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미혼자는 행복한 기혼자가 되고, 외로운 미혼자는 외로운 기혼자가 된다’ 결혼 전에 읽었던 <크리스천의 연애와 결혼>에서 읽은 한 문장이다. 이 한 문장으로 나는 비혼 내지는 미혼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확실한 길을 발견했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면 ‘왜 아직 나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식의 소모적인 고민보다는 비혼 자체로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가끔씩 ‘결혼을 위해서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배우자 기도는 어떻게 하지?’ 하는 염려들이 고개를 들 때는 결혼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준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빌 하이빌스의 말이 옳았다. ‘행복한 미혼자는 행복한 기혼자가, 공부하는 미혼자는 공부하는 기혼자가 되었다!’ 부부가 함께 부부 공동 관심사를 놓고 책을 읽고 나누고 공부하는 쏠쏠한 재미를 본 우리는 ‘부부공부’의 전도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주변에 있는 부부들과 함께 한 ‘부부가 함께 하는 독서모임’은 우리에게 또 다른 유익한 열매를 선물로 남겼다.

작은 시작 - 또래 부부들과 작은 결혼 세미나를 시작.

결혼 초 우리는 ‘아! 수련회 가고 싶다’ ‘성경공부 하고 싶다’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돌이켜보면 이건 ‘소그룹 모임’에 대한 금단현상이라고나 할까? 교회 청년회의 소그룹에서 나누고 성경공부하고 함께 기도하던 삶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아무런 준비 없이 공동체를 떠나고 덜렁 둘이만 남겨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교회 안에서 자라왔던 우리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성경에 결혼하고 1년은 군대도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특별한 휴가를 얻은 셈 치고 맘껏 누리기로 하였다. ‘막 결혼한 사람들에겐 둘 만의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사랑의 기초를 견고하게 다질 수 있어야하고, 감정의 파동이 가라앉기 전에 서로를 깊이 아는 일에 매진하도록 해야 한다. 고로, 신혼부부 때는 서로를 아는 일에 올-인해야 할 때다’ 하는 생각으로 다소 우리 스스로에게 특별휴가를 허락했다.
그러나 아무리 둘이 깨 쏟아지는 신혼이라 해도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는 없었다. 웬만한 일에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는 JP는 적극적으로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담을 공부하시고 교회 내 부부세미나를 인도하시기도 했던 담임목사님을 졸라서 바쁜 주일 오후 시간을 확보해 내고 막 결혼한 커플들을 모아서 ‘신혼부부 세미나’를 하게 된 것이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목사님의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는 방식의 세미나였지만 우리를 비롯해 함께 했던 부부들은 큰 유익을 얻었다. 다른 부부들이 몇 년을 싸우면서 배워야 할 법칙과 기술들을 결혼이라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다 배워버린 것이다. 물론, 여전히 실천은 숙제로 남아있지만 일단은 밑그림이 아주 잘 그려진 셈이었다.

이것이 세미나더냐 스터디더냐

목사님과의 세미나를 마치고는 ‘결혼’과 관련된 책을 읽고 나누는 방식으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함께 모인 부부들은 성향도 다르고, 부부나 가정에 대한 가치관도 다르고 심지에 왜 함께 책을 읽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최소한의 대화의 룰과 조건이 주어지자 부부들은 마치 ‘아침마당’에 출연이나 한 듯이 그동안 부부끼리만 숨겨두었던 얘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주일 내내 밥통 위치를 식탁 위에 둘 것인가 바닥에 둘 것인가를 가지고 싸운 부부가 모임에 까지 와서 연장전을 하는가하면, 왜 내 배우자는 낮에 그렇게도 전화를 안 하는 것일까 반면 왜 쓸데없이 전화를 해 대는 것일까 하는 문제로 편을 갈라 침 튀기며 항변하기도 하고... 때론 비장하게 때론 격렬하게, 그리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터놓는 얘기들 속에 서서히 진심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는 서로서로 거울이 되어주고 상담가가 되어주는 부부공동체가 되어 갔고, 남의 집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한층 자랄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 것이다.
맨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부부세미나’ 내지는 ‘북스터디’ 라는 말에 걸맞게 모임의 분위기는 참으로 우아하였다. 이제 갓 결혼한 사람들이니 만큼 나름대로 커플룩으로 멋을 낸 부부, 손을 꼭 잡고 앉아서 강의를 듣는 부부, 조용하고 우아하고 진지한 것이, ‘세미나’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맞춰 새로 교회에 나온 부부들이 가세하면서 모임의 수가 배나 늘어 난데다가, 하나 둘 씩 아기들이 출현하면서 이제는 ‘세미나’나 ‘스터디’ 이런 용어가 부적절한 분위기가 되어갔다. 비록 일주일 간 읽어 온 책을 가지고 발제를 하고 얘기를 나누긴 하지만 한 쪽에서는 똥기저귀 갈고 있는 아빠, 또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일어나 흔들면서 자기 순서에 얘기하고 있는 엄마, 그러는 사이에 또 애 안고 구석으로 젖 먹이러 가는 엄마, 또 저 쪽에서는 장난감 하나 놓고 싸우다가 소리소리 지르며 우는 녀석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부부공부’는 꿋꿋하게 지속되어 갔다.
그렇게 한 두 시간 정신없는 북스터디(?)를 하고 일어나면 그 바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뒹굴고 다니는 기저귀 뭉치는 쓰레기봉투 하나 찰 정도이고, 과자 부스러기, 섞일 대로 섞인 장난감. 휴~우. 이런 난장판은 사실 거기 모인 우리 모두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일상이 그러하기에 그런 일상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살 무엇인가가 필요하였다. 주일마다 만나서 ‘너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 ‘이게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야’ 라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런 만남이었다. 사실 이제는 책을 읽고 나누는 내용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는 더 이상 앉아서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른들 10명에 애들은 16명.(당시 우리는 애들을 ‘폭탄’ 이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이들은 폭탄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고, 터지면 시끄럽고, 터졌다하면 주변이 난장판이 되고.) 그래도 스터디는 계속된다!!! 이제는 아예 여성과 남성이 나눠서 각각의 책으로 모임을 한다. 모임 시간에 아이는 한 곳으로 몰아준다. 최소한 한 팀이라도 제대로 나누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육아에 지친 아내들에게 남편들이 휴가를 주기도 하였다. 오후 내내 아빠들이 아이들을 맡아주고 여성들은 아이들로부터 해방되어 자신들 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여성들끼리 나가서 드라이브를 하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누고. 또 기브 앤 테이크 아닌가? 엄마들이 아기를 보고 있는 사이 아빠들은 함께 운동을 하고. 아이가 생겨나면서부터 예배 한 번 제대로 못 드리게 된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행복한 인생의 암흑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암흑을 헤쳐 나가는 처절한 몸부림을, 우리 부부공동체는 함께 해 나간 것이었다.

영혼의 친구, 부부

그 즈음 <영혼의 친구, 부부> 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결혼 초부터 우리는 지나치리 만큼 부부공부에 집착하고 그야말로 ‘하나되게 하심’에 충실하고자 노력해 왔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영혼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이 책이 그간의 우리 부부의 노력을 평가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오랜만에 둘이 함께 읽어보자는데 합의를 했다.
그 즈음에 우리 교회는 가정교회로 전환하게 되었는데, 우린 자연스럽게 새로운 부부공동체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소속된 가정교회는 결혼 16년차에서 막내인 우리 부부까지 온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예배하고 나누고 교제하고 기도하는 모임이었다. 막상 가정교회가 시작하고 보니 모임 초기에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일주일 간의 삶을 두런두런 나누는 시간. 누군가가 그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결국 끝은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곤 했던 것이다. 깔대기 중심 속으로 모여든 그 주제란, 바로 부부문제! 배우자와 더 많이 사소한 얘기까지 나누고 싶다는 바램, 전화를 좀 더 자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전화 문제는 어디가나 빠지지 않는 화두였다, 제발 일할 때 전화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램) 등등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공감하는 사람끼리 두 편으로 갈라져서 답이 없는 논쟁을 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리하여 탄생한 모임이 <영혼의 친구, 부부>란 책을 가지고 시작한 <영친부>였다. 이번엔 결혼 10년을 넘은 선배부부들과 부부세미나를 하게 된 것. 우리보다 연배가 높은 부부들이라 그런지 역시 책을 읽고 적용하는 것이 달랐다. 갈등을 해결하는 노하우가 소개됐고, 부부가 이루는 멋진 하모니도 자주 연출되었다. 역시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다보니 기쁨과 아픔을 다루는 선배들의 솜씨는 우리 부부와 비할 수 없었다.
바쁜 일상에서 부부관계를 위해 시간을 떼놓고 공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영친부 모임을 통해 그만큼의 시간 투자는 더 많은 수확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부부되기 위해 공부든 대화든 기도든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면 그만큼 부부는 영적 친밀성을 더할 것이고, 부부관계에 덜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 그만큼의 거리감이 생긴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 이 상식이 바로 우리 가정에 주는 의미는 아주 컸던 것이다. 부부가 영혼의 친구가 되는 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다.

영친부를 꿈꾸는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있는 꿈은 결국 현실이 되어주는 것인가? 부부공부는 더없이 좋긴 했지만 한편 아쉬움도 있었다. 처음 교회 또래들과 공부할 때 ‘대체 이걸 우리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가는 길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럴 때 우리부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고 만남과 나눔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드디어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한 쌍의 부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맨 처음 SS의 직장 동료로 만났다가 이젠 양쪽의 부부 넷이 아주 오래 된 친구처럼, 그야말로 넷이서 함께 영혼의 친구 부부 되길 꿈꾸는 동역자로 만난 것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누구 남편이 더 좋은 남편인가? 여기서부터 시작했었는지 모르겠다. 남편들끼리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도 나누기 전 아내들을 통해서 서로의 얘기를 들은 남편들은 서로서로 은근히 ‘내가 지존이다’ 하는 맘으로 경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쪽 남편이 어느 날 욕실에서 와이셔츠 손빨래를 하다가 말고 갑자기 아내에게, ‘여보! 여보! 김종필도 빨래한대?’ 하고 소리쳤다고 하더라. 이런 선한 경쟁심을 가지고 한 번 두 번 만남을 가지면서 아이를 데리고 만나 식사하고 함께 공원에 가서 노는 그 이상의 만남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모두에게 생겼다. 선한 욕심이 생기면 실행하면 되는 것!
구의역에 있는 민들레영토 세미나실. 우리는 여기서 <영혼의 친구, 부부> 되기 꿈꾸는 또 하나의 우리를 만난다. 넷이서 만나되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만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어디든 맡기고 함께 시간을 낸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럴 가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걸 감수하고 한다. 만나면 읽고 온 책은 단지 텍스트일 뿐, 곧장 얘기의 주제는 텍스트를 넘어 각자 부부의 깊은 이야기로 향하고, 그래서 때로는 상대부부를 관객으로 앉혀 놓고 공개적으로 부부싸움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여전히 부부간에 하나됨을 방해하는 자신의 죄성을 고백하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그대로 치유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돌아서면 서로의 부부를 위해 뜨거운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헤어져 있을 때도 언제든 부부관계를 챙기고 들어주고 기꺼이 개입해 주는 일에 마음을 써 준다.
우리 부부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러니까 대화로도 공부로도 잘 해결이 안 될 때, 이들 부부는 만남 자체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준다. 왜일까? ‘영혼의 친구 부부’되길 꿈꾸는 동역자로서 만났기 때문이다. 이런 부부를 친구로 사귈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은혜다.


‘결혼해서 지지고 볶고 살면 되는 것이지 참 유난을 떤다. 우리는 그런 거 안 하고도 잘만 사네~’ 가끔 그런 얘기를 듣는다. 물론 그렇게 사는 부부들을 전혀 못 본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는 앞으로 우리 삶의 행,불행을 결정할 가정의 기초를 잘 다지는 일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주제다. 이 기초가 하나 둘 놓여져 갈 때, 둘이 하나 되어 이웃을 더 잘 돌아볼 수 있고, 또 이 땅의 시민으로서도 더 잘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부부는 결혼하는 순간 이미 하나가 된 것이지만 그러나 아직 하나라고 말하기엔 너무 모르는 게 많다. 사랑해서 결혼했다 하여 저절로 부부가 하나 되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적당한 선에서 평행을 달리며 10년이고 20년이고 사는 부부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부부만의 매력적인 색감을 갖기 위해선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공부의 방법은 부부마다 다 다를 것이다. 다만, 가정을 세우는 신혼 초에(구체적으로 말해서 결혼하고 1년 안에) 부부공부에 올-인 해 보는 것, 해마다 부부공부를 갱신해 나가는 것, 영혼의 친구 부부되기를 꿈꾸는 것, 그렇게 해서 부부됨의 뜻을 알고 그만큼 더 남을 섬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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