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즈음에 섬광처럼 나타났다 없어지는 홍옥이려니.

가슴 시리도록 하늘이 맑고, 바람이 서늘한 이 즈음에 딱 맞는 사과향은 홍옥이려니.

젊고(실은 철 들고 엄마가 젊어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건강했던 엄마를 불러내는 홍옥이려니.  


망원시장 멀어지니 이제 홍옥도 못 먹어보네

라고 오늘 아침인가 어제 아침에 남편에게 말했는데,

글쎄 바로 이 저녁에 망원시장 홍옥을 득하여 먹게 되었다.




벌써 몇 달 전 약속된 강의가 있었다.

그땐 그저 다이어리에 적어 넣었는데, 닥쳐 보니 추석 전야이다.

장도 보고, 준비를 해야 하지만 명절 기분에 강의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한산해진 서울 길 통과해 가 은평구에 있는 교회에서 강의를 했다.

돌아오는 길, 네비 따라 운전하다 보니 어머어머 월드컵 경기장.

수영 하고 집에 가던 길 그대로다.

충동적으로 망원지구 한강공원으로 빠졌다.

마음의 네비게이션이 이끄는대로 갔더니 여기는 망원시장.

주차할 곳 없겠지, 없으면 그냥 가고, 역시 없네, 그냥 가서 동네에서 장 봐야지,

하는 순간 모닝만을 위해 준비된 차 0.8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자리 발견!


그래서 추석 장을 망원시장에서 봤다!!!!!

발 디딜 틈 없는 시장에 들어서니 

전 부치는 냄새, 족발 삶는 냄새, 떡볶이 냄새, 닭 튀기는 냄새가 시끌시끌 하다.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양팔에 빠져라 검은 봉다리 들고 차에 실었는데

마음의 네비게이션이 집을 향해 출발을 안 한다.

더 살 것은 없지만 망원시장 길 건너 월드컵시장에 가보기로 한다.

정장에 하이힐 신고 하릴 없이 시장구경.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과일가게 앞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볼품 없는 사과를 발견.

갯수가 적은 것 하며, 크기가 작은 것 하며, 뭔가 없어 보이는 품새가 딱 홍옥이다.

박근혜가 마트에서 감자 냄새 맡던 폼으로 향을 딱 맡아보니, 

어머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리움의 향기, 홍옥이 맞습니다! 


망원시장 멀어지니 이제 홍옥도 못 먹어보네

누군가 이 말을 새겨 듣고 

홍옥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고, 나를 데려다 그 앞에 세워 놓은 것 아닌가 싶음. 





손가락마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 씩 걸고

지갑 들고, 휴대폰 들고, 차키 들고 정신 없이 다니던 중에

누군가 내 카메라를 눌러 신나는 내 걸음을 찍어 폰에 남겨 놓았다.

오늘 이벤트를 도모한 이, 대체 누굽니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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