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22

 

 

(가평 깊은 산 속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한 동안 침묵이 흐릅니다. 각자 새롭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 위에 채색하여 만든 예쁜 동화를 이제야 알아차리기 시작한 탓일까요? 몸은 여기 있지만 각자 자신의 어린 시절로 떠났나 봅니다. ‘타닥타닥’ 잦아드는 모닥불이 타는 소리, ‘쓰르쓰르’ 가녀린 풀벌레가 내는 소리만이 ‘지금&여기’를 확인시켜 저는 것 같습니다. 침묵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리들이 그러합니다. 이대로 밤을 지새우는 침묵이어도 좋겠습니다.

모님은 조용히 일어나 새로운 커피를 준비합니다. ‘인도네시아 만델링’이라는 원두를 선택해서 핸드밀 뚜껑을 열고 싸르르르 한 스푼 씩 넣습니다. 사라락사라락 원두 가는 소리가 흡사 초등학교 입학 전 날 설레는 맘으로 돌리던 은빛 연필 깎기 소리 같습니다. 커피향이 퍼집니다. 쪼로로 물을 따르는 소리도 오늘따라 크게 들립니다. 안과 밖이 고요해지니 새삼스럽게 들리는 소리들이 많습니다.)


모님
: 오래 앉아 있으니 좀 쌀쌀하네. 따뜻한 커피 더 필요한 사람?

(저요, 저요.)

삼진 : 딱 커피가 고파지는 순간, 그 순간을 포착하시는 바리수타 모님의 센스!

칠규 : 이건 무슨 커피예요?

모님 : 인도네시아 만델링이야. 아라비카 커피 중 가장 강렬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 진하고도 부드러운 맛이 묵직하게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인데..... 느껴지니?

칠규 : 아.....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커피란 얘기죠. 하하하하.

일경 : 쓰지만 싫지 않은 쓴맛이에요.

육미 : 그래그래. 고소한 쓴맛이라고 할까?

모님 : 맞아. 로스팅이 잘 된 만델링이야. 이게 개성이 강한 커피라서 말이야. 자칫 하면 쓴맛만 강조돼서 만델링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함의 조화로운 풍미가 없어진다고 하거든. 차가운 밤공기 때문인지 커피의 향이 하나하나 그대로 입 안에서 살아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만, 기억을 떠올리고 나누고 그 안에서 치유를 경험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야. 우리가 이 마음의 작업을 통해서 지금 마시는 만델링 커피 같아졌으면 좋겠구나. 초록색 생두가 로스터기에 들어가 불 조절, 수분 조절, 연기 조절의 연단을 잘 받으면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내는 맛있는 원두가 돼. 로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생두라도 의미 없는 쓴맛만이 느껴질 수도, 고소한 맛과 달콤한 초콜릿 향까지 곁들여진 좋은 커피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사라 : 아.... 너무 좋아요. 모닥불, 커피, 마음, 사람, 어린 시절의 그네...... 음......

팔수 : 그네는 또 뭥미? 하하하. 아무튼 모님은 절묘하게 갖다 붙이기 진짜 잘하시는 것 같아요. 하하하.

이석 : 야, 그게 모님의 내공 아니겠냐. 커피와 에니어그램, 마음의 여정과 커피, 이걸 조화시키시는 게 아무나 못하는 거야. 이제 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들려주시는 거죠?

모님 : 그래. 일찍 한 부모님을 여읜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학창시절 내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편부, 편모가정' 또는 '결손가정' 이었어.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학기 초만 되면 가정환경 조사랍시고 '편부 편모가정 손들어라' 하는 그 무식한 조사가 정말 싫었지. 피한다고 내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어. 음악치료를 전공하면서 숱하게 들은 말이 '성인아이', '역기능 가정'이란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우리 가정은 외형적으로 결손가정일 뿐 역기능 가정과는 상관이 없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우리한테 얼마다 따뜻하고 희생적인 분인데.... 밤낮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기도 밖에 없고, 엄마랑 동생이랑 나랑 셋이 모이면 얼마나 즐겁고 속에 있는 얘기 다 하면서 행복했냐고?’ 하면서 말야. 실제로 우리 가정이 그랬어.

칠규 : 아, 죄송한데요. 역기능 가정이 구체적으로 뭐예요?

모님 : 일단 기능적 가정의 반대 의미지. 가정이 어린아이에게 제대로 기능을 한다는 건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잘 충족시켜 준다는 의미지. 신체적, 정서적, 영적인 욕구가 충족되며 자랐다면 독립된 성인으로 자라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겠지. 역기능 가정에서 아이는 반대로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충족이 돼. 그러면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되고 건전하지 못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는 거야.

오필 : 역기능 가정은 알코올 중독 부모님이 계시거나 그런 가정을 말하는 거 아닌가요?

모님 : 그렇지. 역기능 가정은 중독자가 있는 가정이야.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보통의 가정들이 이 정도인 경우는 드물지. 하지만 일중독, 돈 중독, 사랑 중독……. 이런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래서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치유>를 쓴 존 브레드쇼는 현존하는 가정의 95%가 역기능 가정이라고 했어. 그러면서 이 분은 아직까지 나머지 5%에 해당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야. 결국 우리는 모두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다는 거지.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리로는 살짝 동의가 됐지만 ‘표현이 과하네. 누굴 모두 환자로 보나?’ 했었어.

육미 : 풉, 제가 지금 딱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모님 : 어린 시절 작업이라면 나도 할 만큼 했잖아 하면서 교만한 마음도 있었어. 어린 시절이 다 그렇지 뭐. 너무 인위적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을 끌어내고 짜 맞추는 거 아냐? 하면서 방어하기도 했던 것 같애. 그러면서 여러 내적 여정 훈련을 받았지. 내게 어린 시절 그러면 아직도 엄마가 해주시는 레퍼토리가 있어. ‘너처럼 사랑받고 큰 애는 없다. 너를 늦게 낳아 가지고, 느이 아버지가 자다가도 일어나서 불 켜고 앉아 너를 들여다보고 그랬단다. 내가 너를 안아볼 새가 없었다. 하도 너를 이뻐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 말이 내 의식에 새겨져 있어. 그래서 '나는 엄청 사랑받고 자란 아이야' 라고 머리로 믿고 있었던 거야. 의심의 여지없이 말이다. 헌데, 내 마음과 몸은? 이런 질문과 함께 이제껏 눌러놨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봇물처럼 생각나는 시점이 있더라. 더 중요한 건 기억과 함께 떠오른 당시의 느낌이야.

동네 친구 집에 갔던 기억이 나. 남자 애였는데 친구가 무슨 말을 하면서 막 까불었어. 그랬더니 친구의 엄마가 ‘저런 미친놈. 내가 못살어.’ 하면서 고개를 젖히고 웃으시는 거야. 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 장면이 먼저 선명하게 떠올라.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서 동네 사람 모두 업신여기는 집이었지만 어린 나는 그런 엄마와 아들 사이가 부러웠던 거야. 기억해보면 목사님이었던 아버지는 교인들 앞에서, 아니 교인들 없는 곳에서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가족을 대하지 않으셨어. 엄마? 내 기억 속 엄마는 ‘사모님’일 뿐이었던 것 같애. 엄마는 언제나 곁에 없었다고 느껴져. 교인들 중에 아픈 사람, 힘든 사람을 찾아 심방을 가 계셨지. 그리고 집에 오시면 남편이기 이전에 ‘주의 사자’이신 목사님을 위해 열심히 밥을 하셨고. 밤이 되면 철야기도를 위해 교회당으로 가셨어. 나는 알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만 상황을 통합적으로 볼 수 없는 어린 나는 그저 ‘차가운 아버지’와 ‘부재중인 엄마’로 밖에는 인식할 수 없었다는 거야. 아주 가끔 나와 동생이 아버지가 쓰던 이북 사투리를 흉내 내고 온 몸을 던져 익살을 떨면 아버지가 아주 살짝 웃으셨어. 나는 아주 살짝 웃을락 말락 하는 그 웃음만 보아도 ‘나를 사랑한다는 뜻’인줄 알고 좋아했지.

(모님은 커피 한 모금을 길에 마신다. 한참 동안 말이 없다. 모두 말이 없다.)




모님
: 휴우, 내 얘기를 하는 게 생각보다 더 힘들구나. 나는 너희에게 보여주는 우아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에서는 엄청나게 손발을 놀리며 애를 쓰고 있어. 죽으나 사나 사람들의 재롱둥이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지. 별달리 흑심도 없어. 그저 내가 하는 말에 사람들이 웃고, 너 재밌다 말해주고, 어쩜 그리 귀엽고 재치 있냐고 말해주면 좋아서 환장을 하는 거야. 왜? 사람들의 그런 반응에 ‘아,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착각을 하거든.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내가 재롱을 떨어드려야 하는 분이더구나. 어떻게든 하나님께 이쁜 짓을 해서 그 얼굴에 미소 짓게 해 드리려고 마흔이 넘도록 교회봉사를 쉬어본 적이 없어. 청년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몇 년 전까지 기저귀도 못 뗀 아이들을 끌고 주일 아침 일곱 시부터 찬양대 지휘를 하러 가곤 했단다. 하나님 앞에서도 어떻게든 재롱을 떨어서 그저 내 턱을 한 번 긁어주시면 좋아서 혓바닥을 빼고 헥헥거리는 강아지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고 표현하면 될 것 같애.

사라 : 흑흑……. (그리고 몇몇이 따라 눈물을 찍어내고 먼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모님 : 그래, 눈물이 나지? 어린 시절 작업과 함께 여전히 어린 시절에 매여 그렇게도 애쓰며 사는 나 자신을 생각하며 수시로 눈물이 났어. 한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다녔지. 이제 나는 결손가정이며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나 자신을 인정한다. ‘너처럼 사랑받고 큰 애도 없다.’라는 엄마의 말로 채색된 어린 시절도 완전히 가짜는 아닐 거야. 하지만 지금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것처럼, 최선을 다하지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없었던 부모님으로 인해 내 많은 욕구들은 좌절됐을 거야.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면서 나름대로 사랑받기 위해 애 쓴 것이 ‘웃기고 재롱떨며 귀염둥이가 되자.’였겠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없다.’ 여기고 ‘뭐라도 해야 사랑받는다.’는 왜곡된 메커니즘을 견고히 해왔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이 감동적인 가사를 그렇게도 무미건조하게 부르던 이유가 아니겠니. 에니어그램을 통한 내적여정이 어린 시절의 여행으로 인도했고, 지금 여기까지 데려왔구나.

이석 : 저……. 늘 모님께서 저희를 안아주셨는데 우리가 모님을 좀 안아드리면 안 돼요?

(누구랄 것 없이 모님을 허깅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깊이 허깅하며 긴 시간을 보낸다.)

모님 : 이 그림처럼 어린 시절의 미해결 욕구를 알아가는 것은 중요해. 내 유형의 왜곡된 동기가 닿은 뿌리를 찾는 일이거든. 스캇 펙의 책 제목처럼 이 여정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고 우리 생의 마지막까지 <끝나지 않는 여행>이 될 거야.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생두가 스스로 볶아지는 것이 아니라 로스터의 숙련된 손과 정성의 소산인 것처럼 우리의 인생길에 함께 하시는 분, 누구? 그래. 그 분 손잡고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여정으로 한 걸음 더 가는 거야. 어, 하늘 좀 봐봐. 별이 쏟아질 것만 같다. 후후후. 참 좋은 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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