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zine> 4월호


바비킴이 리메이크해서 부른 산울림의 회상을 들었습니다. 젊은 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인데다 가수 특유의 목소리에 젖어 기분 좋게 흐느적거리며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가볍게 흘러가던 노래와 감정이 가사 한 구절에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춰 섰습니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났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있는 걸. 혼자 어쩔 수 없었지.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노래는 이 한 문장에서 오토리버스(auto reverse)가 되고 있었습니다. 연애의 실패로 눈물 콧물 흘리던 제자들, 후배들, 친구들, 아니 나 자신이 모두 그 오토리버스에 걸려 돌아가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어서요.

 

어떤 커플이든 콩깍지 기간이 끝나면 크고 작은 갈등국면을 맞닥뜨리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연애는 바로 그때, 갈등이 불거졌을 때 어떻게 해결하고 넘어가느냐로 결정된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려면 대화해야 하고 갈등 상황에서의 정직한 대화는 대개 싸움으로 치닫게 마련입니다. 이때의 싸움은 사랑을 성숙하게 할 뿐 아니라 자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러나 막상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에 직면해서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갈등을 해결하는 대화에 서투릅니다. 게다가 연인 사이에서는 더욱 어려운 것이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되는 탓일 겁니다. 싸움은커녕 갈등을 느끼는 것 자체가 두려울 테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고 건강한 사랑을 지속해가는 왕도는 헤어짐의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데 있습니다. 오직 하나의 결을 가지고 존재하는 감정이란 없습니다. 연인과 이별 후 치밀어 오르는 분노나 슬픔은 어제의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미워할 일도 없겠지요. 그러니 사랑하는 마음 안에 있는 두려움과 불안 등의 다양한 감정들에 이름 붙이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는 당당함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를 감수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 사랑하면 조금 상처받을 것이고 많이 사랑하면 많이 상처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많이 상처받을 가능성을 기꺼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온 존재가 찢겨지는 상처를 받으신 분이 예수님이니까요. 그러니 상처 없는 사랑을 하겠다는 것은 가짜 사랑에 만족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버드 사랑학 수업>을 쓴 마리 루터의 말처럼 우리 삶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패한 사랑일지 모릅니다. 사랑은 나를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갑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어?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다고?’ 하며 놀라기도 하지요. 실패한 사랑 역시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삶의 영역으로 데려간다고 마리 루터 교수는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배우게 되는 것은 실패한 사랑입니다. 솔까말, 사랑의 실패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지금 사랑이 마지막이면 좋겠지만 몇 번이라도 더 지난 후에 결혼에 골인할지 모르는 것이고요. 그렇게 사랑은 지나가고 또 새로운 사랑이 오게 되지요.

 

산울림의 노래 회상으로 돌아가 봅시다. 말하자면 거절당한 상황에서 왜 나를 떠나가?’라고 묻지 못합니다. ‘엄마가 반대하셔서.... 지금은 취업준비에 올인해야 할 때 같아서....’ 둘러대는 어설픈 이유를 믿지 못하면서 되묻지도 못하고 가슴 아파합니다. 그리고 내가 내게 대답합니다. ‘미운 나때문이야. ‘나는 거절당해 마땅하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해. 못 생겼으니까. 지질하니까. 매력적이니 않으니까. 애교가 없으니까. 집안이 이 모양이니까. 비정규직이니까. 멀리서 보면 몰라도 가까이 날 알게 되면 누구라도 날 싫어할 거야.’ 상대가 양다리를 걸치다 배신을 때린 명확한 이유 앞에서도 미운 건 오히려 나입니다. 우리는 연애의 실패, 아니 고백조차 해보지 못하고 흘려보낸 짝사랑을 모두 내가 못난 탓으로 내게 사랑스럽거나 매력적인 구석이 없다로 해석해 버리는 나쁜 목소리를 품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킹카, 퀸카라 불리는 남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존재로부터 나오는 불안입니다.

 

미안해. 나 너를 사랑했었고, 너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었어. 내 맘을 한결같이 지키지 못한 걸 용서해줘.’ 라고 용기 있게 헤어짐을 말할 수 있을까요? 헤어짐의 아픔으로 이대로 영원히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 싶은 밤을 여러 날 보내더라도 미운 건 오히려 나라며 자존감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대신 자기성찰의 맑은 눈을 가지기로 선택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나요?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로 결심한)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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