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해 봤어요.
지도자를 자처하고, 먼저 된 자를 자처하는 분들에게 저처럼 힘이 없는 아랫 것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저항은 '난 당신을 존경하지 않습니다'예요.


어떻게 알았냐면요, 제가 나이 들면서 가장 두려운 게 그거더라구요.
게다가 '난 당신을 존경하지 않습니다'가 말이 아닌 마음의 소리라면 더더욱이요.
저의 후배나 저보다 젊거나 약한 누군가가
저의완고함이 두려워 차마 입으로 내지는 못하지만 마음 속 깊이
'당신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당신을 존경하지 않아'라며 새긴다면요.



 



 

2년이 지났다지만 그 슬픔과 황망한 느낌들은 생생해요.
제게 5월은 어쩌면 이렇게 슬픔이고 또 슬픔인지 모르겠어요.
올해 5월은 당신이 떠나시던 그 5월 처럼 뼈아픈 이별이 저를 흔들고 또 흔들어요.







조금 전 아버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신 아버님 모습에 무너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두 아이가 뒤에 타고 있는 차를 운전하면서 엉엉 울었어요.
두 아이가 저를 위로해요.
엄마, 울지마. 엄마, 울지마. 할아버지 많이 아프신거야?
집에 돌아와 두 녀석이 번갈아가면서 저를 안아줘요.
오늘 할아버지 댁에서는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타고 넘었다가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가,
이 녀석들이 할아버지께 위로가 되었다며 고모가 전화를 했어요.


쏟아지는 눈물 끝에,
아버님이 행복하시고 우리도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채윤이 현승이는 얼마나 행복하고,
이런 아버님을 또 얼마나 행복하신 건가요?






누가 뭐라든 저는 당신을 마음으로부터 존경해요.
그건 강요할 수 없는 일이예요.
단지 정치적 성향도 아니고 대단한 역사의식도 아니예요.
저는 당신이 인간적으로 정말 존경스러웠고 지금도 그래요.
당신이 흠이 없다는 뜻도 아니예요.
단지 당신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도 아니예요.



자뻑에 겨워서 자신이 하늘의 언어를 말하고 있다는 이 땅의 신앙적 지도자를 자처하는,
제게 존경과 예우를 기대하는 많은 이들에게 존경은 거둔 지 오래예요.
존중 또한 거둬야 하나 고민 중이예요.
이런 제게 더 깉이 들여다보는 당신의 삶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해요.
예수님을 믿는 나,  최소한 당신처럼 소신있게 정직하게 겸손하게 살아야겠구나 싶어져요.



그래서 생각해보니,
할아버지를 사랑하기에 할아버지가 겪으시는 고통과 어쩌면 헤어질 지도 모르는 두려운
내일이 슬프기만 한 채윤이 현승이처럼, 저처럼
슬퍼도 행복한 우리들이잖아요.
비록 당신을 억울하고 안타깝게 잃었지만 제 마음 속 진심으로 존경하는
한 대통령이 계시다는 것,
아이들에게 당신에 관한 책을 사주고 또 사줘도 자랑스럽기만 하다는 것.
이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당신이 떠나신 지 2년이 지난 오늘 비로소 당신 사진을 보면서 슬픔보다
행복 쪽으로 저울 눈금이 기울어졌어요.


가만 생각해보니, 존경하는 당신이 있어서 햄볶는 5월이네요.
당신 때문에 햄볶아요.
당신의 2주기를 추모하는 모임들이 추모의 슬픔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들이 모여서 한바탕 놀아제끼는 자리가 되는가봐요.
5월, 당신 때문에 여러 사람 햄볶아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리워요.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홈그라운드에서 혼자 뒷담화  (10) 2011.07.26
나는 왜 목회를 그만두는가?(동생 정운형의 글)  (12) 2011.07.14
불편한 말들의 춤  (4) 2011.04.06
비상시국 해제  (15) 2011.03.01
생일 당하다  (16) 2011.02.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