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여행을 다녀오신 어머님이 입술이 부어 올랐다.

몸이 항상 극도록 허약한 상태이신 분이라, 몸에 무리가 오면 입맛부터 없어지시는 모양.
입이 까끌하여 아무것도 못 드시고 식사대용으로 막걸리 한 잔을 드시면 배도 부르시고 잠도 오신단다.


뭘 드셔도 식탁에 서서 대충 배만 부르면 된다시는 어머님이 늘 안타까웠다.
'어머니, 어머니를 귀하게 대접하셔야 두통도 나아요. 그렇게 드시지 마시고 제대로 드세요' 라고 말씀을 드려도 저녁마다 전화하셔서 '나아~ 니 시아버지도 안 계셔서 막걸리 한 잔으로 저녁 때웠다' 를 반복하시는 터였다.
어쩌면 어머닌 그 다음 나의 대사 '어머니! 그러시지 말라니깐요. 진짜 속상하게 하시네' 를 듣고 싶으신 건지도.....


몸과 마음에 심히 무리가 되는 여행으로 앉아계실 여력도 없으신 분이 열무김치를 했다며 갖다 먹으라신다.
'아니, 어머니! 지금 이 몸에 무슨 김치를 하셨어요?' 했더니....
'입안이 들떠서 아무것도 씹을 수가 없고 뭘 넘기긴 넘겨야겠어서 국물있는 김치를 하려다보니 쉽게 열무김치를 했다. 내 정신으로 안했더니 국물도 많이 안 붓고, 맛도 이상야릇하다' 하시며싸주시는 걸 받아왔다.






얼마 전 어머니 전화에 마음이 상해서 뒤집어졌다 엎어졌다 했던 생각에 마음이 더 짠하다.
막걸리로 저녁을 때우시고 알딸딸하신 상태에서 '야, 내가 말이다. 니 동서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했는지 아냐? 내가 며느리가 두 년이나 있는데 나 좋아하는 음식 해가지고 와서 어머니~이 좀 드셔보세요. 하는 년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냐?' 이렇게 했다.

이 말씀을 듣고 '도대체 어떤 며느리년한테 하시는 말씀이야? 결국 두 며느리년 다 들으란 말씀이구나. 아니, 나처럼 어머니 걱정하면서 챙겨드리는 며느리가 어딨다고 그러시나. 것두 큰며느리한테 전화하신 걸 왜 다시 나한테 하시는데? 나도 들으라는 말씀? 직접 말씀하시든가! .... 내 원참! 말 돌리기에 달인, 우리 어머니 $%^(^$$^$%&^$'
시댁에 가면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신다. 두 한 번에 다 들지도 못할 정도다. 그렇게 김치며 밑반찬을 해주시면서 갑자기 이건 무슨 심통이시냐 싶었었다.


경우 바르고 싶고, 늘 옳은 사람이 되고 싶고, 신세지고 싶지 않은 어머니. 몸이 약하시니 음식 하나 하시는 것도 너무 고되시지만, 그래서 누군가 해다 바치는 식사를 하고 싶지만 그럴 처지가 못되시니 죽기 살기로 하시는거다. 아니, 어쩌면 며느리가 해다 줬으면 하시는 만큼 본인이 해주시는 거다. 나중에 '내가 수족을 못 쓸 때 그 때 에미가 해줘라' 하시는 말씀을 빼놓지 않으시며 바리바리 싸주신다. 당당하게 '밑반찬좀 해와라' 요구하고 싶지만 그건 용기가 안나시니 취중에 돌려돌려 하시는 말씀이 '며느리 두 년......#%&&%&%^&;'이신거였다.








어머니가 억지로 하셨다는 열무김치 먹어보니 너무 너무 달았다. 어머니 전화하셔서 '그 김치 너무 달지? 내가 입맛이 쓰다보니 그렇데 됐나보다. 에미는 단 거 싫어하는데 어떡하냐?' 이러시는데 눈물이 왈칵했다.
너무 힘드신 그 순간에 '나 국물있는 거 먹고 싶으니 누가 좀 해줘라' 이 한 마디 못하시고, 하고 싶지만 억누르시고 담구신 그 달디단 열무김치의 단맛이 슬프고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난생 처음 김치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런 어머니께 '어머니만을 위한 김치'를 해드리고 싶어서다. 에니어그램이든 영적여정을 통해서 우리 안에 상처받은 어린 아이가 울고 있다고 배웠다. 그 아이는 성인이 된 내가 알아주고 달래줘야 한단다. 그러나 그건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비록 불완전한 사랑을 받았지만 사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치료든 치유든 성숙이든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그 온전한 사랑은 분명 보이는 사랑으로 받아봐야 어렴풋이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의 중요하고, 그것이 불완전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 오랫동안 하나님 믿어오셨지만 지금 누군가의 보이는 사랑으로 그 온전한 사랑을 확인하셔야 하는 때라고 믿는다. 그래야 만성두통이든, 오랜 불면증이든, 가슴의 통증이든, 화병이든 치유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머니께 그 사랑을 줄 사람은 어머니의 목마름이 목마름이 보이는 사람? 호....혹....혹시.....저요?



그런 마음으로 김치를 담궜다. 어머니만을 위한 물김치를 담궈서 '어머니, 어머니만을 위한 김치예요. 어머니는 귀한 분이예요. 저 역시 가끔 어머니의 약점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거리를 두고, 고개를 돌리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누구보다 귀한 존재예요' 라는 마음을 담아 무를 썰고, 배와 사과를 썰고, 국물을 만들고 정성스레 부었다.


잘해보겠다고 힘이 들어간 만큼 맛은 2% 부족한 동치미 국물이다. 정말 맛있기를 바라고, 맛있기를 기도하며 담궜지만 약간 짜고 약간 빈 듯한 이 맛도 오케이다. 사실 사랑은 결과보다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의 의미니깐! 맛으로 실패했을지언정 사랑하겠다고 시작한 결단이기에 이건 무조건 성공적인 물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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