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36

 



어느 대학 앞 카페였습니다. 건너편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커플. 노트북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 있는 것이 영락없이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세련된 남친이 귀엽고 수줍은 여친의 이마에 한 번씩 뽀뽀를 하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립니다. (부러움 유발 커플, 무조건 유죄!) 남친이 화장실을 가는지 자리를 비웁니다. , 그때 혼자 남은 우리 여친님의 표정. 아까 그 귀요미가 아닙니다. 무뚝뚝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의 무표정으로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폰을 들여다봅니다. 거울을 꺼내 화장을 매만집니다. 남친 등장하자 귀요미도 귀환. 눈웃음을 지으며 속닥속닥, 그리고 다시 뽀뽀, 이중창으로 하하호호.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인가 봅니다. 그렇게나 다른 두 표정을 보자니 여친은 긴장을 많이 하는 듯 하구요.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데..... 저도 모르게 탄성처럼 내뱉었습니다. 예쁜 아가씨, 너 자신이 되어 연애해.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요? , 이 꼭지 [나자연] 첫 글의 일부입니다. 여러 말로, 긴 시간 동안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해야 한다고 떠들어댔습니다. 문득 외로움이 밀려올 때, 씁쓸한 소개팅의 뒷맛에 서글퍼질 때, 이러다 영영 혼자 사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휩싸일 때 나 자신으로 충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요, 배우자 확신을 기다리는 순간도 있지요. 헤어짐과 거절당함의 두려움에 아슬아슬한 연애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고,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헤어져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습니다. 결국 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했었지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책임에 따르는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 말이지요. 그럴 수 있는 힘은 결국 자기 자신과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해야 할 이유이겠지요.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의 질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과 관계 맺는 수준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부부상담치유의 전문가인 존 브래드쇼 (John Bradshaw) 목사님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심리적인 짐을 지우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이런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심지어) 재앙이 된다고도 하지요. 재앙까지나? , 저는 백 번 공감합니다. 그런 의미로 나 자신이 되는 것은 단지 연애를 잘하기 위한 팁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청년을 압니다. 처음 만났던 날의 긴장된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저와 마주 앉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지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흔한 연애상담인 듯 했지만 그 이상을 여는 만남이 되었습니다.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도 할 수 없다, 하지 않겠다.’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훅 그 마음에 들어온 것이지요. 의지와 상관없이 들이닥치는 감정의 쓰나미가 사랑에 빠짐입니다. ‘사랑하지 않겠다,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며 살아온 사람에게 들이닥친 이 감정이 얼마나 당혹스러웠겠습니까. 혼란의 와중에 용기 내어 제게 찾아온 것입니다. 좋아하게 된 친구에게 진실하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 비밀 같은 이야기에 놀라 도망치면 어떡할까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우 오직 바라는 바는 쌍방 간 그린라이트가 켜지고 두둥~ SNS의 상태메시지를 연애 중으로 바꾸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오직 그것에만 목을 매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일단 사랑하지 않겠노라며 꽁꽁 숨겨두었던 자신을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결과가 어찌 됐든 고백하고,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기로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연애가 술술 잘 풀리거나 없던 용기와 지혜가 하루아침에 충전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연애와 삶은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졌지요. 꽁꽁 싸매고 있었을 때가 안전했지 말입니다. 그녀와 사귀고 말고를 떠나서 자신을 개방하기로 하고 갑옷을 벗자 상처입기 쉬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기꺼이 상처받을 수 있음은 바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연애 상담 경험에 근거하여 저는 이 친구의 미래, 특히 연애사업의 전망을 낙관합니다. 잡다한 연애 기술을 연마한다면 연애계의 선수가 되겠지만, ‘나 자신이 되는 노력으로 연애의 산을 하나 씩 넘어간다면 갈수록 더 좋은 사람되기 마련이니까요. 좋은 사람이란 사랑의 능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순간적으로 마음을 얻는 반짝하는 기술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진심이지요. 내 여친(남친), 내 배우자, 내 아이 한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품는 넓은 품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입니까. 결국 나 자신이 되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 성숙한 사랑을 배우는 여정입니다. 짝사랑하고, 고백하고, 거절당하고, 소개팅도 하고, 연애하고, 결혼하십시오. 하되 여러분 자신이 되어서요! 건강한 연애와 결혼 뿐 아니라 사랑이신 그분을 더 알고 닮아가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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