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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엄마 아빠가 '사춘기가 되면 뇌가 뒤집어진대. 뇌가 뒤집어지니 어떻게 되겠어?' 라고 했었다.그 말에 공감하며 '이야... 뇌가 뒤집어진대' 하면서 후덜덜했었다. 사춘기가 오는 채윤이 확실히 뇌가 되집어졌나보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수학시험 100점을 맞아왔으니! 이건 뇌가 뒤집어진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랴.ㅎㅎㅎㅎ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채윤이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수학 100점을 맞은 것은...

 

"아빠는 그 정도 밖에 안 좋아? 이건 진짜... 내가 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100점을 맞은거라구"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며 시큰둥한 현승이에게도 "현승아, 누나가 처음으로 100점을 맞은거야" 라고 힘주어 말하는데 이게 자랑스러운 일인지 어쩐지를 알 수 없는 무척 헷갈리는 시츄에이션이었다. 그러는 엄마인 나는 이걸 또 이런 식으로 공개적으로 까발려도 되는 걸까?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현승이 수영하는 걸 기다리며 엄마들 대기실에서 채윤이랑 함께 있었다. 채윤이가 다음 날 한자 경시대회라서 한자를 외우겠노라해서 옆에서 쓰고 있으니까 엄마 하나가 "어머, 얘 너 공부 진짜 열심히 한다. 공부 잘하겠구나"하니깐 우리 채윤이 "저는요, 학교 들어가서 지금까지 100점 맞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라고 하셨다. 그걸 들은 그 엄마가 무슨 절대 알려지지 말아야할 치부가 드러난 것처럼, 흘러내린 치마를 얼른 주워 입혀주듯 "아이고, 그런 말은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야" 하면서 수습을 해주었다. 그러자 채윤이 "진짜예요. 엄마 진짜지~이?"

 

사실 이 날, 이 순간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기분이 좋다. 채윤이의 천진난폭 순진무궁의 태도가 자랑스럽고 당황하던 엄마의 모습이 재밌기만 하고 그렇다. 모랄까. 어린 채윤이가 이 시대, 성적과 스펙에 목졸리는 사회에 살짝 엿을 하나 먹여준 느낌이랄까?ㅎㅎㅎ 물론 내가 엄마로서 아이들 성적에서 자유롭다는 얘긴 아니다. 지난 수 년간 채윤이 수학공부 시키면서 얼마나 허리케인 같은 분노를 쏟았는지 모른다. '내 아이 만큼은 당연히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될거라는 환상을 내려놓기 까지는 또 얼마나 마음이 많이 무너졌는지, 그리고 사실 지금도 가끔은 두렵고 불안하기도 한 게 사실이다.  다행인 건 '공부 잘하는 아이에 대한 환상과 기대와 닥달'에서 아주 짧은 시간에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니 그 점 채윤이에게 무한 감사드린다.ㅋㅋ

 

채윤이가 처음으로 맞아온 수학 100점에 기분 좋지만 그래도 더 좋은 건 채윤이가 스스로를 성적으로 줄세워 너무 찌그러지지 않는 모습에 더 뿌듯하다. 채윤이가 아니라 정작 엄마인 내가 그럴 수 있어야함이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뭐든 줄 세우는 이 사회. 이재철목사님 말씀대로 아이들을 직선 위에 줄세워 키우는 이 사회에서 일등도 없고 꼴지도 없는 원 안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다. 맞다. 이건 진정 엄마의 문제다.

 

아무튼 뇌가 뒤집어졌는지 어쨌는지, 수학 100점 따위! 우리 채윤이도 맞아 봤다고!!!!!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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