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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채윤이 3학년 때 쯤 입니다. 현승이 수영을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엄마들의 수다는 늘 그러하듯 아이들 공부 얘기였습니다. 채윤이는 한자 써 가는 숙제가 있어서 옆에 앉아서 괴발개발 그리고 있었지요. 한 엄마가 '어머, 넌 여기까지 와서 공부를 하는구나. 공부 잘 하게 생겼네.' 했습니다. 그러자 채윤이가 천진난폭, 순진무궁한 표정으로 '아줌마, 저는요~오. 학교 들어가서 이 때 까지 백점 맞아본 적이 없어요'라고 했지요. 그 아줌마 엄청 당황해가지고 애 등짝을 패 듯 치면서 '아이고, 그런 얘길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했더랍니다.


2.
그 때는 순진해서 그랬겠거니... '울 채윤이 그 땐 그랬지~이' 라고 얘기하고 하죠. 그런데 불과 며칠 전 교회 동생이 백점을 맞았다는 얘길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또 저한테 '엄마, 나는 이 때 까지 백점 딱 한 번 맞아봤지~이?' 랍니다. 저는 이런 채윤이를 사랑합니다. 백점, 마다하진 않습니다만 백점 맞는 게 인생에서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저 태도 애정하고 또 애정합니다.


3.
학기를 마치면서 현승이가 일기상을 받아왔습니다. 현승이가 아빠에게 자랑을 하면서 '아빠, 나 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상 받은거다.' 하니까 아빠가 믿지를 못합니다. '에이, 무슨~ 받은 적 있지 않아?' 아닙니다. 처음 입니다. 현승이는 나름대로 백점도 꽤 맞았고, 일기도 잘 쓰고, 모범적이기도 하지만 상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이번 일기상은 정말 '상'입니다. 상담을 하는데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지요. '현승이 일기를 보면서 제가 배워요. 3학년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이번에는 무슨 얘기가 있을까 기대가 된다니까요.'


4.
'상 받는' 글, 그림.... 이런 건 따로 있다는 얘기들을 합니다. 그걸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사교육 선생님들이 있구요. 현승이는 은근히 승부근성이 있는 아이입니다. 진즉에 학교에서 상도 받고 칭찬과 격려를 더 많이 받았으면 학업이나 학교생활에 더 자신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엄마가 더 열심히 학교 일을 하거나 이런 저런 상을 타는 행사에 같이 만들어 주고 그려주고, 붙잡고 공부를 시키고 했으면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현승이 역시 3년 지내는 동안 그 흔한 상장을 처음 받아들고 왔어도 그럭저럭 행복한 저 모습이 이쁠 뿐입니다.


5.
불특정 미래의 어떤 날을 위해서 오늘의 행복을 담보삼지 말자는 생각을 합니다. 부부관계도 그렇고 아이들 양육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별히 공부에 관해서 그렇지요. 엄마로서 어찌 불안하지 않겠습니까만은 '복음'을 산다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이런 불안함을 떨쳐낼 수 있는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이러면서도 자주 불안해하며 자책하고 괜한 죄책감으로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큰 방향을 바꾸지는 않겠습니다. 현승이가 '행복'이라는 주제로 일기를 썼네요. 이 어린 시인, 꼬마 철학자가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가고 있으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제목 : 행복(2012년 12월 11일, 화요일)

이 일기를 쓰기 전 나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 봤다.
대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행복이 '무엇에 대해 기쁜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무엇에 대해 만족하시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신다.
하지만 답은 없다.
나는 요즘 사랑, 기쁨, 감사 등 긍정적인 감정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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