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진 12월호_유브갓메일 12

집착이 피어오를 때
문자를 씹어? 이 총각 이거 여친 관리 너무 살살하시네. 게다가 전화통화도 그리 잘 안 된다는 거야? 연락이 닿지 않아서 기다리는 순간은 참 힘이 들지. 나중에 보면 별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 이해할 만한 이유라 할지라도 말이야. '믿어 달라'고 말한다지만 때론 말보다 행동이 강한 메시지로 다가올 때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불안하고 힘들다'는 것, 이해가 돼.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이라니 누구라도 너처럼 예민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네 느낌에 대해서 '맞는 - 틀리는, 정상적인 - 비정상적인'이라는 잣대로 재면서 힘들어 하지 않으면 좋겠구나. '제가 좀 비정상적인 건가요?'라는 질문에 단적으로 대답하마. '아니, 비정상적이지 않아!'^^
선생님이 이렇게 단적으로 대답을 해도 마음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잘 사라지지 않지? 전화 연결이 안 되는 순간, 문자가 씹히는 순간, 그 순간엔 정말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힌다는 거지. 혹시나 오늘 저녁에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시간을 비워뒀는데 그럴 수 없다는 걸 막판에 알게 될 때의 당혹감, 그리고 그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할 때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너 자신이 싫다는 말에서 선생님은 은혜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를 하나 캐치했다. 그것은 '집착'과 '사랑' 사이에서 건강한 사랑의 태도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은혜 내면의 목소리인 것 같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집착하게 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스스로 자발적인 구속이 되는 것이 뭐 그리 문제가 되겠니? 헌데 지금 은혜의 마음처럼 뭔가 계속 불편하다면, 그 집착과 자발적인 구속이 마음에서 평안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된다면 한 번쯤 돌아봐도 좋은 일인 것 같아.

집착을 가늠하는 잣대, 자유
집착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면 집착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닐 거야. 그런데 이 집착이 건강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를 가늠하는 좋은 잣대가 하나 있는데 '자유'가 아닌가 싶어. 좀 다른 얘기이긴 하다만 전문가들이 흔히 '중독'에 대한 진단이나 설명을 할 때 이 '자유'를 얘기하더라. 어떤 것에 대해 보다 강렬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과 중독되는 것 사이의 큰 차이가 바로 '자유'라는 거야. 문자에 대한 답문자가 즉시 오지 않을 때, 이유 없이 통화가 되지 않을 때, 데이트 하면 좋을 듯한 시간을 그냥 보내야 할 때 은혜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이 혹 은혜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길 바래. 은혜가 이 일로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낸 이유는 단지 그런 시간들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에 안달하는 네 자신이 싫다는 말이잖아. 은혜가 민감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과 집착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집착으로 빠질 수 있는 자신을 인식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굳이 선생님이 뭔가 얘기해 주지 않아도 그런 정서적, 영적 민감함은 결국 은혜의 사랑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줄 것이라 믿는다. 물리적으로 홀로 있는 시간까지 애써 너를 J에게 묶어두지 않으면 좋겠구나.


아름다운 자유를 누리며 사랑하기
결별을 하는 적잖은 커플들에게 있어 그 자체가 원인인지 결과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자매들의 집착(또는 그 반대로 형제들의 집착)으로부터 감지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청소년들에게 '어디야?'하고 엄마가 보내오는 문자는 스팸문자 취급이라던데, 혼자 있기 힘들어 하는 애인에게서 오는 '어디야?'도 같은 취급이 아닌가 모르겠구나. 중요한 것은 홀로 있는 연습이 잘 된 사람이라야 둘이 되었을 때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네 말처럼 처음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고 끊임없이 문자를 주고받고 했지만 너희에겐 이제 '따로 또 같이'를 잘 연습해가야 하는 시기가 왔는지도 몰라. 상대적으로 J보다 네 직장이 이런 저런 여유가 많은 편이니까 함께하고픈 마음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아서 힘들기도 하지? 너도 J가 남달리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 일에 열정적인 것을 익히 알고 있을 거야. 너 스스로 J의 매력 중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었지? 그런 J를 믿어주고 무엇보다 너 역시 너의 따로 있는 시간을 온전히 너로 지낼 수 있도록 훈련을 하면 좋겠다. 언제 데이트가 있을지 몰라서 끊었다는 퇴근 후 운동도 다시 시작해 보고 말이야. 뭐 넉넉한 시간을 혼자 잘 때우라는 얘기가 아니라 홀로서기를 잘 하라는 얘기고, 또 남자친구를 어느 정도 상대화 할 수 있어야겠다는 거야(고전 7:29을 깊이 묵상해보면 좋겠다).
그럴 리 없겠지만 노파심에서 짚고 넘어갈게. 우리 삶에서 '절대, 이것만은' 하면서 꽉 붙들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지없이 내 마음의 왕좌를 꿰차게 되고, 왕좌에 앉은 그것은 하나님을 대신하게 되는 것 같아. 폭발적인 감정 반응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달려드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인 양 호도하는 '러브홀릭 지상주의'에 속지 말자. 하나님이냐 남자친구냐, 뭐가 더 중요하냐를 묻는 말이 아니란다. 갖다 댈 수도 없는 마음의 왕좌에 남자친구(여자친구) 또는 로맨틱한 사랑을 앉혀 놓고 불안에 떠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 J를 사랑하되 J도 네게 요구하지 않는 구속을 스스로 하지 말고 아름다운 구속 대신 아름다운 자유를 누리며 사랑하면 좋겠어.


표현의 차이를 넘어서
아! 그리고 전화랑 문자 씹는 얘기 말이다. 선생님이 5년 만에 터득한 도를 하나 전수하마. 선생님이 데이트 시절부터 특히 신혼 초에 늘 걸려 넘어지곤 하던 문제가 남편과의 전화였어. 어디 뭐 연인끼리 또는 신혼의 신부가 남편에게 전화하는 게 용건이 있어서만 하는 거겠니? 낮에 일하다가 문득 보고파져서 전화를 하면 이 놈의 남편이 열이면 열 늘 시큰둥한 거야. 용건이 뭐냐는 거지. 용건?! 별다른 용건이 없으니 뻘줌할 밖에. “왜 전화했어?” “어? 그냥. 점심 먹었어? 뭐 먹었어?” “그냥? 나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해.” 이런 식의 반복이었단다. 늘 당하면서도 또 하고, 하고나서 상처받고 '내가 다시는 전화하나 봐라' 하고 결심했다 또 하고….
결혼하고 3년이 지나서야 '우리 남편은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못하는구나'를 깨달았단다. 나는 전화 받으면서 얼마든지 하던 일을 할 수 있거든. 남편은 일을 하다 전화통화를 하면 다시 일 모드로 전환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거야. 전화를 하면 퉁명스럽고 문자를 보내면 묵묵부답이고 이런 것들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걸 안 거지. 그래서 그때 이후로 결심했어. '남편을 사랑한다면 그 어떤 사랑의 표현보다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 것으로 배려를 하자' 이렇게 말야. 그러다 보니 요즘은 '당신 나한테 전화 좀 하고 그래.' 하는 말을 들으면서 쾌재를 부르기도 한다.^^ 선생님 보기에 J가 즉시 답을 못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일 가능성이 많아. 일이 바빠서 놓쳐 버리고 은혜를 섭섭하게 한 것에 미안한 마음에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 말이야. 슬쩍 다시 한 번 물어봐봐. 네게는 매번 변명같이 들린다던 '바뻐서'가 반은 정답일 거고, 반은 J의 성격과 기질 탓일 거야. 문자에 온통 하트나 스마일 이모티콘을 날리는 사람이라고 꼭 따뜻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지 않니. 또 가끔 문자 씹어 주고, 답신을 해도 '예, 아니오'로 간단하게 끝내는 사람들이 만나 보면 따뜻한 표정과 배려를 보여줄 때가 있잖아. 통신매체가 가진 의사소통의 한계일 수도 있고.


오래 오래 가는 큰 사랑을 만들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돌아보고 그의 행동이 아니라 중심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이런 일들이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아서 선생님은 오히려 기쁘구나. 올해 성탄절과 연말연시는 드디어 은혜가 늑대 목도리 두르고 거리를 누빌 수 있게 됐네.^^ 사랑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이 너희 사이에 가장 좋은 중매자로 함께하실 것을 믿고 기도드린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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