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도 염색을 했다.

30대 초반부터 새치(면 어떻고 흰머리면 어떠냐)가 나기 시작했다.

나보다 어린 주제에 동안이기까지! 이런 남편이 신경 쓰여서 부지런히 염색한다.

일 년에 한두 번 퍼머를 위해 미용실 가는 돈과 (특히) 시간이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 나.

염색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미용실에 갈 수 없다. 집에서 한다.

그리하여 자세히 보면 헤어 컬러의 불규칙적 그러데이션이 장난 없음이다.

괜찮다. 마주 앉은 사람에게 흰머리로 충격 주지 않는 정도만 유지하고 싶다.


언젠간 염색을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 엄마가 어느 때부턴가 염색을 하지 않아 백발인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건 순진 무궁 천진 난폭에

아는 건 하나님과 기도 밲이는 없는 엄마라서 백발의 청순함이 더욱 사랑스럽다.


물론 내가 선망하는 백발의 아름다움은 우리 엄마 같은 순백의 천진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숏컷의 백발, 오직 자기확신의 확고함으로 다가오는 어떤 후배의 유아독존식 백발도 아니다.

아주 그냥 자연스러운데 살짝 지적으로 보이는, 조금 배운 할머니 같은 백발이다.

마주하는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것 같으면

'그렇다고 노인네는 아니야, 안심해' 이런 뜻을 담아 한 두 가닥만 잡아 화려한 색으로 브릿지를 넣어도 좋으리.


오늘은 '은발'의 여자 사람 인생 선배님 한 분을 뵈었다.

평생 가르침의 방법을 연구하고 가르치신 분인데

'아, 방법이나 기술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제가 평생 연구하고 가르친 것이긴 한데

중요한 건 성품에요. 내가 그동안 가르쳤던 것이 뭔가 싶어요'

라고 말씀하셔서 뭉클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은발의 여자 사람 인생 선배님 뒤로 날씨가 배경화면을 만들어댔다.

흐림으로 시작한 하늘에 갑자기 청명함이 들이닥쳤고, 시시각각 구름 그림자를 바꾸어댔다.

조명이 바뀌면서 은발의 명도는 형언 불가의 그러데이션을 만들었다.


마침 그런 생각이 나를 이끌어가는 중이었다.

(생각이 나를 이끌어갔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했다고 하지 않았다. 분명히!)

연애도, 결혼도, 부모 됨도, 관계도, 신앙도,

내가 맺는 모든 관계의 질은 나 자신과 맺는 관계를 비춰주는 것뿐이다!

이런 생각에 더욱 확고히 이끌리는 중이었다.

은발 선생님은 '의사소통은 기술이 아니라 결국 성품이에요'라고 표현하셨을 뿐이고.


그런 맥락에서 나는 불필요한 염려 같은 것들의 씨를 말리는 중이었다.

방법이나 기술로 되는 게 아니니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독다독.

타자 안의 나, 타인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니라 내 안의 낯선 타자에게나 신경 쓰자.  

게다가 이 은발 선생님께서 쓰신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뜻은 말이 아니다. 많이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인간은 듣고 싶은 것, 들을 수 있는 것만 듣기 때문이다.

뜻은 좋지만 말이 틀리면 전달되지 않는다. 무엇이 틀린 말인가? 듣지 않고 들리지 않는 말이 틀린 말이다."


이 부분을 인용하여 내게 책을 소개해주신 또 다른 지혜자는 이런 설명을 덧붙이셨었다.


진정성은 타자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로 향하는 진정성이어야 한다.

나에게 진정성이 있어야 그것이 타자를 향해 발현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의 진정성은 의심할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타자에게 나의 진정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먼저 나의 진정성을 물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은 현상적으로 타인에게 드러난다.

나에 대해 사색하고 나를 물어야 진정한 태도가 된다. 내가 피력하는 내 진정성이 과연 진정성인가?


언젠가 은발을 할 수 있다면 그 흰 머리칼들이 부는 바람에 마구 흩날렸으면 좋겠다.  

가볍게 흩날리고 흐트러지는 백발에서 샴푸향과 함께 티 나지 않는 진정성이 폴폴 날렸으면.

햇볕 아래 고요히 앉아 있어도 충분히 쾌활하고 다채로운 노년의 성품이었으면.  

무엇보다 아주 다루기 쉬운 할머니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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