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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Nouwen

커피 볶기 딱 좋은 날

larinari 2014.12.21 11:52

 

 

 

여름에는 못할 짓이 로스팅인 것 같다. 커피 볶다 땀을 탈수로 쓰러질 각오가 아니라면 말이다. 여름에 아무 생각없이 커피를 한 번 볶게 되면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가을이 와 선선해져도 도통 통돌이 들고 베란다로 나갈 용기가 생기질 않는다. 강추위가 몰려와 창 밖에 진을 치고 있으니 비로소 다시 통돌이를 돌리게 된다. 겨울은 커피 볶기 딱 좋은 계절이다. 커피는 볶을 후 하루는 지나야 이산화탄소가 어느 정도 빠져 나가고 그 자리에 커피향이 채워지는가보다. 오늘은 볶자마자 한 잔을 내려봤다. 아주 그냥 물이 닿자마자 막 부풀어올라서 공갈빵이 될 기세다.

 

SNS 인연으로 만나 커피를 한 번 배운 커피 장인님(장모님 아니고) 말씀이 생각났다. 볶은 후 24시간이 지나야 커피맛이 비로소 좋아진다고 하지만 잘 볶은 커피는 볶자마자 내려도 맛있다고 하셨다. 볶자마자 내려도 맛있는 커피는 다름 아닌 본인이 볶으신 커피였다. ^^ 나도 오늘 볶자마자 한 잔 내려봤는데 그럭저럭 마실만 하다.

 

 

 

 

 

커피를 볶지 않을 때 여기저기서 사먹어 보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대충 맛있으면 비싸고, 값이 싸면 맛이 좀 아니다. 그렇다고 원두 가격이 충분히 싼 곳도 없다. 그나마 집 앞에 들고 나던 곳에 있던 카페에서 급할 때마다 사다 먹을 수 있었는데 길 건너로 옮긴 뒤에는 멀리 느껴진다. 페북 지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커피집도 하나 있는데 숯불에 볶는 커피가 정말 맜있다. 정말 맛있는데 정말 비싸다.  집 앞 총각 카페에서 파는 블랜딩 원두의 딱 두 배 가격. (총각집 100g에 5000원, 숯불 아저씨집 100g에 10000원)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게 주고 사다 먹진 못한다. 100g에 8000원 이상 하는 커피는 싫다. 특히 숯불 아저씨가 있는 동네는 압구정도 아니고 홍대도 아닌 망원동 허름한 주택가. 커피는 탁월하게 맛이 좋고, 커피가 맛있어서 더욱 신경질 나는 집이다. 상수동에는 커피 볶는 집이 정말 많은데 여기서도 그대로 자본주의 세상. 맛있는 원두 줄게, 돈 많이 내라! 이다.

 

 

 

 

 

 

잠시 커피를 배웠던 그 커피 장인님께서는 나름대로 나눔을 실천하는 분이었다. 커피가 필요한 곳 전국 각지에 무상으로 보내곤 했다. 남다른 로스팅 철학도 갖고 계셨다. 초록 생두가 불의 연단을 받아서 원두가 되는 것을 제자도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연락이 끊어졌는데. 생각해보니 어쩌다보니가 아니다. 그분이 어떤 커피를 가리켜 '학대받은 커피'라고 부르는 때가 있었다. 잘못 볶아져서 맛없는 커피를 말하는 것이다.그 말이 들을 때마다 불편했다.

 

그분 아들 역시 커피를 하는 분이었고 언젠가 우리 집에 와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사다 먹던 때라 어딘가에서 사온 커피를 내렸는데 한 모금 머금고 인상을 쓰면서 '학대받은 커피'라 하던 것이 잊히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보니 많이 불편했다. 커피를 한다 하는 분들, 아니 어떤 분야든 전문가연 하는 분들의 까칠함이다. 사실 나는 까칠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자신이 그렇다는 걸 알고도 여전히, 어쩔 수 없이 까칠한 사람들은 심지어 치명적으로 매력적이다. 반면에 자신의 전문지식이나 독특함을 대놓고 자랑하거나 어필하려는 요량으로(물론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높은 기준을 내세우며 다른 것들을 끄집어 내리는 식의 까칠함은 아름답지 않다. 그런 분들이 가진 전문성은 그 전문성이 탁월하여 감동될수록 신경질이 난다. 여하튼 나도 평가질 지적질을 한다면 하는 인간인데. 아무리 맛없는 커피를 마시더라도 표현을 조심하려는 생각이다.

 

그리고 더욱 수더분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수더분해 보이는 인간이 아니라 진실로 속이 수더분한 그런 인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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