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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의 내적여정 세미나

착한 나쁨의 그라데이션

larinari 2018.09.26 16:45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인간관계에 대해,

마음과 영성에 대해, 

인간성장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삶에 대해,

예수님처럼 자기다움의 꽃을 활짝 피워 나 자신이 되어 사는 오늘에 대해

고민할수록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착한 나쁜' 사람. 

최근에 읽거나, 전에 읽고 다시 읽은 세 권의 책이다.

가장 위험한 사람, '착한 나쁜' 사람의 그라데이션을 보여주는 듯하다.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하니 '인용'을 위주로 시각화 해보자.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는 사람'들에 관한 여러 편의 이야기이다.


그는 김숙희뿐 아니라 다른 유치원 관계자들 모두에게 친절했다. 김숙희는 퇴근길에 몇 번 집 앞까지 태워다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집 앞에 도착해도 쉬이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때만 많았다. (정대리)


어쩐지 나는 바로 내리면 안 될 것만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럼 실례가 되지 않을까, 그가 무시받았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혼자 돌아가는 마음이 초라해지지는 않을까. 나는 그것이 염려됐다. 그래서 그 염려가 사라질 때까지 그의 승합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김숙희)


그저 이렇게 연인 아닌 인연이 되어 버린 정대리와 김숙희. 김숙희에게는 이미 착.한. 남편이 있었다. 불륜의 나날 일 년여를 보내고 착한 김숙희가 더 착한 남편에게 말했다. "만나는 남자가 있어요"


저기, 다음에 말하면 안 될까? 남편이 내 말을 끊으면서 말했다. 나, 내일 또 새벽같이 일 나가야 하잖아. 남편은 그렇게 말하곤 안방으로 걸어갔다. 남편은 마치 아무 말도 듣지 않은 사람처럼, 이제 막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허리를 뒤로 활처럼 젖히며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남편을 따라 들어가 계속 말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중략) 무언가 외면당하고 수치스러운 기분도 들었지만, 그서 마음이 편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니까, 착하고 성실한 남편이니까, 잘못을 저지른 것은 내가 맞으니까..... 나는 그 말만 주문처럼 웅얼거렸다. (김숙희)


그리고 결국 김숙희는 남편은 잔인하게 살해하게 된다. 김숙희도, 정대리도, 남편도 누구도 착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착함을 견디다 못해 덜 착한 아내가 가장 착한 남편을 살해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서 나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조금씩 연민이 가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어쩌면 누군가를 대할 때의 나같기도 한 그런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의 살인 충동이 이해가 가고 남는다니 말이다. 이 사람들, 수치심 유발, 지속적인 수치심 유발로 한 존재의 공격성을 이끌어내는 이 사람들은 착하지만 나쁜 사람들이다. 착한 나쁜 사람 1단계이다. 



『니체의 인간학


니체의 아포리즘들이 귀에 쏙쏙 꽂혀서 기회가 되는대로 읽곤 했지만. 여성에 관한 글들을 보면 이 사람은 열등감에 찌든 환자에 가깝다, 싶어 찜찜함을 떨쳐낼 수 없다. 게다가 철학자의 말이란 늘 어려우니 누가 해설해주지 않으면 알아 듣기도 힘들다. 일본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가 지은 니체의 인간학 을 재밌게 읽었다. 니체의 '노예 도덕'의 쉬운 해설 내지는 적용편이랄까. 자신을 약자로 상정하고, 자신의 유약함과 무력함을 착함으로 정당화 하는 지점을 짚어낸다. '약자 → 착한 사람 → 악한 사람'의 매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다고 할까.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염불처럼 외며, 어떤 일이건 바른길을 벗어난 행동을 삼가고 상식과 관습을 중시한다. (왜냐하면 그쪽이 안락하고 이득이니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둘 필요가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어느 정도는 자신의 약함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자신의 약함이 폭력적이라는 점은 충분히 알지 못한다. 자신의 약함이 약자로 살기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혹여 피해를 주지 않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어째서 생각하지 않는가?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는 강자에 대한 질투 때문이다. 그 질투심을 자기 자신에게 교묘하게 숨긴 채, 약자는 처음에는 조심스레, 나중에는 점차 큰소리로 강자를 손가락질 하며 "자기 중심적이다! 이기적이다! 사회의 적이다!"라고 외친다.


착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사회로부터 말살당하고 싶지 않아서, 즉 악행을 저지를 만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 저항하며 홀로 살아갈 정도로 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착한 사람의 가장 큰 죄는 둔감한 것, 즉 스스로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것, 생각하지 않는 것, 느끼지 않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누구에게도 상처받기 싫으므로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 한다. 누구에게도 비판받기 싫으므로 누구도 비판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로 인해서든 불쾌해지고 싶지 않으므로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리하여 항상 벌벌 떨면서 모든 것을 내버리고 날아나려 하는, 작은 동물 같은 착한 사람 특유의 축 처진 얼굴이 만들어진다. 


착한 사람은 자신의 본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자신의 본심에 귀를 기울이면, 거기에는 타인을 상처 입히고 자신도 상처받는 불온한 언어가 꿈틀거리고 있으며, 이로써 자신의 평온무사함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자신은 약하므로 본심의 목을 졸라 말살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평온무사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착한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해로운 파리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전혀 악의 없이 쏘아대고, 전혀 악의 없이 거짓말을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약하여 착하고 착하여 해로운 사람들을  거짓의 사람들을 통해 조명하고 싶어졌다. 정신의학자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영성적인 과학자, 스캇 펙의 저작에서 '악'의 문제는 명백하다.


『거짓의 사람들


평생 수많은 사람을 심리상담으로 만난 스캇 펙의 저작들은 읽어도 읽어도 놀랍다. 20대 처음 읽었을 때와, 30대, 40대, 그리고 50이 된 지금까지 읽을 때마다 그 통찰이 새롭다. 상담치료를 위해 만난 사람들에게 과학자의 태도를 잃지 않으며, 인간 내면에 관해서는 진지하고 겸허할 뿐 아니라 먼저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로 얻은 깨달음일 것이다. 스캇 펙의 결론은 '악은 존재하고, 악한 사람도 존재한다'이다. 그 악한 사람은 흔하게, 멀쩡히 내 주변ㅇ서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한다. 스캇 펙의 악은 '게으름'과 '나르시시즘' 두 단어로 설명 가능하다. 


악은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심지어는 합리적인 것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전에도 말했듯이 악한 사람들은 위장술의 도사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든 자기 자신에게든 자신의 참된 색깔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이지 못한다. 


악이란 게으름의 극한이라는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사랑의 반대말은 게으름이다. 보통의 게으름이란 그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보통의 게으른 사람들은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의 존재는 단지 사랑 없음의 한 표현일 뿐 아직 악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악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이 귀찮아 회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닫고 지낸다. 그들은 자신의 게으름을 유지하고 병든 자아를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능력이 닿는 한 모든 행동을 한다. 이 목적을 위해 행동하다 보면 그들은 남을 파괴하게 된다. 


악의 본질적 구성요소는 자신의 죄나 불완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드는 점이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악을 의식하는 동시에 그 의식을 피하고자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악은 죄책감의 결손이 아니라 그것을 회피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자신의 양심을 직시하는 고통, 자신의 죄성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고통이다.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의 극한으로 설명하는 스캇 펙의 악인은 '이만 하면 됐다'의 사람이라고 나는 정리한다. 이만하면 도덕적이고, 이만하면 착하고, 이만하면 이타적이고, 이만하면 의식이 있고, 이만하면, 이만하면.......의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로 '나쁜 나쁜' 사람보다 '착한 나쁜' 사람이 더 위험하다. 


여기까지다. 세 책 모두에서 느낀 기시감 때문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기시감은 솔직히 나 아닌 다름 사람에 대한 감각이다. 겉은 착하지만 속은 에고로 빽빽하여 어디 한 군데 들어설 자리 없는 사람들 말이다. 지금 당장 손가락 접어 꼽을 수 있다(고 괜한 분노에 차서 확신을 한다). 언젠가 내가 포기했던, 포기하고 있는, 포기하고 말 철벽 자기방어의 사람들 말이다. 두렵다. 이 지점에서는 늘 두렵다. 자신이 없다. 내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철칙. 내 눈에 그런 사람들이 보인다면 그건 내게 있어서 보이는 것이다. 착한 나쁨의 그라데이션 어디 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지점엔가 내가 서 있으니까 말이다. 


책을 덮으려다 눈에 띈 거짓의 사람들서문 한 구절을 인용하고 마음에 새기라는 계시를 받았다.


자신에 대한 판단과 치유에서 시작하지 않는 한 우리의 판단은 안전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악을 치유하려는 씨름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우리의 최대 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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