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채윤이를 지하철에 태워주고 들어오는 길. 며칠 마음으론 땡겼지만 눈으로는 쉭쉭 지나칠 수 밖에 없었던 이름 모를 노란 꽃 앞에 멈추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꽃봉우리를 줍고 몇 송이는 나무에 붙은 걸 따서 손에 한가득 들고 주차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여러 개의 노란 리본을 만들었다 지우면서 다리가 저리도록 시간을 보냈습니다. 누가 보면 마음 쪽 어디가 아픈 여자인 줄 알았을 것 같아요.

 

골목 담장 너머로 삐죽 피어있던 저 꽃과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울컥하고 말았었는데요. 앞두고 있는 몇 개의 중요한 강의 준비로 약간 수험생 모드였습니다. 시험 끝나면, 시험만 끝나면, 하는 심정으로 모든 에너지를 강의에만 쏟으면 지내고 있었던 터라서요. 오늘 아침 다가가 보니 시들어 떨어진 꽃잎이 나무 아래 흩어져 있었습니다. 분분한 낙화. 가야할 때는 아는 이의 뒷모습처럼요.

 

한 교회 교인인듯, 한 교회가 아닌 듯, 한 교회 교인인 우리 교회 청년들과 긴 시간 연애강의로 함께 했구요. 에로스 사랑은 모든 개인사를 압도하는 힘이 있기에 연애 강의는 세상의 모든 사랑을 얘기하게 되지요. 다섯 번의 강의를 통해 뚜둡뚭뚜 로맨틱 러브를 논하고, 남편과 함께 강의하며 결혼생활을 통해 농익은 우리 사랑을 돌아보았고, 우리와 다른 부부들의 러브스토리를 들으며 전혀 다른 옷을 입은 사랑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 모든 사랑은 내게 와 '그 사랑'으로 가는 길이 되곤 합니다. 이번 여정에서도 예외는 아니었구요.

 

의대생들의 1학점 짜리 필수과목으로 한 타임 연애 강의도 했습니다. 연애 강의에서 사랑 얘기 안 할 수 없고, 내게 있어 사랑이란 한 곳으로 통하는 사랑인데 '그 사랑' 빼고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싶었습니다. 의미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는 완벽주의로 몇 날 며칠 여러 권의 책을 쌓아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 사랑' 빼고, 의미와 재미는 고스란히! 강의를 마치고 며칠을 보내고 나니 돌아보니 내가 던진 말 한 문장 내 마음에 남아 있네요. '한 사람을 향한 오롯한 헌신'으로서의 사랑. 비신자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것있었었었었어요.

 

'학부모와의 상담'을 주제로 어린이집 선생님들 교사교육을 했지요. 어린이집에, 학교에 상담하러 가면서 엄마들이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는데 결국 '나는 어떤 교사인가?'라는 질문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한 아이의 장점과 약점을 읽어내는 눈, 그것을 아이 엄마에게 어떻게 안전하게(엄마가 상처받지 않게, 빡치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당신의 아이'가 아니라 '나의 아이, 우리 아이'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아이가 이런 점으로 친구들과 저를 힘들게 해요' 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이런 점이 있어서 어머니도 힘드시죠? 저도 힘든데 이렇게 품고 지도하고 있어요.' 라는.

 

4주 에니어그램 집단여정을 한 주 남기고 있습니다. 몰려 있는 강의 중에 정서적 보상이 제일 큰 시간입니다. 자발적으로 오셨고, 목말라서 오셨고,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며 오신 분들이라 준비된 수강자들이고요. 이분들의 갈망이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서 그냥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공명이 좋네요. 마음으로 만나는 만남이 참 좋군요.

 

그렇게 석 자나 길어진 내 코를 수습하면서 담벼락의 노란꽃을 흘려 보며 지냈습니다.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이렇게 내 앞가림만 하며 사는 건가? 광화문에서 몸으로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맞는 죄인이 된 유족들, 그 자리에 있는 벗들 생각으로 지난 목요일 밤부터는 깊은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웃옷에 노란 리본 하나 덜렁 달고 마이크 잡고 있는 내 모습이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강의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지난 얼마 간 마이크를 침으로 적시며 내가 던졌던 모든 말들이 '내 사랑'을 묻는 메아리로 되돌아 옵니다. 데레사 수녀님의 말씀처럼 '모든 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2015년 4월, 사랑과 진실이 가장 필요한 곳은 아이를 잃은 엄마들의 가슴 속입니다. 1년이 지났건만 차거운 바닷속에서 아이를 건져 올리지 못한 엄마들, 1년 전 그 아이들처럼 차거운 아스팔트에 갇혀 버린 엄마들 가슴 속입니다. 핑계 삼을 폭풍 일정들이 끝났으니 주말에는 광화문에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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