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만에 그 고된 공부를 다시 시작하다.


'그만하면 많이 배웠지 뭘 더 배워~~~어. 애들이나 잘 키우고 남편 보필하고 살면 되는겨어~ 이제와서 배워서 뭘 어쩌겠다고..... 쯧쯧....'
는 흑석동 우리 엄마를 비롯하여 사촌언니나 그 외 다수의 지인들께서 보여주실 첫 반응일게다.


'대단하다. 그 나이에 또 시작해? 대단해'
라는 반응도 있을 것이고.


'뭐어어? 공부? 누가? 애비가? 뭐어어? 에미가?........................
 그래!!! 할 수 있으면 해라. 해야지'
이것은 시시때때로 나를 시험에 빠뜨리시는 우리 시어머니의 반응이지만 거의 유일무이한 전격 지지반응이다.


짧게는 5개월, 길게는 1년 여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
지난 1월 첫 주, 특새를 갔다온 어느 새벽 몸을 뒤척이다 몸을 휙 뒤집어 모로 누우며,
'하나님! 저 삐졌어요. 정말 이러신다면 저는 이렇게 돌아누워 버릴거예요'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끝이 없는 듯한 긴 터널은 계속 되었다.
살아보자고 몸부림을 했지만 서서히 어둠은 짙어져가고 급기야 남편의 입에서
'당신 혹시 우울증 아닐까? 치료 한 번 받아봐야는 것 아닐까?' 하는 말이 나왔다.


길고 어두운 터널이었지만 그래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공개적으로 허튼 불평을 나불거리지 않았고, 터널을 빠져나갈 길은  가장 어두운 그 곳, 내 마음에 있다고 믿었다.
기도를 하되 끝없이 정직하게 기도했다. 따지고, 대들고, 울부짖고, 실망감을 그대로 표현하고....
아.... 나의 그 분은 묵묵히 그대로 다 들어 주셨다. 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나한테 와서 이러니 고맙구나' 하시는 것 같았다.


3월에 에니어그램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왔다.
이건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기도응답이란 말인가? 몇 년 전 에녀그램 처음 배우면서 슬쩍 마음에 품어봤던 꿈이 아니었던가. 가톨릭 단체인 연구소에서 숙고 끝에 처음으로 채용한 개신교 출신의 강사라니.
가슴 설레이며 결정했으나 결정적으로 무료 자원봉사 라는 말에 실망감도 있었다.
그러나 시작한 수습교육은 빡세고, 날 한 없이 겸손하게 만들고, 내적인 통찰에 가속도를 붙여 주었다.


그럼에도 깊은 우울감은 감출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지저귀는 종달새, 익살녀, 지상에서 가장 웃기는 곳의 주인장은 점점 웃음을 잃어가고 어둠이 더욱 짙어가는 어느 날,
홀로 긴 드라이브를 다녀 온 남편의 전격 진단이었다.
'여보, 당신 공부해라. 그럴 때인 것 같아. 내가 다 알아봐 줄께 원서 내고 공부해. 우리가 계속 그랬잖아. 서로 교대로 공부했잖아. 이번엔 당신이 공부할 차례야.'


언젠가 공부를 하게 된다면 그 분 이다. 라고 싶었던 오제은교수가 계신 학교에서 석사 편입을 받아준다는 정보와 함께 남편의 이례적인 강력한 제안.


그렇게 다음 학기부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음악치료를 전공하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마음'에 대해 10년 간 홀로 공부해 오던 것이 구슬 서 말이라면 이제 한 번 꿰는 작업일런지 모르겠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늘 내가 계획하고, 노력하고, 내 손으로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곤 했었다. 한 번도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 손이 아니라 남편의 손이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고, 등 떠밀어 발을 내디딘 느낌이다.
자신의 일로도 좀처럼 빨리 결정하거나 빨리 액션을 취하지 않는 남편이다. 그런 남편이기에 그가 열어주는 문은 신뢰할 수 밖에 없다.
문을 열어준 그 손은 짧게는 5개월, 길게는 1년 동안 고통 속에 헤매던 내 손목을 잡아 빛의 세계로 다시 올려놓아준 느낌이다. 지난 세월 내가 열고 들어간 문을 통과하면서 느꼈던 설레임과 두려움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잘 될 것 같다'는 작은 일렁임 정도의 고요함이 일상처럼 느껴진다.  


그(He)의 사랑이 그(he)의 행동으로 내게 다가왔다. 하나님 앞에 조차 혼자 설 수 없어서 비틀거릴 때 손잡아 일으켜주고, 잃어버린 길을 찾아 문을 열어주라고 선물로 주신 사람. 일명, 돕.는.베.필.


그(he)의 인내로 인해
끝까지 기다려 당신의 사랑을 알리시는  그(He)의 마음을 힐끗 보았다.
다시 조금씩 내 마음의 방에 소망의 빛이 비추기 시작한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 전 그 날  (14) 2010.07.31
우정이 초대한 휴가 이야기  (12) 2010.07.30
미역국 없이도 배부르실 생신  (18) 2010.05.27
뜬금없이 내 곁에 섰는 남자, 이 남자  (31) 2010.04.14
노라조서 곰합따  (19) 2010.03.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