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의 지하 감옥을 지키는 이름 모를 간수는 밤을 지새운다. 오늘 감옥에는 이상한 도를 가르치며 군중을 선동하고 소란을 일으킨다는 죄목으로 갇힌 두 죄수가 있다. 상관들은 특별히 당부하며 '든든히 지키라.' 하였다. 이 희한한 사람들은 엄청난 매질을 당하고 살이 문드러지는 상황에서, 발에 착고까지 채워진 상황에서 노래를 부른다. 감옥이 울리도록 노래를 부른다. '이상한 사람들이군.' 하며 듣고 있노라니 어느 새 졸음이 밀려오고 잠이 들었나본다. 갑자기 큰 흔들림을 느끼면 잠이 깼다.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옥문이 열려있다. '아, 탈옥이구나! 든든히 지키라며 특별명령을 받았는데... 그 죄수를 놓쳤구나. 나는 이제 죽었구나. 불명예스럽게 죽느니 차라리 자결을 하자.' 하며 칼을 뽑아든 순간.


"당신의 몸을 해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 있소."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낮에 들었던 그 죄수의 목소리다. 횃불을 들고 감옥 안으로 들어간다. 믿을 수 없다. 감옥 문이 열리고 발에 차여 있던 착고까지 풀어졌는데 죄수들은 도망가기 않고 그 자리에 있다.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열린 문으로도 도망가지 않는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놀라움과 안도 감동과 긴장의 해소로 간수는 두 죄수에게 납작 엎드린다. 그리고 하는 말,


"주님, 제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 질문으로 죄수는 구원을 만난다. '아니, 감옥이 열려 있는데 왜 도망을 가지 않았습니까?' 또는 '당신들 대단한 분들이군요. 아까 낮에 제가 무례하게 군 것이 있다면 용서하십쇼.' 또는 '도대체 감옥 문을 어떻게 연 것이요?' 이것도 아니라 '제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이리이까?'를 물었다. 이 돌발적인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의 아우라에 압도당한 죄수의 질문은 '구원'을 묻는 것이었다. 평소 이 의문을 갖고 살지 않았다면 대뜸 나올 수 없는 질문이다. 간수는 평소 영원에 대한 질문을, 구원에 대한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질문하는 사람만이 답을 얻을 수 있다.
질문이 진지한 만큼만 진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선지자 하박국은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 하박국 1:13) 라며 불의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할 때 끝내 답을 들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솔로몬이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하며 질문하고 성전을 지었다. 성전을 건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질문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성전에 갇혔고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에 갇혔다.


(여기까지 오늘 설교를 각색 요약한 것임)


헨리나우웬 신부님도 그렇게 말했다. '의문을 품으라. 하나님 앞에서 의문을 품으라.' 거짓 선생들은 가르친다. '믿어라. 닥치고 믿어라. 의문을 품는 것은 죄다.' 묻지 못하게 하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여 결국 진짜 하나님을, 진리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오랜 시간 그렇게 배워온 나는 내 안에 자연스럽게 의문이 올라올 때마다 '불경하고 믿음이 없는, 삐딱한 나'라며 스스로 정죄하고 죄책감에 빠지곤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죄책감을 품고도 의문을 버리지 않았고, 질문하는 자에게 답을 주시는 하나님이 많은 문제들에 때론 명쾌하게, 때로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답을 주셨다.


진리이며 사랑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안다는 내가 왜 성숙해지지 않는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하나님 앞에 있는 내가 왜 마음의 변화, 성품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는가?
불의한 권력은 어찌하여 끝도 없이 강해지고 가장 약한 사람들을 소리 없이 짓밟는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의을 행하는 자들이 어찌 위기 때마다 피할 길을 찾아 다시 일어나 활개를 치곤 하는가?
사랑의 하나님 이라 불리는 하나님께서 왜 내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는가?


다 열거할 수 없는 의문을 품고 살아왔다.
여전히 많은 의문들이 올라오고 올라오지만 어느 새 하나 둘 질문에 대한 답이 삶에서 주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2012년 이 곳 양화진에서 또렷하게 주어지는 진지한 답이 있으니... 가끔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명쾌하게 주어질 때가 있으니.....


질문을 품고 살아 온 지난 세월이 이제 와 생각하니 가장 어둡지만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
지금, 여기를 삶이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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