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 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극진하게 남편의 아침 저녁상을 준비했었다. 뿐만 아니라 밤에도 '좀 출출하다' 하는 얘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집에 있는 재료를 긁어모아 뭔가를 만들어 바쳤다. 그러면서 내심 '아무나 이렇게 해 주는 것 아니야~결혼 잘 한 줄 알어'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했다. 남편이 아내의 사랑으로 인해서 감동의 도가니탕이 되기를..... 그렇게해서 지극한 칭찬이 돌아오기를.... 그런 내 마음을 어뜻 비쳤던 어느 날 남편이 한 마디 했다. 그 한 마디에 뒤통수 맞고 쓰러지느 줄 알았다.
'자기가 좋아서 요리하는 거잖아!'

2.
결혼하고 한 동안 '전화' 문제는 우리 부부의 끊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전화해서 '밥 먹었어? 뭐 먹었어? 오늘 늦어?...'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묻고 대부분의 경우 남편은 차겁고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았다.
'왜 전화했어?'
'그냥'
'그냥?'(한심하다는 듯한 침묵)
그러면 나는 분위기 파악하고 '알었어. 끊어' 하고는 삐져 버리고.....
왜 전화를 그렇게 친절하게 못 받느냐고? 어차피 온 전화 친절하게 받으면 전화세 더 나오냐고?
원망을 많이 하다가 남편의 정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이 일 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한 가지 일을 하다가 맥이 끊기면 다시 맥을 이어 일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남편의 무뚝뚝한 전화태도는 내가 싫어서라기 보다는 그런 부담들 때문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머리로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이후로 나는 치료실에서 남편에게 전화하려고 자연스럽게 손이 갈 때 마다 이렇게 다짐했었다. '내가 지금 남편을 사랑한다면 전화를 한 번 참을 수 있어야 해'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동안 남편 역시 '친절하게 전화 받자. 친절하게 전화 받자'를 외치고 있었고....이런 노력으로 급기야 나는 남편에게 이런 문자를 받기에 이르렀다.
'여보! 요즘 왜 이리 전화를 안 해? 전화가 없으니 허전하잖아~'
나는 당당하게 이렇게 답신을 보냈다.
'요새도 쓸데없이 전화하는 사람들 있나? 그런 사람들 이해가 안 돼' ㅋㅋㅋ

3.
부모님이 대판 싸우셨다. 1년 만의 부부싸움인데 작년보다 싸움의 강도가 엄청 세졌다. 시작은 사소한 것이었다. 한 번 둑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두 분 다 서로에 대한 상처가 많으시다. 싸움 이후에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면 '나는 정말 이만하면 좋은 아내다. 니 아버지 저 성격을 내가 이렇게 이렇게 맞추고 다루면서 살아왔다' 라고 하신다. 그 부분은 정말 잘 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아버님이 어머니께 원하시는 건 너무 단순한 것이고 그 단순한 것을 어머니는 외면하신다. 외면하시다 보니 이제 그걸 맞춰 드리기에는 안 맞춰드린 습관이 너무 오래 되었다.

4.
상대방도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지? 아니면 그 이상의 노력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사랑하는지.....내가 좋아해서 잘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 같다. 그저 나의 습관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작은 습관이라도 바꾸려 하는 노력. 이것이 사랑인 것 같다.
 
200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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