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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사회적, 교회적, 국가적 모든 삶에서 회의 그 자체였던 시절이 있었다. 신비? 신비는 커녕 그저 정상범위 안에서 삶이 돌아가기만해도 좋겠다는 싶었었다.
몇 년 전 5월 회의가 극에 달하던 어느 시점에서 일주일 정도 밥도 못 먹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헨리나우웬의 <영성수업>-직접 쓴 책은 아니다- 을 읽다가 '커다란 의문, 근본적인 의문, 보편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이 영성지도를 구하는 것'이라는 저 구절을 읽었다. '의문을 품으라'라는 한 문장으로 마음에 새기면서 거의 끊었던 곡기를 다시 찾게 되었었다. '그래. 회의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용기있게 의문을 품자. 그 분이 의문을 풀어주실 때까지 어설픈 믿음의 시늉으로 섣부른 타협하지 말자' 이 정도의 통찰로 몸과 영혼에서 탄수화물을 다시 받아들이며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때 기꺼이 정직하게 품은 의문들이 하나 씩 둘 씩 내 인생의 신비로 바뀌어가는 것은 아닐까?




 #1의 신비

지난 한 주는 신비의 일주일이었고, 신비의 주제는 '기록'이었다. 주 중엔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를 하였다. 그리고 그 매체에 기고를 하기로 되었다. 인터뷰 요청은 블로그를 통해서 이뤄졌고, 만남 자체도 이 블로그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때문에 블로그와 관련하여 일상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뷰하시는 기자께서 짧은 시간에 많은 글들을 읽고 오셨고, 편하게 나눈 이야기들이 내겐 삶을 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날을 꿈꾸게 한 고무적인 만남이었다. 그저 쓰고 싶어서, 10여 년 개인 블로그에 꾸준히 써 온 글들이 1500 개가 넘는다. 곧 출간될 책, 기고글이 인연이 되어 시작된 이런 저런 강의 역시 이 곳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퍼질러 앉아 주절거린 글 때문이다.


#2의 신비

작년에 인연을 맺은 죠이서지부 리더훈련에서 에니어그램 강의를 하게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리더훈련이 좀 더 실질적인 열매를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간사님 중 한 분이 찾아왔다. 이런 저런 의논 끝에 텀을 두고 서너 번의 강의를 하되 그 기간동안 '(의식성찰)일기쓰기' 숙제를 주기로 했다. 말하자면 한 세 달 동안 개인적으로 일기형식의 글을 쓰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라이프스토리 한 편을 써서 나누는 것을 강의와 병행하겠노라 했다. 사실 에니어그램 강의를 통해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안내하고 싶은 건 '정직한 일기쓰기 훈련'이었다. 마음으로만 갖고 있던 걸 어떨결에 시도하게 되었고 지난 주 금요일 첫강의를 하였다. 결국 10여년 인터넷 글쓰기, 30년 일기쓰기를 통해서 나의 외면과 내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의 신비

남편이 오래 꺾었던 붓을 다시 집어 들었다.(이 식상한 표현!ㅋㅋㅋ) 어떤 이유에서인지 묵상도 글쓰기도 안된다며 오래 힘들어하던 남편이 조금씩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새단장하는 등 그답지 않은 적극성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내게 기쁨이 되었다. 
아무 때나 여러 방향으로 에너지가 팍팍 분출되는 나와는 달리 충분히, 아주 충분히 고인 것들만 길어올리는 남편의 기록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삶을 기록하는 것은 삶을 관조한다는 것이고,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은 나 밖으로 나갈 힘이 생겼다는 것이니 이 어찌 기뻐할 일이 아니겠는가.


#4의 신비

대박은 그렇게 보내고 맞은 주일이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우리가'라는 주어 한 마디로 '기록'이라는 화두를 끌어내 설교를 들려주시는 것 아닌가. ( 이 설교는 내 말로 옮길 수가 없다) 설교를 들으면서 지난 일주일의 여정을 관통하는 신비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는 감히
고백한다. '내 아버지께서 기록하시니 나도 기록한다' 기록하되 타인을 향하여가 아니라 내 내면을 향하여, 기록하되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기록하되 내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욕구를 헤아리며, 기록하되 내가 불필요한 힘을 가하고 있는지를 헤아리며 정직하게!

보잘것 없는 내 일상의 아주 미미한 것들에 영원의 현미경을 갖다대는 일로서의 '기록'으로 일상에서 보물찾기를 하겠노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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