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5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어.
친구를 잘 사귀는 방법을 깨달았거든.
뭐냐면, 친구들 말을 무조건 경청해주고 그 다음엔 맞장구를 치는 거야.

어떻게?

자아알 들어주고. '어? 진짜? 정말이야?' 이렇게 맞장구 쳐주면 돼.
그러면 친구들이 다 좋아해. 안 좋아하는 애가 없어. 
나도 누가 나한테 그렇게 해주면 좋더라.

우리 현승이 어떻게 그런 걸 혼자 깨달았지?
(갑자기, 뜬금포, 억눌렀던 미해결 욕구 돌출)
야, 아빠가 이걸 좀 배워야 하는데 말야.

맞아, 아빠는 얘기를 딱 들으면 바로 잘못된 것과 아닌 걸 정리해주지?

(감정형 엄마와 아들이 사고형 아빠와 누나를 잘근잘근 씹다)

아, 그러고보니까 내가 깨달은 게 아니라 엄마한테 배운 거구나.
엄마가 정말 잘 들어주잖아.
하긴, 어떤 땐 디게 안 들어주고 페이스북만 보고 대충 대답하는 척만 할 때도 많지만.

 야!

그런데 엄마. 엄마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주 좋은 거라고 칭찬하면서
왜 내 성격을 자꾸 바꾸려고 해?

엄마가 언제 니 성격을 바꾸려고 했어?

아니, 말로 하라고 하고. 표현하라고 하고 그러잖아.
답답해 하고.

내 성격이 싫어?

아니야. 엄마가 현승이랑 비슷한 점이 많잖아. 그래서 느낌 아니까~
엄마는 커서 음악치료사 되고 MBTI랑 에니어그램 배우고 엄마 성격의 약점을 알았거든.
그게 나빠서가 아니라 불편하니까 고쳐야 할 점이 있더라.
아빠랑 결혼하고 정말 많이 배우고 고치려고 노력했어.
그렇게 깨달은 걸 현승이 어렸을 적부터 조금씩 가르쳐 주려고 했던 거야.
그게 안 될 줄 알았는데 현승이는 되더라.
아가 적부터 누나는 '미안해' 정말 잘했거든. 현승이는 그 말을 그렇게 못하던데.

맞아. 지금도 잘 못해.

아냐. 처음엔 정말 못하고, 나중에는 입모양만 하고, 점점 나아지다가 지금은 정말 잘 해.
너 가끔 엄마한테 혼나고 조금 있다가 엄마한테 와서 크게 숨 쉬고

'엄마, 내가 아까 이래이래 한 거 미안해. 마음 풀어. 나도 마음 풀게' 이렇게 용기내서 말하잖아.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 많지 않아. 그리고 현승이 같은 성격은 더더욱 어려워.우리 나라 사람은 용기가 있거나 없거나 둘 중에 하나야. 엄마가 알아.

어, 내가 용기를 내서 딱 말하는 거 알았어?
그런데 엄마는 MBTI를 배우고 그런 걸 다 알게 됐어?

신기해.

아냐, 단지 MBTI가 아니라 결혼 초에 아빠랑 싸우면서 알게 됐어.
아빠는 미안하단 말도 잘 하고, 싸우고 나서도 얘길 잘 하는데 엄마는 눈물만 나는 거야.
게다가 정말 미안하면 미안할수록 미안하단 소리가 더 안 나오더라.

아!!!!!! 엄마, 나 그거 알아.
정말 미안하면 미안하단 말을 못하겠어. 목구멍에서 소리가 안 나와.
와~ 엄마도 그렇구나.

엄마 아빠 부부싸움의 매커니즘에 대해서 긴 시간 논하다.
무려,
A4 용지에 정리해서 써오라고 하셨다던 털보 아저씨와 털보 부인의 이야기까지 등장


현승이 너는 아직 어린데도 너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같애. 
엄마는 현승이가 참 좋아. 자랑스럽고.
어쩌다가 이렇게 멋진 아이가 엄마 아들이 되었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이렇게 얘기도 잘 들어주고....
(약간 시크하게 무성의한 태도로 빠르게 말함) 나도 엄마 아들인 게 좋아.


(우후훗, 달리는 차 안에서 아들과 나누는 공감 토크 훈훈하게 마무리) 
(하고 싶었지만 네버앤딩 현승의 수다에 엄마 인내심 고갈)
(약간 신경질적으로 이제 엄마 운전에 집중할게. 여기 복잡해서 네비 봐야하거든. 하며 현승의 입을 틀어 막음)



 

그리고 며칠 후,
학교 숙제로 쓴 '나의 강점과 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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