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음악치료> 연재를 마치다 본문

마음의 여정

<음악치료> 연재를 마치다

larinari 2013.12.03 20:14




<International Piano>에 연재하던
'음악치료의 세계' 마지막 글이 실린 12월호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10대 뉴스를 꼽자면 상위 1,2위 안에 드는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내 그릇에 넘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거절하지 않고 덥석 수락한 것을 자주 후회했지만
이렇게 결국 끝을 보았습니다.
부끄러움으로 아주 개운한 끝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좋습니다.
전문적인 음악잡지에 글을 쓸 깜냥이 아닌데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신찬 기자님, 고맙습니다.
얼굴은 뵙지 못했지만 조용하게 타들어가는 흰색 초와 은은한 향으로 기억되는
소중한 만남입니다. 
덕분에 음악치료사로서 살아온 십수 년을 의미있게 정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닿는 인연들이 하나 하나 소중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스쳐지나는 인연이라도 귀하여 여겨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한 해였구요.
연재를 시작할 때 페북에 <나의 전공>이라는 글이 있더군요.
막막한 마음으로 쓴 글인데 연재를 마치면서 읽어봤습니다.
확실히 글을 쓰면서 전공에 관련하여 삼류의식, 열등감 같은 것들을 보다 직면하고
아주 조금은 당당해진 것 같네요.



[나의 전공]

 

1.
원하는 대학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다. 무슨 '유아교육'을 학문으로 하냐? 는 비아냥거림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사실 내 존재를 향한 비아냥거림과 열등감이었다. 그래서 대학 4년 내내 전공 책은 가방에 손에는 여성학 책을 들고 다녔다. 그래도 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선생님은 되었다. '자(自)'는 모르겠지만 '타(他)'는 인정하는 천직이었다. 원장선생님, 학부모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인기짱인 선생님이었다. (깔때기지만 내용은 진짜읨) 천직일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몸매 쥑이는 여자가 하의실종 패션으로 옆을 스쳐갈 때 눈을 뺏기고 마는 남성들처럼 지나가다 아기만 보면, 어린 아이들만 보면 입을 벌리고 눈을 떼지 못한다. 가끔 혼자 있을 때도 수업 중에 만난, 또는 가까이 지내는 이쁜 아가들을 떠올리며 가슴을 설레고 입술을 깨물곤 한다. 아이들 눈높이 맞춰 얘기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고, 아이들 웃기는 일이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 천직일 밖에.

 
2.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음악'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내내 '음악영역'에 대한 연구만 했다. 교구를 만들어도 음악교구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음악파트를 맡는 전담교사를 자처했다. 그리고 곡절 끝에 유치원 교사를 접고 돈을 모아 음악치료 대학원 2기로 진학을 했다. 열 명을 뽑는 입시에서 차석으로 입학을 했고, 처음으로 음악치료 실습을 하는 수업에서 교수님께 '음악치료의 귀재'라는 평을 들었다. 명문대 음대 출신의 동기들을 제치고 말이다. 정신병원으로 실습을나갔을 땐 참관하는 의사가 회식 자리에서 그랬다. '환자들 앞에서 저보다 더 편안하시고 능수능란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 음악치료사 역시 '천직'이 아니겠는가. 대학에서 강의도 몇 학기 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에게 몇 년의 임상을 정리하며 나름 음악치료에 대해 잘 이해시키고 가르쳤다. 


3.
임상 몇 년 후에 모교에 박사과정이 생겼다. 음악치료의 귀재로서 일착으로 시작해야 했으나 사실 음악치료를 하면서도 역시 유아교육을 했을 때와 같은 부적절감을 느꼈다. 이번에는 학부전공이 음악이 아니라는 열등감 때문이었다.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의 음악적 능력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음악들은 늘 이류나 삼류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꾸준히 음악치료사로 일하면서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공부하는 남편을 대신해 빠듯한 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은 되었다. 물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천히 자라는 아이들'과 세상 누구와도 부르지 못할 노래를 불렀고 눈빛의 교감을 했던 시간이었다. 단지 그것 하나 좋았다. 아이들과 눈 맞추고 노래하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 아이와 내가 연결되는 깊은 결속의 느낌. 그러나 어느 새 임상(만)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공부를 다시 시작할 엄두도, 내 이름을 걸고 치료센터를 차릴 배짱도 없다. 그러나 주구장창 아이들과 뒹굴기엔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4.
얼마 전 남편과 새해의 계획들을 이야기 하며 '이제 음악치료는 다 접어야 할까봐.' 했다. 그 얘기를 한 다음 날 특수교사 선생님 한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 음악치료를 하면서 내가 만난 최고의 특수교사 선생님이었다. 음악치료에 관한 책을 내도록 돕고 싶어 했었는데 그 때 역시 내 음악치료는 삼류라는 열등감 때문에 밍기적거리는 것으로 거절을 했었다. 언제든 다시 그 선생님의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 분도 학교를 옮기고 나도 멀리 이사를 했는데 우연히 서로 멀지 않은 곳이다. 다시 만나 음악치료를 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한 음악잡지로부터 음악치료에 대한 글을 기고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담당 기자분이 내 글들을 알고 있었고 조심스레 추천을 한 것 같았다. 잠시 신비감에 휩싸였다.


5.

천직 같은 전공을 두고 왜 나는 늘 부적절감을 느끼고 맴돌기만 했을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고 치료하면서 왜 난 늘 삼류라는 생각을 했을까? 전공에 관련된 글 한 줄 쓰지 못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고 강의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새로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전공을 부전공처럼 여기며 살던 20여 년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뭔가 늘 부족하다 여겨지는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살지 못하고 환상을 좇아 분주한 내 영혼을 제대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더불어 이래도 삼류, 저래도 삼류라는 열등감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6.

하여, 오랜만에 긴 호흡으로 주절거려보는 것은 새로운 영역의 글을 쓰기 위한 발동걸기이다.

 

 


 

'마음의 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젊은 나와의 화해  (6) 2014.01.05
여기까지 잘 왔다  (4) 2013.12.15
<음악치료> 연재를 마치다  (4) 2013.12.03
갈망과 사랑과 자유  (0) 2013.11.25
동기의 무게를 재신다  (4) 2013.11.22
주일 단상  (2) 2013.11.10
4 Comments
  • 프로필사진 2013.12.04 09:44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3.12.04 18:29 신고 반갑고 감사합니다.
    사실 이런 글은 써놓고도 썩 마음이 가볍지는 않아요.
    쓰지 않을 수 없으니 결국 쓰여졌을테지만 부끄럽고,
    바보같은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오늘 조금 무거운 아침이었는데 유산님 댓글에 힘이 되었습니다.
  • 프로필사진 2013.12.23 11:13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3.12.25 23:11 신고 댓글이 늦어 죄송해요.
    비전공자이기에 어려운 점이 있으실테지만 그로 인한 강점도 많아요. 그건 해보시면 느끼게 되실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려면 잃어야 할 것도 많고, 괜한 도전으로 겪지 않아도 될 실패나 좌절을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요.
    전문가로서의 조언은 드릴 수 있는 것이 없구요. 짧은 글이지만 님의 고민 너머의 열망이 더 크게 느껴져 격려해드리고 싶고 응원해드리고 싶어요. ^^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