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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교회 소그룹(당시 '목장'이라 불리던)에서 제대로 망가지며 맘 먹고 내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창 재밌게 모이던 모임에서 떨어져 나온 상태였고 새로 만난 분들과의 어색한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눔이라고 한 마디 내놓으면 설교나 훈시가 돌아오곤 해서 점점 모임에 대한 기대도 떨어져 갈 즈음이었다. 인도하시는 리더부부(당시 '목자'라 불리심)를 돕겠다는 마음,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솔직한 내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주 중에 겪은 예상치 못한 어려운 경험을 나누면서 스타일 무너지는 것을 각오하고 속 얘기를 했다.



그로 인해서 모임이 어떻게 되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우아하고 진솔한 나눔은 없다.' 이걸 배우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 고상한 이미지도 지키고, 적당히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거리도 유지하는 이야기로는 안될거라는 교훈이었다. 적어도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든 내놓으면 상처받을 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그렇게 내놓을 수 있는 사람만 그렇게도 목말라하는 공동체를 얻을 수 있다고 표현해도 될까?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될 때 까지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하겠지만 무장해제를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


블로그는 물론이고 밖으로 내보내는 글에도 내 이야기를 많이 드러내는 편이다. 오래 전 목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들을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피드백은 내게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꼭 이런 식으로 밖에는 쓸 수 없는 나의 한계를 가끔은 탓하기도 한다. 진실게임 하기로 해놓고(언제 하기로 한 적도 없으면서) 나만 진실을 까발렸는데 그 누구도 자기 얘기를 하지 않을 때 느끼는 손해본 느낌도 없지 않다. 약간의 전문용어를 섞어서 내 얘기가 삐져나오는 것을 희석시켜볼까 하는 노력을 한 적도 있다. 그럴 때 마다 글이 죽사발이 되는 경험을 했다.ㅠㅠ


내 한계이며 강점이라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와, 나의 이야기, 나의 일상을 드러내지 않고는 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을 말이다. 이 바닥에서 (이 바닥은 어느 바닥인가?) 여성의 글, 일상을 담은 글, 쉬운 말로 씌여진 글은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과, 그래서 약간이 피해의식 같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이젠 좀 당당해지려고 한다. 나의 한계와 강점이 공존하는 그 곳에 내 글이 있고, 한계와 강점이 한 지점에 있기에 내가 '사람'이지 않겠다. 남달리 애정이 가는 저자들이 있다. 유난히 자기의 이야기를, 자기의 실패담을 많이 들려주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회고록으로 만난 브레넌 매닝이 그렇고, 댄 알렌더가 그렇고, 도널드 밀러가 그렇다.


남편이 톰라이트를 읽을 때 나는 댄알렌더를 읽는다. 부부를 한 몸으로 부르셨으니 톰라이트도 내 꺼다. 남편이 <배제와 포용>을 붙들고 있을 때 나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붙들고 씨름한다. 필요하면 톰라이트와 미로슬라브 볼프가 들어있는 남편의 머리를 잠시 빌려쓰면 된다. 물론 남편 역시 내면아이가 들려준 인간의 마음에 접속된 내 마음을 설교에 갖다 쓰기도 한다. 나의 지성과 글쓰기의 한계를 인정하며 자족하며 감사(하려고)한다. 내 곁에 '인간의 얼굴을 한 지식'인 남편을 주셨으니 그를 질투하지 않고 진정한 나의 반쪽으로 인정해드린다.


묻지 않는 얘기 꺼내길 좋아하는 오지랖쟁이로 태어난 내가 어쩌겠나. '내 얘기를 해볼께' 하며 속을 드러낼 밖에.....

 

(오늘 아침도 황금빛으로 시원하게......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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