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 지금 다니는 한영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다니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새로 오시는 과정에서 지도자들의 거짓말에 상처받아 만신창이가 된 마음이었다. 곡절 끝에 집 가까이에 있는 한영교회로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초등부 교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 교회에서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너무 행복했었기에 몇 달을 '한영교회에서 성가대를 만들어 다시 한 번만 지휘할 수 있다면....' 하며 기다리고 기대하며 보냈다. 역시 곡절 끝에 성가대를 조직했고, 어린이 성가대 아이들과 함께 내 생애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들이 갱신되고 또 갱신되는 경험을 했다.


예배가 시작하려는 순간때 눈동자의 움직임도 없이 나를 향하던 아이들의 눈망울. 그리고 내 오른손의 까딱하는 움직임에 한 목소리처럼 내던 '사랑의 주'.... 지금 생각해도 매주일 거룩한 설레임으로 심장이 잠시 멈추는 느낌이다. 돌이켜 보면 정말 그 일을 사랑했고, 함께 했던 아이들을 사랑했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그 아이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내 기도 속에서 성가대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축복하고 울던 시절이었다. '이 아이들 당신의 아이들로, 믿음의 사람들로 자라게 해주세요. 진짜 삶으로 하나님 찬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해 주세요' 
아이들은 자라서 중등부로 가고, 고등부가 되고, 어느 새 청년이 되었다. 그리고 2008년 11월에 남편은 그 아이들이 있는 청년부의 담당 교역자가 되었다. 아, 오늘의 주제는 이게 아닌데 서론이 무척 길어버렸다.



 



얼마 전 아주 늦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하나 받았다.
카드에는 '늦어서 죄송합니다' 라고 씌여 있었지만 이건 죄송하다는 것도 무색할 정도의 늦은 크리스마스 카드다. 그러니까 한 십 몇 년 정도 늦은 카드다.ㅋ
한영교회 어린이 성가대 창단 멤버, 창단 시에 4학년으로 가장 어렸던 영애가 중등부에 가서 나에게 쓴 카든데 이제야 내 손에 들어왔다. 이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닌게, 당시 나도 성가대 아이들에게 엽서를 많이 보내곤 했는데 가끔 책을 뒤지다보면 그 때 아이들에게 써놓고 붙이지 않은 엽서가 툭 툭 떨어지곤 하니 말이다.


아무튼 영애의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제일 중요한 point는 이거다. '올해 안으로 꼭 시집 가세요!'ㅋㅋㅋ 덕분에 나는 그 핸지, 그 다음 핸지 시집을 왔다.





영애는 내 마음에 특별하게 남아 있는 아이였다. 성가대 원년에 막내여서도 그랬고, 아마도 6학년 졸업할 때까지 주일에 거의 빠진 적이 없었을 것이다. (요즘은 컸다고  늙은 선생님을 놀려대기도 하지만) 순하고 착했고, 늘 약간 촉촉하게 젖은 듯한 눈으로 시키는대로 열심히 찬양하던 아이였다. '예수 귀하신 이름, 아름다우신 영광의 주...' 하는 찬양의 솔로를 하던 작고 떨리던 목소리도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중등부로 올라가면 그렇게 무서워하고 존경해마지 않았던ㅋㅋㅋ 정신실 선생님을 쌩까기 시작하는데... 가끔 교회에서 부딪히면 여전히 그 때 그 마음이라는 느낌이 들던 아이들 중 하나가 영애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서 영애가 대학생이 되고 어느 해엔가 사랑부의 찬송 율동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먼발치서 지켜보았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찬송 율동 선생님을 할 때 똘망똘망 하게 앉아 있던 녀석이 바로 그 자리에 선생님이 되어있다니...







2010년 9월. 영애는 남편의 그늘 아래 있는 어린양이고 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네주민이다.
간호사라는 불규칙한 삶의 리듬을 넘어 영적 리듬을 잘 타는 영애이기를 기도하고 있다. 자주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공동체 사람들과 일정한 경험을 나누지 못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소속감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예수 놀라운 이름 아름다우신 영광의 주 임마누엘 함께 하시는 은혜의 구주 말씀이라'
오래 전 영애가 노래했던 것처럼 친구들, 선배들과 떨어져 홀로 밤을 지새우며 긴장 속에 병동을 지키는 자리에서도 '임마누엘 함께하시는' 그 분을 딱 붙들고 있으면 좋겠다. 아니, 이미 자신을 붙들고 있는 강한 손이 있음을 믿으며 삶의 형편에 관계없이 행복한 하루하루 살았으며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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