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무엇이 본업인지 본인도 헛갈리는 나날을 살고 있군요.

미간에 힘 잔뜩 주고 글을 쓰거나 책을 보는 날이 대부분이고,

아니면 강의나 이런저런 만남이 있지요. 

일주일 중 하루는 음악 선생님으로 삽니다.음악치료 하나, 음악수업 하나.

언제까지 으막션샘미 할 수 있으려나요.

으막션샘미라서 햄볶는 하루를 보내고.


# 1 경기도 모 공립유치원


2층에 있는 특수학급 교실을 향해 총총 걷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1층 복도에 주저앉아 뭔가 낑낑거리던 아이가 부릅니다.

선생님, 나 좀 도와줘요.

뭐어? 뭘 도와줄까?

이게요, 안 들어가요.

그래, 선생님이 도와줄게. 아, 노트가 커서 가방에 꽉 끼는구나.  됐지?

(용무가 끝났다고 관계를 뚝 끊어버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예요?

나? 나는 예쁜별반에 온 선생님이야.

(음악치료, 이런 설명 할 수 없음. 잘못 걸려들면 시간 맞춰 치료 못 들어감)

선생님이라구요? 선생님이 아닌 것 같은데.

너가 아까 선생님이라고 했잖아.

아니에요. 선생님이 아닌 것 같아요. 선생님이 아니고......

선생님이 아니고 누구 같아?

선생님이 아닌 것 같고 할머니 같아요.

(야!!!!!!!!!!!!! 너 가방에 넣어준 거 다시 꺼내!!!!!!!)

선생님이야. 예쁜별반 선생님이야.

아니에요. 선생님이 아니고 할머니 같아요.

(야, 나한테 왜 그래? 많이 늙은 건 인정하는데. 할머니까진 아니라고. ㅠㅠ

눈가 주름은 20대 때부터 있었다고)



# 경기도 모 어린이집


연이어 세 반의 수업을 하는데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다 모이질 않았고, 목은 아프고, 교실에 귤이 있기에 하나 얻어서 먹고 있었지요.

한 녀석이, 아 나도 귤 먹고 싶다. 귤 먹고 싶은데. (얘네들은 이미 다 먹었음)

요 덩달이 녀석들, 나도 먹고 시푸다, 나도 귤 먹고 시푸다, 단체 행동을 합니다.

"선생님이 사실은 귤이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고 목이 아파서 먹는 거야. 노래 많이 했잖아."

(라고 시작하는 게 아니었지)

아, 나도 목 아픈데. (갑자기 목을 감싸 쥐고) 콜록콜록 콜록콜록, 나도 목 아파요.

(여기저기서 기침 하고, 목 아파요, 목 아파요, 난리가 났음)

"선생님은 아뜰반, 해뜰반에서 노래 많이 하고 왔잖아. 그래서 목이 아픈 거야."

지난번에 나도 캔디 키즈카페에서 노래 많이 해서 목 아팠는데. 나도 귤 먹고 싶은데.

(또 여기저기서 노래 많이 해서 목 아픈 간증하느라 난리 났음)

백성들의 원성이 그치질 않아 수업을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 했지! 암만, 너네들님 앞에서 귤을 처먹은 내가 잘못이지)





수업 마치며 굿바이송을 부르고 나면 앞으로 튀어나와 다리를 붙들고

선생님, 가지 마요. 가지 마요. 가지 마요.

이러고 다 마치고 어린이집을 나설 때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니!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라니! 싶어집니다. 진짭니다.

다섯 살들의 세리머니에....... 그것참, 자존감이 향상된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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