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중의 소명이라할 목회를 잠시 내려놓는 동생이 페북에 올린 글.
여러 이유로 동생의 이 선택에서 나의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옮겨 놓았습니다. 이 슬픈 노래에 대한 답가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곧 시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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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7월 17일, 주일 설교를 끝으로 뜨인돌교회를 사임합니다. 사역지를 옮기기 위함이 아닙니다. 당분간 목회를 쉬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순간적, 충동적 결정은 아닙니다. 오랜 시간 기도하며 고민한 결과입니다. 사실 담임목사님인 정준경 목사님과는 작년 연말에 교회를 사임하기로, 작년 10월에 의논하여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필요에 따라 잠시 사임을 보류하였고, 이번 7월 저의 후임자가 결정되고 사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소 2년 이상 목회현장을 떠나서 목사로서의 소명에 대해 숙고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떠남을 결심한 것처럼, 제 마음과 환경에서 돌아옴에 대한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때 돌아오려고 합니다. 저를 목사라 불러주시던 성도들과 저를 아끼시는 동역자들이 계셨기에, 이 시점에서 몇 줄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저의 소회를 밝히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을 위한 생각의 정리가 될 수도 있겠지요.

 

작년부터 마태복음 6장 ‘외식하지 말라’, 야고보서 3장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는 두 메시지가 제 마음 깊은 곳을 흔들었습니다.

 

외식을 멈추고 골방으로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사실 전 다른 목사에 비해 자유분방하다는 평을 자주 듣습니다. ‘목사님은 목사 같지가 않아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8월, 마태복음 6장으로 설교하며 돌아본 저의 신앙은 타인에 대한 과도한 의식, 그리고 외식이었습니다. 목사니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강박은 의식, 무의식중에 저 스스로에게 지운 (한국교회에서의)‘목사의 십자가’입니다. 한국교회 정서를 감안할 때, 목사는 ‘보통 인간’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신격화 되어 버린 부류입니다. 저를 비롯한 수많은 목사들은 스스로 감당하지도 못할 십자가를 등에 지고 휘청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저 자신에 대한 연민이 생겼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목사가 된 저의 삶은 평생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온 셈이지요. ‘너는 목사 아들 아니냐’, ‘나는 목사가 아닌가’, 언제나 제 안에 있던 생각들입니다.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아는 척,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은 척,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도 그런 척, 무엇보다도 엉망인 삶을 감추려 안 그런 척 하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이런 면에서 ‘골방으로 들어가라’는 주님의 말씀이 새롭게 들렸습니다. 목사입네 하며 남의 눈치 보다가 하나님 잃어버리기 전에 골방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간 저는 이런 고백을 자주 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목사로 세우신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것 같이 않아서 일 것입니다.” 맞습니다. 목사라는 타이틀은 저를 변화시키고, 성장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쩌면 목사였기 때문에 이만큼 사람 꼴 하며 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목회를 접지 않는 한, 외식하는 신앙을 버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새벽기도회 설교를 마치면 강단에서 개인기도를 합니다. 어떤 날은, 아니 거의 모든 날이 그렇습니다. 기도를 마쳤는데도 강단을 내려오지 못합니다. 목사가 기도도 안 한다는 비난이 싫어서 그런 거지요. 너무 빨리 내려가면 혹시 누가 상처 받지 않을까, 위안도 합니다. 기도를 마쳤음에도 그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저의 모습, 한심하기도 비참하기도 했습니다. 예배, 찬양도, 묵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고 싶을 때 해야 합니다. 지금을 골방으로 들어갈 때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경건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목사가 아니어도 이렇게 신앙생활 열심히 할 거냐?’ 삶으로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르치기 인생이 아니라 배우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 뿐 아니라, 소설책을 읽을 때에도 ‘어떻게 설교할까’, ‘어떻게 가르칠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목사라서 가지게 된 직업병인 것 같습니다. 작년 8월 야고보서 3장 1절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씀을 묵상하던 중 이 ‘직업병’의 증상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성경말씀을 읽으면 ‘나’를 돌아보고 나의 삶에 적용을 해야 하는데, 저에게는 남을 가르치려만 드는 못된 습관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선생이 되지 말라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뭐라고 가르칠까, 뭐라고 설명할까 고민하며 ‘선생노릇’을 하려 드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는 약간의 좌절감마저 들었습니다. 설교하기 위함도 아니고 가르치기 위함도 아닌, 정말 순수하게 말씀을 묵상하는 일이 저에겐 매우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사임 날짜가 확정된 지난 주간, ‘그냥’ 말씀을 읽었습니다.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젠 설교하고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듣고 배우며 살고 싶습니다.

 

 

설교자로서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저는 오랜 동안 설교는 명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제가 들어온 설교가 그랬습니다. 조직신학적인 선명한 정리, 확고한 신학적 입장, 명확한 규범 등을 기반으로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라고 설파하는 그런 설교 말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저에게는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신앙적 의문들이 많습니다. 구원, 지옥, 성화, 고난, 하나님의 다스리심 등... 저는 이런 질문에 대한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어떤 입장에 서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매주 혹은 매일 설교를 해야 하는 제겐 참으로 곤란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설교를 할 때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합니다. 적잖이 혼란스러우면서도 숨기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설교를 할수록 ‘말’이 늘다보니 더 뻔뻔하게 ‘잘’ 해내는 겁니다. 저의 나이와 주변 상황을 감안하면 수년 안에 담임목사가 될 것 같습니다. 만약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 된다면 저는 많은 면에서 저를 속이고 스스로 타협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민했던 문제들을 외면하고 타협한다면, 앞으로 저의 타락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만약 다시 목회와 설교를 해야 한다면, 정리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해결해야 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치져 있습니다.

 

지난 5년간 교회문제 상담을 해왔습니다. 열정이 있었고 건강했기에 보통의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든 양의 상담을 기꺼이 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교회에서도(타교인까지) 목회적 상담도 꽤 많았습니다. 작년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에 부쳤습니다. 전 기질적으로 상담을 하면 감정이입을 심하게 합니다. 상담을 하고 나면 내담자의 아픔을 고스란히 않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머릿속에는 상담했던 이들에 대한 걱정,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고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작년부터 버거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상담 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두려워졌습니다. 운전 중 다른 사람과 언쟁도 자주 하게 됩니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귀가하면 아내가 눈치를 볼 정도로 예민해집니다. 그리고 아픔을 겪고 있는 교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무기력함, 자책감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정신적 안식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저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이 땅의 순례길을 가면서 지쳐 있다는 것을 압니다. 피곤하고 참된 쉼이 없어서 순례의 길이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라도 앞으로 남은 제 인생의 순례길을 더 잘 걸어가기 위해서는 한 번의 쉼표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년 목회를 접기로 결정할 당시는 평생 목회활동을 접으려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아들을 주시면 바치겠습니다’라는 서원기도로 아버지의 환갑동이로 태어난 아들입니다. ‘목사의 길’은 신앙적 의미에 더해, 늙은 어머니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평생 목사의 길을 버리려고 했던 데는, 위에서 말씀드린 이유와 함께 요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보이는 행태를 볼 때 목사라 불리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울 뿐 아니라 싫었습니다. 하지만 올 초부터 시작된 새벽 묵상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억이 시작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저의 인생을 복기(復棋)하던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부모님의 서원을 거부하기 위해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과 같은 과정을 통해 저를 목사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소명을 받아 목사 인생의 전반기를 달려왔습니다. 이제 한 템포 쉬고 저 자신의 선택으로 목회를 선택할 때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열어두고 다시 ‘평신도’로 돌아갑니다. 어떤 선택이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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