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International Piano Korea> 에 실린 것을 재촬영.
제목 :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

 

음악치료의 방법 중에 ‘삶을 위한 리듬(Rhythm for life)’이라는 것이 있다. 손에 패들드럼(소고 모양으로 손잡이가 있어 개인이 들고 칠 수 있는 북)을 든 참가자들이 기본 박에 맞춰 단순한 리듬을 연주한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짧은 시간이 아니라 꽤 긴 연주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울림이 좋은 드럼으로 반복되는 리듬을 연주하며 ‘리듬 서클’ 안에 머물다 보면 어느새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지속적이며 균일한 박자가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하나로 모아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하면 이렇게 밋밋하지만 난타 공연을 관람하면서 공연장을 가득 채운 리듬의 진동에 몸과 마음이 저절로 올라타 함께 쿵쾅거리는 느낌 같을 상상해 보시라. 관람이 아니라 직접 연주라면 그 감흥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수십 명의 사람이 리듬 서클을 만들어 드럼연주를 하다 보면 어느새 열정에 못 이겨 서서히 템포가 빨라진다. 리듬이 지속되며 음악적 에너지는 점점 더 모이고 서서히 절정에 이른다. 절정에 이르러 지펴질 대로 지펴진 리듬의 열기가 ‘두두두두두두두’ 빠른 박으로 더욱 치닫기 시작하면  어느 새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쿵!’하고 마지막 박을 치면서 끝내게 되는 것이다. 팔을 한껏 들어 올려 마지막 박을 치고는 ‘후~’ 숨을 몰아쉬며 맬럿 든 오른손을 내리는 순간의 카타르시스. 시쳇말로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이다.

 ‘삶을 위한 리듬’의 음악치료 장면은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한 장면이지 않은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 일정한 리듬의 북소리와 춤, 단조로운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디언들의 주술행위에서도 봤고 우리의 전통문화인 사물놀이도 얼핏 겹쳐서 떠오른다. 추측건대 음악치료의 한 형태인 ‘삶을 위한 리듬’의 참가자나 기우제 지내며 북치고 춤추는 인디언이나, 사물놀이에서 장구를 맡은 사람이나 마지막 박을 치며 마치는 느낌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거나 저거나 넓은 의미의 음악치료 아닐까?

 인간의 생존자체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 음악. 이 음악이 수천 년 동안 인간의 한 행동방식으로 존재해왔다. 원시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행위가 곧 예술행위이고,  종교의식은 종합예술의 형태를 띠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둘을 분리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과 함께 오래전부터 있었던 음악은 원시사회 종교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원시사회에서의 종교적, 주술적 퍼포먼스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치러졌겠지만, ‘질병치유’는 특히 꽤 중요한 기능이었다고 한다. 질병이나 고통이 신에게서 온 벌이라 믿으며 신을 달래기 위해 사용된 음악이나 춤 등의 예술행위가 곧 종교행위였던 것이다. 원시시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음악이 사용되었다고? 그렇다면 도대체 음악치료의 역사를 더듬으려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것인가? 어떤 이는 성서에 나오는 소년 다윗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기 전, 악신에 들린 사울 왕이 괴로워할 때마다 하프를 켜며 치료했다며 음악치료의 시조(始祖)는 ‘다윗’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따지면 음악치료가 언제 처음 시작되었는지, 시조(始祖)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천 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치료의 역할을 수행했던 음악이 오늘날 ‘전문분야로서의 음악치료’로 깃발을 꽂은 시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음악치료사를 양성하는 정규 교육과정의 개설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9973월이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음악치료사 정규 교육과정인 음악치료대학원 석사과정으로 개설되었다. 그러니 채 20년이 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가진 것이다. 우리나라 음악치료의 이 짧은 역사 이전은 어떻게 더듬어 가야 할까? 숙명여대에서 국내 처음으로 음악치료사를 양성하게 된 최병철 교수가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한국인 최초의 미국 공인음악치료사 자격을 얻었으니 그의 족적을 좇아 미국의 음악치료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이 좋겠다. 미국의 음악치료사를 위한 최초의 교육은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1944년에 시작되었다. 정식 학위 과정으로 개설된 것은 2년 후인 1946년 캔자스 대학에서이다. 그리고 곡절 끝에 1950년에 전국음악치료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Music Therapy)가 창립되었다. NAMT의 창립으로 음악치료사가 전문인으로 인정되는 일이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미국 음악치료 역시 한 세기가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 신비적 경험으로써 사용된 치료적 음악이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데이터를 통해 효과를 입증 받게 된 것이다. 심리과학 즉, 통계학의 발달로 음악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음악치료가 전문분야로 입지를 다진 1940년대 이전에도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특히 ‘반 데 왈(Willem Van de Wall)’은 세계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정신병원과 교도소 내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오늘날의 음악치료가 태동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반 데 왈은 전문 하프 연주가로 1차 세계대전 동안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교향악단의 멤버로 해군 군악대에서 근무하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19년부터 음악을 통한 치료와 정신질환 예방에 나서게 된 것이다. 반 데 왈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에서 음악을 적극 활용하고 연구하였다. 대체로 이 시기의 음악치료는 ‘어떤 질병에는 어떤 음악’ 이라는 처방식으로 행해졌다. 주로 음악적 전문기술이 없는 간호사나 의사들에 의해서 연구된 것이다.

 사실 태동이라고 한다면 훨씬 더 오랜 기간 서서히 태동되어 온 것이 음악치료이다. 그 이전의 바로크 르네상스 시대에도, 중세에도, 고대에도 근대 음악치료를 향한 강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1533년 아그리파(Agrippa)4성부를 우주적인 요소와 결부시켜 베이스는 땅에, 테너는 물에, 알토는 공기에, 소프라노는 물에 비유하였다. 또 그리스 시대로부터 내려온 네 가지 기질(다혈질, 점액질, 담즙질, 우울질)과 인체의 네 가지 체액(, 점액, 황색 담즙, 검은 담즙)을 선법에 연관시키기도 하였다. , 도리안은 물과 점액질, 프리지안은 불과 담즙질, 리디안은 공기와 피에, 믹소리디안은 땅과 담즙에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음악과 의학을 연결시키는 주장이라 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천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습관적으로 들으면 그 사람의 성격 또한 미천한 형태로 바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는 음악의 힘을 말한 것이다. 음악의 치료적 힘을 느끼고 말하는 자리에 숟가락을 얻은 사람들은 이 두 사람뿐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원시시대 기후제를 집도하고 있는 사제이자 음악감독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한 후 어느 때부턴가 음악이 사람과 함께 하였다. 그 음악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고, 우울한 감정일 때 그 감정에 더 깊이 파묻히도록 하였으며 그러다 신비롭게도 아파 누워있는 사람에게 일어날 힘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신비로운 일들을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는 다 알 수도, 이제 와 증명해낼 수도 없다. 다만 그 때로부터 흘러온 ‘음악의 강’이 ‘과학의 댐’과 조우했고 그에 힘입어 ‘음악 안의 치료적 힘’을 입증하게 되었으며 오늘의 ‘음악치료’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기나긴 음악치료의 역사 이야기이다.

<International Piano Korea>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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