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손이는 제 부모가 낳은 자식일세. 그걸 잊지 말게'

김훈의 소설 <흑산>을 읽다가 한 문장이 목에 걸려 다음 장으로 넘어가질 못하고 있다.
정약현이 딸 내외를 서울로 이사시키면서 '육손이'라는 종을 딸려 보낸다.
떠나는 날에  마지막 절을 하며 우는 육손이를 보고 정약현이 사위 황사영에게 이르는 말이다.

'육손이는 제 부모가 낳은 자식일세. 그걸 잊지 말게'

황사영은 이 말의 단순성에 놀랐고,
시간이 지난 후에 이 말의 깊이에 놀라며 육손이를 종의 몸에서 풀어주고 면천해준다.



밖으로 보여지는 것처럼 인간관계가 그닥 원만하지 못한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여전히 쿨하지 못한 관계맺음으로 상처받기가 일쑤다. (상처받기는 그대로 '상처주기'로 읽어도 틀리지 않다는 걸 안다)
아직까지도 내 발목을 잡고 있는 치명적인 관계들이 있다. 수 년 전에 그 엉킨 관계를 풀어보자 나름대로 어설픈 노력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그에게 나는 이중인격자에 돈으로 관계를 따지는 사람이었고 그 오해를 풀어보고자 되도 않는 애를 많이 썼었다. 해명하고 애를 쓸수록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과정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그 때 내가 그 사람에게 표현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게 되뇌었었다.
'나는 우리 엄마 딸이고, 우리 엄마한테는 내가 진짜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그것 만은 알아달라'라고. 그 사람에 의도했든지 아니든지 내가 받은 느낌은 아무리 해도 내가 이 사람에게 인간으로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없겠구나 싶었었던 것 같다.


육손이는 제 부모가 낳은 자식일세. 그걸 잊지 말게.


그 얘기일 것이다.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정약현도 황사영도 육손이도 천주귀신이 들린 자로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이 모두는 제 부모가 낳은 자식들이었다. 또한 당신도 제 부모가 낳은 자식이다. 제 부모가 낳은 자식임을 인정해 주는 것은 나와 아무리 맞지 않아도, 때로 내게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 할찌라도 마지막 존엄성은 인정해주는 것이다.
부모가 되어 핏덩이 아이를 안아보고, 그 아이가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어줄 때, '엄마'라고 불러줄 때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사랑보다 더 뜨거운 경이로움을 알기에 '제 부모가 낳은 자식'이 어떤 존재인 지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
나도, 당신도 제 부모가 낳은 자식이다.
그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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