순간까지
숨가쁘게 사는 그런 삶은 싫어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고등학교 진학하지 않고 1년을 쉬겠다는, 그것도 예고 합격을 포기한 한다는 얘기에

애정과 걱정이 담긴,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애를 왜 바보로 만들려고 해"

바보.... 음..... 네..... 어......

벌써 다섯 번째 글인데 '그러니까 좋은 생각 다 알겠는데.... 왜 예고를 안 간다는 거?' 딱 부러지는 이유를 밝히지 않아 답답하신 분들도 있겠습니다.

위 두 곡의 노래에 예고 가지 않는 이유가 딱 나와 있는데, 딱 아시겠습니꽈? ㅎㅎㅎㅎ

 

아빠가 그런 얘기도 해줬습니다.

마왕의 또 다른 곡 <Here I Stand For You ....?>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독백입니다.

특유의 저음으로 읊조립니다.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이 부분을 듣고 아빠의 친구의 친구가 울었다는 얘길요.

 

대학의 레벨을 일정 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예고를 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믿고 있는 영원한 것들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믿는대로 산다는 것이 갈수록 '바보가 되는 길' 같아 보이지만요.

그것을 바보로 보는 세상을 향해서 설명을 해봐야 어차피 바보의 말이기 때문에 그 다음 말은 어렵습니다. 

채윤이 아빠는, 채윤이 엄마는

채윤이 안의 아빠와 엄마는 인류 최고의 바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처럼 살고 싶지만 인간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고,

흉내를 내보지만 늘 한계에 부딪혀요.

사실 가장 정직하고 분명한 답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너무 거창하여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네요.

이번 채윤이 진로선택은 그분처럼 살기 코스프레입니다.

정답 없는 인생 여정, 신앙의 여정, 갈림길에 설 때마다

바보 그분의 가르침과 가까운 길을 고심해보고 이거다 싶으면 가보려고요.

그래봐야 결과는 바보의 삶이겠지요.

결과보다 이런 선택 한 번 한 번을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것 같아요.

 

 

 

 

 

 

 

 

 

2004년 탄핵정국 때 채윤이는 네 살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손잡고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지요. 목소리! 하면 또 채윤이라 화통 삶아 먹은 소리로 '타낵꾸요! 민쥬수호!' 외쳐댔지요. 돌아오는 길, 시위하면서 은혜를 충만히 받았는지 길거리 찬양집회를 하더라지요. 아빠 어깨에 걸터앉아 종로길을 걸으면서 (역시 고래고래) '갓써 제에자 사므라. 셋쌍 마는 사람드를 셋쌍 모든 영호니 네게 달련나니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걸 싫어해서 웃는 소리도 크게 안 내는 아빠는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를 목마에 태우고는 지옥의 맛이었겠지요. 채윤이와의 참 가슴 설레고 아름다운 추억의 날입니다. (당시 쓰던 2G 폰 사진이라 화질이 저리 구리지만 제 눈엔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어요.)

 

싸이 미니홈피가 한창이던 때였는데 저 사진과 함께 다녀온 후기를 올렸더랍니다. 그때 댓글로 누군가 이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직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정치적 입장을 그대로 주입하는 건 쫌 아니지 않나?'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집회에 데려가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 중립적인 부모일 수는 없습니다. 집에서 뉴스를 보면서 '저런 빨갱이 놈들 다 북한으로 보내버렷' 하는 부모 역시 (적극적이진 않더라도) 아이에게 나름의 관점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도 아이들은 자기 부모의 절대 영향권 안에 있는 것이지요.

 

정치적인 문제든 신앙의 문제든 심지어 엄마 아빠가 하는 고민에 대해서도 (이해할 만 한 내용이라면) 아이들에게 설명하곤 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또한, 피아노를 배우거나 태권도장에 다니는 것 등의 아이들에 관한 결정은 충분히 얘기하고 의논했습니다. 수영 같은 건 엄마가 먼저 제안했고, 채윤이 피아노나 현승이가 잠깐 했던 태권도는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누가 제안했든 충분히 생각하고 의논한 후에 일정 기간을 쭉 하는 걸로 약속합니다. 중간에 재미없어졌다고 '끊어줘!' 이런 거 없기로 말이지요. 이 부분은 어릴 적에 우리 엄마가 내게 좀 길러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덕목이기도 해서 단호하게 지켜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이들 교육뿐 아니라 저 자신의 삶에서, 또 제가 하는 연애 강의 등을 통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선택과 책임'입니다. 성숙한 사람의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고요. 무슨 주제든 아이들과 대화하지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자신에 관련된 일에선 특히 충분히 얘기하고 최종 선택은 스스로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글로 이렇게 써놓으면 굉장히 있어 보이는 교육철학이지만 철학이 엄마 머리에만 있다는 게 문제죠. 이 미덕을 가르치려면 실패가 뻔한 시도를 허용해야 하는데, 이느무 엄마가 그렇게 성숙하질 못해서요. 말처럼 되지 않습니다. 통제본능이 매우 강한 엄마로서의 저 자신을 (늘 아프게) 돌아보게 됩니다. 아무튼, 애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 면에 관에서 성공경험이라면 채윤이의 예중 생활 3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힘겨운 3년을 보내면서 깊은 좌절을 경험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자기 결정'이었다는 의식이 채윤이를 지키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연습을 체크하거나 성적 가지고 쪼거나 하지 않는(못하는) 불량 엄마 탓에 스스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채윤이는 예중 가는 선택을 '선생님의 설득으로 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몹시 싫어합니다. 선생님이 제안하셨고 자신이 선택했다고 늘 힘주어 강조하지요. 그 과정은 엄마를 졸라 허락 받아내는 일도 포함입니다. 아무튼, 이런 채윤이를 지켜보며 '자기 결정'의 힘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고에 가지 않기로 한 결정을 채윤이도 동의했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습니다. 동의라니요. 자기 결정입니다. 한참 전에 '중학교 마치고 1년 쉬는 방법도 있으니 생각해보자'는 제안을 엄마가 했고. '꽃친'이라는 게 있다, 해보면 좋겠다는 제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 예고를 가지 말아야겠다는 말은 채윤이가 했습니다. 일단 입시준비를 열심히 하고 합격을 한 다음 멋지게 그만두자!는 말은 엄마의 꼼수였습니다. 합격을 한 후에는 엄마, 아빠, 모두 (아까워서) 흔들렸습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펼쳐놓고 고민하고 대화했습니다.자연스레 '괜찮겠다. 예고 포기하는 게 맞네'라고 채윤이와 엄마 아빠는 물론 마음 터놓고 의논할 수 있었던 친구들도 한결같이 동의해주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종적인 자기 결정! 토요일 밤에 채윤이와 최종적인 대화를 마치면서 말했습니다. "그래, 채윤아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과 결정을 다 했어. 내일 예배드리고 찬양하면서 기도하며 최종 결정해.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께 말씀드려. 그러면 이 결정은 하나님 손에 맡겨 드리게 되는 거야" 채윤이가 갑자기 살짝 울컥하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그런데 나는 어른들이 하나님의 뜻... 이런 얘길 하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다, 이런 말을 할 때 좀 이해가 안 돼. 하나님이 이래라저래라 목소리로 말을 해주시는 것도 아닌데... 사실 예고를 안 간다고 하는 것도 내가 정한 건데 하나님 뜻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잖아." (표정은 수심 반 서러움 반)

 

"맞아. 채윤아! 니 말이 맞아. 엄마도 이 나이 되도록 살면서 많이 기도해왔지만 사실 하나님의 뜻이 이거다!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어. 그냥 기도하면서 그때그때 엄마가 좋은 걸 선택한 거지. 하나님과 함께 결정한다는 건 이런 거 같애. 너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하는 걸 알지? 사랑하니까 니 일을 막 정해주고 그래? 글치. 엄마빠가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 알지?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하니까 널 믿어주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려고해.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채윤이한테 뭘 바랄 것 같아? 그렇지. 잘 되는 거. 잘 돼서 어떻게 하라고? 맞아. 행복하라고. 엄마는 하나님이 채윤이한테 바라시는 건 채윤이 자신이 되어 행복한 거, 그걸 바라실 것 같아. 엄마가 널 사랑하니까 니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주잖아. 그렇다고 니 선택했으니 니가 알아서 해. 이렇게 해? 아니지. 엄마가 해야하는 것, 할 수 있는 걸로 다 도와주려고해. 그거야. 니가 가장 좋은 길, 또 선할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 같이 걸어가 주세요. 혼자서는 못 가요' 하고 가는 거야. 하나님 손잡으면 엄마랑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랑으로, 힘으로 너랑 함께 가주셔. 니가 최종 결정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것처럼 말야"

 

부모로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네 살 채윤이 목마에 태워 촛불집회에 데려갈 수 있었지만 열여섯 채윤이를 엄마 마음대로 아무 데나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네 살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열여섯은 그렇게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엄마로서 여전히 아이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내가 온전하지 않음을 알기에 아이의 행복에 대해서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다고 아직은 열여섯인 채윤이 혼자 알아서 결정하도록 무책임하지도 않습니다. 열여섯 채윤이가 할 수 있는 분량을 믿어주고, 도와주고, 스스로 가장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거절할 자유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무력하여 어마어마한 그 역설적인 사랑을 늘 많이 생각합니다.

 

꽃친 가족 인터뷰를 마치고 채윤이가 한 말입니다.

"엄마, 내가 아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그걸 못했어. 나는 꽃친을 해도 예고를 가도 어차피 아쉬울 거라는 걸 알아. 꽃친을 하다 예고 교복 입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고 예고 갈 걸... 하겠지. 예고 가서 힘들 때는 에이, 꽃친 할 걸... 하겠고. 어차피 아쉽지 않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아쉬운 건 그냥 아쉬워야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걸 열심히 해야지."

채윤이의 '자기 결정'입니다.  

 

 

 

 

 

* 이 사진은 입학 실기시험 치러 들어간 채윤이를 기다리며 찍은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때 읽고 있던 책이 <자기 결정>이었네요. ^^

 

 

 

 

 

 

 

 


 

 

 

 

육아, 라고 하기엔 아이들도 크고 저도 많이 늙었으니 '자녀교육'이라고 해야겠네요.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유별나다'는 주변의 평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보통과 다르다'는 의미라면 몰라도 특별히 애를 쓴다거나 '에너지를 쏟는다'는 뉘앙스일 때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신경함의 유별남'이라면 인정하겠습니다. 사실 채윤이는 우리나라 공교육에는 좀 맞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채윤이가 서너 살일 때부터 엄마로서 촉이 왔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홈스쿨링을 고려하거나 대안교육 같은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쓸 에너지가 없어서(귀찮아서?)였고, 채윤이가 살아갈 세상은 어차피 그러하다 생각했습니다. 개성이 강하고, 자기 생각이 분명한데 한글 따위는 배우지도 않은 채윤이의 학교생활이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였지만 주저 없이 학교에 보냈습니다.

 

나름 아기 적부터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려 했던 부모입니다. 무슨 일이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대화했으며 부당하게 강압하지 않았습니다. 아이 앞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면 분노가 가라앉은 후에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리얼리? 이렇게 좋은 부모라니!!) 비록 우리는 이렇게 키우지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우리 아이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그 모든 것을 막아줄 수도 없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선생님께 부당하게(아이 입장에서야 늘 부당하겠고, 가만 들어보면 정말 부당한 것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야단을 맞고 왔다 해도 그걸 크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날 지언정. 아, 물론 아이가 구구단을 빨리 못 외운다고 수학책으로 머리를 때렸던 2학년 때 담임, 하남 천현 초등학교 *** 선생님은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아빠까지 대동해 찾아갔습니다. 이 일 외에는 그저 채윤이든 현승이든 학교에서 받는 칭찬과 상처를 스스로 견디도록 했습니다. 다만 엄마 아빠 품에 돌아왔을 때 기댈 언덕이 되어주고 충분히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자 했습니다.(만 그저 생각일 뿐 상처받고 온 아이 더 상처 주는 일이 많았지요.ㅠㅠ) 알고보면 저, 꽤나 체제 순응적인 부모랍니다. 케케. 심지어 영양사가 짠 식단으로 점심 한 끼를 먹고 올 수 있다는 것, 그것에 엄마의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열심히 학교 보내는 엄마입니다. 5대 영양소 골고루 챙겨 멕여주는 게 어디냐며. (강의와 원고가 몰릴 때는 며칠이고 우리 집 싱크대에서 쌀뜨물 흘러가는 일이 없다지요.)

 

결론부터 까놓고 시작한 글입니다. 채윤이는 예고에 합격했지만 예고에 가진 않습니다. 예고에 가지 않겠다는 선택이 대단히 유별난, 비장하고 진지한 선택은 아니랍니다. 딱 사람을 낚기 좋은 선정적인 제목이라서 던져봤을 뿐이고요. 사실 이 연재의 핵심은 '예고에 가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1년을 쉽니다'입니다. 그리고 1년을 쉰다는 선택도 딱히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는, 그저 채윤이와 채윤이 엄마의 삶의 여정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3년 전 예중 입시를 선택했던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청년 시절 <많은 물소리>라는 찬양집을 애용했습니다. 당시 청년부에 도는 안경 낀 철학 전공 남자애가 하나 들어왔는데 어쩌다 찬양인도를 맡더니 찬양집을 바꾸더군요. 그것이 <많은 물소리>였습니다. 아, 그 도는 안경의 이름은 김종필입니다. 그 찬양집을 만든 황병구 님을 김종필과 함께 오래도록 흠모했습니다. 그가 만든 찬양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그댄 솔잎이어라'는 한영교회 청년부를 섬기던 시절 목자들과 부른 18 번 곡이었지요. 물 흐르듯 흐르는 우리 일상의 시간 속에 황병구, 이수진 부부가 곁에 왔고 오래된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집 딸내미 은율이의 안식년 소식에 마음이 움직였지만 (지난 글에서처럼) 채윤이에겐 예중-예고 프로필이 중요했구요. 그런데 갑자기 이 부부가 딸내미 안식년 경험을 더 많은 아이들에게 나눌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 결정의 중요한 장면들을 제가 자꾸 목격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맥도날드 앞에서 눈물로 결심한 대로 채윤이는 열심히 피아노를 쳐댔고, 저는 열심히 레슨비며 돈을 댔습니다. 이것과 상관없이 '꽃다운 친구들 '이라는 이름을 달고 황&이 부부님은 열심히 새날을 준비하더군요. 9월이 되어 채윤이는 입시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꽃친은 개봉박두, 설명회를 하기에 이릅니다. 잠시 짬을 내어 설명회에 다녀 온 채윤이는 카톡 상태 메시지를 '꽃친'이라고 바꿔 놓더군요. 그러나 정말 꽃친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해서는 말도 못 꺼내게 했습니다. 지금은 입시만 생각하겠다며, 입시 끝나고 얘기하자며. 그 와중에 꽃친에 어플라이 하기 위해 급조해서 자기소개서도 쓰고,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11월이 왔고 드디어 입시를 치렀지요.

 

시험을 마치고 발표까지 며칠. 당락에 상관없이 진로를 정하기로 했었기에 얘기를 좀 해보려 했더니 채윤이는 역시나 입도 뻥끗 못하게 합니다. 합격 발표 보고 얘기하자면서요. 합격하고 나니 마음이 무지 복잡해지더군요. 채윤이나 엄마나 심지어 차거운 머리를 가진 아빠까지도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걸 포기해? 미친 짓 아닐까? 대학입시 따위 개똥으로 취급하는 척, 쿨한 척 하던 것이 그저 '척'이었음을 알겠더군요. 짧고 굵은 갈등,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이런 저런 대화, 무엇보다 채윤이와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결론은 자명해졌습니다. 때마침 접한 이 기사 (입시전쟁 최고봉. 서울대? 아니 예술중!)는 아주 그냥 시의 적절합니다. 잠시 우리를 흔들었던 욕망, 그리고 자명한 결론과 필연의 선택을 다 담고 있네요.

 

꽃친이 아니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이 부족하여 '꽃친'이 채윤이만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씸다. 그저 채윤이와 채윤이를 키운 불량 엄마가 여기 있고, 3년 전 은율이의 선택이 있었고, 은율이를 그렇게 키운 은율이 엄마 아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남이라는 신비가 이 모든 것을 연결시켜주었지요. 우리 모두의 시간이 흐르는 강물과 같고, 어느 여울목에서 교차하여 만난 것입니다.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왜 예고를 안 가냐고? 여기서도 의문이 안 풀리셨다면 다음 편 예고 겸, 의문에 대한 힌트 겸 황병구 님의 노래 한 곡조 들려드리며 마치겠습니다.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작은 시작은 그 소리조차 없구나

소리없는 삶을 몰라하는 이들

그들도 삶의 시작은 작구나

 

지금도 우리 시작은 작구나

작은 외침을 듣는 이들도 적구나

적은 무리됨은 기뻐하는 이들

그들과 우리 시작은 작구나

 

높이 떴을 때 더욱 작아지는 해처럼

깊이 잠길 때 더욱 소리없는 바다처럼

높게 살자 깊게 사랑하자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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