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 듯 말 듯한 돌멩이 하나가 마음 우물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돌멩이인가? 아닌가? 내가 잘못 봤나? 기분 탓인가?

아, 그래도 뭔가 묵직하고 불편한 게 있어.

 

손으로는 청소기를 돌리고 머리는 머리대로 돌아가고 있는 아침이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뭐지? 아, 수영장 접수한 거 취소하기!'

몇 달 수영을 쉬다가 현승이 수영 재접수 하러 간 김에 충동적으로 접수했다.

(운동하라는 내 말은 죽어도 안 들으면서) '당신 수영 다시 해, 수영 다시 해'하는 

남편의 잔소리도 있고, 정말 수영이 좋고, 운동을 안 하니 허리며 목이 삐그덕 대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6월에 오전 강의들이 잡히고 있는데 모두 확정되면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 갈 수도 있겠다 싶다.

어머, 안 되겠네. 취소해야겠다.

이리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확 가벼워지는 것이 돌멩이가 있긴 있었나 보다.

 

100 미터 21초 기록을 가진 내가,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수영을 그렇게 좋아하고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신대륙 발견에 견줄 일이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전환한 이후 10여 년 가까이 꾸준히 아침 수영을 해왔다.

그간에 이사가 다섯 번이었으니 수영장 다섯 군데를 옮기면서도 용케 지속해왔다.

그런데 작년 여름 이후부터 아침 주부수영교실 가기가 점점 싫어지는 것.

수영은 좋은데 언니와 형님들이 계시는 주부 수영교실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저녁 시간으로 바꿔봤더니 주부수영 10 년 차 몸으로 직장인 마스터 반에 적응이 안 됐다.

이래저래 하다가 끊어버렸다.

 

가끔 현승이 데리러 가서 수영장을 내려다보노라면 발목이 힘이 발끈 들어가면서 접영 발차기가 하고 싶어지고, 어깨도 근질거렸다.

그런데도 왠지 아침 주부수영에 나가기는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많이 싫었다.

수영장을 그리워하는 몸이 마음의 거부감을 이겨서 갑자기 접수하게 만든 것 같다.

 

접수취소 하고 가벼워진 마음을 들여다보니 이제야 알아차려 졌다.

작년 4월 16일 이후로 아줌마들의 탈의실 토크가 진저리나도록 싫어졌다.

사실 그전에도 형님들의 탈의실 토크(아, 그 다양한 주제들!!) 듣기가 편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여 년 견딘 노하우가 있다.

입 꾹 다물고 내 할 일을 하다, 형님들이 동의를 요구하시면 한 번 웃어 드리면 되는 것.

 

세월호 침몰 뉴스를 처음 들은 건 수영장 형님의 입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다 구출했대! 라고 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수영을 마치고 나와 샤워실이며 탈의실에서는

선장 그 XX를  때려 XX야 한다, 로 시작해서 뉴스 보다 우느라고 시간 다 보낸다.

형님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선장의 팬티 차림 화면보다 

속옷 입고 입에 거품 무는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탈의실 토크의 주제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이들 학원 얘기, 매실 담그는 얘기, 미친 동서 얘기, 바람난 친구 남편 얘기 등.

전에는 그럭저럭 참아졌던 형님들의 일상 토크가 듣기 싫어서 드라이도 안 하고 나오기 일쑤.

그리고 얼마 후,

보상금이 한 애 당 얼마라며? 거 단원고 애들 대학 그냥 보내준다며? 

그때 그 언니들의 야릇한 표정.....

탈의실 민심은 확실히 그즈음을 기점으로 세월호에 대해 냉담해졌다. 

 

조금만 늦거나 핑계가 생겨도 수영장 가는 걸 빼 먹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한 번 빠지고 두 번 빠지고 끊어 버리기.

이제야 몇 달 전의 마음이 정리되어 보인다.

돌멩이의 정체는 그거였구나.

더 가벼운 마음으로 취소하기로 했다.

수영을 다시 해야 하는데.... 운동 해야 하는데....괜한 부담감도 내려놓기로 했다.

나, 다시 주부 수영교실 가기 싫어. 아무튼 지금은 싫어. 안 할 거야!

라고 내가 나한테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나에게 그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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