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말이 있다. ‘, 뭐라구?’ 한 번 더 묻게 만드는 말이다. ‘음악치료가 그런 말 중 하나인 것 같다. 그저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도 직업을 묻는 말에 음악치료사예요하면 그래요?’ 하면서 사람을 다시 봐 주는 느낌이 있다. 자존감 증진의 순간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면서도 좋은 일 하시네요. 좋은 직업 가지셨네요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여하튼 음악치료, 음악치료사는 있어 보이는 말인 것은 틀림이 없다.


기실 음악치료사가 좋은 직업임에 틀림없으나 막상 치료사로서 음악치료 세션 안에 있을 때는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허다하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데 클라이언트에 따라서 함께 부르거나, 가사를 주고받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그야말로 벽 보고 노래하는 느낌일 때도 있다. ‘하는 소리 한 번을 내게 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경우가 있고, 치매 할머니께 악기를 뺏기고 욕을 들어먹는 경우도 있다. 소극적인 환자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 과하게 에너지를 쏟으며 노래할 때는 치료사인지 레크레이션 지도자인지 스스로 혼란스러울 때도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치료를 할 때 가령 정확한 리듬모방을 치료목표로 삼았다고 하자
. '♩♪♪♩♩' 이 리듬을 정확하게 모방하도록 하기 위해 드럼 위에 손을 대고 진동을 느끼게 하고, 반복하여 들려주고 가르칠 때는 얼핏 음악교육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듬을 가르치는 수업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어찌하여 이것은 단지 음악교육이 아니라 특별히 치료라 불린다는 말인가? 실질적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치료에서는 정확한 음정과 박으로 노래를 하는 것, 연주에 참여하여 완성도 있는 음악적 성과물을 만드는 것 등이 주요한 과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마치 아이의 음악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이 세션의 지향점인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혼란의 원인은 용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어치료라고 하면 명확하게 언어를 치료함으로 이해하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음악치료를 이해하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음악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치료한다는 의미의 음악치료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는 뜻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치료는 언뜻 보기에 음악교육, 음악을 사용한 레크레이션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노래하고 악기 연주하고 심지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등 엇비슷한 것이다. 음악교육이냐 음악치료냐를 구분 짓는 것은 음악행동과 음악외적인 행동의 이해이다. 음악교육의 목적이 음악적 행동자체에 있다면 음악치료는 음악활동을 통해서 음악외적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한다. 음악활동 하면, singing, playing, listening, reading, moving, creating을 포함한다. 노래를 잘 하게 하고, 연주기술을 향상시키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해내도록 하는 것은 말하자면 음악교육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음악치료는 피아노를 치는 활동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집중력 향상, 소근육의 운동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이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드럼을 연주하는 음악적 행동 역시 단지 박자에 맞춰 생동감 있는 연주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대근육 운동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한다. 노래 부르기, 노래의 가사를 만들거나 멜로디 작곡하기 등도 사회적 기술, 기억력 증진, 언어발달 등의 음악외적인 활동을 유발하고 증진시키는 것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음악치료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나 오랜 기간 음악치료를 하고 있는 치료사에게나 의미 있는 일이다. 음악치료사가 세션을 디자인하고 치료를 진행하면서 결국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음악적 활동이다. 좋은 음악치료사는 음악적 활동과 음악외적인 행동의 연결고리를 잘 찾아내는 사람일 아닐까 싶다. 단순하거나 때로 세련된 음악활동을 환자에 맞게 적용하여 치료적 목적을 끌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보이진 않는 것을 보는 눈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드럼을 세 번 쳤다고 하자. 이것은 북 소리가 나도록 근육을 조절할 수 있었다는 신체적 반응으로 볼 수도, 치료사가 지시한 바로 그 순간을 집중하여 놓치지 않고 쳤다는 인지적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세 번을 정확하게 쳤다는 의미에서도 인지적반응일 수 있다. 또는 그 전까지 스스로 연주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었는데 혼자 말렛(mallet)을 들고 드럼을 쳤다는 의미에서는 정서적 반응일 수도 있다. 이렇듯 음악적 행동에 다양한 대한 음악외적행동을 이해하고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이 음악치료의 묘미이다.

 

음악적 행동음악 외적인 행동사이의 연결고리는 음악에 대한 인간의 반응, 음악의 기능에 대한 많은 연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음악 인류학자 메리암(Alan Merriam)이 말하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에 관한 설명은 음악과 인간행동 사이의 연결고리가 총망라 된 듯하다. 메리암은 음악의 기능(function)이라고 말 할 때는 음악의 사용(use)’이라는 표현보다 목적상의 이유가 고려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음악 외적인 행동을 겨냥한다는 의미로서 해석할 때 우리는 단순하고 튼튼한 (음악적 행동과 음악외적 행동 사이의) 연결고리를 얻게된다. , 그러면 오늘은 음악의 기능에 대한 메리암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보자.

 

음악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쉽게 표현하도록 해준다. 드라마의 사랑고백 장면에 등장하는 카페 씬을 기억하는가? 남자 주인공이 화장실 가는 척 일어나 자리를 뜬다. 천진한 표정으로 와인 잔을 입에 대는 여주인공 뒤로 흐릿하게 잡히는 피아노 앞에 앉은 남친, 그리고 들리는 남친의 노래와 피아노 반주 말이다. 노래는 물론 사랑해도 될까요?’ 이런 류이어야 한다. 말로 하지 못하는 감정의 표현을 음악이 대신해 주는 예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라는 노래 한 마디는 천 개의 설움과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음악이 가진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는 기능이다.

 

음악은 미적인 즐거움을 더해 준다. 인간은 진..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본능이 사람으로 하여금 작곡을 하게하고, 노래하게 하고, 음악을 다운받아 시도 때도 없이 음악을 듣게 만드는 것이다. 미적인 즐거움을 일상에서 향유하는 것에 음악만 한 것이 있을까?

 

음악은 오락의 방법으로 제공된다. 음주가무라는 말이 있듯이 레크리에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모닥불 피워놓고노래가 있어야 캠프파이어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회식이나 모임의 마지막 3차 또는 대미(大尾)는 노래방이 아닌가. 가족모임에 아이들이 있다면 한 명씩 노래를 시키고 박수를 쳐주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다. 클래식 음악 감상을 취미로 가진 사람 역시 음악의 오락적 기능을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오락에서 음악을 제거하면 오락이 오락되겠는가?

 

음악은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으로 이용된다. 많은 표제음악들은 그 자체로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2011년 내한한 다니엘 바렌보임이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WEDO)와 함께 광복절에 맞춰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했다. 연주 장소는 임진각이었다. 이 연주회가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연주된 그 곡이 설명한다. 연주 그 자체로 통일에 관한 많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의 기능 또한 음악의 사회적 기능이다.

 

음악은 상징적 표현으로 제공된다. 애국가가 상징하는 것, 생일축하 노래가 상징하는 것은 자명하다. ‘도레미송이나 에델바이스같은 노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음악은 상징적인 표현의 기능을 하는데 메리암은 음악에서의 상징성은 단지 부호나 신호가 아니라 의미를 불러일으킨다고 하였다.

 

음악은 신체반응을 유발한다. 리듬이 신체활동에 있어서 에너지원이 되는 것은 이 지면을 통해서 여러 번 언급했던 것이다. 6개월 된 아기의 엉덩이춤으로부터 김연아 선수가 레미제라블에 맞춰 움직이는 현란한 몸짓까지, 음악이 신체반응을 유발하는 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음악은 사회규범과 관련된다. 오래 전에 저녁 6시가 되면 길을 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서 있는 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국기 하강식이라 불리던 의식이었다. 저녁 6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누구랄 것 없이 그 의식에 동참했다. 사회규범이 어떻게 음악을 통해서 전달되고 지켜지는지를 보여준다. 이렇듯 음악은 사회규범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음악은 사회기관과 종교의식을 확인시킨다. 예배나 미사 등의 종교의식을 음악과 분리시켜 떠올릴 수 없다. 서양의 음악이 종교음악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발전해 왔음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음악은 사회와 문화의 영속성에 기여한다. 메리암은 음악은 그 시대나 세대가 지닌 심리적 현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된다고 하였다. 80년대를 풍미하던 가왕조용필이 있다. 가수 조용필이 최근 신곡 바운스를 들고 대중에게 돌아왔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세대를 넘나드는 가수의 왕은 음악이 사회 문화적 영속성에 기여하는 바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음악은 사회 통합에 기여한다. 올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추모곡으로 부르는 순서를 배제하려 반발과 논란이 뜨거웠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에게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하는 노래가 노래 그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노래가 불려 질 때 정서적 공감에서 시작되는 보이지 않는 뜨거운 연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음악은 이처럼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참여시키고 하나로 결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런 식으로라면 음악의 기능에 대해 얼마든지 더 열거하고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음악이기에 융통성 있는 치료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적인 훈련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다양한 대상의 모든 연령대 사람들에게 음악외적인 행동을 유발하니까 말이다. , 이쯤 하여 필자는 지상(紙上)강의를 마무리 하고 쉼을 좀 가져야겠다. 아무 걱정 없이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고, 조명을 낮춘 후에 브람스의 첼로소나타 CD를 듣기 시작하면 긴장된 뒷목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이완이 찾아올 것이다. (긴장을 이완 시키는) 신체반응을 유발하는 음악적 기능에 나를 맡겨보는 것이다.


 

<International Piano>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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