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공부를 하러 가는 날은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아이들을 봐주십니다. 집에 좀 데리고 계시다가 채윤이 숙제가 끝아면 덕소로 데려가시지요. 어제는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우리집으로 친구를 불러서 같이 노시는 것을 정말 좋아하시는데 할머니 오셨겠다. 할머니 친구분 오셨겠다. 게다가 나중에는 할아버지까지 오시니... 김채윤이 또 흥분한 거지요. 평소에는 개발새발 하기는 하지만 피아노 연습, 엄마가 내주는 수학숙제, 때로는 학교숙제까지 해놓는 채윤이가 사람들 많고 먹을 거 있고 그러니까 꼭지가 돌아가신 거예요.
엄마가 내 준 기탄수학에 저러코롬 겁신경이 마비된 메모를 떡하니 붙여놓고 룰루랄라 하고 계신 겁니다.
오늘 에니어그램 까페에 올린 글을 그대로 다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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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 가는 화요일에는 시아버님이 오셔서 아이들을 봐주신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 아이한테는 늘 숙제를 내주죠. 피아노 연습을 하고 기탄수학이라는 수학문제 몇 페이지를 풀게 합니다.
어제 저녁에 집에 들어와 봤더니 제가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기탄수학 위에 딸 아이가 가지런히 써서 올려놓은 메모랍니다.
일단 쫌 귀여워서 웃음이 났습니다. 메모 내용만 보면 꼭 장형 아이 같지 않나요?
이 얘기를 들으신 분이 그런 배짱이 어디서 나온거냐 물으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배짱 같지가 않습니다. 저는 제 딸에게서 7번의 제 모습을 봅니다. 메모 자체만을 가지고는 배짱 부리는 것 같지만, 실은 배짱이 아니라 '일단 미루고 보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일단 지금은 다 제끼고 노는 거야. 이런 마음이었을 거예요' 늘 할아버지만 오셨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 다 오신데다가 먹을 것도 많이 사오시고...애가 기분이 들떠서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7번의 제 모습을 읽고는 한 번 잡아보자! 하고 마음을 먹었답니다. 목소리 쫙 깔고 방으로 불러서 매를 들고 '니가 엄마한테 혼나는 게 더 편하겠다고 했으니 어디 더 편하고 좋은지 봐라' 하고는 매를 때렸습니다.
얘가 매 맞는 걸 보면 또 코미디죠. 메모에서 느껴지는 필로는 웬만하면 때리는대로 맞는 그림이 나와야 하는데요... 이건 뭐 맞기 전부터 입과 잔머리를 동시에 가동시키는 겁니다.
'엄마 엄마 몇 대 맞을거야? 아프게는 안 때릴거지? 몇 대 때릴건지 일단 말하고 때려....' 한 대 맞고는 방구석을 찾아 도망다니고 난리를 치면서 '엄마! 너무 아프게 때렸어. 이러다가 내가 죽을 것 같아'
또 때리려고 팔을 들면 '엄마! 잠깐 내 마음 속의 말을 한 번만 들어봐. 이거 한 대만 더 맞으면 내가 아마 죽을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엄마가 지금 화난 건 알지만 내가 죽을 수도 있어' 눈물 콧물 범벅이 돼가지고도 입은 멈추지를 않습니다. '매 한 대 맞는다고 안 죽어' 했더니 '아냐. 엄마! 엄마는 지금 때리는 사람이고 내가 맞는 사람이잖아. 내가 맞아보니까 진짜 아퍼. 내가 이거 한 대 더 맞고 죽으면 엄마가 후회할텐데...괜찮겠어? 엉엉엉......알았어. 알았어. 맞을께......그러면 내가 몇 대를 더 맞아야 되는거야?'
이건 뭐 때리는 게 더 힘든 지경이었어요. 때리면서도 웃음을 참는 것도 힘들었구요.
꿈돌 선생님께서 아드님과 함께 하시는 작업을 훔쳐 보고 마지막에 그 버거움에 대해서 나눠주셔서 마음이 묵직해진데다 남사모님의 '나는 우리 딸 엄청 사랑했는데...' 하시던 그 말씀이 마음에 깊이 남았어요. 헌데 집에 오자마자 저런 일이 있었답니다.ㅜㅜ
저는 아직 어린 아이를 양육하고 있어서 에니어그램을 하면서 어린시절을 돌아볼수록 '그러면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고민에 매일 아이들을 대하면서 혼란스럽답니다. 어젯밤은 더욱 혼란스러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