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으로 경찰서장이 옷을 벗다'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 대충 뜻은 알겠는데 왜 그렇게 표현하는 지는 알 수가 없었던 말 중에 하나다. 모 그래도 뜻을 알만하니 다시 묻지도 않았다.(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그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크면서 왜 그런 표현을 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경찰서장이 옷을 벗었다' 할 때 '옷을 벗다'의 참 뜻을 머리 말고 가슴으로 배우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교회에서 지휘하던 선배언니가 갑자기 아기를 낳는 바람에 경황없이 맡게 된 자리가 어린이성가대, 그리고 청년성가대 지휘자였다.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한 번 쯤 꿈꿔보는 게 지휘자라지만 나는 그런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노래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일에 대한 꿈은 많았지만 내가 지휘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 것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꿈을 꿔본 적도 없지만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 가장 행복한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꽉 찬 4년 동안 행복했던 옷 샬롬찬양대 지휘자 까운을 벗었다. 마지막으로 빨아서 반납하려고 집으로 가져온 것이다. 송별식사에서 덕담을 한 마디씩 나눠주시는데 어떤 분이 그러셨다. '지휘자님처럼 사랑받는 분이 있을까요? 떠나시는 거 아쉽지만 정말 행복하신 분 같아요'  맞는 말씀이다. 4년 지휘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지 모른다.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노래 못하는, 악보 못 보는 찬양대와 함께 하면서 배운 것이 말로 다 할 수 없다.

남편이 전임사역을 하면서 지휘를 그만두고 청년부에 같이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였다. 가볍게 말했지만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계속 지휘하고 싶은 마음 충천하지만 남편의 바램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양보할 차례라는 것이 가장 컸다. 결혼 10년 동안 내가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서 남편이 양보해 준 것이 많다. 사실 샬롬 지휘를 시작하는 일도 그러했다. 당시 평신도였던 남편이 청년부 교사로 봉사하고 싶었지만 덜컥 내가 지휘를 하게 되는 암말 없이 포기해 주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나 그래도 지휘할래' 하고 버텨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게 순리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많은 이유를 대면서 내가 계속 지휘를 해야하는 것을 항변할 수 있었지만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작년 12월의 마지막주로 치닫던 어느 날, 몸에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예전에 아주 심했다가 고쳐졌던 또 다른 지병이 성했다. 지휘를 그만둔다는 말에 대원들이 여러 말씀들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헤헤 웃곤 했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애야~ 우리 지휘자님 그만둘려고 하니까 좋아서 신이 났네' 할 정도로 헤헤거렸다. 마음과 몸이 다르게 가니 그 분열이 어떻게든 터져나왔나보다. 이사 오기 전 날 밤에 애들은 시댁에 맡기고 둘이 집에서 자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울음이 터졌다. 찔끔찔끔 나오던 눈물이 통곡이 되었다. 통곡이 대성통곡이 되어 민망할 만큼 꺽꺽 울었다. 희한하게 그렇게 울고나서 다음 날부터 몸의 두드러기도 지병도 자연스레 나아지고 사라졌다. 지나고 나서 정리해보니 단지 지휘자를 그만두는 문제도 아니었다.

아무튼, 아직도 저 까운을 보면 마음 한 켠이 아프다. 그리움이 밀려온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든 힘을 행사하던 일종의 권력이 그립고, 그로 인해서 받았던 사람들의 주목을 그리워하는 것을 것임을 안다. 그렇기에 '나 없이는 안 될 것 같았던' 샬롬찬양대가 잘 돌아가고 오히려 더 잘 한다는 소식은 내게 조금은 아프지만 큰 훈련이 된다.

좀 더 잔머리를 굴리고 우겨대면 계속 입고 있을 수도 있는 옷이지만 기꺼이 벗고 내려놓았다. 가끔 소명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는 일'과 일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는 걸 나이 40이 넘어 비로소 배우는 중이다. 더 이상 아쉬워 하지 말고 이번 주일에는 저 까운을 찬양대 까운실로 옮겨다 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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