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8

 

 

 

모님 : 어서 와라. 오필이. 오랜만이네. 주일 날 먼발치에서는 보는데 얼굴 보고 얘기한 지가 꽤 됐구나. 잘 지냈어?

오필 : 네. 아, 뭐... 저는 지난 번 육미 얘기나 칠규 얘기를 비롯해서 모님께서 들려주시는 에니어그램 이야기 계속 보고 있었어요. 뭐... 그래서 오랜만에 뵙는 느낌은 아닌데요.

모님 : 그렇구나. 너 지난 번에 보니까 <내 안에 접힌 날개> 보는 것 같던데 다 읽었어?

오필 : 예. 다 읽긴했는데요. 잘 모르겠더라구요.

모님 : 뭘 잘 모르겠다고? 에니어그램을? 아니면 너의 유형?

오필 : 둘 다요. 모님께서는 제가 확실히 5유형이라고 생각하세요?

모님 : 왜 아닌 거 같애?

오필 : 아뇨. 책을 읽는데 5유형에 가장 가깝기는 하더라구요. 그런데 사람을 아홉이라는 유형 중 하나로 규격화해서 넣는다는 것이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제 안에는 사실 3유형처럼 성공하고 싶은 욕구도, 9유형처럼 평화롭고 싶은 욕구도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저를 완벽주의자 (완벽주의자는 1유형이죠?) 라고도 해요.

모님 : 에, 지당하신말씀입니다. 호호호호. 오늘 나눌 얘기가 흥미진진하겠구나. 일단 커피 한 잔 하면서 얘기 계속하자. 잘 볶아져서 맛이 꽉 찬 느낌의 탄자니아AA가 있단다. 커피 괜찮지?

오필 : 그럼요.

 

 

오필 : 좋은데요. 탄자니아가 헤르만 헤세가 좋아해서 유명해졌다는 커피 아닌가요?

모님 : 오, 맞어. 깔끔한 산미에 단맛과 적당한 쓴맛까지 조화로운 가장 아프리카적인 커피지. 개성이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야, 오필이 같은 커피다. 개성이 강하면서 부드러운... 호호. 오필이 커피를 좀 아나보네.

오필 : 아니예요. 잘 몰라요. 커필 좋아해서 자주 마시다보니 아주 조금 신선한 커피의 맛이 뭔지는 알겠더라고요. 그 정도예요.

모님 : 겸손하기는.... 우리 청년부 공동체의 ‘지성’인 오필이를 모님이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겸손한 오필이가 널름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지적이고, 아는 것이 많고 현명한 오필이.

오필 : 저의 자아 이미지 말씀하시는 거죠? ‘나는 현명하다’ 대신 ‘나는 현명하고 싶다. 많이 알고 싶다’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아요.

모님 : 그러니까 말야. 자아이미지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여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오필이 자신이 추구하는 모습이기도 하니까 어떻게 표현해도 맞을거야.

오필 : 저는 제가 한 없이 복잡하게 느껴져서 저 자신을 쉽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모님 : 내가 설명해줘?^^ 객관적으로 오필이의 인상이랄까, 긍정적인 특성이라면 지적이면서 사려깊다? 행동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잖아. 현실을 객관적으로 예리하게 관찰하고...

오필 : 그.... 그런가요?

모님 : 관찰한 것들을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 착착 쌓아두지. 그러니 말없이 다른 사람 얘기를 잘 들어주잖아. 얘기를 했다하면 진중하고 통찰력 있는 얘기들을 하고...

오필 :(피식_소리 안내고 웃기) 진중하고 통찰력 있는 얘기요? 저는 청년부 아이들과 함RP 있을 때 잡담이나 의미 없는 얘기가 무성할 때 로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어요. 대화에 낄 수도 없고요. 그럴 때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님 : 낄 수 없다기 보단 끼기 싫지? 큭큭큭... 시간이 아깝다거나 시간이 허투루 보냈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그러면 오필이는 그 시간에 뭘 하는 게 좋아? 뭘 하면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낸 느낌이 들까?

오필 : 글쎄요. 혼.자.서. 생각을 정리한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뭐 그런거요?

모님 : 5유형들이 집착하는 것이 ‘지식(아는 것)’이라고 하지. 모든 것을 자세히 분명하고 올바르게 알게 되면 삶이 보장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더 알고, 완벽하게 알면...

오필 : 그...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모님 : 그거야!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더 알아야 한다는 느낌에 매여 있다는 거지. 때문에 현실에 뛰어들 수 없고. 그래서 평생을 준비모드로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오필 : 준비모드라구요? 평생을요...... 맞지만 비참하게 들리네요.

모님 : 언젠가 그런 얘기 했었지? 웬만하면 버럭 화내는 일이라고 없는 오필이가 노크 없이 방문을 벌컥 여는 행동에 불같이 화를 내놓고 난감했던 적이 있다고.... 아직 더 관찰하고,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서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는 것이 5유형에게는 필수잖아. 헌데 이것을 침해하는 것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봐. 결국 이게 5유형의 집착. 알아야 한다. 더 알아야한다는 ‘지식’에의 집착에 맞닿아 있다는 거지.

오필 : 제 시간과 공간을 예고 없이 치고 들어오는 것 참기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저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님 : 그 공간 오필이의 내면에 있는 거 아니야? 5유형들은 자기만의 내적 공허감느끼고 그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모으고, 관찰한다고 하지. 그게 5유형의 회피라고 설명해.

오필 : 공허감이라고요? 공허감이라.... 공허감을 느끼죠. 그런데 공허감이 뭐죠? 외로움 같은 것이요? 그건 아닐텐데. 딱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공허의 심연 같은 것이 제 안에 있죠. 그건 뭐랄까?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표현하신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집에 있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모님 : 그래. 그 공허감을 채우려는 희망을 안고 5유형들은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을 모으고 가지고, 축척하려 한다고 해. 생각, 지식, 관념 등을 축척할 뿐 아니라 책, 우표, 낡은 신문, 빛바랜 편지 등등... 하이튼 수집에 대한 갈망이 강하다지.

오필 : 아, 그게 저만 그런 게 아니었나요? 어릴 적에 우표를 열심히 모았고, 최근까지도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가지고 있긴 하죠. 유형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모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모님 : 아, 물론! 수집광들은 다 5번이라는 게 아니라 5유형들이 집착과 회피에 맞닿아 있는 행동이 그럴 수 있다는 거지. 5유형의 근원적인 죄는 탐욕(인색)이야...... 라고 말하면 펄쩍 뛰겠지? 하하. 어, 표정 하나 안 바뀌네?

오필 : 펄쩍 뛸 것 까지는 없지만 책을 보면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지나치게 검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탐욕이라는 건 좀....

모님 : 자신을 내놓기에 인색하다는 거야. 돈, 시간, 일, 심지어 말까지도 절제하며 나누지 않는다는 거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많이 가지고 있는데 ‘난 아직 몰라’라며 나누지 않는 게 탐욕이라는 거야. 오필이 지금 박사과정 하면서 공부 잘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세미나 수업 같은 거 할 때 발표 잘 해?

오필 : 발표요? 아, 대체로 제가 발표하고 나서서 얘기할 만큼 공부가 돼있질 않아요. 실은 제가 보기에 아직 충분히 공부가 안 된 아이들이 토론할 때 나서고 그러면 좀 같잖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모님 : 오필인 다 아는 뻔한 얘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나대는 인간들이 많지? 큭큭큭..

오필 : 나누지 않는 것이 탐욕이고 인색이라구요? 저는 왜 그럴까요? 나누면 저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려운 걸까요? 나누면 아까 말씀하신 그 공허의 심연을 겪게 될까봐요?

모님 : 그러게. 잘 통찰했네. 그 두려움에 5유형들이 쓰는 방어기제가 후퇴(거리두기)야.

오필 : 인정합니다. 거리두기, 제가 하는 거죠. 음... 말하자면 제가 생각해 봤는데 저는 감정적으로 얽히는 것이 두려워요. 아니, 감정 자체가 두려운 것 같아요. 이건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모님 : 그래서 어느 5유형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감정으로 다가오면 물미역이 자신을 감싸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구나.

오필 : (픽! 소리 없는 웃음) 젖은 창호지가 몸에 감기는 느낌이랄 수도 있고요.

모님 : 하하... 젖은 창호지라! 그 정도란 말이지. 그런데 반대로 들이대는 물미역의 입장은 어떨까? 5유형들의 거리두기나 물러남이 상대에게는 지나치게 냉정함으로 비쳐진다는 거 아나? 5유형들은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거리두기에 많은 상처를 받아.

오필 : 여자 친구에게 많이 들었던 얘기예요. 옆에 같이 있을수록 외롭게 느껴진다고요. 정말 제 문제인 건 알겠는데 글쎄요.... 풀기가 어려운 숙제예요.

모님 : 그래. 당장 오필이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야. 오필이로서는 그닥 나쁜 의도가 없는, 즉 유형에 충실한 행동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다 해도 큰 걸음이지.

오필 : 대화를 나눌수록 제 자신에 대해서 더 답답하게 느껴지네요. 도대체 5유형은 재미없고 매력이 없는 번호 같아요.

모님 : 이 시점에 웬 자기비하냐! 오필이가 존경하는 본회퍼가 성숙한 5유형이라는 거 알아? 어릴 때부터 책벌레였으며 젊은 나이에 최고의 신학자였던 그 분이 히틀러 암살을 모의하는 단체에 가입했어.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 감옥에서 쓴 글의 한 대목이야. ‘가능성을 탐색하지 말고 용감하게 현실을 붙잡을 것. 자유는 사유의 비상이 아니라 오직 행동 속에 있다’

오필 : 아.......

모님 : 오필이가 그렇게 추구하는 의미는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적인 것에 있을 수도 있어. 아니, 적어도 오필이에겐 그럴거야. 아직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고,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느껴도 삶에 뛰어는 것 말이야. 진리이며 신비이신 그 분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지. 그리고 당신의 손을 더럽히면서 병든 인간에게 손을 대고 만지시면서 치유하셨어. 오필이는 실제로 행동하고 관계맺음으로 진정한 객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쉽지 않겠지. 내가 마음과 힘을 다해서 기도해주고 언제든 도와줄게. 시간이 지나면서 반드시 더 명확해지고 더 가벼워 질거야.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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